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우리가 뭔가를 사지 않는 날을 상상하기란 정말 어려운데요. 우리가 사는 품목의 가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만 가계 지출의 70% 이상을 씁니다. 소비는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죠. 우리는 작은 소비에서도 물가의 변동을 느끼는데요. 내리는 일은 드물고, 오르는 건 참 쉬운 것 같죠? 과연 그럴까요? 지난 50여 년 간의 물가의 흐름을 보면 흥미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세월 속에 숨겨진 물가의 비밀을 찾아 저와 함께 출발해 볼까요?
지난 50년간 물가는 꾸준히 상승해 왔습니다. 전체 물가 수준은 50년 전보다 무려 20배 이상 올랐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품이 같은 속도로 오른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주 이용하는 상품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예를 들어, 1990년 이후로 시내 버스 요금은 8배가 되었고, PC와 휴대폰 값은 90년대에 비해 10%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지난 50년 간의 물가 상승 속도는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때로는 경제 성장률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2016년 조류 인플루엔자 여파로 달걀 값이 급등했을 때, 달걀이 들어가는 김밥이나 토스트 값이 올랐습니다. 김밥에서 달걀이 빠지거나 흔하던 달걀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죠. 2020년 가을에는 여름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토마토 가격이 급등했는데요. 햄버거 업계는 토마토가 빠진 햄버거를 팔면서 가격을 인하하기도 했고, 대신 무료 음료나 다른 채소를 추가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물가의 흐름은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누구나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낄 만큼 물가는 이미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경제 지표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인터뷰 : 예전에는 한 개에 천 원이면 샀던 물건이 요즘은 많이 올라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안 살 수는 없고 어쩌겠어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10대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10명 중 8명이 용돈에 비해 물가가 높다고 생각하며, 물가 상승이 소비 패턴에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판단되면 여가 생활비, 화장품, 식비부터 줄인다고 합니다.
제가 들고 있는 천 원권 지폐는 1975년에 처음 발행되었는데요, 당시엔 천 원으로 짜장면을 3인분이나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천 원의 가치는 푼돈 수준으로 떨어졌죠. 44년이 지난 2019년에는 오천 원을 내야 겨우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짜장면 값이 15배 이상 오른 것입니다.
짜장면을 먹으려는 사람이 늘어난걸까요? 아니면 짜장면집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돈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1975년에는 1인당 가계 소득으로 722인분의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2019년에는 3823그릇만 먹을 수 있게 되었죠. 가계 소득으로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은 5배밖에 늘지 않은 셈입니다.
물가가 오른다는 의미는 단순히 짜장면 값이 비싸진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로서 물가는 가계의 소비 생활은 물론 국민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물가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짐작이 되시죠?
물가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는 물가의 움직임에 민감해지는 걸까요?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살 때 그 값을 지불하게 됩니다. 이때 가격은 아이스크림 한 개를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화폐의 양을 의미합니다. 각각의 상품들이 이런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개에 천 원하던 아이스크림이 천오백 원이 되면 우리는 아이스크림 값이 올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하나로 우리나라 전체 상품의 가격 변화를 판단할 수는 없겠죠. 상품마다 가격이 다 다르고 일정 시점의 가격이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니까요. 또 과자나 버스 요금처럼 자주 구입하는 것도 있고, 자동차나 TV처럼 간혹 구매하는 것도 있습니다.
물가는 아이스크림 하나의 개별 상품이 아닌 수많은 상품의 가격을 가중 평균한 종합적인 가격 수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는 말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들의 전반적인 가격 수준이 올랐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물가를 지수화한 것이 물가지수인데요, 물가지수는 기준 연도의 물가를 100으로 놓고 비교되는 다른 시점의 물가를 100과 비교해서 올랐나 내렸나를 나타내는 통계입니다. 물가지수가 110이라는 것은 기준 연도에 비해 물가가 10% 올랐다는 의미인 거죠.
우리나라에서 발표되는 주요 물가지수에는 소비자 물가, 생산자 물가, 수출입 물가지수가 있습니다. 이들 지수는 시차를 두고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환율이나 유가 상승으로 원유 도입 가격이 오르면 정유사가 국내에 파는 석유 제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휘발유 가격도 오르게 됩니다. 이때 소비자 물가와 달리 생산자 물가에는 원자재, 기계 같은 자본재가 포함되어 있어서 수입 물가 영향을 더 받게 되므로 변동 폭이 크게 나타나는 거죠.
물가지수는 실제 어떻게 활용될까요? 우리 몸이 불편할 때 체온계로 열을 재는 것처럼 물가지수는 현재 경제 상태를 진단하는 체온계입니다. 열이 높으면 건강 이상 신호로 보고 그 원인을 찾는 것처럼 물가지수가 전월이나 전년보다 큰 폭으로 오르면 국민 경제 흐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을 합니다. 이렇게 물가는 현재 경제 상태를 판단할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줍니다. 금리 결정과 같은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도 활용되고요. 보통 뉴스에서 물가 상승률이라고 보도되는 것이 소비자 물가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을 말하는데요, 이걸로 물가의 흐름의 속도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물가가 낮다고 하는데 소비자들이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지난 1년간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물가 수준을 보면 체감 물가가 지표 물가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표되는 물가와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의 온도 차이는 왜 발생할까요? 물가지수를 산출하는 과정에 그 답이 담겨 있습니다.
소비자 물가는 가계 소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품을 미리 정해 놓고 품목별로 묶어서 가격을 조사한 후, 대표 품목에 가중치를 두어 평균한 것입니다. 때문에 가중치가 큰 상품이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 크게 나타나죠. 반면 체감 물가는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부 품목으로만 판단합니다. 품목의 가격 상승률도 단순 평균하고요. (통계청에서 체감물가를 파악하기 위해 만든 ‘생활물가지수’등 지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개개인의 실제 ‘체감물가’를 의미) 물가지수는 숲 전체를 본다면, 체감 물가는 숲 속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셈이죠. 나와 내 친구들의 관심사가 다르듯이 가구별, 연령별, 개인별로 주로 소비하는 품목이 다 다르니까요. 체감 물가 정도는 다 다른 겁니다. 교육비만 보더라도 4인 가구는 2인 가구 보다 교육비 지출 비중이 더 높습니다. 때문에 4인 가구가 교육비 변동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죠.
또 가격 비교 시점이 다른 것도 이유입니다. 소비자 물가는 한 달 전 혹은 1년 전과 같이 정해진 시점과 비교를 하는데요, 소비자는 과거의 제품을 산 시점이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시점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비자 물가는 기준년도의 상품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상품 구입에 따른 가격 변동만을 측정하지만, 체감 물가는 씀씀이가 커지거나 품질 향상으로 제품 가격이 상승한 경우에도 물가가 오른 것으로 인식합니다.
심리적인 요인도 한몫합니다. 구입 빈도를 감안하지 않는 소비자 물가와 달리 체감 물가는 값이 오른 품목의 구입빈도가 높을수록 물가가 상승한 것으로 느낍니다.
과도한 물가 상승과 하락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또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의 물가 상승률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1991년 9.3%에 달했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19년에는 0.4%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물가가 더 크게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물가 상승률의 지속적인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람들이 매년 구입해야 하는 상품들로 가득 찬 장바구니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플레이션은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상품들의 종합적인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메뉴 비용, 구두창 비용 같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가가 자꾸 오르기만 해서 장차 물가가 더 오를지 예측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우선,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면 고정적인 연금이나 급여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고,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자산 가격은 오르면서 부의 분배가 왜곡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물가가 언제 얼마나 오를지 모르니까 장기 계약은 줄어들게 되고, 시장의 단기 계약만 늘어나면 기업이 투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겠죠. 결국 투자는 위축되고 거품이 형성됩니다.
인플레이션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요? 최근 극심한 물가 상승률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나라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입니다. 이 나라에서 석유 산업은 국가 수출의 96%, 정부 수입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의 모든 것이었는데요, 유가 하락으로 세수가 줄자, 과도한 복지 지출로 늘어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냈습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물가는 2017년 말부터 매달 50% 이상씩 올랐고, 2018년에는 130,060%로 치솟았습니다. 물건 값이 한 해 동안 1300배나 오른 셈인데요, 이곳에서 돈의 가치는 지폐로 가방을 만들어 낼 정도로 폭락했습니다. 근로자의 한 달 월급으로는 달걀 한 판조차 살 수 없었고, 돈을 한 보따리 들고 가야 겨우 닭 한 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면 경제 활동의 자극제가 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나쁘기만 할까요? 물가상승과 함께 소득도 올라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경기 호황기에 나타나는 초과수요는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이 오르게 합니다. 반대로 물가가 내려서 물건값이 싸지면 소비자 입장에서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물가 하락이 지속되면 얘기가 또 달라지죠. 디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경기 침체 속에 소비가 공급을 크게 밑돌 때죠. 물가가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것 같으면 소비를 미루게 됩니다. 나중에 살수록 이익이니까요. 물건이 안 팔리면 기업은 가격을 더 내리게 되고 손해를 봅니다. 기업이 생산을 줄이게 되고, 투자까지 줄이면 부메랑이 되어 가계로 돌아옵니다. 일자리가 줄고 가계 소득이 줄어들면 다시 소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은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을 팔아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됩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됩니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의 장기화는 민간 경제와 가계 살림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점점 불황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거죠.
또 하나, 기술의 혁신이 물가 하락을 부르기도 합니다. 1966년 흑백 TV로 시작해서 컬러 TV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공지능 기능까지 접목된 OLED TV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고성능 제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기존 제품의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경쟁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하락 폭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극심한 경제 진통을 겪어야 했던 일본을 한 번 볼까요? 일본은 90년대,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붕괴되면서 20년 동안 투자와 생산, 소비가 꼬리를 물고 침체하는 악순환을 겪었습니다. 여기에는 엔화의 급격한 강세와 글로벌 경쟁 심화도 있었습니다.
우리 몸의 정상 체온은 36도에서 37도 내외입니다. 열이 지나치게 오르거나 내리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듯, 물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도하고 급격한 물가 상승과 하락은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이고, 성장의 장애가 될 뿐입니다.
이처럼 지나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경제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때문에 건전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안정되고 건강한 경제가 유지되도록 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물가 안정 목표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 기준으로 2%입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이루기 위해 경제 여건 변화에 맞춰 기준 금리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서면 기준 금리를 올려서 소비를 줄이도록 하고,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밑으로 떨어지면 기준 금리를 내려서 소비를 유도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빠르거나 과하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 상황을 판단하고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물가, 소비자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경제 생활을 돕는 나침반과도 같죠. 물가를 알면 다 보입니다. 물가 안정, 한국 경제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