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카데미 | 중앙은행의 역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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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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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역사 릭스방크 영란은행 비셀방크 BOK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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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 경제학자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은 그의 저서 <경제학원론>에서
불, 바퀴와 함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중앙은행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경제와 인간을 탐구하는 경제인문학 지식쇼 복카데미, 이번 주제는 <중앙은행>입니다. 한국은행 배성종 교수님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 안녕하세요. 한국은행 경제교육실의 배성종입니다.
진행자 :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죠. 이 중앙은행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교수님 :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73년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장이었던 월터 배젓(Walter Bagehot) 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분이 <롬바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 1873)라는 책을 냈는데요, 그 책에서 처음으로 중앙은행, central bank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진행자 : 그렇다면 최초의 중앙은행이 설립된 것도 150년 전, 그 즈음이겠네요?
교수님 :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200년 정도 앞선 17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 그럼 최초의 중앙은행은 영국의 중앙은행, 영란은행인가요?
교수님 : 영란은행보다 설립년도로 20년 정도 앞선 은행이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릭스방크인데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보통 스웨덴의 릭스방크와 영란은행을 중앙은행의 시초라고 합니다.
진행자 : 스웨덴의 릭스방크..어떻게 생겨난 곳인가요?
교수님 : 과거에 스웨덴은 금화나 은화를 주로 사용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구리 주화를 주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구리는 다른 주화에 비해 훨씬 무거웠어요. 그러니까 거래하는데 많이 불편했겠죠. 그래서 ‘무거운 구리 주화를 예치받고 대신 보관증을 내주고 보관증으로 거래를 하도록 하자’ 해서 1656년 스톡홀름 은행(Stockholms Banco-스웨덴 국립은행의 전신)이 설립됩니다. 스톡홀름은행은 나중에 릭스방크로 발전하게 되니까, 릭스방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데요, 스톡홀름 은행의 보관증은 1661년, 은행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유럽 최초의 은행권을 발행한 거죠.
진행자 : 은행권은 단순 보관증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교수님 :예를 들어 고객이 은행금고에 구리주화를 보관해달라고 맡겼다고 하면 은행은 구리주화를 맡겼다는 보관증을 줄텐데, 이때 은행은 보관증에 적힌 구리주화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야겠죠. 반면 은행권은 은행의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약속어음이라 할 수 있어요. 스톡홀름 은행은 100% 지급 준비를 하지 않고 부분적인 준비만으로 은행권을 발행했습니다. 은행권이 시중에서 사용된다는건, 은행권을 가지고 있으면 필요시 은행이 구리로 태환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거겠죠. 스톡홀름 은행은 설립년도로 보나 은행권을 처음 발행한 것으로 보나 최초의 중앙은행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또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바로, 아까 말씀하신 영란은행 입니다
진행자 : 영란은행은 어떻게 설립됐나요?
교수님 : 영란은행은 1694년에 설립됐는데요,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서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때 윌리엄 패터슨이라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는데,상인들을 주주로 모은 뒤 120만 파운드를 출자해 은행을 세우고 그 돈을 전부 왕에게 대출해주겠다고 합니다. 대신 상인들에게는 출자한 액수만큼 은행권을 발행해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요. 이게 바로 영란은행의 시작입니다.
진행자 : 영란은행은 정부의 은행으로 시작한 셈이네요.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또 어떤 중앙은행들이 있었나요.
교수님 : 그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중앙은행의 효시라고 보기엔 좀 애매하지만, 앞서 언급한 릭스방크나 영란은행에 영향을 준 은행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1609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비셀방크입니다.
진행자 : 튤립 버블로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 네덜란드는 거의 세계 경제수도라고 할 정도로 번성했으니까, 뭔가 특별한 은행이 있었을 법도 하네요.
교수님 : 16세기와 17세기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국제 무역 그리고 국제금융의 중심도시였는데요, 유럽의 거대한 상인들, 유대인 이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활발하게 상업거래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각지에서 들어온 다양한 주화들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각 주화 간 교환비율을 결정할 마땅한 시스템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비셀방크를 설립해요. 주화를 예치하면, 금과,은 등의 순도를 측정해 화폐단위인 플로린으로 예금을 수취했는데, 이 플로린을 바탕으로 오늘날 중앙은행이 하는 지급결제 역할을 했던 거죠.
진행자 : 지급결제 역할로 봤을 때는 최초의 중앙은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영란은행은 지금 영국의 중앙은행으로 발전했는데, 스톡홀름 은행이나 비셀방크는 그 후에 어떻게 됐나요?
교수님 : 앞서 스톡홀름 은행이 유럽 최초로 은행권을 발행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우선 은행권이라는 것은 예치한 귀금속으로 언제든지 바꾸는게 가능해야 하는데, 은행이 보유한 귀금속보다 훨씬 많은 은행권이 발행돼서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은행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히 은행에 태환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뱅크런 상황이 발생하고 은행이 지급불능 상황에 빠지게 되겠지요. 최초로 은행권을 발행했던 스톡홀름 은행이 바로 그랬습니다.
진행자 : 뱅크런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최근의 SVB 사태 당시 디지털 뱅크런이 그 당시에 벌어진 셈이었겠네요.
교수님 : 그렇죠. 결국 스웨덴 정부가 개입해 1668년 은행을 국유화했습니다. 그 이후 스톡홀름 은행은 릭스방크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의 스웨덴 중앙은행으로 발전했습니다. 비셀방크는 당시 네덜란드 경제와 함께 쇠퇴하며 1819년 파산했습니다. 그렇지만 비셀방크는 영란은행이나 릭스방크와 같은 중앙은행제도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진행자 :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앙은행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은행들은 공적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교수님 : 공적기관의 역할을 아예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공적기관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왜냐하면 초기 중앙은행들은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았지만, 실체는 민간 상업은행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초기 중앙은행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고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전비조달 등 정부의 재정적 필요를 지원하는 정부의 은행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 중앙은행들은 19세기 들어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어요.
진행자 : 어떤 문제였나요?
교수님 : 과거에는 나라마다 여러 은행이 자유로이 은행권을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은행권을 남발하거나 태환을 해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죠.
진행자 : 지금의 중앙은행과 달리 독점적 발권력이 없었군요.
교수님 : 그렇습니다. 그래서 1844년 영국에서 은행헌장법(Bank Charter Act 1844(Peel’s Act))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에 따라 영란은행은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독점적 발권력을 부여받게 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주 크고 작은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요, 전쟁이나 기업 부도 등으로 인한 은행의 부실화가 뱅크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의 중앙은행이라면 이들의 부도를 막기 위해 자금을 대출해준다던가 비상조치를 취했겠지만, 당시의 영란은행에는 그런 의무가 없었어요.
진행자 : 공적 기능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상업은행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다른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을 하게 되면 그 영향이 영란은행에도 미쳤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란은행은 1870년대부터 최종 대부자 기능을 수행하게 되죠.
진행자 : 영란은행은 정부의 은행으로 설립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은행의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교수님,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최종 대부자’라는 것이 어떤 역할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교수님 : 지난 2008년도 금융위기 당시에 미 연준이 내놓았던 양적완화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아~ 당시에 미 연준이 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낮추고 국채 매입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시중에 풀어서 금융위기를 해결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당시 영란은행도 은행의 부도로 인해 전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해주는 등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공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씀이시죠.
교수님 : 네,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 있는 월터 배젓이 <롬바드 스트리트>라는 책에서 중앙은행은 이런 최종 대부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설파했는데요, 그 당시 이 책은 영국은 물론 유럽 다른 나라에도 최종 대부자 역할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요. 영란은행은 1870년대부터 독점적 발권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란은행을 우리가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중앙은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진행자 : 다른 은행들도 영란은행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교수님 : 네, 그렇습니다. 스웨덴의 릭스방크같은 경우에는 설립 자체는 영란은행보다 빨랐지만, 1897년에 영란은행의 영향을 받아 독점적 발권력을 인정하는 스웨덴 국립은행법(Riksbank Act)을 제정하고, 1890년대에는 최종 대부자 기능까지 수행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영란은행은 이후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의 중앙은행 설립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유럽 국가들의 중앙은행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사실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 역사에 대해서 또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연방준비제도인데요, 교수님, 연방준비제도의 역사는 언제부터인가요?
교수님 :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1913년 12월 23일 미 의회를 통과한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진행자 : 미국이 독립 이후 연방제 국가를 건국한 것이 1776년인데 비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네요. 다음 복카데미 <중앙은행의 역사 두 번째 이야기 시간>에도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용

중앙은행은 언제 생겨났을까요?


영국의 중앙은행, 영란은행이 최초의 중앙은행일까요?

중앙은행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떻게 지금의 기능을 획득하게 됐는지

복카데미 1부, 2부에 걸쳐 알아볼게요 👨‍🦱👩

유용한 정보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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