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보고서를 보면 ‘구조개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어? 한국은행은 금리나 물가 조절하는 기관 아니야? 구조개혁은 정부나 국회가 할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한국은행은 다양한 구조개혁 보고서를 발간

잘 알려진 대로, 구조개혁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을 포함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경제 구조와 제도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서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통화정책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구조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리정책은 제약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구조개혁은 금리정책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경제의 기초체력 더 약화하면 큰 피해. 구조개혁으로 풀어야.
먼저, 경제의 기초체력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바로 저성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단기적인 경기 침체와 구조적인 성장 둔화를 구분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E. Lucas J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기 성장 문제들이 인간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기 어려워질 정도다.”[1]
— Lucas,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1988
그는 단기적인 경기 대응보다 장기 성장 구조를 설계하고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경기 침체는 금리 인하 같은 정책 수단으로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경제의 체력 자체를 약화하는 구조적 문제는 그런 일시적 처방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2010년대 초반, 아베노믹스를 통해 돈을 대규모로 풀고 금리를 낮췄지만, 이미 약해진 경제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 사례는 통화정책으로는 성장 기반을 되살릴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BOK이슈노트 제2025-14호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우리나라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출산율은 0.7명대로 세계 최저 수준이고, 2024년 말부터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림 1><그림 2>이런 인구 구조 변화는 경제의 기초체력을 급격히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엔진이 식어가는 자동차와 같은 상황입니다. 기름(유동성)을 아무리 넣어도, 엔진(성장 동력)이 식어 있으면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죠.
그림 1. 출산율 및 기대수명
- 자료 : 통계청, 인구총조사(2025.03) 및 장래인구추계(2023.12)
그림 2. 고령인구비중 전망
- 자료 : UN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24 revision
그래서 지금은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출산율 회복, 고령자 고용 확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이런 변화들이야말로 경제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핵심 열쇠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단기 처방에만 의존한다면, 오히려 물가 상승, 부채 증가, 주택가격 거품,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조개혁 없이는 통화정책도 숨을 쉴 수 없어
한국은행이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앙은행의 핵심 책무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1) 금리 인하 여력 감소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구조적 위기 중 하나는 저출생·고령화입니다. 이 인구 구조 변화는 ‘균형 실질금리’를 점차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Hwang, Lee, and Park, 2025)
이렇게 균형금리가 구조적으로 낮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중앙은행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여력이 줄어듭니다. 기준금리를 조금만 내려도 금방 제로금리 하한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구조적 요인은 제쳐두더라도, 경기가 일시적으로 둔화된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이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점점 줄어드는 셈입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 제3장 중장기 심층연구: 초고령화에 따른 통화정책 여건 변화와 시사점」(2025.6)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실질금리는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약 1.4%포인트 추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3> 그리고 이 하락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출산율이 반등하는 등의 구조개혁이 이뤄진다면, 이러한 실질금리 하락 추세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입니다.<그림 4>
그림 3. 한국 실질금리(2024년)1)
- 주 : 1) 실제 추세 대비
- 자료 : Hwang, Lee, and Park (2025)
그림 4. 한국 실질금리(2070년)1)
- 주 : 1) 기본 가정하 실질금리 추계 결과(-0.7%) 대비
- 자료 : Hwang, Lee, and Park (2025)
그렇다면 왜 저출생·고령화는 균형금리를 구조적으로 끌어내리는 걸까요? 초고령 사회에서는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해지면서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한편으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가계는 노후를 대비해 저축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자금을 빌려 쓰려는 수요는 줄고, 저축을 통한 자금 공급은 늘어나면서 시장에 자금이 상대적으로 넘치게 되고, 그 결과 돈의 가치, 즉 금리는 낮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정책 목표 간 충돌: 물가안정 vs. 금융안정
이제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출생·고령화는 단순히 균형금리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통화정책의 방향 자체를 설정하는 것마저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제약이 됩니다. 즉, 앞서 살펴본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통화정책의 숨 쉴 공간을 줄이는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은퇴 인구가 늘고, 경제의 성장 속도는 둔화되며, 그에 따라 금리는 구조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이(예대마진)가 줄고, 대출 수요도 감소하면서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약화됩니다. 이때 일부 금융기관이 수익 확보를 위해 위험 자산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Jang, 2025)
특히 우리나라는 부동산 중심의 대출 구조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 고령화로 인해 금융시스템의 내구성 자체가 약해진 상황이라면, 이러한 부작용은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주택가격과 가계부채가 동시에 급증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물가와 경기 흐름만 보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지만, 이미 과도하게 쌓인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었습니다. 작은 충격에도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책적 딜레마는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고령화는 금융안정이라는 경제의 기초체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기·물가 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 정책 목표가 충돌하면서,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3) 금리 인상도 부담
그렇다면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거나 인플레이션이 상승해 금리를 인상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도 저출생·고령화는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정부의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연금, 건강보험 등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지출’입니다. 이런 지출이 계속 늘어나면 정부 재정 부담은 커지고, 국가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국회예산정책처(2025)에 따르면, 출산율이 0.75명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현재 약 50% 수준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약 50년 후에는 173%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도 급증하게 되고, 결국 재정 부담과 부채 증가가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그만큼 통화정책을 필요한 방향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와 같은 제약은 미국을 포함한 ‘고부채 국가’들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결론: 구조개혁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책이자, 통화정책의 ‘숨 쉴 공간’을 확보하는 일
요약하자면, 구조개혁은 경제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고, 그 근육이 있어야 금리라는 도구도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약화하고,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유 공간마저 좁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구조개혁입니다. 출산율이 회복되고, 고령자도 더 오래 일할 수 있으며, 여성과 청년이 더 많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기술혁신과 효율적 자원 배분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기초체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야 비로소, 중앙은행의 금리정책도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1] “The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involved in questions like these [regarding long-run economic growth] are simply staggering: Once one starts to think about them, it is hard to think about anything else.” in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