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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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분 우리나라의 화폐
대상 어린이 청소년
경제교육기획팀 (010-1234-1111) 2018.03.17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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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화폐 | 개항기

한편, 일본 등 외국의 개방 압력으로 1876년 일본과의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후 19세기말까지는 멕시코 은화, 루블 은화, 일본화폐 등이 개항장을 중심으로 통용되었다. 이때 조선 정부는 상설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립하고 은본위제도 등의 근대적인 화폐제도를 채택하면서 고유의 화폐 주권을 지키려고 하였다. 즉 근대화폐를 주조하기 위하여 경성전환국을 설립하였으며, 1888년(고종 25년)에는 이곳에서 일환 은화(銀貨), 십문 적동화(赤銅貨), 오문 적동화 등 3종의 근대화폐를 주조하였다.


또한 1891년(고종 28년)에는 은본위제도 도입을 위한 시도로서 「신식화폐조례」를 제정하여 본위화폐를 오량, 일량 은화로 정하고 오량 은화는 외국인 전용으로, 그리고 일량은 내국인의 거래에 사용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개입으로 자주적인 정책의지가 퇴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화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은 보유량의 부족 등 근대화폐 유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의 미비로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더욱이 본위화폐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에서 보조화폐인 이전오분 백동화가 도주(盜鑄; 불법적으로 제조한 화폐) 등에 의한 과잉주조와 일본인에 의한 도주 및 밀수입으로 남발됨에 따라 악성 인플레이션이 가중되었다. 1901년(광무 5년)부터 는 재정조달을 목적으로 주조차익이 큰 백동화가 대량 제조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상평통보와 구리와 니켈로 만든 백동화가 주로 쓰였으며 정부가 발행한 은화, 일본의 은화 등도 함께 통용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일엔짜리 은화가 1901년(광무 5년) 「화폐조례」에 의하여 유통이 금지되자 일본의 제일은행 은 1902년에 개항장에서의 무역거래를 위하여 일본에서 만든 일원, 오원, 십원 3종류의 지폐를 우리나라에서 발행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제일은행권 배척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 경제 수탈을 공식화하는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1905년 일련의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에 따라 신 화폐는 일본화폐 와 같은 것으로 하고 일본 조폐국에서만 제조토록 함으로써 일본 제일은행권이 통용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1909년경에는 일본 제일은행권이 거의 전국적으로 통용되었다.


한편 1890년대부터 한성은행, 대한천일은행 등 금융기관이 속속 설립됨에 따라 이를 통일적으로 규제할 중앙은행의 설립 이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1908년(융희 2년) 11월에 「한국은행조례」가 제정되고 그 이듬해에 구 한국은행(당시에는 한국은행이라 하였으나 현재의 한국은행과 구별하기 위하여 구 한국은행이라 함)이 설립되었다. 구 한국은행은 설립초기 에는 제일은행권을 발행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구 한국은행권 일원, 1911년에 구 한국은행권 오원, 십원을 발행하였다.

  1. [1888] 1888년 (고종25년) 최초발행 일환(一)은화. 1888년 (고종25년) 최초발행 오문(五文)적동화. 1888년 (고종25년) 최초발행 십문(十文)적동화
  2. [1900~1901] 1900년 용산전환국 설립. 1901년 화폐조례공포
  3. [1904~1905] 1904년 전환국 폐지. 1905년 금본위제 실시
  4. [1909] 1909년 (구) 한국은행 설립
  5. [1910~1911(1910:국권피탈)] 1910년 발행 최초의 (구)한국은행권 일원권(壹圓券). 1911년 발행 (구)한국은행권 오원권(五圓券). 1911년 발행 (구)한국은행권 십원권(拾圓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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