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어떻게 사람들 손에 들어올까

등록일
2024.07.11
조회수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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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서 조사역
담당부서
화폐연구팀(02-759-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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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는 어떻게 사람들 손에 들어올까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 한국은행법 제47조(화폐의 발행)




- 5만원권 도안

 

우리가 쓰는 은행권과 주화에는 한국은행이라는 명칭이 표기되어 있다. 스마트폰에 삼성, 애플 등 제조사의 브랜드 로고가 있는 것처럼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화폐의 브랜드인 것이다.

 

하지만 삼성과 애플은 스마트폰의 제조사인 반면, 한국은행은 화폐의 제조기관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의 화폐를 시중에 발행하는 기관이고, 화폐를 제조하는 곳은 한국조폐공사이다. 그렇다면 화폐의 발행제조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화폐 발행과 제조의 차이점

 

한국은행의 업무 중 한국은행법에 가장 첫 번째로 명시된 업무는 화폐의 발행업무이다. ‘발행이란 한국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화폐를 금융기관을 통해 시중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시민들이 금융기관에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듯이 금융기관은 한국은행에 당좌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현금인출을 요청하면,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화폐를 지급하고 당좌예금계좌에서 지급한 액수에 상응하는 금액을 차감한다. 이후 가계와 기업은 금융기관에서 현금을 인출하여 실제로 돈을 사용할 수 있다.

 

금융기관에 화폐가 지급되기 전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되고 있는 화폐는 아직 발행되지 않은 화폐, 미발행화폐라 한다. 통화량의 개념에 익숙한 경제학도들은 시중에 풀리지 않은 미발행화폐가 통화량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읽은 독자들은 한국은행의 화폐 발행이 한국은행과 금융기관 사이의 인수인계를 말하는 것이지 은행권과 주화를 생산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폐를 발행하는 곳은 한국은행이지만, 화폐를 제조하는 곳은 한국조폐공사이다. 한국은행은 한국조폐공사에 필요한 화폐의 종류와 수량을 통보하고 그에 대한 제조비용을 지급한다. 조폐공사는 요청받은 은행권과 주화를 생산해 한국은행에 인계하고, 한국은행은 이를 적절한 발행 시기가 될 때까지 금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화폐의 발행과 제조는 서로 확연히 다른 개념으로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외국에서 화폐를 제조할 수도 있을까?

 

화폐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국은행 홈페이지의 화폐연대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자료에는 현용화폐 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행되었던 화폐에 대한 정보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화폐연대자료에는 조금 의아한 점이 있는데, 최초의 한국은행권인 천원권(千圓券)과 백원권(百圓券)의 제조처가 일본내각인쇄국이라는 것이다. 1953년에 발행된 은행권은 제조처가 미국 연방인쇄국, 1959년에 발행된 주화는 제조처가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창으로 되어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1951년에 설립되었으니 1950년에 발행된 화폐는 외국에서 제조될 수 있다고 쳐도, 그 이후에 발행된 화폐는 왜 외국에서 제조된 것일까?



- 1950년 일본내각(대장성) 인쇄국에서 제조한 千圓券

 

한국의 화폐가 외국에서 제조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1950년 발행된 은행권의 경우에는 당시 625전쟁으로 인한 현금부족 사태를 긴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당시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급히 화폐 제조를 의뢰하여 국내에 유통시켰다. 이후 1951년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된 이후부터는 한국에서 제조한 은행권이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조폐공사는 은행권 제조기술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주화 제조기술은 부족했다. 따라서 1959년에 발행된 주화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조폐창에서 제조되었고, 1966년이 되어서야 한국조폐공사가 우리나라의 주화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한편 1953년에는 625전쟁으로 인한 악성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 통화조치를 단행하였다. 당시 새로 발행된 화폐는 정부수립 전 미 군정시기에 미국 연방인쇄국(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에서 제조하여 한국은행이 보관해오던 화폐였다. 이는 사실 일제강점기 통용되던 조선은행권을 교환해줄 목적으로 미 군정시기에 제조된 화폐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발행되지 못한 채 보관되어오던 화폐였다.

 

화폐개혁을 이유로 외국에서 은행권을 제조했던 사례는 1962년에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퇴장자금의 산업자금화 등을 위해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하였는데, 이를 비밀리에 추진하기 위해 영국 Thomas De La Rue사에서 은행권을 제조하여 국내에 반입ㆍ유통시켰다.

 

이렇듯 한국의 화폐는 시대별로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에서 제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현재도 자국 내 조폐기관의 부재, 화폐 제조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화폐를 제조하는 국가도 있다. 예를 들면, 스웨덴의 은행권은 영국에서, 주화는 네덜란드에서 제조하고 있으며, 뉴질랜드는 캐나다, 호주, 영국에서 은행권과 주화를 제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앙은행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인 화폐의 발행과 제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은행 발권국에 근무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의 발행과 제조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글을 통해 한국은행의 화폐발행업무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화폐연구팀 유영서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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