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신공항 건설, LH공사 이전 등 대규모 국책사업과 관련하여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최적입지를 선정하기 위해 여러 후보지들을 조사하고 이들의 적정성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지역을 결정하였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지역경제의 발전과 직결되어있는 사안들이다보니 각 지역에서는 이러한 결정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사실 이러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의 목표는 이를 통해 국가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것에 있지만, 정작 현실로 드러난 결과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어떻게 해야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회 전체적으로 이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과 관련하여,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애로우(Kenneth J. Arrow)는 사회 구성원들의 선호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의사결정(경제학에서는 이를 ‘사회후생함수’라 한다.)이 가져야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모든 대안들을 완전히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완비성). 즉, 어떤 대안에 대해서도 그 우열이나 동일한 선호의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각 대안들 사이의 선호순위는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한다(이행성). 즉, 사과를 배보다 선호하고(A>B) 배를 바나나보다 선호한다면(B>C), 당연히 사과를 바나나보다 선호해야 한다는 것이다(A>C). 셋째, 두 대안들 사이의 선호순위는 비교대상이 되는 그 대안들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지, 이와 무관한 다른 대안들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무관한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 즉, 사과와 배만 있을 때 사과를 배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였다가, 바나나도 있다는 말을 듣고서 배를 사과보다 더 좋아한다고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넷째,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특정 대안을 선호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파레토원칙). 즉, 개인들의 만장일치 의견은 바로 사회의 결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개인의 선택이 다른 사회 구성원의 선택을 무시하고 결과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비독재성). 앞선 네 조건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조건이라면, 마지막 조건은 개인들의 선호를 민주적으로 반영하여 사회의 선호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다섯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을 때에는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당연해 보여서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애로우는 이처럼 자명해 보이는 다섯 조건들을 동시에 모두 만족시키는 집단 의사결정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였는데, 이를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라고 한다. 결국 현실에서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집단 의사결정 방법들은 결국 앞서 언급한 다섯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먼저 만장일치제를 살펴보자. 만장일치제의 경우,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을 이끌어낼 수 있고(파레토원칙), 결정 이후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제는 만장일치하지 않은 대안들에 대해 그것이 더 좋은지, 더 나쁜지 혹은 동일한지 아무런 판단을 내려주지 못하므로, 애로우의 첫 번째 조건(완비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다수결 투표제도는 어떨까? 투표제도는 만장일치제가 가지는 한계인 전원 합의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대안들 사이의 비교불가능성을 다소 완화한 것으로,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의사를 결정하면서도 많은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투표제는 어떤 대안들을 먼저 비교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을?병 세 사람이 사는 마을에 정부에서 병원?학교?경찰서 중 하나를 지어줄테니 투표를 통해 선택하라고 제안하였고, 이 때 세 사람의 마음속 선호순위가 다음 <표1>과 같다고 하자. 이 때 병원과 학교를 먼저 비교하면, 갑과 병은 병원에 투표하여 다수결에 따라 병원이 결정되고, 이후 병원과 경찰서를 비교하면, 을과 병이 경찰서에 투표하여 최종적으로 경찰서가 선택된다. 그러나 비교순서를 바꾸어 학교와 경찰서를 먼저 비교하면, 갑과 을이 학교에 투표하여 학교가 결정되고, 학교와 병원을 비교하면, 갑과 병이 병원에 투표하여 결국 병원으로 결정된다. 이처럼 대안들을 비교하는 순서에 따라 사회적 의사결정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을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라고 하며, 이는 애로우의 두 번째 조건(이행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민주적인 집단 의사결정 방법으로 인식해오던 것들이 합리적 의사결정 방법의 요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부에서는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독재정치의 효율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의 ‘파파 스머프’와 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는 이상적인 집단 의사결정자로서의 ‘선량한 독재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보아왔던 수많은 독재자들은 대체로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가 진정 의미하는 바는 ‘어떠한 집단적 의사결정도 온전히 민주적인 동시에 합리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성을 포기하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독재적인 정책 결정만이 옳다는 주장은 이를 잘못 해석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도 온전히 완전할 수는 없으므로 선택되지 못한 다른 대안들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소위 경제학에서 추구하는 효율성 이외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른 가치들이 있기 때문에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문제에서 경제적인 검토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선호는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결론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를 고려하고 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 의사결정을 위해 우리 모두가 가져야하는 조건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은행 울산본부 편도훈 조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