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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오디세이 <50(끝)> 한국은행의 미래는

구분 화폐·금융
대상 일반인
경제교육기획팀 (02-759-5321) 2018.05.02 6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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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사 중인 한국은행 본점 조감도. 번듯한 건물이 한국은행의 하드웨어라면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즉 근대적 지배구조와 조직문화를 갖추는 것이 한국은행의 과제다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도 화폐는 있었다. 19세기 캐나다에서는 정부 화폐와 민간 화폐가 공존했고, 홍콩에서는 지금도 중앙은행(HKMA) 대신 3개 민간은행이 화폐를 발행한다. 그러므로 중앙은행의 의미를 화폐 발행에서만 찾는 것은 어리석다. 법화의 존립 근거가 국가의 강제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 부처가 발행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주나라의 강태공이 ‘구부환법’을 통해 그렇게 했고, 미국은 같은 이유에서 한동안 중앙은행을 만들지 않았다. 
  

3년간 연재 통해 한국은행사 조명 
민주 정부의 돈줄로 시작됐지만 자본주의를 지키는 보루로 성장 
성숙한 사회에 맞는 새 역할 필요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중앙은행이 생긴 것은 절대군주의 폭정이 사라지고 법치주의의 원칙이 싹트던 17세기 말이다. 왕이 허가한 독점기업 스톡홀름은행이 4년 만에 파산해 지폐가 휴지조각이 됐다. 분노한 의회는 왕의 영업 허가권을 몰수한 후 1668년 의회의 이름으로 오늘날의 스웨덴 릭스방크를 새로 설립했다. 비슷한 무렵 영국에서는 폭정을 일삼던 제임스 2세를 시민들이 축출하는 명예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민주정부의 장래는 매우 불안해 아무도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1694년 ‘민주정부의 돈줄’로서 설립된 것이 지금의 영란은행이다. 이와 같이 중앙은행은 절대권력의 후퇴와 더불어 탄생한 민주화의 산물이다. 
  
이후 중앙은행은 근대 국가의 필수품이 됐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역할이 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은 그 책에서 영감을 얻어 1791년 미국은행을 세우고, 나폴레옹은 미국의 자극을 받아 1800년 프랑스은행을 세웠다. 농업국가 탈피를 추진하던 러시아의 알렉산데르 2세는 농노해방과 함께 1860년 고스방크(국가은행)를 세우고, 독일 통일의 위업을 마친 비스마르크는 1876년 라이히스방크를 세웠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882년 일본은행을 세웠다. 

 

이토의 조선은행 설립 등 처음 다뤄

한국은행을 헌법에 반영하는 대신 한국은행법에 야당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내용의 여야 8인정치회의 합의서(1987년 8월 31일) 9월 초로 예정된 개헌안 발의 시한에 쫓기면서 다다른 타협이었다.

 

그 물결은 한반도에도 밀려왔다. 아관파천을 마치고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 개혁(광무개혁)을 추진했다. 거기에는 러시아를 모델로 ‘대한중앙은행’을 세우는 것도 포함됐다. 전환서(典?署)를 설치해 주화의 품질을 개선하자는 데 그친, 정약용 식의 유물론적 근대화를 뛰어넘어 국가 주권작용과 사회제도로서 중앙은행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이 컬럼의 출발점이었다. 
  
3년여 전 남윤호 당시 편집국장이 이 컬럼을 제안했다. 도쿄특파원 출신인 그는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수준 높은 중앙SUNDAY 독자들이 일본인 평균 수준보다도 중앙은행을 잘 모르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는 차가운 중앙은행, 해외 뉴스를 통해 듣는 머나먼 중앙은행이 아니라 우리 국민과 100년을 함께 호흡해 온 ‘우리의 중앙은행’에 관한 이야기를 청했다. 중앙은행을 널리 잘 알리는 일은 30년 이상을 한국은행에서 근무해 온 필자의 의무이자 소망이요, 모험이었다. 그래서 달콤하고도 위태로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언제나처럼 필자의 의도는 분명했다. 중앙은행과 화폐 이야기에 사람의 체취를 담는 것이었다.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소설·시·영화를 자주 끌어왔지만, 그것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이야기의 줄기는 ‘금융은 곧 인간’이라는 명제였다. 돈은 인간의 계획성과 함께 탐욕·이기심·로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요물인데, 돈과 그것을 다루는 중앙은행 이야기에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이자 위선이다. 그래서 50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 인물의 내면을 소개하거나 시대적 배경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거둔 성과가 있다.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천년 제국’의 주춧돌을 만들기 위해 총리의 압력과 죽마고우의 청탁을 뿌리치고 조선의 중앙은행을 세우는 데 앞장선 일화는 필자가 국내 최초로 밝혔다고 보인다. 해방 직후 조선은행이 김구 진영과 몰래 접촉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이승만의 지시를 받아 유엔으로 보내는 인쇄물을 제작함으로써 남한 정부의 출범에 은밀히 참여한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다. 비록 자잘한 일화지만, 이 컬럼에서 공개된 사실들이 한국 금융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양경반조의 관계


중앙은행의 역사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역사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바라본 과거다. 역사적 사건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정신 속에서 매번 재탄생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역사가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결국 현대사”라고 했고, 영국의 역사가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중앙은행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은 결국 중앙은행의 현재를 사유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필자는 중앙은행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생각할 때 양경반조(兩鏡返照)의 정신을 떠올린다. 세상 모든 것을 비춰 주는 거울은 자기 자신은 비추지 못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려면 다른 거울이 있어야만 한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거울은 무한이 서로의 모습을 비추면서 깊이를 키워 나간다. 일찌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20세기 인류사의 최대 사건을 기독교 문명과 불교 문명의 만남이라고 한 것은, 이질적인 두 문명이 조우하면서 스스로를 더 깊이 깨달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양경반조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와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이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오늘날에는 시장원리, 즉 자본주의를 금과옥조로 생각한다. 금융시장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선거에 책임을 지는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경제민주화나 관치금융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결국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지만, 서로 이질적이라서 충돌하기 쉽다. 그것이 정부와 중앙은행 간 갈등의 뿌리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정부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중앙은행이 양경반조의 정신으로 손을 잡을 때 각자의 정책이 지향하는 이념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가 전진한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미국이 양경반조의 정신을 잘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 갈등과 대립의 시대가 지나가고 양경반조의 정신이 정착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개헌 과정서 헌재 같은 헌법기관으로


일본은행 본점과 한국은행 화페박물관의 모델인 벨기에 중앙은행 건물[사진 한국은행]


과거와 현재를 말했으므로 이제 미래가 남았다. 양경반조의 정신은 어떻게 지켜나갈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건전한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잡도록 만드는 좋은 방법이 있다. 정부가 헌법기관인 것처럼 중앙은행을 헌법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1987년 개헌 때도 여야 4당이 검토한 바 있다. 
  
새해부터 본격화될 개헌 논의의 핵심은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일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을 제왕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식물들이 있다. 국가원로자문회의(제90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제92조), 국민경제자문회의(제93조) 등이 그 예다. 제5공화국 이후 생겨난 이 자문회의들은 속성상 어전회의(御前會議)가 되기 쉽고 대통령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선 학자들은 ‘어용’의 늪으로 빠지기 쉽다. 현재의 헌법은 그것을 제도화하고 있다. 
  
국가 주권작용으로서 화폐와 중앙은행은 이 자문기구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시대정신을 다룰 이번 개헌에서는 화폐와 중앙은행을 대통령 자문기구보다 우선해야 한다. 1987년 개헌에서 헌법재판소가 헌법기관이 됐듯이 이번 개헌에서는 국민 재산권의 토대인 화폐와 민주화의 산물인 중앙은행을 헌법적 가치로 다루자는 말이다. 릭스방크는 헌법기관이다. 스웨덴 국민은 왕권을 제한하고 입헌군주국으로 가는 출발점이 된 릭스방크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신뢰를 보낸다. 미국·독일은 물론 러시아와 필리핀도 그러하다. 
  
고종 황제가 러시아 형태의 중앙은행 설립을 시도한 이래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은 항상 선진국 직수입품이었다. 정부 산하의 특수은행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일제강점기의 조선은행, 초창기 미 연준(Fed)을 흉내내어 재무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과거의 한국은행, 영국을 좇아 은행감독 기능이 거세된 현재의 한국은행이 그렇다. 그때 그때 남의 겉모습을 모방하기 급급하면서 내적 성숙을 향한 철학과 노력을 빠뜨리면, 제조업에서 앞서지만 금융 면에서는 유독 뒤처진 일본처럼 될 것이다(일본은행은 정부의 지배력이 가장 강한 벨기에은행을 모델로 하여 설립된 뒤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도(unfinished institution)’다. 성숙한 사회에 걸맞은 성숙한 중앙은행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펜을 내려놓으며 결론을 내린다. 
  
“금융 선진국은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중앙은행 제도는 노력한 만큼만 전진한다.”


2017.12.31일자 중앙SUNDAY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 차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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