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에피소드 1. 지급인가, 결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나의 오아시스는 회사 편의점. 하지만 직장 선배와 함께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 ‘많이도 산다.’
편의점 주인 :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선배 : 결제요?
나 : ‘그래요, 빨리 결제하시라구요.’
선배 : 결제는 할 수 없는데...
나 : ‘뭐지? 나보고 쏘란 거였어? 낚였다.’ 제가 할게요. 여기요.
선배 : 이걸로도 결제는 못 한다니까요. 이건 지급을 해야 하는 거라구요.
나 : ‘지급결제?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그냥 결제하고 간식이나 먹게 해주세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핀테크로도 신용카드로도 결제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결제 개념과 결제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안에 우리가 몰랐던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알아두면 쓸모 많은 지급결제 이야기, 시작해볼까요?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려면 물건 값을 내야 하죠. 이렇게 물건을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에게 물건 값을 치르는 걸 지급이라고 합니다. 만약 현금을 낸다면 그 자리에서 거래의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되지만, 사실 요즘은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어플을 더 많이 쓰잖아요. 그럼 얘기가 좀 복잡해진다고 해요. 신용카드로 산 물건값이 내 계좌에서 상점 주인의 계좌로 이동해야 거래가 끝나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중요한 단계들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신용카드로 산 물건값이 내 계좌에서 상점 주인의 계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건을 산 사람과 상점 주인이 거래하는 금융기관 간에 주고받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금융기관 간에 서로 주고받아야 할 돈을 계산하는 것을 청산이라고 합니다. 이 복잡한 청산 과정이 모두 끝나면 비로소 금융기관들이 내 계좌에서 돈을 빼서 상점 주인의 계좌로 돈을 입금시켜주는데요. 그러면 비로소 거래 끝! 이걸 결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경제 거래를 할 때 필수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일컬어 지급결제라고 하죠.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는 참가기관과 우리가 이용하는 지급수단, 그리고 이 과정을 처리하는 전산 시스템 및 여러 법규와 규정 등을 통틀어 지급결제 제도라고 합니다.
자, 이렇게 개념을 알고 보니 궁금한 게 또 생기죠?
나 : 아니 근데 지급결제 왜 배워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설명해 볼까요? 만약 지금과 같은 지급결제 제도가 없어서 모든 거래를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매일 쓰는 교통비, 매월 내는 핸드폰비 등 일상적인 거래들을 처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겁니다. 특히 집을 살 때처럼 큰 돈이 필요한 경우라도 생긴다면 정말 부담이 되겠죠. 그리고 요즘은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지금 같은 지급결제 제도가 없다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서 직접 물건 값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지급결제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거죠.
지급결제 제도는 이렇게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핵심적인 금융 하부구조입니다. 우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경제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더 넓게 보면 개인뿐 아니라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들의 거의 모든 경제 거래가 지급결제 제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안전하고 효율적인 지급결제 제도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 지급결제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잘 알아두는 게 좋겠죠?
에피소드 2. 뭘로 지급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나 : ‘직장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 업무 능력? 중요하긴 하지만 나는 특히 인간관계라고 본다. 센스 넘치는 생일선물로 기필코 선배에게 이쁨을 받아야지. 자, 이제 다 끝났다. 아, 아직 아니잖아. 뭐가 이렇게 많냐. 신용카드, 계좌이체, 휴대폰으로도 결제가 되네. 선물하나 하는게 뭐가 이렇게 어렵냐.’
요즘은 현금뿐 아니라 지급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 많아지면서 고민도 많아졌죠. 이 많은 것들 중 뭘 써야 할지 선택하려면 우선 우리가 사용하는 지급결제수단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요즘 지갑에 뭘 갖고 다니나요? 현금이나 신용카드, 체크카드도 보이고, 아, 지갑이 없는 경우도 있죠. 스마트폰이 신용카드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지급수단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죠. 은행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나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을 통해서도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뭐, 돈이 없어서 그렇지 돈을 쓸 수 있는 지급수단은 정말 많다는 거.
자, 그럼 이 많은 지급수단의 장단점은 뭘까요? 지급수단은 크게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인 현금과 현금 이외의 것으로 구분됩니다. 현금은 국가에서 법으로 보장하니 일단 안전합니다. 또 금융기관의 청산, 결제 과정 없이 바로 내 주머니로 들어오다 보니까 편합니다. 하지만 현금만 이용하기에는 여러 불편한 점이 있죠. 그래서 탄생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볍고 작은 이런 플라스틱 신용카드 같은 것 말이죠.
자, 그리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바일 뱅킹이나 칩이나 컴퓨터의 화폐 가치를 저장해 사용하는 여러 전자지급 수단처럼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전에 볼 수 없던 지급수단들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엔 마일리지도 돈처럼 사용되죠. 일반 기업들이 고객들에게 제공한 마일리지가 현금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마일리지를 많이 모았다면 비행기 티켓을 살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다양한 지급수단, 골라 쓰는 재미가 있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는 거. 현금과 달리 청산과 결제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고 해킹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급수단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보다 안전한 수단을 보급하는 것 역시 금융기관과 IT업체들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금보다 사용이 편리한 지급수단,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죠?
에피소드 3. 인생 최대 기회가 최대 위기로?
나 : ‘입사 1년 차, 드디어 때가 왔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거래,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계약금을 보내는 업무가 나한테 주어지다니, 이제 이걸로 내 능력을 인정받는 거지. 어? 이거 왜 이래?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어? 거래 중지? 아, 왜~’
선배 : 지금 은행 전산망하고 금융결제원의 소액결제 시스템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했대. 아, 어떡하지?
나 : ‘아, 그게 뭔데요? 아, 내 인생 최대의... 아, 이거 누가 빨리 좀 고쳐줘요.’
은행 전산망과 소액결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어야만 돈을 보낼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소액결제 시스템과 같은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계좌이체로 물건값을 지급했다면, 먼저 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은 내가 요청한 계좌이체 금액을 내가 거래하는 A은행에 알려줍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지급한 돈이 쇼핑몰의 거래은행인 B로 이체되는 건 그 다음 날. 하룻밤 사이 금융결제원에서 두 은행 사이에 주고받을 돈을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은행에 개설된 두 은행의 계좌를 통해 최종 결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이러한 지급결제 과정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전산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이것을 지급결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런 지급결제 시스템은 대상 거래의 유형에 따라 거액결제 시스템과 소액결제 시스템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기업이나 개인의 소액 거래를 처리하는 건 소액결제 시스템이라고 하는데요. 거래 대상이 광범위하고 결제 건수도 엄청나죠. 예를 들어 은행창구에서 타행 간의 거래를 할 때 쓰이는 타행환 공동망, 공과금 등을 낼 때 이용되는 지로시스템, CD, ATM기기 등을 이용할 때는 CD공동망, 인터넷이나 폰뱅킹을 이용할 때 사용하는 전자금융 공동망 등이 소액결제 시스템입니다. 또 다른 결제 시스템인 거액결제 시스템은 말 그대로 많은 돈이 결제되는 건데요. 금융기관 간의 자금이나 증권, 외환 거래와 같이 건당 금액이 크고 결제 시점의 중요도가 높은 거래를 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손님은 적고 결제 금액은 큰 게 특징이죠.
또 증권 거래를 통해 결제할 경우에는 증권결제 시스템을 통해 매매를 확인하고 주고받을 돈을 청산해서 결제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외에도 외환을 사고팔거나 사고 판 통화를 교환하고 지급할 때는 외환결제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지급결제 시스템, 이 모든 게 원활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건 한국은행입니다. ‘은행들의 은행’이라 불리는 한국은행은 이런 관리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특별한 지급결제 시스템을 운영 중이죠. 바로 금융기관 간의 자금 거래가 이루어지자마자 즉시 결제되도록 하는 결제망인 한국은행 금융망. 한은 금융망은 국내 유일의 거액결제 시스템이지만 이 뿐 아니라 민간이 운영하는 지급결제 시스템의 최종결제를 담당하기 때문에 이들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거래의 지급결제가 안전하고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 한국은행은 이 어려운 걸 해내고 있는 거죠.
우리는 매일 지급결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수많은 거래를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산 오류가 잠깐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큰 불편이 발생하죠. 지급결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이 정도가 아닐 겁니다. 자기 자본이 충분한 은행이라도 일시적으로 자금 부족을 겪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급결제 시스템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금융의 속성상 한 금융기관의 문제가 급속히 파급되면서 전체 금융 시스템의 붕괴까지 가져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게 중앙은행의 역할. 지급결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최종 결제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그 역할을 맡고 있죠. 먼저 한국은행은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결제 자산인 예금과 현금을 제공하고, 자금 이체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거액결제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이를 통해 많은 금융기관들의 자금 결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파악하고, 일시적으로 결제 자금이 부족한 기관에는 자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또한 지급결제 시스템을 감시하는 임무도 수행 중. 금융기관을 모니터링하고 수시로 평가해서 지급결제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건데요. 필요할 때에는 지급결제 시스템이 개선되도록 유도하기도 한답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 은행 중심의 지급결제 시스템은 최근 몇 년간 그 중심을 흔드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그 중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핀테크, 그리고 암호 자산의 등장은 세계적인 이슈였죠. 이러한 지급결제 분야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암호 자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에 대한 연구는 물론 지급결제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테스트도 진행 중. 최근에는 은행들과 은행 계좌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직불 서비스의 도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가는 세상, 지급결제 시스템도 여기에 발맞추어 함께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지급결제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의 흐름을 읽고 준비하는 자세. 그건 중앙은행은 물론 매일같이 경제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