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이야기]
화폐사의 슈퍼모델
< 개천환권, ´60.8.15 발행 > < 라만원권, ´94.1.20 발행 >
우리나라에서 지폐의 앞면 소재로 채택된 인물초상에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조선조의 대학자인 율곡,퇴계 등이 있지만 이중 가장 오랜기간 변함없이 지폐 모델로 채택된 것은 세종대왕 초상이다. 세종대왕 초상은 제2공화국 탄생과 더불어 1960년 8월 15일에 발행된 개천환권에 등장한 이후 개오백환권(´61.4.19), 다백원권(´65.8.14), 가만원권(´73.6.12), 나만원권(´79.6.15), 다만원권(´83.10.8), 라만원권(´94.1.20)에 이르기까지 거의 40여년에 걸쳐 여러 권종에 두루 사용된 우리나라 지폐의 슈퍼모델인 셈이다.
이렇듯 세종대왕 초상이 화폐도안으로 자주 채택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즉, 화폐는 모든 국민들이 항상 소지하고 사용하는 필수품이자 국가를 나타내는 상징이므로 도안으로 이용되는 인물은 업적이 위대하여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하고, 역사적으로 충분한 검증을 거쳐 논란의 소지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안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세종대왕 초상은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구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라만원권의 세종대왕 모습이 자리잡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73년 6월 12일에 발행된 가만원권을 포함하여 이전의 지폐도안으로 활용된 세종대왕 초상은 그 모습이 현재 라만원권과는 사뭇 달랐는데 이는 전해 내려오는 초상화가 없어 덕수궁의 조각상을 근거로 그려진 것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선현의 모습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제작주체에 따라 제 각각 이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73년 5월 8일 "선현의 동상건립 및 영정제작에 관한 심의 절차"(문화공보부 공고 제181호)를 마련하여 우리 역사상의 위인, 사상가, 전략가 및 우국 선열로서 민족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선현의 동상 또는 영정을 제작할 때는 정부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한국은행도 ´79년 6월 15일 나만원권 발행시 현재 세종대왕유적관리소(경기 여주)에 소장되어 있는 표준영정(운보 김기창 화백 제작)을 근간으로 화폐도안에 적합하도록 반신상 초상을 별도로 제작하여 정부심의를 거쳐 도안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철저한 고증을 거쳐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세종대왕 초상이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서 고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화폐도안으로서 인물초상을 채택하는 작업은 그 어느 것보다도 세심한 주의와 남다른 고뇌가 뒤따르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창근 / 발권과 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