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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754회] 그림으로 살펴보는 세계화의 역사
학습주제
경제이론·교양
대상
일반인
설명

□ 제754회 한은금요강좌

ㅇ 주제 : 그림으로 살펴보는 세계화의 역사

ㅇ 강사 : 성균관대학교 송병건 교수

ㅇ 일시 : 2018. 8. 10. 14:00~16:00

교육자료
(성균관대학교 송병건 교수)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송병건이라고 하고요. 이 강좌를 전에 들으셨던 분도 있고 아니신 분도 있으실 텐데, 많은 경우에 보면 금융에 관한 것들이 많고 또 현재에 관한 여러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하는데요. 오늘은 조금 색다르게 굉장히 시간적으로 길고 공간적으로도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런 주제로 하고요.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막연하겠다 싶기는 한데, 그래도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걸로 봤을 때 “세계의 경제사가 어떻게 흘러왔나” 이것을 조금 즐겨보는 시간으로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즐겨본다고 말씀 드린 것은 강의 내용이 순전히 말로 풀기보다는 예전부터 있어 왔던 그림을 놓고 그 그림 속에서 과거 역사의 중요한 시점의 힌트를 찾아서 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려고 해서 그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핵심은 이거에요. 오늘의 주제는 “세계화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한데,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의 굉장히 큰 조류는 전세계가 어떻게 서로 엮이게 되었는가, 이질적인 지역이 없어지고 점점 하나로 통합되었는가 하는 것이고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연결성이 강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 초연결화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연결성이라고 하면 용어가 기술 중심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상호작용을 여러 지역들, 여러 문화권들이 하게 되면 기술적으로만 엮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도도 통합이 되고 문화적으로도 서로 이해관계가 깊어지고 하죠. 그걸 포괄적으로 말했을 때는 역시 세계화라는 정의가 아직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어요.

세계화란 것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세계가 좁아지는 것이죠. 물리적으로 크기는 같지만 세계 각 지역의 상호작용이 굉장히 강화가 되고 그 강도가 높아지는 것. 그래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느끼기에는 과거에 살던 사람보다 세계를 작게 느끼는 것이죠. 그게 우리가 문화적인 측면, 잘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세계화는 우리 가까이에 들어와있죠. 예를 들어서 지금 여러분 중에는 메이저리그 야구라던가 프리미어 축구 이런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순수하게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는 자기의 기호, 자기의 선택인데요. 한 20년 전으로 가보면 강호동, 이만기 그래서 민속 씨름이 유행할 때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것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각자의 기호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왜 프로축구, 프로야구는 계속 국제적으로 인기가 있는데 민속씨름은 인기가 없어졌을까?”를 생각해보면 국제적인 시스템, 그러니까 세계적인 선수들을 한 곳에 모아서 경기를 하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중계해주고 그래서 셀러브리티로 만드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진 속에서는 사람들이 선호를 놓치지 않고 계속 좋아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민속 씨름과 같은 경우는 일시적으로 어떤 문제점으로 인기를 잃게 되면 그 다음에 되돌리기가 굉장히 어렵죠. 이런 식으로 우리가 순수하게 자기의 문화적 선택, 개인적 기호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따지고 보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판단을 해봤을 때 조금 다르게 평가될 만한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지금 여러분들 중에 외국에 나가보신 분들은 그냥 자유롭게 나가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문화적 압박 같은 것을 잘 못 느끼실 텐데, 제가 처음 유학을 가고 외국에 나가고 이럴 때는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당신은 외국에 나가면 민간 외교관이니까 처신 잘하고 나라 망신 시키지 말고…” 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굉장히 좋은 말이죠. 외국에 나가서 자기네 나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똑바로 하는 것은 좋은데, 생각해보면 그래요.
여러분들 아마 지금 생각하실 때 대부분 그러실 텐데요. 외국에 나가서 친구들 만나고 사귀고 이러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약점, 장애 이런 것들도 다 솔직히 털어놓고 그러면서 소통을 해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인데, 왜 자기의 국가에 대해서 그렇게 요즘 말고 “쉴드를 쳐야 되느냐” 이런 것이 있죠. 그래서 요즘으로 보면 그런 식의 말을 들으면 상당히 구식이다라고 아마 느낄 것이에요. 그런데 그게 불과 한 20년 동안에 변화해온 우리의 모습이죠. 그래서 세계화라는 것은 굉장히 깊이, 단순히 노동과 자본의 이동과 같은 경제적 요인의 이동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하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고요.

그 다음 생각해 볼 것은 이것이에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세계화는 한 1980~9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어서 지금까지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빨라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러면 역사를 길게 봤을 때도 세계화는 이렇게 계속해서 속도와 범위가 넓어지고 빨라졌느냐. 얼핏 그럴 것 같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아요. 예를 들어 세계화를 촉진하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을 보면 그게 발달하면 세계화가 잘 발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국가적 차원에서 그런 기술진보에 굉장히 힘을 많이 쏟은 시간이 1,2차 세계대전 같은 시기죠.
그런데 문제는 그 시기에는 그 기술을 적성국과 나누려 하지 않고 자기만 독점을 하려고 하죠.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는 기술 진보가 있더라도 이것이 바로 세계화로 연결되지 않고, 우리 뒷부분에 보게 되겠지만 세계화의 후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본다면 기술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세계화는 일방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는 굉장히 가속도가 붙었다가 그 다음 시기에는 다시 후퇴를 하기도 하는 이런 변화를 겪어요.

오늘 볼 것이 바로 그것이에요. 한 2000년 정도의 인류 역사를 놓고 어느 시기에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언제 감속화되었느냐. 그 다음에 그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들이 무엇이었나를 봄으로써 큰 그림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강의를 하려고 해요.

우선 간략한 시기구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기는 분명히 세계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인데, 이것을 보통 학자들은 ‘2차 세계화’라고 합니다. 몇 가지 특징이 있죠.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이념체제가 무너진 것. 그래서 이념이라는 장벽이 무너져서 소통이 빨라진 것이죠. 이게 이념장벽이 무너졌다는 의미에서 세계화가 된 것이고, 또 하나는 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적인 물결. 그러니까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에 많은 것을 맡기자” 하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세계화가 많이 흘러간 것이고. 마지막 것이 여러분들이 제일 느끼기 쉽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정보의 이동 속도와 정보를 획득하는 비용이 굉장히 낮아진 것들이 작용을 하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지금의 2차 세계화가 이루어졌는데 전세계로 본다면 미국이 중심이 되겠죠. 그래서 그 시기를 ‘Pax Americana’ 이렇게 부르죠. Pax라는 것은 평화라는, Peace라는 뜻이죠. 그래서 ‘미국식의 평화’라는 뜻인데, 미국이 평화롭다는 이런 식의 의미는 아니고 이 뒤에 나오는 주체의 힘이 강력해서 다른 목소리가 대적을 하지 못하는 상태.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질서로 실질적으로 통합이 된 상태를 의미해요. 그래서 ‘Pax Americana’라고 하면 ‘미국식 방식으로 단일화된 세계질서’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2차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제 1차 세계화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죠. 그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엄밀히 말하면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에요. 이 시기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공업화를 하고 그러면서 서로 경제가 엮이니까 경기 순환이 동조화가 되고 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이래서 전세계가 하나로 묶이던 시절이죠.
이게 ‘1차 세계화 시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그 사이에 있는 시간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대공황 이래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나빴을 뿐만 아니라 서로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펴던 시절이에요. 국제적 공조를 바랄 수 없던 시절이에요. 이 시기는 세계화가 후퇴한 시기죠. 그래서 세계화가 한창 빨라졌다가 후퇴했다가 다시 20세기 후반부터 재도약을 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차 세계화라는 것이 결국은 경쟁적인 공업화 때문에 일어났다면 세계화의 기점으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산업혁명 아니겠느냐. 그래서 한 1세기쯤 거슬러 올라가서 19세기 중반부터 한 1세기 동안의 기간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의 시작, 이것이 세계경제의 세계화를 낳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보기도 하죠. 당연히 이 시기는 ‘Pax Britannica’라고 불리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일 중요한 시기로 또 하나 볼 수 있는 것이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죠. 콜럼버스로 상징이 되는 시기. 그래서 구세계와 신세계, 구세계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얘기하고 신세계는 제일 대표적으로 남북아메리카를 얘기하죠. 이 구세계와 신세계가 과거에는 따로따로 움직였다면, 콜럼버스 이후에는 이것이 하나로 통합되어서 단일한 경제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 시기부터 실제적으로 전세계, 물리적으로 전 지구가 하나의 경제권이 되는 시기가 되니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죠. 이것을 ‘대항해시대’라고 부르죠.

그리고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사이가 장거리 무역에서 이득을 얻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해군력에서 우위를 떨친 나라들이 힘을 쓰는 시대, ‘중상주의 시대’가 들어가있죠. 이 시기가 근대적 사회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전세계는 이미 통합되고 있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세계 전체가 단일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전에도 “신세계 내, 또는 구세계 내에서의 일종의 ‘국지적 세계화’는 있지 않았을까?” 이런 논의도 많이 있을 수 있겠죠. 그걸로 거슬러 올라가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시기는 13~14세기에요. 바로 ‘원나라’가 있던 시기죠. 당시로 봐서 세계 최대의 제국이고, 또한 국제적인 대외 정책을 볼 때 굉장히 개방적인 통상정책을 폈던 시기에요. 이 시기를 ‘Pax Mongolica’라고 부르죠.

“더 올라가보면 어떨까?”해서 더 올라가면 유럽으로 보면 로마제국, 아시아로 보면 한나라. 이런 데가 있던 시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이왕 가는 김에 더 가보자 그러면 이른바 ‘4대문명’이라고 하던 시기로도 갈 수 있죠. 이 시기에도 나름의 미니 세계화는 상당히 진척이 돼요.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에서 성을 짓는다, 궁궐을 짓는다 하면 그 건축자재들이 어떻게 왔나 이것들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있는데 그걸 다 통합해보면, 메소포타미아라고 하면 지금의 남서아시아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건축자재가 온 것을 보면 한 쪽에서는 이집트 상류에서 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도 북부에서 오고 이 정도까지의 거리에서 와요. 이것을 보면 오늘날과 비교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미니 세계화라고는 충분히 부를 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얘기를 해요.

끝까지 가보자, 어디까지 가느냐? 인류의 발생부터 시작해요. 현생인류로 놓고 본다면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출현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대륙을 넘어서 전세계로 옮겨가죠. 인류가 그렇게 한 곳에서 시작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화의 시작이 아니냐. 이렇게 놓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인류의 초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쭉 구성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걸 뒤집어보면 그야말로 보통 우리가 보는 역사책에서의 흐름을 세계화라는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이제 하나씩 그림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갖길 바라요. 처음 볼 것은 고대와 중세의 세계화인데요. 너무 일찍으로 가지는 않고, 고대사회, 그러니까 아시아에서는 한나라를 중심으로 한 제국 체제, 우리나라의 고조선 정도의 시기로 볼 수 있고요. 유럽에서는 로마제국이 힘을 떨치던 시대로 간다면 구세계만 놓고 봤을 때는 이런 식이 되어요. 양쪽에 그야말로 거의 비슷한 규모의 대제국이 형성이 되어있고, 그 중간에는 통칭해서 페르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파르티아 제국이 두 제국보다는 약한 상태로 이렇게 있어요. 그러면서 전세계는 여러 가지 세계화의 힘 중에서도 무역의 힘, 돈을 벌고자 하는 힘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상인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무역망이 하나씩 형성이 되어요. 그래서 우리도 박물관 가보면 신라시대 유물 중에서 ‘로만 글라스’ 이런 것이 있잖아요. 로마풍의 유리. 그런 것처럼 기술과 실제 상품의 이동을 따라서 이렇게 쭉 교역망이 연결이 되어요. 이게 “로마 제국의 상인이 직접 와서 거래를 했다.” 이런 뜻은 아니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요. 대개 가까운 지역에 없는 물건을 팔아서 쭉 연결되는 릴레이 방식의 교역이에요. 육지로는 당연히 우리가 알 고 있는 ‘비단길’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그 다음에는 나머지는 바다로 와서 이렇게 인도양을 거쳐서 남중국해까지 이르는 해양 실크로드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도 발달하게 되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세계화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겠죠.

그런데 여길 보면 어떤 지역은 제국을 이루고 또 다른 지역은 여기에 통합되지 않은 지역은 굉장히 작은 규모의 통치세력을 이루는데 그 차이가 세계화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면 대제국을 이루면 그 통치자는 단일한 규범으로 통치를 할 필요가 있죠. 그러니까 각 지역에 있는 토착적 관습이나 제도 같은 것들을 없애고 그 대신에 광역적으로 통할 수 있는 질서, 제도 이런 것을 만들어서 통용시키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제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서 국지적 세계화가 발달하기 쉬운 조건이 되죠. 이게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통용이 되다가 항상 그렇지는 않고, 근대 초기쯤 되면 오히려 제국이 제국유지를 위해서 폐쇄적이 되고 그것보다 작은 국가들의 경쟁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로 바뀌게 되죠.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긴 역사로 보면 확실히 제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세계화의 관점에서 훨씬 발달된 모습을 보여요.

대표적으로 중국의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를 보면 진시황이 통일을 하고 나서 어떠한 정책을 펴느냐. 한자로 본다면 서동문 거동궤, 행동윤 그러죠. 글에 있어서 한자어를 통일하고 차량, 수레의 궤도, 수레바퀴의 폭을 통일하고 사람의 행동거지에 있어서 윤리를 통일한다 하는 것이에요. 이게 제일 먼저 내거는 것이에요. 제국을 통치하려면 이런 식의 균질적이고 단일화된 규범이 필요하다 하는 것이죠. 이것이 세계화에 도움이 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 본격적으로 고대시대의 다른 모습들을 그림으로 볼게요. 이것은 로마시대 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19세기 말의 그림이에요. 자세히 보시면 벌거벗은 어린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이 겁에 질려있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거기에 로마 병사가 와서 석류를 주면서 달래는 모습이이에요. 그런데 마음은 좀 풀리지 않는 모습이죠. 이 아이들이 누구인고 하면 로마제국이 한창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잡은 포로들인 것이죠. 아마 그림으로 봐서는 아주 말끔하고 그런 것으로 봐서는 상대 적장의 자식들이거나 이런 것이겠죠. 그런데 얘네들은 어떻게 될 것이냐? 결국은 뒤에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끌려와서 광장의 노예상인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려나갈 운명이 되는 것이죠. 이런 식의 구조가 로마 제국의 운영방식이죠. 제국이 팽창하면서 거기서 많은 노예들을 공급받고 이것을 노예 시장을 통해서 공급해서 거대한 농장이라든가 산업시설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운영하게 되는 체제. 이런 것들을 만들죠. 이게 제국시스템 하에서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죠.

그러다가 로마제국이 오래가지는 못하고 동로마, 서로마로 갈리다가 서로마 지역이 소위 말하는 게르만족의 이동에 의해서 무너지죠.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유럽이 생기죠. 동로마제국은 좀 더 살아남아서 비잔틴 제국이란 이름으로 천 년을 더 가죠. 그래서 15세기까지 가는데 경제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서로마를 더 주목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서로마를 놓고 본다면 서로마는 이미 5세기가 되면 함락이 되는 모습이에요. 이게 함락의 모습인데 보시면 대조가 아주 뚜렷하죠. 원래 로마의 모습은 아주 똑바로 생긴 잘생긴 건물, 잘생긴 황제의 상 이런 것인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벌거숭이에 구릿빛 피부. 멋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화가의 의도로 봐서는 굉장히 야만적인 모습. 문명을 무너뜨리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 이런 야만족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유럽은 제국이 무너지고 상당히 작은 규모로만 운영되는 체제로 가죠. 경제도 다 무너지게 되어요. 그렇게 되면 경제운영이 지금의 국가보다 훨씬 작은 단위, 봉건제 체제와 걸맞은 그런 국지적 시장으로 가요. 이 그림을 보시고 당시의 중세시장에 여러분들이 들어와있다 생각해보시면 꽤 괜찮은 시장이에요. 바닥에 포장도 되어있고 해요. 쭉 들어가보면 옷을 다리고 있고 걸려있고 그래요. 여기는 재단사가 있는 집이죠. 조금 더 들어가보면 비슷한 종류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가죽이에요. 그래서 가죽옷을 만드는 사람. 여기를 보시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잘 보면 뉘어가지고 면도를 해주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여기는 이발소에요. 이 동그란 것이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받치는 것인데 위에다 이렇게 걸어놓기도 했어요. 이 집에서 걸어놓은 것인데, 신기하게 이발소는 옛날부터 자기네 상징을 걸어놓길 좋아했던 모양이에요. 마지막으로 나오면 제일 판단하기 어려운 종류의 가게가 있는데 이게 무엇일까요? 하얀 탑같이 생긴 것. 이게 상아 같기도 하고 뭔지 잘 보기 어려운데 실제로 뭐냐 하면 설탕이에요. 설탕 덩어리를 놓고 손님이 와서 덥다고 하면 갈아서 컵에다 넣고 뒤에 있는 향신료를 넣어서 음료를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별다방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식이에요. 여기 보면 ‘Von Ypocras’라고 써있는데 Ypocras는 Hippocrates의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그러져서 만들어진 것이래요. 그래서 건강음료라는 뜻인 거죠. ‘몸에 좋은 음료다’하는 뜻으로는 가게에요.

이런 것이 대표적으로 괜찮은, 이것은 프랑스였는데 유럽 중세의 중앙에 있는 일반적인 시장의 모습. 나름 발달한 시장의 모습이에요. 굉장히 국지적이라는 느낌을 주죠. 이에 비하면 우리 아까 그림으로 보셨던 것 중에 파르티아 제국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가 중세가 되었을 때는 이슬람 세력이 여기서부터 커져서 이 만큼이 이슬람 영역이 되죠. 그리고 중국은 계속해서 제국이 이어받는 체제가 되어요. 그래서 엄청난 제국, 그리고 확장하고 있는 신흥세력 이슬람, 그리고 파편화된 서유럽. 이렇게 대조를 이루게 되어요. 그래서 우리 보신 것처럼 파편화된 서유럽의 모습을 봤는데 이에 비하면 세계 무역으로 봐서는 이슬람 상인들이 활동을 훨씬 잘하는 셈이죠.
이 사람들의 모습은 이런 데서 보여요. 대상이죠. 카라반들이 낙타를 타고서 사막을 건너서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면 하룻밤 쉬어가고, 또 계속 이런 고난의 상업활동을 하는데 한 곳에 도착하면 굉장히 피곤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누워서 자요. 완전히 서로 뒤엉켜 자는데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죠. 이게 오아시스 마을에 설치되어 있는 카라반 숙소에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이렇게 깨어있는 사람도 있죠? 이 사람들은 뭐냐 하면 이 카라반세라이에서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상인들을 터는 사람들이에요. 물건을 뒤져가지고 물건을 빼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것처럼 장거리 무역을 하는 사람들은 큰 장애가 있어요. 육체적으로 피곤한 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 문제는 정보가 부족하고 그 다음에 멀리까지 가서 사고를 당하면 손해를 어떻게 감수할 방법이 잘 없어요. 그걸 해결하는 방식으로 장거리 무역상들은 동업조합을 항상 결성을 하죠. 유럽 같으면 길드가 있고, 어느 지역이든 장거리 무역상들은 서로 동업조합을 결성해서 정보를 교류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그것을 서로 나눠서 함께 지는 이런 체제를 만들게 되죠.

해상에서도 이슬람 상인들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요. 이것은 페르시아 만을 거쳐서 내려오는 배를 묘사한 것인데요. 아주 간단하게 그려있죠.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를. 그런데 배에서 흥미로운 점은 배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부를 좀 검게 묘사했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좀 뽀얗게 묘사를 했어요. 햇볕을 쬐고 일하니까 검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위에서 일을 하는 것. 선박을 운항하고 하는 부가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인도계 사람이고요, 이 안에 실제로 장거리 무역을 하는 손님들은 다 이슬람 상인인 것이죠. 이 그림을 보면 장거리 무역의 주역은 이슬람 상인이었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중국으로 넘어오면 대제국이 건설이 되고 특히 중세에 ‘Pax Mongolica’ 시대가 되면서 장거리 무역이 아주 발달하게 되죠. 그래서 대표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인물들을 보면 유럽에서 온 변변치 않은 상인 가족인 마르코 폴로 가족이 황제를 만나서 인사를 하고 또 교황이 전해주는 쪽지도 전달하고 하는 이런 것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 중에 마르코 폴로는 셋 중에 누구냐 하면 어린 애에요. 나머지는 자기 아버지와 삼촌인데, 경험이 많은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서 장거리 항해를 해왔어요. 그림을 보면 좀 색다르죠. 이게 동방견문록에 들어있는 삽화인데, 당연히 서양사람이 그렸고 그 그린 사람은 중국에 가본 일이 없는 사람이죠. 그래서 자기 상상을 통해서 그림을 그려요. 그러니까 당연히 쿠빌라이 칸이 서구적 인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조금 참고 봐야 되죠.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여기 뒤에 있는 배에요. 왜냐하면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올 때는 인도양을 거쳐서 온 것이 아니라 지중해를 건넌 다음 내륙을 통해서 왔거든요. 그러니까 황제가 있는 곳, 지금의 베이징의 조금 위쪽에 있는 지역인데 거기서는 배가 보일 리가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려놨느냐? 한 가지 추측은 이거죠. 화가가 당시 정보가 잘 없으니까 나름대로 그렸다 하는 건데, 또 하나는 당시의 그림이라는 것이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시간적 과정을 하나의 그림 속에 묶어서 이야기를 통합해서 그려놨을 수 있다 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이 저 유럽에서부터 지중해 건너고 이렇게 와서 이런 유럽식 배를 타고 온 얘기를 다 집어넣어서 그렸을 것이다 하는 해석이 가능해요.
두 번째 것이 더 그럴싸한 것이 저 뒤에 보시면 언덕 위에 성도 유럽식 성을 그려놓았어요. 그런 것을 보면 아마 화가가 무지해서 이렇게 그렸다기 보다는, 이 사람들의 고난의 여행기를 그냥 한 그림 속에 집약시켜서 그렸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나타났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석이 될 것 같아요. 마르코 폴로는 결국은 이 책을 써서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데, 애초에 이 책을 쓴 것이 아주 정확한 중국에 대한 역사서를 쓰겠다는 뜻이 없었어요. 전쟁에 휘말려서 자기가 전쟁포로가 되는데, 굉장히 심심한 삶을 감옥에서 살다가, 자기가 잘하는 것은 이야기하고 이런 것이어서 같이 갇혀있는 죄수들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요. 그런데 더 재미있게 하려고 온갖 과장을 섞었겠죠. 그러다가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눈치 빠른 한 작가가 이야기를 받아 적어서 책으로 내면 굉장히 히트하겠다 해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애초에 출발이 이 책은 정확한 역사서가 될 뜻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돌이켜서 역사가들이 보면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것이 굉장히 많고,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은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안간 것이 아니냐.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엮어서 책으로 찍어낸 것이 아니냐”라고도 얘기하는데 그 논쟁을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는 안 가고서는 알기 어려운 그러한 내용이 꽤 있기 때문에 가기는 간 것 같다. 그런데 자기의 특징인 과장을 섞어서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이 정도가 통설로 지금 인정받고 있어요.

그 당시 가장 잘나가던 ‘Pax Mongolica’ 시대의 무역망을 보면,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무역회로가 8개가 중첩되어 있는 모습이에요. 얼핏 보면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나눠 볼 수가 있어요. 우선 유럽은 자기들은 나름 잘 산다고 생각했지만, 아까 본 것처럼 상당히 파편화되고 작은 규모의 무역망이에요. 유럽 전체가 하나의 무역망이라고 볼 수가 있고, 이 사람들한테 가장 값비싼 수입품은 동방에서 오는 것들이죠. 그러니까 지중해 무역이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거기에 있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그 당시에 제일 부자인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두 번째 교역회로인 지중해 회로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이 지중해 무역회로가 아시아로 연결되는 것은 크게 봐서 세 길이에요. 하나는 전통적인 육로, 비단길이고요, 또 하나는 바그다드를 지나서 페르시아 만을 거쳐 인도양으로 나오는 것. 또 하나는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거쳐 홍해를 거쳐서 나오는 것이에요.

결국은 이렇게 나와서 다 아시아로 연결이 되는 것이죠. 나머지는 바다를 셋으로 쪼갰어요 배를 타면 한번에 가기는 가는데 왜 쪼갰느냐? 우리나라에도 통용이 되지만, 당시 항해를 하는데 알아야 될 제일 중요한 지식은 이쪽부터 이쪽까지 다 무역풍이 분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1년에 바람이 부는 방향이 반년 주기로 바뀌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 번 배를 탄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한쪽 방향일 때 갔다가 그 다음에 필요한 곳에서 멈췄다가 바람 방향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가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큰 대륙이 있는 곳, 여기 인도, 그 다음에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거기까지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 둘, 그 다음에 거길 넘어서 남중국해까지 하나 이렇게 되어요. 그래서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 당시의 구세계의 무역망은 이 8개의 중첩된 회로에요. 다시 정리해보면 여기 유럽본토, 지중해, 거기서부터 세계로 뻗어 나오는 길, 그 다음에 장거리 항해로를 3개로 나눠 놓은 것 이렇게에요. 이게 아부-루고드라는 학자가 통합을 해서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세계화라는 것이 결국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국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해요. 좀 더 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서는, 이것이 맞기는 맞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무역이 있었다 해서 한 두 군데쯤을 더 강조하는데,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해서 스칸디나비아까지 이르는 이 지역도 나름의 경제 무역망이 있었다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가가치는 그렇기 높지 않지만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도 상당히 넓은 지역에 대해서 교역이 이루어졌다 하는 정도를 넣어요. 그래서 이 두 군데까지 넣는다면 열 개의 무역회로가 되겠죠. 어쨌든 이게 오늘날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중세의 경제의 큰 모습이에요.

이렇게 중국이 주도하던 세계, ‘Pax Mongolica’ 시대가 변화를 맞게 되는데, 변화의 요인은 예상치 못한 데서 일어나요. 이 그림이 힌트인데요, 제가 가끔 이렇게 빨간색으로 뭔가 질문같이 넣어놨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그림은 ‘죽음의 승리’라는 제목의 그림이에요. 이런 그림은 대개 해골을 죽음의 신으로 놔요. 그래서 여기 해골이 엑스레이로 찍은 것 같은 그런 말을 타고 큰 낫을 들고 있어요. 아마 이런 그림들을 많이 보셨을 거에요. 해골인데 큰 낫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은 이 이후에 굉장히 많은 그림에서 등장을 하는데요, 이것이 초창기 그림의 하나에요.
그래서 이 죽음의 신이 스쳐가는 동안 그 밑의 사람들이 다 희생을 당하는 것인데요, 잘 보시면 성직자들이 상당히 많아 보이고 그 다음에 귀부인들이 많아 보여요. 그런데 어떻게 죽었느냐 보면 다 화살에 맞아서 죽어있어요. 이 그림이 무엇을 상징할까? 죽음의 원인이 뭘까? 직접적인 원인은 화살인 것 같고, 누가 죽였을까를 보면 성직자가 많은 것을 보면 이교도가 죽였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부유층이 많은 것을 보면 하층민의 반란인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다 아니에요. 힌트는 어디에 있느냐? 다른 그림인데요, 이것은 장례식장의 모습이에요. 여기에 역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인부들이 나르는데, 나르는 인부도 역병이 옮아서 쓰러지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위의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하느님한테 누가 탄원을 올려요.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것인데, 벌거벗은 차림의 화살이 꽂혀있는 것이에요. 과연 이 존재가 무엇일까? 하는 것인데요, 이 사람이 성 세바스티아누스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을 본격적으로 그린 그림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보면 이런 것이에요.

만테냐라고 하는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 이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로마 때 황제를 보위하던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인데, 몰래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인들을 돕다가 발각되어서 처형을 당하게 되어요. 처형을 당한게 이렇게 묶여가지고 화살을 맞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꽤 여러 대의 화살을 맞았는데 죽지 않더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고 기적이라고 해서 성인으로 추앙이 되고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높이 사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중세의 역병을 겪다 보니까 생각하는게 꼭 화살하고 이 대규모 질병하고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요. 왜냐하면 화살이 전쟁 때 하늘에서 막 쏟아지면 운이 좋은 사람은 피하고 운이 안 좋은 사람은 맞고, 또 어떤 사람은 한두 대 맞았는데도 살고, 어떤 사람은 빗맞은 것 같은데도 죽고 이런 식이에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역병은 화살하고 비슷한 속성이라 생각하고 한걸음 나아가서 화살에 맞고도 죽지 않은 사람을 성인으로 모셔서 우리가 기도를 하면 역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게 앞에서 본 이 그림의 기원이 되는 것이고, 좀 더 나아가보면 이 사람들은 이 그림이 보여주는 바는 실제로 화살에 죽은 것이 아니라 역병으로 죽은 것이고, 거기에는 종교라든가 부라든가 이런 것도 다 덧없다. 역병을 피해갈 길이 없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그림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이게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큰 타격을 줬던 질병인 흑사병이죠. 페스트로 알려졌는데, 그게 알려진 것은 질병, 이 병원균에 대한 이해가 생긴 19세기 말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이게 병원균 때문이라는 생각을 못하죠. 시작된 바가 되게 흥미롭죠.

당시 중세에서는 동방무역의 중심인 이탈리아 상인들이 가장 부유했는데, 이 사람들이 동방으로 가는 길의 거점들을 자기네가 점령을 해서 식민지로 삼죠. 무역전쟁기지로 삼는데, 흑해에 있는 이 카파라는 도시는 제노바 사람들이 전쟁기지로 삼은 곳이에요. 그런데 몽골군이 워낙 세력이 세다 보니까 저 끝에서부터 출발해서 와서 이 가까이까지 유럽을 위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노바에서 군대를 파견해서 여기를 지키게 했어요. 여기서 곧 전투가 일어날 상황인데, 전투가 일어나기 전날 몽골군 진영에서 역병이 발생해서 전쟁을 못할 상황이 되었어요. 그리고는 다시 퇴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냥 가기 아쉬웠던지 지휘관이 역병에 걸려서 죽은 자기 몽골군 시신을 투석기에 넣어서 던져요. 이 안으로 던지고는 퇴각해서 가버려요. 이 안에서는 갑자기 시신들이 떨어지고 하는데 적군들은 떠났고 하니까 재빨리 대충 수습하고 자기네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이게 자기가 전염병에 감염된 채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 한 색깔로 표시된 데가 1년동안 감염된 면적이에요. 그러니까 한 5년쯤 되면 유럽 거의 전역이 흑사병으로 휩싸이고, 그래서 당시 인구의 1/3정도가 죽어요. 엄청나게 큰 규모이고 그 정도되면 사회질서가 다 무너져요.
아까 본 것처럼 독실하게 종교에 의지해도 죽고, 어떤 사람들은 희한한 일을 벌이고 그러죠. 건강한 어린애를 희생시킨다든가, 유태인을 대상으로 삼아서 공격을 한다든가. 이런 온갖 종류의 일들을 벌이죠. 그런데도 해결은 잘 안되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병이 약해지고 이런 방식으로 되어요. 그런데 과연 몽골군한테는 그 병이 왜 생겼느냐가 궁금한데, 그 뒤에 역사가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불빛으로 표시한다면 한 이정도 쯤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토착질병이어서 그 동네에서는 가끔 저런 병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Pax Mongolica’ 시대에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상인들이 훨씬 자주 옮겨 다니고, 짐이 많아지고 하면서 이 흑사병을 옮기는 매개체, 이것은 쥐벼룩이에요. 까만 쥐의 몸뚱이에 살다가 먹을 것이 별로 없을 때 사람이 가까이가면 사람한테 달려들어서 무는 것이에요. 이렇게 전염이 되는데, 그런 쥐가 살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것이죠. 그러면서 그 질병에 익숙하지 않은 몽골군 병사들한테 그것이 옮겨가고, 그것이 이런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유럽으로도 전파가 되었다. 이렇게 알려져 있어요. 그렇게 보면 이게 중앙아시아에서 꼭 서쪽으로만 갔으리라 생각할 것은 없죠. 다른 방향으로도 갔으리라 생각해서 연구를 더 해보니까 비슷한 시기에 중국 곳곳에서도 흑사병이 발병했고, 그것 외에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인도의 항구, 종교적 목적으로 찾는 성지들, 메카라든가 거길 가는 중간 통로에 해당하는 카이로 같은 데도 다 대규모로 흑사병이 돌았다는 것이 밝혀져요.
그래서 결국은 흑사병은 뭐냐. 이 동네에 있는 국지적 질병, ‘Pax Mongolica’ 이전에는 동네사람들만 알고 있던 질병이 무역이 세계화되면서 그에 따라서 자기의 활동 영역을 병균들이 넓힌 것이죠. 다시 말하면, 질병이 세계화가 된 것이죠. 무역이 세계화 된 것의 부작용이랄까 이런 것으로서, 부산물로서 질병의 세계화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동서무역을 굉장히 가로막는, 큰 타격을 주는 일로 발생하게 되죠. 몽골 제국이 그 이후에 쇠퇴하는데 그 원인 중의 하나도 이 동서무역이 줄어드니까 재정적인 약화가 일어나고 하는 것들이 작용해요.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은 예상치 못한 방식, 인간의 의지로서는 무역을 활성화 시켰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질병의 세계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오히려 무역의 세계화는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버리게 되고, 이게 중세 유럽,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유럽의 경우에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낳는 계기가 된 것이죠.

그러다가 이제 세계 경제질서의 제일 큰 변화, 세계화의 관점에서 물리적으로 제일 중요한 변화인 대항해시대가 등장을 하죠. 잘 아실테니까 대항해시대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를 하지 않고요, 어쨌든 유럽의 변방에 속했던 스페인, 포르투갈이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스페인은 서쪽으로 가서 상당히 큰 식민지를 개척하고 세계 무역을 주도하게 되는 상태가 되죠. 처음에는 당연히 이 콜럼버스 그림에서 보듯이 이 탐험가들의 목적은 두 가지이죠. 하나는 귀금속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이득이에요. 향신료일수도 있고 금일수도 있고 한데, 어디든 가서 유럽에 없는 값비싼 것들을 가져다가 성공을 하겠다 하는 일종의 벤처사업가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또 하나는 이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 모양을 가져가서 세우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이 볼 때 다른 사람들은 야만족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로서 문명개화를 시키겠다는 생각도 있죠.
이 두 가지가 작용을 해서 항해를 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여기에 나간 사람 중에는 특히 경제적 이익을 탐한 그러한 집단이 많이 있겠죠. 이 사람들이 얻은 최고의 성과는 처음에는 귀금속을 뺐었지만, 이것은 한계가 있고 그러다가 아예 금광, 은광을 찾아 나서는데 엄청난 은광을 발견해요. 볼리비아에 있는 포토시라는 은광인데,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은 덩어리가 그냥 그 안에 들어있는 셈이에요. 엄청난 은이 들어있는 것인데, 이 그림은 아주 독특하게 거기를 투영하듯이 보여주죠. 원주민들이 쭉 내려와서 안이 더우니까 벌거벗은 채로 일을 하고, 은 덩어리를 밖으로 나가면 가축을 이용해서 멀리 내가죠. 이런 식으로 가지고 가게 되요. 은광이 얼마나 컸던지 그 동네가 한창때의 인구가 10만명을 이루었대요. 은광이 있는 마을. 그런데 이 위치가 포토시라는 곳이 해발 약 4,000m쯤 되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유럽에서도 10만 인구가 되는 도시가 거의 없는데, 다른 지역에서 남미에서 그것도 해발 4,000m에 인구 10만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엄청난 양의 은이 캐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죠. 이 은은 어디로 가느냐. 우선 하나 더 설명을 하면 이 사람들은 백인들이 강제로 끌고 와서 일을 시키는데 가혹하게 노역을 시키고, 또 이 사람들이 대부분 해변에 사는데 강제로 산에 끌려오니까 기후도 안 맞고 식량도 부족하고 노역은 힘들고 하니까 사망률이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니까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데려와 가지고 강제노역을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되죠.

이걸 놓고 봤을 때 전세계는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이 그림으로 보여줘요. 포토시로 상징되는 아메리카에서 은이 많이 생산이 되요. 네모나게 표시된 데가 은의 생산지에요. 그러면 그 중에 상당부분을 스페인 정복자들이니까 스페인으로 보내요. 그런데 스페인은 당시에 경제적 기반이 약하고 왕위계승전쟁, 종교개혁 이런 걸로 돈 쓸 데만 많아요. 그러니까 서유럽 다른 지역으로 은이 빠져나가요. 그런데 서유럽도 전체적으로 보면 경쟁력이 다른 지역보다 약해서 무역 적자를 보는 것이죠. 그래서 북해 쪽, 그리고 레반트는 지중해 동부지방이에요. 지중해 무역. 그리고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남아프리카를 돌아서 아시아로 가요. 이 지역들도 결국은 아시아 물건을 사는 데로 다 가서 아메리카에서 나온 돈은 흘러 흘러서 아시아로 가요. 인도로 대표되는 남아시아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로 가요. 아마 흑자는 동아시아, 중국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마젤란 항로라는 것을 통해서 태평양을 건너서, 멕시코에서 쭉 와서 필리핀으로 가는데 그것도 결국은 오면 아시아 물건을 사는 데 쓰여요. 그래서 은이 돌고 돌아서 아시아에 모이고,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은이 제일 많이 생산되던 데가 일본인데, 일본에서도 우리나라를 거쳐서 중국으로 결국은 다 가죠. 그래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은이 다 모여요. 이렇게 되니까 각각은 다른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지만, 은 자체는 세계 일주를 해서 다 돌고 돌아서 아시아에 모이는 형국이 되는 것이에요. 굉장히 독특한 모습으로 발전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희한한 일이 발생하게 되요.

한 곳에서 발생한 일이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임진왜란 같은 것이에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키죠. 그래서 한반도로 들어오고 명을 치겠다 이렇게 선언을 하죠. 명은 참전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군자금이 필요해요. 그럼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자기들이 이렇게 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수출을 많이 해서죠.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경쟁력이 있는 직물, 도자기 등등 향신료 이런 여러 가지 종류들을 수출을 독려해요. 그래서 이 펌프를 더 가동해서 은이 더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 채굴을 하던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은이 더 많이 팔리게, 은을 수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은 생산을 늘려요. 그러면 노동력이 부족하니까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더 많이 데려다 쓰겠죠. 그러니까 노예 무역상도 이득을 봐요. 이런 식이 되어요.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는 저쪽에 남아메리카가 있는지, 흑인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수입해서 썼는지 전혀 모르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노예무역이 활성화되고 채굴이 늘고 하는 것이에요.
이런 식으로 전세계는 단일한 경제권이 형성이 되면서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설마 그랬을까 하는 정도로 서로가 이해관계가 연결이 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이게 무서운 경제적 힘이 되는 것이에요. 세계가 단일한 경제권으로 확실하게 통합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 은의 흐름을 통해서 확인이 되는 바죠.

그 시기, 새로운 시기, 처음에 있었던 스페인, 포르투갈을 누르고 장거리 무역중심의 시대에 가장 성공한 사례가 세 나라를 꼽는다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인데, 그 중에도 독특한게 네덜란드에요. 규모도 제일 작은데 한 1세기 반정도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힘을 누리게 되죠. 유명한 화가들 중에도 그 당시의 출신이 많죠. 이게 렘브란트가 그린 작품인데, 다른 그림하고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뭐냐 하면 당시까지 이렇게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려달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왕실에 있는 사람 아니면 굉장히 부유한 귀족이에요. 그런 사람들만 가능했는데, 이 사람들은 상인조합의 그냥 간부들이에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얘기는 무엇이냐 하면 네덜란드는 과거 다른 나라와 달리 신분제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상공업자, 부르주아 층이 중심이 되는 세계가 되었다는 것이죠.
실제 네덜란드는 당시 스페인에서 독립전쟁을 벌여서 독립한 다음에 네덜란드 각 지역에 있는 대표들을 보내서 일종의 의회를 구성해서 통치를 하는데, 그 대표자들이 그 지역의 유지들, 그리고 그 유지들은 실질적으로 상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죠. 장거리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런 상인들이 렘브란트 같은 사람한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는 네덜란드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혁신이 일어나요.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날에도 전세계적으로 중요한게, 기업 조직 중에서 주식회사라는 것이죠. 그 전에는 돈을 낸 사람들이 서로 파트너십으로 돈을 모아서 사업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주식을 발행해서 그것을 산 사람들로부터 큰 자금을 모아서 운영을 하고, 주식을 산 사람들은 이 회사가 망해도 자기 주식값이 떨어지는 것만큼만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제도가 등장하는 것이에요.
이런 식으로 상당히 근대적인 제도가 네덜란드에서 등장하게 되는데,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바로 연합동인도회사라는 데에요. 이게 전세계로 장거리 무역을 하면서 엄청난 부를 가져오죠. 그리고 여기에서 주식을 발행했으니까 그 주식이 처음에는 회사로부터 사고 팔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주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서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것이 되어서 주식시장이 발달하게 되죠. 그래서 현대적인 증권시장도 바로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고, 잠시 후에 보게 되겠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또 개발되게 돼요.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어찌 보면 최소한 무역과 금융에 있어서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국가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이에요.

이 사람들이 성공사례가 굉장히 많은데, 아시아로 보면 일본까지도 쭉 자기 무역망으로 삼죠. 원래는 인도항로를 개척했던 포르투갈이 들어와서 인도까지 가고 마카오로 가고, 일본에는 나가사키 항으로 들어와서 포르투갈이 독점적인 무역을 하는데, 포르투갈은 초창기 개척자의 속성을 가져서 경제적 부도 탐하지만 종교적인 미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 물건은 필요하기도 한데, 기독교 사상이 전파가 되어서 일본의 봉건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원치를 않는단 말이죠. 그래서 갈등이 있어요. 그럴 때에 옆에 살짝 들어온 네덜란드 함대는 막부에 접근을 해서 “우리는 교역만 하면 된다. 우리는 종교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것을 강조를 하고서 뒤에서 많이 도와줘요. 그래서 일본이 포르투갈을 축출하고 네덜란드 만을 유일한 무역상대국으로 삼아요. 이게 19세기 중반까지 가는 체제에요. 수백 년 동안 네덜란드는 일본의 독점적인 무역 파트가 되었고, 일본 입장에서는 그걸 통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세계 정세를 알게 되죠. 일본 입장에서는 이게 우리의 서학에 가까운 것인 것인데, 일본은 그것을, 네덜란드가 한자로 화란이죠. 화란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난학’이라고 부르죠. 그것이 상당한 정도 축적이 되어서 나중에 일본이 근대화할 때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모습이 되죠. 이게 나가사키 항의 모습인데 굉장히 좋은 천혜의 항구에요. 그런데 여기를 보면 부채꼴 모양의 독특한 구조물이 보여요. 이걸 확대해보면 일본식 그림을 보면 인공 섬인데 ‘출도’라고 불러요. ‘데지마’라고 부르는 섬이고, 본토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네덜란드 배가 들어오면 이 안에서만 교역을 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은 밖으로 못나가게 막아놨어요. 다른 식의 영향력은 제한이 되고, 일본이 원하는 서양의 물건, 서양의 정보만 이 안에서 교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일본 독특한 방식의 대 서구 창구였다 말할 수 있죠. 그래서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국이 되고요, 그러면서 요즘으로 보면 명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이 새로 등장해요. 그게 뭐냐 하면 이 꽃이죠.

이것은 영국의 그림인데, 영국의 유명한 아주 부유한 귀부인이 자기 초상화를 그리는데, 당연히 좋은 옷과 보석이 있지만 제일 강조한 것은 손 끝에 들고 있는 저 꽃이죠. 이게 튤립인 것이에요.
당시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들어와서 유럽으로 퍼지게 된 것인데, 꽃 자체는 지금 봐도 예쁘잖아요. 그 중에서도 무늬가 특별한 꽃이 아주 각광을 받아요. 이게 가장 값이 비쌌던 꽃이에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품종 이름도 그래요. 영원한 황제, 아주 거창하죠. 이런 이름으로 이름을 붙이고 이것을 알 뿌리죠, 구근인데 이 꽃 하나를 파는데, 생물로도 팔지만 실제로는 밭에서 재배가 될 때 그것을 나중에 얼마에 사겠다는 증서로 사고 팔아요. 일종의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이니까, 주식 식으로 거래가 되면 실제의 가치하고 좀 무덤덤해져서 결국에 매일 이 값이 오를 것만 같으면 사람들이 더 사고 이런 식의 현상이 발생을 해요. 거품이 막 등장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거품이 막 올라가는데, 예상외로 너무 올라가요. 그래서 지금으로 보자면 대충 비교하자면 강남의 아파트 한 채정도, 알뿌리 하나가. 이 정도 가격까지 올라가요. 그런데 계속 갈 수가 없으니까 나중에는 거품이 깨지고 사람들이 파산을 하고 이렇게 되죠. 그런데 얼핏 생각해보면 그러려면 이것을 공급을 늘리면 되는 것 아니냐 이러는데, 곤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꽃무늬가 최고의 인기인데, 꽃무늬가 나오는 이유는 튤립 브레이크 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야만 돼요. 그런데 감염이 되면 번식이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공급이 제한되어서 이런 식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고, 또 요즘에 금융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게 특별히 값이 오른 것은 그 당시에 새로운 금융 상품으로서 아까 말씀 드린 밭에서 재배되는데 미리 거래하는 것, 선물이 이 당시에 처음 등장을 했고, 그 다음에 또 거기에 뭐가 결합이 되느냐 하면 옵션이에요. 거래는 이렇게 했는데 실제로 시간이 되었을 때 그 값으로 거래를 하느냐 마느냐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상품이 등장한 것이죠.
이런 식의 새로운 금융 상품이 당시 금융시장이 가장 발달했던 네덜란드에서 등장하면서 초창기의 금융공황, 거품의 사례가 등장하게 된 것이죠. 지금도 가장 유명한 금융공황의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퍼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우매해서 투자를 많이 해서 이렇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뒷면에는 선물이라든가 옵션과 같은 최초의 금융상품이 등장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행착오, 이런 것들도 감안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거에요.

네덜란드의 전성기가 지나고 영국으로 넘어가요. 영국은 산업혁명으로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죠. 이 그림을 보시면 이것은 이제 과학혁명이 등장하고 이러면서 새로운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에요. 이것은 이 사람이 이 일의 주인공인데,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마술사에요. 동네를 찾아 다니면서 자기가 마술을 부리고 얼마 돈을 받고 이러는 사람이에요.
내용이 뭐냐 하면 이 유리병에 살아있는 새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 것이에요. 동네 사람들은 모여있고. 그러면 살아있는 새가 팔딱거리다가 뚜껑을 닫으니까 산소가 부족해서 죽어가겠죠. 그러면 애들이 막 울고 이래요. 그럴 때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공기펌프로 공기를 넣어줘요. 그러면 새가 파닥파닥 살아나고, “와”하고 끝나요. 무지무지 단순하죠 지금으로 보면.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런 실험 기구 같은 것을 사람들이 모를 때니까 아주 신기해 했고요, 상징적으로 보면 이런 것이죠. 그 전까지는 생명이란 것은 신이 관장하는 영역이었는데, 이제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이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상징해준다고 볼 수가 있겠죠.

또 하나 상징적인 그림을 보시면 이 윌리엄 터너라는 영국의 유명한 화가인데, 이 사람은 보시다시피 인상파적으로 그리죠. 뚜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빛깔을 그리는데, 유럽 본토에서 인상파가 나오기 50년 내지 100년 전에 한 50년 가까이 전에 등장한 사람이니까 나홀로 인상파를 한 사람이고, 유럽이 아주 자랑하는 화가죠. 그림의 소재는 무엇이냐 하면 이 배가 큰 범선인데 왕년에 이름을 떨치던 배에요. 테머레어 호라는 배인데, 넬슨 제독이 나폴레옹과 싸울 때 영국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배 중의 하나에요. 가장 번영하던 범선의 시대를 상징하던 것이었는데, 몇 십 년 지나서 낡으니까 항구로 끌려와서 해체될 운명이에요. 그걸 끌고 오는 배는 작고 시커멓지만 힘을 내는 증기선이죠. 범선의 시대, 중상주의 시대는 가고 공업적 힘이 강한 산업화의 시대가 등장했다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이제 혁신의 시대죠 산업혁명 때는. 그래서 신분이라던가 하는 것이 상관이 없고 누구든 과학적 원리를 가지고 상용화를 해서 이익을 보면 최고인 시대가 되요. 그래서 누구나 그 시대 사람들은 혁신에 목을 매는 그런 사회가 되죠. 이 사람은 제임스 와트에요. 그 혁신을 상징하는 사람이죠. 이 그림을 보시면 고독한 천재 이런 모습이에요. 시커먼, 컴컴한 방에 혼자 앉아서 이런 저런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인데, 실제 모습은 이것하고 전혀 달라요. 이 사람은 순수과학의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고 기술을 개량하는 실질적인 기술자인 셈인데, 주변의 많은 도움을 얻어가지고 협업을 하면서 새로운 개량된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이죠. 그래서 이 그림은 약간 이 사람을 너무 영웅시하게 만든 것이고, 실제로는 이 그림처럼, 대학에서도 대학에서 뭔가 과학적인 원리가 있으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강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당시 영국사회가 굉장히 혁신에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이 쉬운 사회였다. 신분제적인, 계층적인 장벽도 적고, 비용도 그런데 높이 치지 않고 사람들이 계몽주의적인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남하고 공유해야지 하는 마음이 강하던 사회였다 하는 것이에요. 그런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와트가 자기의 유명한 발명을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볼 수가 있어요.

혁신의 마음은 공업 부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농업 부문에도 있어서 여기처럼 가축을 품종개량 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어요. 이게 무슨 동물일까 이렇게 볼 수도 있는데, 양이죠. 그래서 털과 고기를 최대로 만들게 개량한 동물이에요. 이런 식으로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혁신을 노리려고 해요. 심지어 오락에서도 그래요. 당시 사람들이 시간 날 때 제일 뭘 많이 하느냐. 술 마시는 것을 제외한다면 동물들끼리 싸움시키고 내기를 거는 것이에요. 닭싸움, 소싸움, 개싸움, 권투도 이때 굉장히 유행해요. 사람싸움 시키고 내기를 거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들 상상력이 그것을 조금 넘어서기도 하죠. 이렇게 하기도 해요 황소랑 개를 싸움시켜요. 황소를 밧줄로 묶은 다음에 개를 가까이 데려와서 주둥이를 물게 해요. 굉장히 잔인한 경기죠. 그러면 소가 가만히 있지 않겠죠. 땅에다가 내려 꼽고, 발로 밟고 또는 뿔로 날리고 해요. 그러면 그 다음 개를 데려와서 또 붙여요. 몇 마리까지 버티냐를 놓고 내기를 거는 것이에요. 이 뒷사람들이. 굉장히 잔인한 경기죠. 이걸 불-베이팅이라고 불러요. 미끼같이 삼는 것이죠 황소를. 그런데 당시에 개량의 시대이니까 이것도 많은 개량을 거쳐서 경기가 조금 더 오래가게 하려고 하겠죠. 거기에 맞는 개는 주둥이가 짧아서 물기를 잘하고, 다리가 짧아서 소가 움직여도 다리가 잘 안 부러지고, 한 번 물면 잘 놓지 않고 그런 개겠죠. 그 개가 바로 이거죠. 불독. 이름에서 보듯이 불-베이팅에 맞게 개량이 된 개에요. 그 당시에 얼마나 사회 곳곳에 개량의 움직임이 스며들어 있는지 볼 수 있죠.

그리고 산업혁명의 최고 상징물이 등장하는데, 이게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여지고 있는 박람회의 원조에요.
1851년에 런던의 하이트 파크, 잔디밭에다가 건물을 지어가지고 최초의 박람회를 열었는데, 박람회라는 것이 그거죠. 자기네 나라의 경제적, 기술적 능력을 과시하는 현장이죠.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요. 최초의 박람회인데 6개월간 개관을 했는데 600만 명이 왔다고 해요. 당시의 영국 인구를 보거나 또는 이동하는 비용을 보거나 등등을 보았을 때 예상치 못한 대성공이에요. 그 열린 건물이 이것인데, 당시 언론에서 수정궁, ‘Crystal Palace’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 이름이 아직도 축구팀의 이름으로 남아있죠. 이런 식이에요 내부가. 이것은 박람회 개최일의 모습인데, 박람회장 가면 지금도 그렇지만 모양은 비슷해요. 영국관, 프랑스관, 미국관 이래서 각 나라는 자기네 나라의 가장 자랑할 만한 물건을 거기에 전시해요. 당시의 프랑스나 이런 데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공예품이라던가, 또는 자기가 식민지로 삼은 나라에서 가져온 이국적인 물건. 이런 것들을 가져다 놓는 것이죠. 다른 나라도 다 비슷한데 유일하게 영국만 산업혁명을 거의 완수를 한 시점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것들을 자기네 나라 관에 전시를 해요. 공작기계, 동력기계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이게 무지무지하게 중요하죠. 다른 나라에서도 말하자면 지도자급 인사들이 와서 이것을 구경하는데, 영국에만 독특한 물건이 있고 이것은 산업혁명이란 것을 거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인데, 잠재적 가치가 엄청나게 큰 것이죠. 그래서 쇼크를 받게 되는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들한테 또 인상을 준 것이 어떻게 보면 그런 전시품보다 더 큰 인상을 준 것이 이 건물이에요. 골조로 만들어놓고 평면 유리판을 붙인 건물인데, 애초에는 이런 건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박람회를 열기로 하고 정부에서 공모를 한 것이죠. 우리가 세계적인 박람회를 열 것인데 그것에 걸맞은 건축물의 공모를 할 테니까 지원을 해라고 한 것이에요. 이게 당선작인데 당선에 성공한 사람은 조지프 팩스턴이란 사람인데 원래 건축가가 아니에요.
이 사람은 부유한 귀족 집에서 온실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런데 자잘한 온실이 아니고 큰 유리관을 짓고 거기에다가 남들이 키워보지 못한 식물을 키우는 것이에요. 당시에 영국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니까 외국에서 가져온 독특한 식물, 열대 식물을 온실에서 재배해서 꽃을 필우고 번식시키면 최고로 중요한 정원사가 되는 것이죠. 그 당시의 혁신적 정원사가 되는 것이에요.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성공한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 이 큰 연꽃이에요. ‘빅토리아 아마조네카’라고 해서 아마존 지역에 사는 연꽃인데 빅토리아 여왕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붙인 것이죠. 빅토리아 아마조네카라고 하는 연꽃을 가져오는데, 다 크면 지름이 2~3m가 된대요. 그리고 물 위로 뜨는 힘이 커서 이렇게 어린 아이를 올려놔도 가라앉지 않더라 하는 거에요. 이 사람이 팩스턴이고 이게 딸이에요. 자기 딸을 올려놓고 당시의 뉴스에 실리게 삽화로 그려놓은 것이에요. 후일담은 이 밑에 뭐를 받쳐놨다 이런 설이 있어서 논쟁이 되는데, 어쨌든 그것은 무시하고 본다면 이 사람은 대대적인 성공을 한 최고의 사람인데, 그렇지만 건축은 상관없잖아요. 그런데 공모 내용을 보니까 자기가 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과연 이 연꽃이 어떻게 저 큰 무거운 것을 받칠 수 있을까 해서 뒷면을 보니까 이런 구조라는 것이에요. 중심 줄기가 있고 거기에 칸막이 같이 되어있어서 “아 저런 구조면 상당히 큰 무게도 받치겠구나”하고 생각을 해서 그것을 활용해서 당시 영국이 산업혁명을 해서 다른 나라는 못 만드는 그러한 소재를 쓰는 것이죠. 철골 구조를 만들고 거기다가 칸막이 같은 형태를 하고 그 사이사이를 유리판을 붙이면 된다. 이것으로 공모를 했고 당연히 1등을 했고. 왜냐하면 건축비도 싸고, 공간을 굉장히 넓게 확보를 할 수 있고 그런 장점이 있죠. 아주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다시 그림으로 보시면 엄청난 정도의 이런 그림, 장관을 이루는 모습이 되는 것이죠.

이게 세계화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의 사례라고 저는 생각해요. 애초에 건축가도 아닌데 자기가 알고 있는 온실과 식물에 대한 지식. 그것도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식물이라는 상이한 종류의 지식을 가지고 잘 융합을 해서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세계화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고 부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런 혁신을 가능케 해주는 효과라고 보죠. 그래서 가장 긍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영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죠. 그러면서 자유무역을 더 전파하고 그래서 세계를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는데 큰 힘을 가져요. 그런데 모든 나라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세계화에 동참한 것은 아니죠. 어떤 나라들은 원치 않았는데 강제적으로 개항이 되죠. 그게 대표적으로 중국 같은 사례. 아편전쟁과 같은 경우죠. 그리고 그보다 더 일찍 식민지화가 되었던, 영국에 의해 식민지화가 되었던 인도가 그 아편 생산지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죠. 영국은 인도로부터 차 수입을 많이 해서 무역적자가 많으니까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 뭔가 수출품이 필요한데, 그것으로써 선택 받은 것이 아편이고, 그것을 재배하는 곳으로 애초에 자기 식민지인 인도를 활용하자. 이런 생각이 든 것이죠. 인도 파트나라는 도시에 있는 아편창고의 모습인데, 보면 끔찍할 정도죠. 둥그렇게 만든 아편 덩어리가 이 창고 하나에 30만 개가 저장이 되어있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킬 수 있는 분량이었나 하는 느낌이 오죠.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에 조약을 통해서 자유무역 진영으로 들어오게 되죠. 자유무역화가 되었는데 상당히 철저히 비자유적인 방식으로 자유무역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또 한군데 자유무역을 원치 않았는데 받아들인 게 일본이죠. 이게 흑선이라고 불리는, Black Ship이라고 불리는 배가 미국에서 들어와서 통상을 요구하니까 결국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속에서 사회적인 갈등이 일어나서 그것이 메이지 유신이라는 정치적 변혁으로 연결이 되고, 그 상태에서 일본이 가는 길은 근대화인데, 그 방식은 전면적인 서구화다. 이런 것이 결정이 되는 것이 쭉 연결이 되죠. 아까 보신 난학이라는 것, 네덜란드를 통해서 본 지식도 이 때 일본이 자기의 미래 경로를 선택할 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서구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판단을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는 것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죠.

이렇게 개항을 요구한 사람은 페리 제독이라는 사람이죠. 당시에 개항을 요구했을 때의 페리 제독을 그려놓은 그림이에요. 실제로 이사람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이보다는 훨씬 멀쩡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일본 사람이 그릴 때는 이렇게 그려놨어요. 어떤 마음을 표현한 것이냐 하면, 일본의 전통적인 설화에 덴구, 하늘의 개라는 존재가 있어요. 하늘에서 말썽꾸러기로 있다가 천둥번개가 칠 때 잘못해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앤데, 그러면 수도사복을 입고 천방지축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하는 이런 존재에요. 그 존재가 보면 코가 이렇게 크고 눈이 진하고 이런 식의 모습이에요. 이 그림을 딱 보면 일본사람들은 ‘아 이게 덴구의 모습을 여기다가 집어 넣어서 그린 것이다”란 것을 알 수가 있대요. 그 얘기는 무엇이냐? 이 페리 제독이라는 미국인은 일본인들이 볼 때 자기네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자기네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존재이다. 하는 위협감을 여기에 넣어서 표시하고, 결코 편치 않은 마음을 여기에 집어넣었다고 볼 수가 있겠죠. 그리고 일본은, 말씀 드린 그 경로를 통해서, 서구화를 빠르게 진행해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19세기 후반에 산업화에 성공하는 사회가 되죠. 그러면서 그에 뒤쳐진 다른 나라와, 특히 한국과 중국과는 격차를 보이게 되는 상황이 되어요.

다음 퀴즈입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을 묘사한 그림으로 보이나요? 이렇게 커가지고 제가 어떻게 질문을 시킬 수는 없고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사람은 보시면 아시다시피 청나라의 복장을 하고 있고, 여러 장식을 봐도 중국식이죠. 이 사람은 술잔을 한 잔 들고 있고 밖을 내다보는데, 밖에 함선에서 불이 나고 있어요. 이게 무엇이냐 하면 이 사람은 정여창이라고 하는 청나라의 해군 제독이에요. 북양함대로 우리나라 서해안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함대의 사령관인데, 청-일전쟁이 나서 일본하고 전투를 벌인 것이죠. 그런데 자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완패를 하고, 그러고 나서 일본한테 남은 배와 무기를 다 건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요. 그리고 건네주고 자기 집무실로 돌아와서 그걸 회고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독배를 마시고 자결을 해요. 일본 사람이 그린 그림인데, 적장이지만 참 멋있었다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그래서 자결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렸어요.
결국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죠. 종주곡 중국은 힘을 잃게 되고, 한반도도 격동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죠. 청-일전쟁 끝나고 나서의 시모노세키 조약의 모습이에요. 중국하고 일본이 조약을 맺는데, 우리가 아는 역사적 인물들도 나오죠. 이홍장도 있고 이토 히로부미도 있고 그래요. 상당히 비주얼하게 그 당시의 상황을 보여줘요. 서구화를 굉장히 빨리 한 일본은 서구식 옷을 입고 승리한 쪽이 되고, 전통을 훨씬 더 오랫동안 고수한 중국은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데 패배 측이고. 세계의 질서는 두 나라끼리 결정을 못해서 서양인, 이 경우에는 미국인데, 다른 나라에 맡겨서 중간에 중재를 보게 하는 이러한 세계 질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죠. 그러고 나면 중국은 반식민지화의 길로 가게 되죠. 그래서 여기 큰 ‘차이나’라고 하는 파이를 각국이 다 쟁탈전을 벌이고 중국은 분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런 모습을 보이죠. 나라를 여러분들 하나씩 맞출 수 있겠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고 투구를 쓴 것은 독일이고요, 여기는 러시아, 그 다음에 여기는 삼색기가 있죠 프랑스에요. 여러분 삼국간섭이란 것이 있죠. 러-독-프가 합쳐서 청-일전쟁 이후에 일본이 청으로부터 빼앗은 것을 다시 일부 돌려주게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이에요. 그리고 일본은 자기가 다 뺏었는데 다시 뺏기게 된 것을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앉아있죠. 이게 그 당시 1898년 시기의 모습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나면 동아시아의 모습은 거의 반 이상은 세계 정세적으로는 결정이 된 것이죠. 이 그림 많이들 보셨을 것이에요. 한국을 일본이 짓밟고 오는데, 청나라한테 승리를 한 이후에 청을 데리고 짓밟고 오죠. 남은 세력은 강 건너에 있는 러시아밖에 없어요. 러시아와 일본간에 우열을 가르는 일만 한 번 남았을 뿐이고 그 이외는 한반도의 정세는 이미 우리나라나 청은 일본을 꺾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것이 국제적인 질서가 된 그런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는 이제 열강들이 다 자리를 잡고, 열강들이 서로 힘 싸움을 하게 되면서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죠. 특히 1차 세계대전은 당시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전쟁이고, 그 속에서 전례가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전쟁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 있었던 독일이 결국에 지게 되죠. 이 그림이 그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베르사유 조약이라고 해서 전후에 세계질서, 유럽질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관련된 것이에요.
당시의 그림인데, 나이 많은 흡혈귀, 콧수염이 특징인 흡혈귀가 여인의 팔에서 피를 빨아먹는데, 그 여인은 이미 힘이 없는 모습이에요. 뒤에 박쥐들이, 흡혈귀가 분명하죠. 이게 어떤 상황이냐 하면 이 주변을 보면 독일군 철모 같은 모습이 있죠. 죽어가는 여인이 독일이에요. 전쟁에서 지고 나서 여력이 없이 다 뺏긴 상태에요. 그런데 프랑스는 그것에서 피를 빨아먹는 상태.
어떤 것이냐 하면 전쟁을 하느라고 프랑스, 영국 이런 데서는 미국으로부터 돈을 많이 빌려와요. 미국은 나중에만 참전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금을 대부해주는 역할만 해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나중에 미국도 참전을 했으니까, 당연히 프랑스 같은 경우는 우리 같은 진영 국가로서 과거에 전쟁 때문에 진 빚을 어느 정도 탕감하고 재조정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죠. 그래서 협상을 하는데, 미국은 그 당시까지 세계경제 질서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안 된다. 원래 가져간 빚을 다 내라. 이렇게 하죠. 그러니까 프랑스는 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죠. 돈을 갚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독일 너희가 전쟁을 일으켰으니까 배상금을 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받아서 미국한테 갚겠다.”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독일은 이미 죽어가고 있으니까 낼 길이 없죠. 프랑스는 받을 길이 없고, 미국도 받을 길이 없고 이 고착 상태가 계속돼요. 굉장히 험한 시대가 되고 특히 독일 사람들은 완전히 좌절할 수밖에 없죠. 프랑스는 돈을 못 받으니까 독일의 자원 중심지를 가서 약탈을 하고, 강제로 점령하고 그래요. 그렇게 되니까 독일 같은 나라는 과거에 있었던 안정적인 사회질서는 다 깨지고 극단화가 되어서 극좌 아니면 극우로 가게 되어요. 그럴 때 결국은 중도보수가 극좌를 택하느니 극우를 택하겠다 해서 나치랑 힘을 모으게 되고, 그 이후에 히틀러가 힘을 발휘해서 다른 세력을 없애고 나치가 부상하게 되죠. 그리고 재무장해서 2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에요. 그 당시는 이런 상황이에요. “No longer London” 런던은, 즉 영국은 전세계에 지도력을 행사할 능력이 없는데 미국은 행사할 의사가 없어요. 아무도 국제 공조를 주도하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자국 중심으로 가니까 미국은 프랑스한테 계속 자기 주장을 하고 프랑스는 독일을 쪼고, 독일은 극단화가 되고. 이렇게 되죠. 만약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새로 신흥 강국이 된 미국이 이 때 어떤 지도력을 발휘했더라면, 지도력이란 것이 별 것이 아니라 프랑스한테 압박을 조금 줄여줬었더라면 프랑스가 독일한테 그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독일이 극단화가 되어서 나치즘이 득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2차대전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은 모두가 자국우선주의를 취하고 양보를 안 하면 모두에게 피해가 되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하는 전례를 이 모습이 아주 잘 보여준다고 볼 수가 있어요.

특히 화폐금융책에 많이 나오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아주 높은 수준의 인플레가 독일에서 발생을 하죠. 1922년~23년 사이에 1년 동안 물가가 평균 1조 배가 올라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니까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손해죠. 계속 가치가 떨어져요. 그러니까 새 돈을 찍어내는 것도 문제에요. 아주 세심하게 설계해서 위조를 못하게 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그러는 동안 물가는 또 떨어져서 새 돈이 또 필요해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원래 있었던 천 마르크에다가 그냥 빨간색 인쇄를 해서 10억 마르크를 찍어내는 것이에요. 그걸로도 부족해서 1조 마르크짜리 돈이 이런 모양이에요. 거의 식권 비슷한 것이죠.
이러니까 사람들은 화폐를 쓸 수 없게 되고 경제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이런 돈은 어디다 쓰느냐. 불쏘시개, 또는 레고 이런 것이죠. 이런 상태가 되어서 결국은 각자도생의 상태, 자국우선주의가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으로 갔다는 것을 잘 보여주죠.

그리고는 이제 대공황 시대가 되어요. 또 하나의 어두운 과거죠. 이 그림은 아주 독특하게 미국이 자랑하는 입간판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입간판은 미국식 체제가 제일 우월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에요. 세계 최고의 생활 수준, “There’s no way like the American way” 미국식 삶이 최고다 하는 입간판 앞에 사람들이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이에요. 대공황을 상징하는 아주 대표하는 그림이죠.
이렇게 되니까 대공황 상태에서 국가들이 벗어나야 되는데, 역시 국제적 공조가 없는 상태니까 다 자국우선주의로 가요. 그래서 독일은 나치즘으로 가서 재무장하고, 비슷하게 무솔리니도 파시즘으로 가는 것이고, 일본은 군국주의로 해서 중-일전쟁, 만주사변 이렇게 커가는 것이죠. 영국은 19세기 때 자기의 자유방임을 고수해서 별 일을 안 해요. 그러니까 회복도 잘 못해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나름 제일 있어 보이는 데가 소련이었어요. 소련에 스탈린이 들어와서 1928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해서 자금을 넣고 개발을 해요. 그러니까 서구 자본가가 유토피아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비웃다가 실제로 건설이 되니까 큰 코 다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은 것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당시의 통계를 보면 소련이 제일 성장을 하고 서구의 학자들 중에서도 “이제 대공황을 보니까 자본주의의 모습 때문에 자본주의경제는 망하고 계획경제인 소련이 미래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죠. 소련의 문제는 초창기에 전국적으로 자본을 다 모아서 투자하면 일시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되는데, 이게 지속 가능하냐가 문제죠. 경제발전의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성공 못하기도 하고, 또 노동력 같은 것을 어떻게 들여오냐 하면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 노역을 시키는 것이에요. 우리도 이것과 관련이 되죠. 연해주 지방에 있는 고려인들을 바로 이 시기에 스탈린이 기차에 태워서 중앙아시아 개발하는 데로 데려가요. 이십 몇 만이 그 때 가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이 지역에 고려인들이 많이 살잖아요. 그게 이 시대에 이동한 사람들의 후예인 것이죠. 그런 식으로 간 사람들은 집단 수용소 같은데 묶여가지고 강제노역을 하는 셈이 된 것이에요. 그런 식이니까 이게 지속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고서 나중에서야 이 소련식 경제발전은 허구였다, 허상이었다 이것이 밝혀지게 되죠.

남은 것은 뉴딜정책인데, 뉴딜정책은 실제로는 경제 회복에 그다지 기여를 많이 했다고 보기에는 좀 어렵다고 경제학자들, 경제사학자들이 얘기해요. 여기 그림에 보시면 당시에 여러 경제개발계획들의 이름들의 약자들이 있죠. 테네시 밸리 계발이라든가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너무 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까 서로 묶어가지고 미국 경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그림인 것이죠. 실제로 개별 사업의 성과를 보면 별로 뚜렷한 것이 없어요. 들어간 자금에 비해서 경제 회복이 그다지 좋지 않아요. 그러면 뉴딜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경제 회복에는 그다지 큰 기여를 못했지만, 대신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그 다음에, 1940년대 초가 되어서 유럽에서 다시 2차 대전 분위기가 있고 그러면서 미국이 다시 군수물자 수출하게 되고 이러면서 경제가 회복하는 시대를 맞는데, 그런 새로운 기회가 올 때까지 최소한 독일이나 일본같이 민주주의적 질서를 파괴한 채로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기회가 올 때까지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을 거쳐서 서로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게 해준 정책이다라는 면에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되었다. 이 정도로 아마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2차 대전이 나고 새로운 시대가 되죠. 여기서부터는 이제 현대사니까 여러분들이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에요. 냉전체제가 되어서 이념에 따라 갈라지는 사회가 되었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 진영은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빠른 성장, 가장 높은 소득향상을 봐요.
이 사진은 아주 독특하게 기념촬영인데, 미국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두 가족이 자기가 일 년 동안 먹은 식품을 가져다 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에요. 이것을 보면 엄청난 양이죠. 지금 봐도 엄청난데, 당시의 미국은 다른 나라와 견줄 수 없는 정도의 소득 수준을 가졌기 때문에, 더 더욱이나 엄청난 수준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리고 그 속에는, 이 때가 이제 케인즈 전성시대죠. 실제 케인즈는 대공황을 극복하던 시기보다는 더 정확하게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1950년대와 60년대 까지를 풍미했던 사람이죠. 케인즈야 말로 그 시대의 최고의 인물이었던 것이고, 경제학을 하신 분들은 필립스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에요. 그 사람은 당시에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유학 온 젊은 어리숙한 사람이었는데, 경제학과로도 오지 않았었나 봐요. 사회학을 하다가 주변의 경제학 하는 친구들을 보니까 초창기 케인지언을 공부하는 하는데 아직 틀이 명확하게 갖춰지지 않은 때에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자기가 뉴질랜드에서 만들던 기계장치들이랑 비슷한 것 같더라 해요. 그래서 자기가 기계를 한번 만들어봐요. 농업, 공업, 정부, 은행 등등을 만들고 호스로 그것을 연결해서 금리, 조세 이런 것들로 연결을 해요. 그리고 색깔이 다른 물을 쭉 채워놓고 스위치를 올리면 금리를 몇 프로에서 몇 프로로 올린다 하면 그만큼 물이 어디서 빠져 나가고 그러면 그게 다른 부문으로 또 가고 그러겠죠. 이게 쫙 흐르고 흘러서 나중에 안정화가 되면 이게 경제 전체에 미치는 금리의 영향이 되는 것이죠. 시뮬레이션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한 셈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경제학과에 와서 시연을 했나 봐요. 런던 LSE에서. 그랬더니 경제학과 교수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낫거든요. 그러니까 들어오라고 해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유명한 경제학자가 된 사람이죠. 이게 케인즈 경제학의 발전의 모습이죠.

그런데 이게 오래가지 못하죠. 70년대가 되면 스테그플레이션이 나오죠. 그래서 물가도 높은데 실업률도 높은 상태. 이걸 보여주는 것은 여기 불행지수라고 썼는데, 제가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간단한 지수인 것 같아요. 물가상승률 더하기 실업률. 둘 다 사람들한테 고통스러우니까 그걸 두 개 합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하는 것이죠. 이걸 보면 70년대가 굉장히 높은 시대죠. 오일쇼크도 있고 그런 때죠. 그러니까 케인즈 경제학이 한계에 다다르고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죠.
그래서 신자유주의, 넓게 봐서는 또는 시카고 학파가 등장해서 밀턴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같은 사람이 와서 지금 우리한테 익숙한 그런 질서를 만들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현대가 되죠. 현대가 되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화의 새로운 힘들이 등장하죠. ICT 산업, 그 다음에 아까 2차 세계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 동구권의 변화. 해체된 소련으로부터 동구권이 나와서 체제전환을 해서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그 중의 상당수는 유럽 연합으로 가입되는 이런 급변이 있고요. 그 다음에 또 하나의 변화는 자본주의 진영 중심에서도 발생하는데, 9.11 같은 것이에요. 9.11은 세계화 학자들이 보기에는 어떤 해석을 하냐 하면, 세계화를 미국주도로 강제적으로 이식을 시키려고 하니까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 중에서 극단적인 반발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테러리즘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일방적 세계화에 대한 반발을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어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월가의 점령 시위라는 것이죠. 1%대 99%해서 소득 불균등, 부의 불균등이 얼마나 크냐 하는 문제. 이것이 또 세계화와 관련이 되어서 중요한 이슈가 되죠. 요즘 연구에 따르면 1%라고 해서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1%가 가지고 있는 부의 비율이 높아졌느냐? 별로 안 높아졌다. 그런데 쪼개보면 0.01%는 무지무지하게 높아졌다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실제 모습은 1%대 99%가 아니라 0.01%대 99.99%다. 더 악화되었다라고 하고, 이게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되는 현상이에요. 우리가 느끼는 현상이기도 하고, 앞으로 전세계가 해결해야 될 현상이기도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세계적인 어떤 통합된 질서. 2차 대전 이후에는 과거 양차 대전과 대공황 때 자국우선주의의 폐해를 느껴가지고 전세계가 그래도 협상을 하고 다자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만들었는데, 최근에 와서 그게 균열을 일으키고 있죠. 그 중의 하나가 유럽연합에 금을 가게 한 브렉시트이고, 또 하나는 더 큰 규모로 미국우선주의라고 하는 트럼프의 등장이죠. 이게 그동안 있어왔던 다자적인 체제, 또는 개방화를 통한 세계화의 유지 내지 진전, 이런 틀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죠. 뉴스에서 늘 요새 접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과연 세계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이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어요.

이게 마지막 그림인데요, 약간 이론적이지만 설명을 최종적으로 하자면 이런 것이에요. 미래에 과연 어떤 체제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냐, 세계화를 놓고 본다면. 이런 것이에요. 우선 세계질서 중에 어떤 가치를 우리가 꼭 고수해야 되겠느냐? 의미 있는 가치가 뭐냐?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세 가지를 강조해요. 하나는 국가 주권. 개별 국가는 자기네 나라가 결정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시행할 수 있어야 된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민주정치에요. 그 나라의 민주적 질서 하에서 결정된 정책을 국내적으로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외적인 것이고 이건 국내적인 것이에요. 또 하나는 교역과 교류가 활발해서 부족한 쪽과 남는 쪽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가질 수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국제적인 흐름도 좋아야 하고, 대외적인 주권도 있어야 하고, 대내적인 민주주의도 유지가 되어야 한다. 이 세 개는 어느 하나 놓치기 아까워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세계 질서도 이 세 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 하는 것이에요. 어떤 것이냐,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해 왔던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죠. 이것은 국제적인 교류는 굉장히 활성화되죠.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니까. 그리고 개별 국가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개별 국가의 의사결정 하고는 상충될 수가 있어요. 만약에 어떤 나라에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국산품만 쓰겠다” 하면 시장개방하고 안 맞는 것이죠. 두 개가 공존할 수가 없어요, 양립할 수가.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커지면 민주정치가 왜소화 될 위험이 있는 것이죠. 그러면 국가의 영향력을 더 키우자 하는 것이 소위 브레턴우즈 타협체제라는 이름인데, 이것은 국가에 힘이 있어서 주권도 되고 국내정치에 힘도 발현이 되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외국과의 교류는 그만큼 주는 것이죠. 우리 국가가 원하는 만큼만 소통을 하겠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한쪽에서 희생을 감수해야 되는 상황이 되요. 어떤 사람들은 연방주의, 세계 연방주의를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뭐냐 하면 마치 미국을 세계라고 놓고 각 주를 지금의 각 국가라고 놓고 보는 것이에요. 그렇게 놓고 보면 한 나라가 되는 것이니까 국제적 통합은 자동적으로 되고, 민주정치도 한 나라의 주같이 되니까 당연히 되는 것인데, 개별 주에 해당하는 국가는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게 되겠죠. 그러니까 이게 충분히 발휘가 못되어요. 그러니까 세계 질서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이 세 가지 가치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두 개 까지만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해요. 이것을 ‘세계화의 삼자택’이라고 불러요. 딜레마라고 하면 두 중에 어느 것을 택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세 개 중에 둘 밖에 채택을 못하는 것의 문제점을 얘기하죠. 이게 세계경제의 미래를 보는 기본 틀이에요. 그래서 최근까지 있었던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는 이쪽은 잘 됐었는데 개별 국가들은 국내적인 반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정책을 놓고 보면 그것들은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이쪽에서 이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에요. 미국 우선주의, 영국 우선주의가 되겠죠.
이렇게 되면 이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국제적인 통합은 희생되는 것이에요. 자유무역이 보호무역으로 가고, 여러 가지 이민정책이라든가 등등 여러 가지가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우리의 갈등은 그 동안 강했던 이쪽에서 몇 가지 사건이 세계 질서를 이쪽으로 끌고 오는 단계에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고, 과연 이게 어디로 갈 것이냐는 결국은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정책이 일시적인 상태로 그치느냐, 아니면 그게 힘을 받아서 계속 더 확대-재생산을 하느냐에 달려있죠. 확대-재생산이 되면 이쪽이 강력한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고, 일시적이 된다면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겠죠. 이게 제 결론이에요.
우리가 세계화의 길을 쭉 걸어와서 시기에 따라 어떤 때는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어떤 때는 후퇴하고 이런 것들을 쭉 봐오고 그 속에서 인류가 어떤 교훈을 얻었나 살펴봤는데, 현재 위치로 본다면 이 둘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위치에 있고, 미래가 어디로 갈지는 우리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모르는데, 여러분들이 언론이나 이런 데에서 돌아가는 일을 자세히 보시면 그 사건이 중심축을 어느 방향으로 더 끌고 가느냐 하는 것은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에요. 그걸 통해서 미래의 세계화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예측을 실감 있게 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고 오늘 제가 준비한 강연이고요,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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