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우리의 자세_경제 에세이

구분
화폐·금융
등록일
2017.06.28
조회수
10532
키워드
담당부서
경제교육기획팀(02-759-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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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뭔가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청소를 하나보다 생각했지만 점차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정리가 끝나고 나면 한 보따리의 물건을 재활용품으로 버리거나, 아직 쓸 만한 물건은 중고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라며 제법 저항하였으나, 결국 입지도 쓰지도 않을 거라는 데 동의하고 하나, 둘씩 내놓기 시작하니 집이 더욱 넓어지고, 물건 찾기도 쉬워졌다. 그렇게 ‘비울수록 행복하다’는 미니멀 라이프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베스트셀러, SNS뿐만 아니라 TV 프로까지 유행하고 있다. 온갖 잡동사니와 과잉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무엇을 취사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버리고, 비우라는 미니멀 라이프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햄릿 증후군’처럼, 현대인들의 결정, 선택장애를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니멀 라이프가 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고,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의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발로 이어지면서 가치소비, 공유경제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윤리 및 착한 소비, 사회적 기업, 차량 및 숙박 공유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경제,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기업들도 이에 맞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낸 엄청난 정보가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이른 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융합시킨 4차 산업혁명은 지금껏 이루어져 온 글로벌 경제의 모습을 전혀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말했듯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정보라는 주요 자원을 동력으로 하는 경제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의 크기(Volume), 속도(Velocity), 다양성(Variety)의 3V로 특징 지워지는 빅데이터를 활용함에 있어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Garbage in, Garbage out’이다. 그래서 3V에 가치(Value) 또는 정확성(Veracity)을 더한 4V와 5V를 빅데이터의 요건으로 결정짓기도 한다.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과잉 정보의 시대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치있는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지는 등 과잉 정보가 필연적으로 불확실성과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국가 간, 계층 간 갈등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하소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아이켄그린 교수는 갤브레이스의 명저 '불확실성의 시대' 발간 40주년을 맞이하여 '초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심각한 리스크를 유발하게 된다. 블랙스완처럼 아무도 예상치 못한 리스크일 수도 있고, 이미 알려진 수많은 정보들 속에 섞여 있어서 위기인줄 알면서도 둔감해진 채 애써 외면하려 하는 회색 코뿔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떻게 리스크를 방지하고 헤쳐 나가야 할까? 복잡하고 불확실할수록, 미니멀 라이프처럼 단순하고 간결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성의 원리, 간결함의 원리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은 중세 시대 철학자인 윌리엄 오컴이 제안한 것으로, 다양한 가설이 대립하고 있을 경우 불필요한 가정들을 면도날로 잘라버리고 최소한의 가정을 사용하여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 이론은 지구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집착이 불러온 복잡하고 수많은 가정들을, 지구가 움직인다는 면도날로 잘라버림으로써 천동설을 지동설로 전환시키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방향, 하드 브렉시트 여부, 주요국 통화정책 비동조화와 환율 갈등에 북한의 핵실험까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오컴의 면도날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전가의 보도가 아닐까 한다. 미국이 FTA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가 발생된다면, 중국의 부동산시장이 침체된다면... 이렇게 수많은 불확실성을 가정하기에 앞서, 지동설처럼 우리가 먼저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오컴의 면도날로 우리 경제를 둘러싼 수많은 가정들을 잘라낼 때, 우리 경제가 나아갈 명확한 궤도가 그려질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성공적으로 실천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버리고 비우는 대상과 범위, 그 기준은 달랐지만 쓸데없는 물건에서 시작하여 온갖 정보, 근심걱정까지 비우기 시작하면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수많은 불확실성을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내고 비움으로써, 가치있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초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경제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2017년 경제 에세이
안상기 과장 (시스템리스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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