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실업가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1833∼1896)이 증여한 기금으로, 분야별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1901년부터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이 상은 당초에는「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의 5분야로 나누어 시상되어 왔으나 1969년부터 경제학상이 추가되어 6분야가 되었다. 노벨문학상은 다른 분야의 노벨상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국제 문학상´으로, 수상자의 조국과 국민들에게 크나큰 명예가 될 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학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인류가 인정하는 큰 상을 수상한 영광의 얼굴을 칠레, 이스라엘, 폴란드에서는 자국의 화폐에 담았다. 칠레는 1981년부터 발행된 5천 페소(peso)에 <황폐>, <애정> 등의 시집으로 1945년 남아메리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류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1889∼1957)의 초상을 담고 있다. 그녀는 유럽에 대한 모방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를 지닌 서정시인이었다. 이스라엘은 1985년부터 발행된 50 뉴 셰쿼림(New Sheqalim)에 슈뮤엘 요세프 아그논(Shmuel Yosef Agnon, 1888∼1970)의 초상을 등장시켰다. 그는 유대인들이 겪었던 어려운 시대상황을 날카로운 지성으로 꾸밈없이 다룬 사실주의적 소설 <밤의 여행자>, <그저께> 등으로 196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이후 1999년부터 발행된 50 뉴 셰쿼림(New Sheqalim)에는 슈뮤엘 요세프 아그논(Shmuel Yosef Agnon) 초상 왼편에 그가 노벨상 시상식에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 문구가 추가로 실려있다.
또한 폴란드에서는 1990년부터 발행한 50만 질로티(Zlotych)와 1991년부터 발행된 백만 질로티(Zlotych)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초상을 담았다. 50만 질로티(Zlotych)에는 <쿠오바디스>라는 역사소설로 19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H.솅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의 초상이, 백만 질로티(zlotych)에는 폴란드 농민 생활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면서 그들을 예찬한 <농민>이라는 소설로 192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부아디수아프 레이몬트(Wadyslaw Stanisaw Reymont, 1867-1925)의 초상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은행권들은 폴란드가 1995년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면서 화폐도안을 변경함에 따라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화폐에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이후로,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다원화된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였다. 이러한 여건의 변화가 화폐도안에 정치인보다는 문화예술인을 채택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세 나라가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화폐도안으로 채택한 시기는 정치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 칠레는 피노체트 독재정권 시기(1973-1989)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격차가 심하여 사회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고, 이스라엘은 1980년대 초반 석유파동과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하고 실업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폴란드도 1989년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하던 혼란기였다.
국민들의 삶을 파고드는 호소력 강한 문학가들의 모습을 통해 자국민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결속을 호소함으로써 이런 암울한 시대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들 국가에서는 화폐에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초상을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