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과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에 빈번하던, 자식 세대의 지위가 부모보다 월등히 나아지는 극적인 계층이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대간 계층이동의 역동성이 이전에 비해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확대되고 있는지역간 격차는 거주지역의 대물림과 맞물려 세대간 경제력의 대물림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출생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이 개인에게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은 지역으로 이주해 계층 상승을 이루려 해도, 상당한 비용 탓에 그러한 기회조차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들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2. 본고는 우리나라에서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 거주지역 이동(이주)이 그 대물림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은 최근 강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물림 정도를 측정하는 데 널리 활용되는 소득백분위 기울기(RRS: rank-rank slope)가 0.25로 추정되었는데, 이는부모의 소득순위가 100명중 10위 상승하면 자녀의 소득순위는 2.5위 상승한다는 의미이다(따라서 RRS가 1에 가까울수록 대물림이 심함). 자산을 기준으로 한 자산백분위 기울기는 그보다 큰 0.38로, 소득에 비해자산의 대물림이 더 강하게 관찰되었다. 그리고 세대별로 구분하면 소득과 자산 모두최근 세대에서 대물림 정도가 심해지는 양상이 확인되었다(70년대생 자녀의 소득RRS 0.11, 자산RRS 0.28 → 80년대생 0.32, 0.42). 이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약화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도 궤를 같이한다.
3. 일반적으로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교육환경, 직장 등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함께 변화하므로 경제력이 개선되고 나아가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시자료 분석 결과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백분위는 부모보다 6.5%p 상승한 반면 비이주 자녀는 오히려 2.6%p 하락하였다. 또한 이주 자녀 집단의 소득 및 자산RRS(0.13, 0.26)는 비이주 집단(0.33, 0.46)보다 현저히 낮아 이주 집단에서 세대간 대물림이 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4.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주로 인한 자녀 세대의 소득계층 상승효과, 즉 이주효과가 출생지와 이주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수도권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수도권 권역 내에서 이주했을 때, 특히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계층 상향이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반면 비수도권 출생 자녀들은 수도권으로 이주할 경우에는 경제력 개선폭이 커졌지만, 광역권역 내부에서 시·도간 이주시에는 그 효과가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과거 세대(현재 50대)는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거점도시 대학을 졸업한 집단과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한 집단의 평균 소득백분위가 각각 61.7%, 62.3%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 최근에는(현재 30대) 수도권 대학 졸업 집단의 평균 소득(61.8%)이 지역 거점도시 대학 졸업 집단(53.3%)을 크게 상회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거점도시 대학의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비수도권 전반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적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5. 비수도권에서 광역권을 벗어나지 않는 이주가 경제력 향상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는 점은 특히 저소득층 자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저소득층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서울·수도권으로 이주를 포기하고 인근 거점도시 등 권역 내 이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자산이 하위25%에 속한 자녀는 상위25% 자녀보다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p나 낮았다. 이러한 기회의 불평등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대물림 심화에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겪고 있다. 그들 중 부모소득이 하위50%인 자녀의 소득이 여전히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과거(71~85년생) 50% 후반에서 최근(86~90년생) 80%를 넘어섰다. 반대로 소득 상위25%로
의 진입 비율은 13%에서 4%로 하락하였다.
6. 따라서 개인 입장에서 비수도권 출생 자녀는수도권으로 이주할 유인이, 수도권 출생 자녀는 수도권 내 잔류할 유인이 매우 크다. 이는 그간 청년층의 일방적인 수도권 집중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국가 전체로는 지역간 양극화와 사회통합 저해, 나아가 초저출산에 이르기까지 큰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7. 출생 및 거주지역과 맞물려 경제력 대물림이 심화되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용이 될 재목이 강으로’ 가는 것을 돕는 이동성 강화 정책과 더불어,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역의 ‘작은 개천을 큰 강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시스템과 공공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먼저 비수도권 저소득층 학생의 이동성 강화를 위해‘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통해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의 진학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비수도권 거점대학의 교육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소수의 거점대학이 특정 분야
에서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준하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향후 인구 감소와 재정여력 축소를 감안하면 비수도권의 산업기반 및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해 우선은 거점도시에 대한 집중 투자가 긴요하다. 거점도시 중심의 지역 성장은 비수도권 내에서 지역간 이동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대간 대물림을 완화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행정구역 통합 및 광역권 거버넌스 개편도 거점도시의 위상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