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은 크게 느는데 소득 증가는 적어
교육·주택비 부담 덜어줘야‘저축 여력’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은퇴 후 또는 노후 소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인 저축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 저축률은 1988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며 이 중 개인 저축률의 하락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18% 안팎이었던 개인 순저축률은 1995년~2000년 연평균 16% 수준을 보이다가 2006년에는 3.5%까지 하락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개인 저축률의 하락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도 매우 큰 수준이다. 소득 계층별로 보면 고소득 계층의 저축률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상대적으로 중?저소득 계층의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저축률이 떨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저축의 일반적인 정의가‘소득에서 소비 지출을 차감한 나머지’라고 한다면 저축률 저하의 직접적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소비 지출에 비해 개인소득 증가세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개인 순처분가능소득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1997년~2006년) 연평균 4.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전 10년간(1987~1996년)의 연평균 증가율 15.8%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거시적 요인 이외에 미시적인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문에서 가계 부담이 늘어나고 저축 여력이 감소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우리나라 가계 소비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초 6%에서 최근 12% 수준까지 상승했다. 우리나라 교육비 지출의 민간 부담(GDP 대비)은 2003년 기준 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7%)보다 4배 이상 높고 OECD 회원국 중 최대 규모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높은 민간 교육 관련 지출은 고스란히 국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2005년 이후 주택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는 부동산 등 자산취득 수단으로 활용돼 가계의 실물자산 증가로 이어진 측면이 있지만 이로 인해 가계의 이자 부담 역시 급증했다.
셋째,외환위기 이후 공적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 지출 부담이 크게 늘었다. 사회보험 지출의 소득 대비 비중은 외환위기 전(1990~1997년) 평균 2.4%에서 외환위기 이후 5%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공적 저축과 사회보험 지출이 확대될수록 개인들의 저축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저축률 하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먼저 교육비 증가로 저축과 소비가 감소하게 되면 현재 소비 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노후대비 자산이 부족하게 된다. 또 우리나라 가계는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높고 자산의 대부분을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어 소득 감소,실업 등 경제적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이 밖에 주택 시장의 불안이 금융 시장으로 쉽게 전이되고 금융 시장의 자금 경색과 주택시장 여건 변화가 가계의 재무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저축률 하락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까. 저축을 넓은 뜻으로 해석해 가계 총자산(인적자산 실물자산 금융자산의 합)의 변화로 정의 한다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와 부채를 이용한 주택 구입,그리고 공적
연금 부담을 모두 가계의 실질적인 저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낮은 저축률을 해결하기 위해 가계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높은 인적 자본에 대한 저축(교육비 지출)과 실물자산에 대한 저축(부동산 투자)을 적정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저축률이 높아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안정과 사교육비 축소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주택 가격이 안정되고 서민들의 주택 구입 부담이 낮아질 때 중?저소득 계층의 저축률은 정상화될 수 있다. 또 공교육 정상화와 세대간 교육비의 적정한 분담이 이뤄져야 가계의 노후 대비 금융자산 축적도 가능하다.
저축률 하락이 주로 중?저소득 계층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해 향후 소비자 금융정책을 소득 계층별로 차별화할 필요도 있다. 특히 저소득 계층은 불확실한 노후나 소득 충격에 대비할 수 있을 만한 적정 수준의 금융자산 축적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선진 각국에서도 이와 같은 필요성에 따라 저소득층에 대한 다양한 자산형성 지원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정책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주요 국가의 자산형성 지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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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의 자산형성 지원 제도
북미와 유럽 선진 각국에선 저소득층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제도가 정부 또는 민간 중심으로 마련돼 시행 중이다.
미국의‘개인개발저축예금(IDA)’제도는 저소득자들이 자산을 축적함과 동시에 향후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금융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역사회의 관련 센터나 금융회사들이 저소득자들에게 저축 액만큼 직접 보조금 형태의 저축 장려금(matching deposits)을 지급하고 금융 교육도 제공한다. 예금액은 최초 주택 구입, 교육, 소규모 사업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저축 지원 제도인 IRAs(Individual Retire Accounts)나 401(k)와 달리 대상을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세금공제 방식 대신 장려금을 이용하며 금융 교육을 실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국은 납부 세액이 적어 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까지 저축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저축 장려금을 지급하는‘차일드 트러스트 펀드(Child Trust Fund)’와‘세이빙 게이트웨이(Saving Gateway)’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차일드 트러스트 펀드’는 모든 신생아에게 계좌를 개설해 줘 18세가 될 때까지 저축한 금액을 일시에 지급함으로써 가정 환경 등에 영향 받지 않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장려금 혜택이 더 많이 주어진다.‘ 세이빙 게이트웨이’는 미국의 IDA를 모델로 한 제도로 저축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 이들이 정기적으로 저축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캐나다의‘런세이브(LearnSave)’역시 IDA와 유사한 제도다. 캐나다는 물적 자본 형성을 위한 미국의 IDA나 저축습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영국의 ‘세이빙 게이트웨이’와 달리 인적 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 제도를 통해 축적된 저축 액은 향후 교육과 기술 습득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는 저소득 계층의 주택 마련을 통한 자산 형성을 위해‘홈세이브(HomeSave)’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선 근로자의 자산 형성을 위한 종업원 지주제도와 함께 저축에 대해 장려금을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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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순저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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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순저축률
국민소득 통계상 개인순저축률은 개인 부문의 순처분 가능소득에 대한 순저축 비율을 의미한다. 즉 세금 등을 제외하고 개인이 쓸 수 있는 모든 소득(순처분 가능소득) 가운데 재화와 서비스 구입에 쓰고 남은 금액(순저축)의 비율이다. 국민소득 계정상‘개인’에는 일반적인 가계뿐 아니라 자영업 형태를 포함하는 민간 비(非)법인 기업과 소비자단체 노동조합 종교단체 등 가계에 봉사하는 비(非)영리 단체도 포함된다. 최근엔 기존‘저축’이란 정의가 실물생산 위주의 경제에 적합한 개념으로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연구개발(R&D) 및 교육을 중시하는 요즘의 지식기반 경제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지출의 경우 광의의‘저축’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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