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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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구분 우리나라의 화폐
대상 어린이 청소년
경제교육기획팀 (010-1234-1111) 2018.03.17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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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화폐 | 조선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물품화폐 대신 명목화폐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태종 때에는 지폐형태인 저화(楮貨)가 발행되어 포화(布貨)와 병용되었으며, 세종 5년(1423년)에는 조선시대 최초의 동전 인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발행하고, 그 2년 후에는 저화 유통을 정지하고 조선통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세조 10년(1464년)에는 국가 비상시에 무기(화살촉)로 사용될 수 있는 전폐(箭幣)가 제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교환경제의 미발달과 화폐발행량의 불충분 등으로 이들 화폐가 일반적인 거래수단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교환경제와 더불어 화폐경제의 발달이 진행되었다. 즉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해 전통적 사·농·공·상 직업관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농업에 의존한 국가경제 기반의 취약성을 제한적이나마 보완하는 취지에서 상공업 진흥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또한 왜란이후 인구가 급증하면서 생산력 이 증대되고 대동법 시행의 확대로 조세체계가 정비되면서 상품생산력과 교환경제 발달이 촉진되었다. 아울러 화폐경제 가 발달한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명목화폐 유통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숙종 4년(1678년)에는 우리나라 화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었다. 상평통보는 우리나라 화폐사상 전국적으로 유통된 최초의 화폐이며 고종 때까지 2세기에 걸쳐 주전소, 서예체, 천자문순, 수자순, 오행순 등으로 나누어져 약 3,000여 종류가 발행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최장기간 통용된 화폐가 되었다.


상평통보의 전국적인 유통은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시키고 전통적으로 취약한 농업생산에 의존하고 있던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여 농민의 몰락과 농촌사회의 분화를 초래하였으며 지방 관리의 농민착취 등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켰고 지위의 척도를 부(富) 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정부로 하여금 명목화폐의 주조차익을 전형적인 재정의 확충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낳기에 이르렀다. 1866년 대원군은 경복궁을 새로 짓고 군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였는데 그 가치가 상평통보의 100배가 되었으므로 급격한 물가상승의 폐단을 초래하였다. 결국 당백전은 발행된 지 2년여 만에 통용이 중지되었다.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재정수입을 충당하기 위해 1883년에는 당오전(當五錢)을 발행하였는데 당오전 역시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1. [15세기] 1423년 조선통보
  2. [17세기] 인조11년(1633년)추정 무배자전, 뒷면에 문자가 없는 최초의 상평통보. 1678년(숙종4년) 최초 주조 상평통보 단자전
  3. [19세기] 1866년(고종3년) 최초 주조 당백전. 1883년(고종20년) 최초 주조 당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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