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Greenspan)의 가방 두께를 보라
과거 월가에서는 ‘FOMC 회의 날 아침, 그린스펀 의장의 서류 가방이 두꺼우면 금리 인상을 위한 검토 서류가 잔뜩 담겨 있는 것이고, 가방이 얇다면 동결이다’라는 속설이 있었다[1]. 다소 과장된 이야기지만, 정책금리 변경 시에만 의결문을 공개하고 기자간담회조차 없던 시절, 시장이 연준의 ‘비밀주의’ 속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힌트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이다.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의 도입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2].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기대 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이 미래의 정책 방향에 대한 정보를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가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활용해 왔다. 먼저, 물가안정목표제 하에서 정책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통적인 방식이다. 뉴질랜드(1997), 노르웨이(2007) 등은 성장∙물가 전망과 함께 이에 부합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제시하기 시작했으며, 미 연준도 2012년부터 점도표 형식으로 이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금리경로는 함께 발표되는 경제전망 하에서의 전망경로라는 점에서 ‘조건부적 성격’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다음으로 위기 상황에서 정책금리의 실효하한(ELB)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사용된 비전통적 방식이다. 2011년 미 연준이 “최소 2013년 중반까지 예외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던 것과 같이 구속력 있는 약속(commitment)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금리정책이 제약된 상황에서 이러한 포워드 가이던스는 추가적인 완화효과를 통해 위기 극복에 기여했지만, 팬데믹 이후 고인플레이션 대응과 이후의 정상화 과정에서 정책 유연성이 저하되는 한계가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이러한 무조건적인 포워드 가이던스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내리고 있다.(Rhee(2025))
한국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한국은행 또한 글로벌 추세에 발맞추어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점진적으로 강화해왔다. 통화정책방향 의결문과 총재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정책기조에 대한 서술을 강화하는 한편, 소수의견 공개 방식을 개선[3]. 하고 의사록 공개 시점을 단축[4]하는 등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특히 2022년 10월부터는 그간의 정성적인 정책방향 제시에서 벗어나 ‘금통위원의 향후 3개월내 조건부 기준금리 전망’(이하 '3개월내 금리전망')을 정량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책 커뮤니케이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동 제도는 인플레이션 급등에 대응한 가파른 정책금리 인상으로 금융∙외환시장의 경계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정량적 제시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도입되었으며, 이후 디스인플레이션과 정책기조 전환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이 매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마다 향후 정책방향을 전달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의 기준금리 기대 형성과 시장금리 변동성 완화에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BIS(2022)의 방법론을 참고한 계량분석[5] 결과 ‘3개월내 금리전망’의 예상치 못한 변화는 시장의 기준금리 기대 변화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정도도 노르웨이, 미국 등 주요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그림 1>. 또한 ‘3개월내 금리전망’이 시장의 기준금리 기대 형성에 영향을 주면서 통화정책방향 결정 당일 단기 시장금리의 변동성도 유의하게 축소된 것으로 분석[6]되었다. ‘3개월내 금리전망’ 도입 전 평균 4bp였던 금리 변동성이 도입 후 평균 3bp로 낮아진 것이다<그림 2>.
그림 1. ‘3개월내 금리전망1)'이 시장의 기대형성2)에 미친 영향
- 주 : 1) 한국은 인상 또는 인하 가능성(=50% 가정)을 고려한 의견 분포의 가중평균 기준
- 2) ‘3개월내 금리전망’의 예상치 못한 변화가 시장기대에 미친 영향
- 자료 : 통화정책국 자체추정
그림 2. ‘3개월내 금리전망’ 실시 전후 시장 변동성 변화1)2)
- 주 : 1) EGARCH(1,1) 모형으로 통안채 91일물 금리변동성을 추정
- 2) 통방 당일 변동성 기준
- 자료 : 통화정책국 자체추정
경제주체들도 ‘3개월내 금리전망’ 도입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 학계 및 연구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7] 결과, 응답자들은 ‘3개월내 금리전망’이 정책 커뮤니케이션 개선에 기여했다고 평가했으며, 금리예측 시 활용 정도도 확대되었다고 응답하였다<그림 3>.
또한 ‘3개월내 금리전망’의 조건부적 성격에 대해서도 대체로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2.8%가 경제상황이 바뀌면 ‘3개월내 금리전망’과 실제 기준금리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그림 4>. 이는 당행이 ‘3개월내 금리전망’을 제시할 때마다 '조건부 전망'임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으며 경제주체들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조건부적 성격에 대한 이해도가 제고된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그림 3. ‘3개월내 금리전망’에 대한 주요 설문 결과
그림 4. 조건부적 성격에 대한 이해1)
- 주 : 1) '조건부'는 '정책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중립'은 '정책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가급적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기준
- 자료 : 통화정책국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3개월내 금리전망’에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다. 먼저, 금리전망의 대상 시계가 ‘3개월’로 경제전망의 시계에 비해 짧다는 점이다. 이는 대외 충격에 민감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이 일정부분 반영된 결과이지만, 경제전망 변화에 상응하는 중장기 정책 기조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실물경제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장기 시장금리에 미치는 효과도 제약될 수 있다.
또한 제시 방식 측면에서도 구체적인 금리 수준이 아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 연준(FOMC 참석자의 점도표)이나 스웨덴중앙은행(단일 금리전망) 등과 같이 보다 명확하게 금리전망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
새로운 도전: 점도표와 시계 확장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한국은행은 금리전망의 제시 방식을 보다 명확화 하고 전망 시계를 확장할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조건부 금리전망 모의실험(Pilot Test)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제시 방식 측면에서는 금리전망의 수준과 분포를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점도표’ 방식을 고려하되 금통위원별로 2~3개의 점을 제시함으로써 전망경로의 상·하방 리스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경우 아래의 [그림 5]와 같이 금리전망에 대한 다수의 견해뿐 아니라 정책여건의 상‧하방 리스크가 반영된 분포의 양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금리전망의 시계 측면에서는 경제전망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중장기 시계의 금리전망을 제시할 수 있도록 시계를 최장 1년으로 늘려서 테스트하고 있다.
이같은 점도표 방식 도입과 전망 시계 확장은 통화정책의 예측가능성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전망 시계 확장을 통해 중장기 기대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복수 전망치 제시 방식을 통해 금리전망의 상·하방 리스크와 함께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점도표의 분포가 확대되거나 기준금리 결정과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림 6. 전망시계별 표준편차1)
- 주 : 1) '3개월내 금리전망'(가능성을 100%로 가정)과 1년 후 금리수준에 대한 Pilot Test 점도표의 표준편차
- 자료 :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경제주체들의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주체들은 시계 확장의 필요성에 공감(83.9%)하면서도, 실제 결정과 전망의 차이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72.0%)를 표했다. 특히 조건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 결정과 포워드 가이던스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57.3%)이 적지 않았다<그림 7>.
그림 7. 조건부 금리전망의 시계 확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마치며
포워드 가이던스의 발전은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 전달'과 '정책의 신뢰성 및 유연성 확보' 사이의 균형을 경제주체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실제로 미 연준 등 주요국 또한 경제 환경과 제도적 여건에 맞춰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Breman&Seim, 2025)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일례로 Goolsbee 시카고 연준 총재는 연준의 점도표가 단순한 금리인하 횟수를 넘어(‘How many? is not enough’), 정책 반응함수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한국은행도 3개월내 금리전망의 운영 성과와 조건부 금리전망 모의실험(Pilot Test)의 진행상황을 바탕으로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전망 시계와 제시 방식 등을 계속해서 논의해 나갈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고민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먼 곳까지, 얼마나 자세하게 길을 보여주어야 가장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너무 짧은 시야는 충분한 가이드가 되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먼 미래의 불확실한 정보는 자칫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대내외 정책여건의 높은 불확실성과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제약 하에서도 ‘비밀주의에서 투명성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한국은행은 경제주체들과 소통하면서 조건부 금리전망의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1] 당시 CNNfn.com 등 일부 언론사는 FOMC 회의 당일 아침 의장의 서류 가방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으며 세인트루이스 연준은 2000년에 ‘서류 가방의 두께보다 내용물이 중요하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2] 장기금리가 미래 단기금리 기대의 함수이며, 정책방향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금융여건과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적 기반(Eggertsson & Woodford, 2003; Woodford, 2005 등)이 확립되면서 중앙은행의 포워드가이던스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3] 2013년부터 소수의견 제시 위원 수를 공개하였으며 2014년부터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위원이 제시한 정책 방향을, 2016년부터는 실명을 공개하고 있다.
[4] 2005년부터 의사록 공개 시점을 기존의 2개월 후에서 6주 후로, 2012년부터는 2주 후로 단축하였다.
[5] 22.10~25.8월까지의 일별 자료를 이용하여 ‘3개월내 금리전망’이 이자율스왑금리(IRS)에 내재된 3개월후 기준금리 기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6] Ehrmann&Fratzscher(2005)를 참고하여 16.1~25.9월까지의 일별 자료를 이용하여 통안채 91일물의 금리변동성을 추정하였다.
[7] 금융기관, 학계 및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24.4월(297명 응답), 25.8월(266명 응답) 두 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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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2022). "Quantitative forward guidance through interest rate projections" (BIS Working Papers No. 1099).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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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gertsson, G. B., & Woodford, M. (2003). “The zero bound on interest rates and optimal monetary policy.”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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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rmann, M., & Fratzscher, M. (2005). "Communication and decision-making by central bank committees: Different strategies, same effectiveness?" (ECB Working Paper). European Central Ba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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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in, W. T., & Mandal, R. J. (2000). “Inside the Briefcase: The Art of Predicting the Federal Reserve.”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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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lsbee, A. D. (2024). “Central Bank Communications Beyond ‘How Many?’” Hoover Monetary Policy Conference: Getting Global Monetary Policy On Track, Federal Reserve Bank of Chica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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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ee, C. Y. (2025). “Korea’s Integrated Policy Framework Story: Extending into the Effective Lower Bound Era.” 2025 Michel Camdessus Central Banking Lectur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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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man, A., & Seim, A. (2025). “Openness and clarity: Key ingredients in Riksbank communication.” Sveriges Riksbank Economic 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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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ford, M. (2005). “Central bank communication and policy effectiveness.” In The Greenspan Era: Lessons for the Future. Federal Reserve Bank of Kansas C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