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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은행권 속의 위인들

발권기획팀 (02-759-5379) 2003.03.13 9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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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은행권 속의 위인들

우리나라 은행권 속의 위인들(복건, 정자관, 익선관)

    화폐는 온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용하는 공공재이므로, 화폐도안을 결정할 때에는 예술적 측면 이외에도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하는 사회적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화폐도안의 소재로는 일반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인물과 계도적이면서 그 나라의 문화적 자긍심을 국민들에게 느끼게 할 수 있는 문화재, 사적(史蹟) 등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 세 분을 선정하여 은행권 도안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분의 인물초상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 이씨(李氏) 성(姓)을 지닌 조선시대 남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이 착용하고 있는 모자의 형태는 모두 각양각색이다. 이는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의생활 양식과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의상에 따라 쓰는 모자가 따로 정해져 있고 남자라면 거의 모두가 모자를 쓰고 다녔을 만큼 모자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방문했던 프랑스의 한 민속학자는 1892년 프랑스 여행잡지에 "조선은 모자 왕국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나라처럼 다양한 모습의 모자를 지닌 곳은 없다."라는 내용의 ´조선방문기´를 기고했을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신분, 직업, 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모자가 존재하였다.

   1,000원권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심의(深衣)´라는 의상과 ´복건(福巾)´이라는 모자를, 5,000원권의 율곡(栗谷)이이(李珥, 1536∼1584)는 사대부들이 평상시 집안에서 주로 착용하는 대창의(大 衣)라는 의상과 정자관(程子冠)이라는 모자를, 10,000원권의 세종대왕(1397∼1450, 재위기간:1418∼1450)은 왕이 집무시 착용하는 상복(常服)인 곤룡포(袞龍袍)와 익선관(翼善冠)을 착용하고 있다.
퇴계 이황은 조선시대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큰 명성을 떨치고 학문과 교육에 몰두한 대학자였고, 율곡 이이는 성리학자이면서 조선중기사회에 백성들을 위한 사회정책을 마련하고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힘쓴 정치가였다. 세종대왕은 조선시대에 한글을 창제하고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세운 조선왕조 500여년 중 제일 가는 성군(聖君)이었다. 그러기에 은행권에 나타난 세 분 모두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격식을 중시한 예복에 걸맞는 화려한 모자가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착용하는 ´검은색´ 모자를 착용한 모습의 초상을 화폐도안으로 삼아 그 분들의 청렴한 성품과 변함없는 숭고한 정신을 국민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화폐는 단순히 경제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지급수단의 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예술작품으로서 그 나라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자료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그러므로 화폐에 나타난 위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생활양식 등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은 그 나라의 국민 정서를 대변하기에 화폐를 흔히 ´그 나라 전체의 얼굴´이라 부른다.


   <이지선/한국은행 발권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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