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

(대한민국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중 금화 25,000원, 20,000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과 함께 그 만큼 어려움도 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로 인정되고 있는 1971년 3월 2일 발행된,「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도 탄생 배경이나 제작과정을 보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 금·은화」의 발행을 알리는 당시 한국은행 공고 내용에는 "한국은행법 제54조에 의거 정부의 승인과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라고 그 발행목적을 밝히고 있으나 당시 추진 사실은 대통령 1급 비밀수준으로 분류되어 있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접근은 매우 어려웠다. 최근에야 당시 한 관계자는 "1969년 양유찬 대사가 주미대사를 그만두고 순회대사로 임명되어 유럽 국가를 순회하던중 ´북한에서 금·은 주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그 발행 배경을 술회한 바 있다. 결국 북한보다 먼저 금·은 기념주화를 갖고 싶어한 대통령의 뜻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를 낳게 한 셈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대통령 특명에 의해 이 주화발행이 엄격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기념주화 발행에 대한 정부승인과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결 절차가 사후적으로 따르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며 제조(실제 제조는 독일 주화제조업체에 의해 이루어짐) 및 판매(발행)도 세계적인 화폐 판매망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 이탈캄비오사가 대행함과 함께 그 판매대금의 20%를 한국정부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외에서만 판매(발행)되는 파격도 따랐다.
당시 발행된 기념주화는 금화 6종(25,000원, 20,000원, 10,000원, 5,000원, 2,500원, 1,000원) 총 184,500장, 은화 6종(1,000원, 500원, 250원, 200원, 100원, 50원) 총 1,050,000장이며 금화 6종과 은화 6종으로 구성된 세트는 국제시장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욱 발권정책팀/조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