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의존하는 대입제도가 학원 과외 부추겨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전체로는 불합리 초래
지난 2007년 5월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이 국내 사교육업체에 투자를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칼라일 그룹은 2000년에 한미은행을 인수해 3년 만에 7,000억 원의 수익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펀드다. 수익에 민감한 외국계 사모펀드가 사교육업체에 투자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교육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 셈인데 착잡한 일이다.
가치판단을 떠나 우리나라의 엄청난 사교육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칼라일의 선택에 수긍이 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2007년 4월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를 약 33조 5,000억 원으로 추계했다. 교육예산 31조원을 초과하는 규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대입학원비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2000년에는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01년부터 학원비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추세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사교육을 시키는 행위도 일종의 경제행위다.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은 최대의 효용(만족 또는 이윤)을 얻기 위해 의사결정을 행하는 합리적(또는 이기적) 인간이다. 합리적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얻는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 편익이 비용보다 크면 그 행위를 하고 아니면 포기한다. 개인이 특정행위에 대한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가 정부정책과 결합될 경우 정책당국자 입장에서 어떤 정책의 결과로 나타날 개인의 행위를 예측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부정책에 의해 어떤 유인(incentive)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편익과 비용이 변할 경우 개인의 행동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의 경우 직접적 효과 이외에 개인의 유인구조에 영향을 미쳐 경제행위에 대한 편익과 비용을 변화시킴으로써 유발하는 간접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간접적 효과를 무시할 경우 현실 세계에서 나타나는 정책효과는 최초에 의도했던 것과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현재의 대학입시 정책도 이 같은 유인구조를 고려하지 못한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학입시에서 본고사가 폐지되고 수능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되자 대학입시를 단 하루의 시험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학교생활을 좀 더 창의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취지로 수행평가가 도입됐고 내신 성적을 대학입시에 추가적으로 반영토록 했다. 그러나 대학입학 기준은 여전히 수능과 내신으로 대표되는 학력점수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들이 더욱 사교육에 치중하게 되고 내신전문 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사교육 비용에 비해 사교육을 통해 기대되는 편익, 즉 대학입시에서의 상대적 유리함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의 주된 평가기준이 학력점수인 한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교육을 시킬 유인은 충분하고 또한 그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서 행동을 하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한 행동을 할 땐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반대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소위‘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현상이 발생한다.
사교육을 통해 대학입시를 남보다 더 빨리 더 먼저 준비하려는 무한질주의 경쟁에 모두 동참하다 보니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사교육을 통한 상대적 이익은 그렇게 크지 않은 상태에서 엄청난 비용만 지출하게 된다. 또 국가 입장에서는 공교육의 황폐화와 반(半)지하경제의 번창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안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연도별 사교육 참여가구 비율은 1999년에는 66%였으나 2003년에는 85%로 상승했다.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누구나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학력점수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한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고 더 번창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공교육 내 수준별 수업이나 다양한 입학경로 제공 등을 통해 사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데 크게 불리하지 않도록 입학제도를 설계하는 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교육제도
미국의 교육제도
개인별 능력 차를 인정하면서도 공평한 교육 기회 확대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미국의 교육제도는 사교육 부담이 큰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공교육 내에서 수준 별 학습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언어와 수리능력을 중심으로‘영재성 판별검사’를 해 이를 통과한 학생들은 4학년 때부터 영어와 수학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한다. 그러나 영재성 판별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과 큰 차이는 없다.
중학교부터는 모든 학생들이 영어와 수학은 수준별로,기타과목은 함께 수업을 받는다. 중학교 1학년 수학은 수준에 따라 3종류로 구별돼 있다. 어떤 수업을 듣느냐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추천해 준다. 이때 학생이 영재성 판별검사에 통과했느냐의 여부는 상관없다. 교사가 상위과목을 추천해 주더라도 해당과목에서 A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때 상위과정을 시작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 고교졸업에 필요한 의무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다. 사회나 과학 과목도 고교 1학년이면 고교 기초과정이 끝나기 때문에 학생에 따라 고교 1~2학년 때부터 대학교에서 배우는 각종 교양과목들을 선택해 듣는다. 여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경우 대학입시에 반영되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점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선행학습의 결과가 대학 진학 후까지 이어진다.
UC버클리나 UCLA 등의 캘리포니아 대학들은 우수한 인재선발과 공평한 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다양한 입학사정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고교 내신성적과 학업적성시험 (SAT) 점수를 합한 종합점수를 기준으로 상위 12.5%의 학생에게 입학자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내 모든 고등학교에서 각 학교의 내신 성적 상위 4%에 해당하는 학생에게는 종합점수와 상관없이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이는 학업적성시험 준비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학교교육에만 의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밖에 각 고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입학해 소정의 편입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 경우 3학년 때 다시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학생을 선발할 땐 학력 점수 이외에 가정환경, 졸업 고등학교 수준, 특별한 재능 보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특히 지원자들의 작문 능력을 매우 중시한다. 이는 작문능력이 사교육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향상될 수 없고 학교 내에서 오랜 독서를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문 점수가 높은 학생이 실제 대학교육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는 실증분석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
구성의 오류
구성의 오류
어떤 행위가 개인적으로는 최선의 합리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할 경우 전체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예가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이다. 관중석에 있는 한 관객이 경기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면 본인은 경기를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경기를 잘 보기 위하여 다 같이 일어서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똑같은 조건에서 오히려 피로감만 더 커지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경제현상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국가가 수입관세를 부과하면 그 국가의 입장에서는 수입이 감소하게 되므로 경상수지가 호전된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수입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각국의 수출이 감소하고 국제무역이 축소돼 결국 모든 나라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