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특별강연 전체영상]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 <조윤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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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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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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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조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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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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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선진국의 수준을 아직도 많이 못 따라가고 있다

조윤재: 금통위원 조윤재입니다
오늘 오전 일과시간 중에 굉장히 다들 바쁘실 텐데 총재님도 오시고
임직원 여러분들께서 많이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양해해 주시면 제가 앉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보시다시피 강의 제목을 좀 거창하게 잡았습니다
한국경제: 과거, 현재, 미래 100년도 더 되는 시간을 한 두 시간으로 커버하려고 그러니
무슨 내용이 뭐 깊이 있는 내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은 같이 한 번 특히 우리 그 젊은 조사역이나 또 3, 40대 직원 여러분들은
제가 얘기를 나눠 보니까 과거 발전 경험에 대해서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한번 되돌아보고 또 현재 우리가 서있는 지점이 어떤지
또 그런 그 맥락에서 한국경제 미래를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의미 있겠다 그렇게 생각이 됐습니다
제가 슬라이드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사실
경제 현상과 시장구조를 단순히 경제정책 또는 제도만의 결과는 아니고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되는 거죠
사실 영국에서 경제학이 시작할 때도 정치경제학이지 않았습니까 political economy였죠
우리 한국경제는 발전 과정도 그렇고 또 어떻게 보면
현재 놓여있는 위치도 그렇고 상당히 그 특이한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기적에 가까운 경제발전을 하게 된 거죠
한국 경제학자는 거기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한국 경제학자들의 의무기도 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은 이제 그 한국 경제발전 과정이나
지금의 경제 현상을 볼 때는 단순히 우리가 현대 경제학의 틀로서만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경제 정책 과정, 입안과 결정 과정은 사실은 political process죠
그리고 그 political process가 일어날 수 있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토양
그리고 역사적 환경 또 institutions의 전통과 퀄리티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결국 경제 정책이 입안되고 제도가 발전해 나가는거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와 같이 사실 주도국이 아니고
주변국의 경우에는 또 무엇보다 국제 환경이 중요하다 그리고
국제환경과 정치 흐름 우리는 큰 맥락에서 우리 경제 정책 경제 현상을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이제 그렇게 생각해서 오늘 좀 거대한 주제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읽고 좋아하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글이 있는데요
저는 평생 이 말을 경제학자로서 평생 이 말을 읽고 따라가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뭐 발췌도 못 하고 있는 그런 그 문장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이 글에서 얘기하는 그런 경제학자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셨으면 하는
의미에서 오늘 이 글을 가져왔습니다
여기 특히 이제 끝에서 두 번째 문장
No part of man's nature of his institutions must lie entirely outside his regards
(인간의 본성이나 그의 제도 중 어느 부분도 전혀 그의 관심 밖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앞에 문장 경제학자는 must study the present in the light of the past for the purpose of future
(경제학자는 미래를 위한 목적으로 현재를 과거의 빛 아래에서 연구해야 한다)
이 말은 항상 모든 경제학자들한테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따르기는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항상 노력해야 되는 말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제일 따르기 어려운 말이 마지막 문장인 것 같아요
경제학자는 must be purposeful and disinterested in a simultaneous mood;
as aloof and incorruptible as an artist, yet sometimes as near the earth as a politican
(경제학자는 목적이 뚜렷하고, 동시에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예술가처럼 냉철하고 부패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정치인처럼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저는 이 말을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 성공하시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제 제 본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경제의 특이성]
제가 조금 전에 한국경제는 여러가지 특이성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이 특이성을 한 5가지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5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우선 성장률이 급상승 급강하 그리고 우리 산업,고용, 사회 구조의 급변화
인구구조의 급변화 여러분들 너무나 잘 아시고요
또 소득분배도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70년대 이후에 빠르게 악화되어온 경우입니다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를 한 세대에 겪은 나라로
이렇게 그 제가 한국경제 특이성을 정리를 했습니다

저는 이제 70살이 넘었는데요
제 한 평생을 이렇게 돌아보면 영국인들이 18세기부터 21세기에 살았던 그 변화를 눈으로 보고 사는 것 같아요
그게 뭐 어떻게 보면 축복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stressful life였다고 볼 수도 있고
저뿐만은 아니죠 그러니까 저희들 동시대 어르신 사람들이 모두 이제 그런 그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왔는데
이거는 아마 세계에서 한국인들 지금 저희들 세대
또 여러분들 세대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특권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면에서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많은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늘 생각합니다
그렇지만은 항상 빠르게 성장 뭐 세상에는 항상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그 그늘에 여러 가지 주름 잡힌 것도 많지요
여러 가지 압축성장의 결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산업,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노인 빈곤율, 그리고
경제력 집중, 또 계몽주의에서부터 오늘날 시대 소위 신냉전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가치의 혼돈, 갈등, 세대간 계층간 진영간 분열적 사회
이런 걸 우리가 한국 사회가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거는 그 국민연금이 우리가 88년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그리고 국민연금을 디자인한 거는 1980년대였습니다 그 당시 한국인 평균 수명이 65세였죠
그때는 뭐 그 대개 남성들이 이제 주로 직장 생활을 많이 할테니까
남성의 기대수명은 한 60세 정도였겠죠
그러니까 그때 디자인한 국민연금 틀을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대개 정년이 55세 때니까 한 5년 정도 한 6~7년 정도 잘 버틸 수 있는 그런 연금제도를 했지만
지금은 뭐 그거보단 20년을 더 살아야 되는 상황이죠
그러니까 이런 여러 가지 우리가 압축성장을 하면서 겪게 된 예기치 못한 일들을 풀어 가야 되는 과제는
이제 2020년대에 우리가 지고 있다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건 세계 성장률 지난 2100년간 성장률인데요
Thomas Piketty 책에서 제가 가져온 겁니다 이게 제가 52년생이니까
저희 life span하고 아주 비슷합니다 아주 특이한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고성장 빠른 변화의 시대를 이제 살게된 세대죠
여러분들 또 아마 이쪽에 이제 같이 속하니까 어떻게 보면 대단한 특권과 축복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고성장이라는게 아주 익숙하게 생각됐지만 사실은 세계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점점 이제 떨어질 것이 거의 분명하다고 보는 거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포스트-빈트라고 얘기하는데 그 요새는 이제 소위 대전환의
시대에서 불가피하게 겪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그렇게 보고 있는데요

그 이후로 이제 주로 이건 제가 Bob Gorden 노스웨스턴 대학의 고든 교수의 분석을 가지고 이렇게 대충 설명하는데요
사실은 1차 산업혁명보다 2차 산업혁명이 성장이라든가 생산성 향상 그리고
심지어 기대수명에 대한 임팩트가 가장 컸다는 거죠
2차 산업혁명은 1870에서 1920년 약 반세계에 걸쳐서 일어나는 혁명이지만
그것이 전 세계 전파되는게 이제 1970년대까지 거의 한 세계에 걸쳐서 대단한 임팩트를 가진
산업혁명 시기였다고 그렇게 분석을 합니다

여기서 보시다시피 이건 그분이 쓴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wth라는 책에서 제가 가져온 건데
생산성도 사실 이 시기에 가장 빠르게 이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되어 있죠
그리고 2차 산업혁명 시기에 왜 생산성 향상이 높았냐 바로 내연기관, 전기, 전등,
엘리베이터, 사진기, 전화기, 영화, 라디오, 상하수도 시스템, 화학제품, 플라스틱
이 모든게 대형투자를 요하는 발명품들이죠 즉, 투자 유발 효과가 2차 산업혁명 때 제일 컸다는 거죠
그 결과 소위 생활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장시간 일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생산,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거죠
특히 그 냉난방이 실내에 들어오게 되고 상하수도와 화장실이 실내에 들어오게 된게
이제 2차 산업혁명 시기였다고 합니다

우리 조선시대에 아낙네들 시냇물 길러 가고 또 지금도 아프리카
여성들이 물통 이고다니지 않아요? 그 시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상하수도가 개발됐다는게
인간의 생산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된건지요
또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왔다는게 여러 가지 인간 생활에 개선을 가지고 왔고
특히 전기, 스위치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전기가 발명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 거죠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환갑잔치는 항상 낮에 했던 그래요 오전에
왜냐 저녁에는 어두워서 못하잖아요? 그리고 유럽에 가보시면 성에 횃불 꼽는데가 많지 않아요?
횃불도 그렇게 오래 꼽을 수가 없습니다 연기가 하도 많이 나기 때문에
그게 이제 전기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생활이 아주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거기서 이제 초래되는 그 생산성 그것이 이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아까 제가 잠깐 보여드렸듯이 이 시기에 이렇게 빠른 높은 경제 성장률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게 이제 One-Time
지금 공유 경제가 나오고 이제는 오히려 투자 유발 효과보다는
인간 생활의 모습은 전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변화시키는 그런 발명품들이 많지만
투자 유발 효과라든가 인간 생활의 패턴을 바꾸기는 하지만 경제 전체적인 그런 성장을 부추기는 그런 산업혁명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여기 it 혁명은 그렇게 생산성 형성을 유발시키지 못했다 그래요
지금 이제 AI 혁명, 4차 산업혁명도 어떨지 두고 봐야 되겠지만
결국 과거와 같은 그런 빠른 성장과 투자를 유발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그렇게 봤을 때 Piketty뿐만 아니고 이제 앞으로 성장률은 점점 둔화되어 갈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이건 한국 성장률과 세계의 성장률을 비유한 겁니다
이게 제가 아까 말씀드린 우리가 정말 특권과 축복을 누리는 시기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시기는 한국인들이 누리는 특권들입니다
세계 성장률이 이 시기에 4%도 못됐지만 우리는 8% 성장을 이루었거든요
이 시기가 조선시대죠 조선시대에 우리가 점점 세계에서 낙후되었던 것을
이 시기에 이제 우리가 만회하게 된 거죠
그리고 결국 어떻게 보면 지난 반세기입니다 지난 반세기에 우리가 세계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이루었던 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를 가지고 오게 된 거지요
그래서 이 시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런
시기를 가질 수 있느냐 그것이 이제 제가 이따가 말씀드릴 한국 경제의 과거에 대한 얘기고요

여기서는 지금 한국 경제의 특이성을 조금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거는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변화인데요 우리나라 제조업은 88년에 30.1% 부가가치로
또 고용에서도 80년대 후반에 피크를 이루었어요 그리고 물론 이제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그때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아주 크게 절화돼서 우리 제조업이
다시 한 번 부가가치 면에서는 다시 올라갔죠
그렇지만 고용면에서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피크했습니다
여기서 보시다시피 우리의 사이클은 굉장히 짧아요
여기 독일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영국을 반경을 그려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렇게 크지 않겠습니까
결국 한 두 세기에 걸쳐서 피크가 오고
점점 하강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불과 50년 사이에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겁니다
우리가 제조업을 2차 산업이라고 그러잖아요 1차 산업에서 나오는
천연자원이라든가 농산물을 가공한 제품을 우리가 2차 산업이라고 하잖아요
3차 산업은 또 거기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가지고 더 중계를 하고 트레이드를 하고 금융을 하고
이걸 이제 우리가 서비스 산업 3차 산업이라고 그러죠
이런 나라들은 영국이라든가 미국이란 나라들은 지금 그 뒤에 후발산업국들의 도전을 받아서
제조업이 급격하게 우리보다는 훨씬 더 필요하지만 점점 이렇게 수요가 줄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들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그 제조업 전성 시기에 높았던 부가가치를 가지고 서비스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고
또 서비스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기 전에 중국이 빠르게 부상을 해서
이제 우리는 제조업에서 풀려나오는 고용을 소위 우리가 얘기하는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에 흡수하는게 굉장히 제약적으로 됐어요
소위 컨설팅, 금융,보험, 디자인 이런 산업에 훨씬 더 그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줘야 되는데 물론 뭐 되고 있기는 하지만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런 기회가
훨씬 짧았다 적었다 이제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죠
그래서 1990년대 중국의 도전을 받아서 이제 우리
경공업이 점점 중국으로 옮기고 동남아로 옮기게 되면서
제조업에서 흘러나온 고용이 주로 어디로 왔느냐 치킨집, 동네 슈퍼,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 이런 쪽으로 많이 갔죠
근데 그쪽으로 이렇게 가다 보니까 그것도 이제 과밀이 돼서 거기도 3년 이상 못 견딘다 그러잖아요?
그 후 그것도 이제 넘치기 시작하니까 그 고용을 그럼 어떻게 하냐 어디서 흡수해 주느냐
결국 이제 공공 일자리 그리고 뭐 도우미 간병인 이런 데서 지금 흡수를 해가고 있죠
우리 그 고용부 조사 가실 때 조사국에서 많이들 하시잖아요?
근데 이게 뭐 그 좋은 일자리도 있겠지만 대부분 보면 그렇게 완전 고용일자리가 아닌 경우가 많고
저희 고용의 질에서 보면 그렇게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소득 불균등이 심화되고 불안정 고용이
심화되고 있는 그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죠

이거는 도시화율 추이입니다 역시 영국이나 미국은 사실은 농업경쟁력이 있는 나라잖아요?
그렇지만이 도시화율이 진행되는 건 한 200년 가까이 걸렸어요
그러면서 소위 civil society라는 것도 생기고 우리가 citizen이라고 하잖아요?
시민사회, 시민의 개념 그러니까 도시 공동체라는 것을 빌드할 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도시화가 60년대부터 90년대이 짧은 한 세대 30년 만에 이루어졌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새로운 공동체를 제대로 설립하지는 못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도시가마다 아파트 단지로
전부 다 들어서게 되고 그 아파트에서는 뭐 이웃과의 대화와 공동체
어떤 민주주의라는게 다 말단위 이런 데서 나오는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말단위 사랑을 아파트값 내리지 말기 단합을 한다든가 전기를 어떻게 하자
그런 협의체는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 그러니까 어떤 뭐 가정과 이웃과의 공동체를
만드는 그런 거는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다른 나라와 똑같은 민주주의 제도를 하고 있는 거죠

인구 구조 변화는 여러분들 너무나 잘 아시는 거고요
이거는 11년 전에 oecd에서 프로젝트를 한건데 사실 지금 우리 조사국에서 보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아마 우리는 이 패턴을 지금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이제 주로 그 노인들의 직업참가 그 다음에 이제 여성의 직업참가가 이제 예상보다 많이 늘어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아마 이 패턴보다 둘 다 합치게 되면 더 높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건 세대별 인구죠 역시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게 이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제가 보니까
2, 3, 40대가 유권자의 72%를 차지했어요
그리고 50대 이상 유권자는 30%도 안 됐을 때입니다
우리 차기 대선이 2027년인가요 이때 이렇게 보면 이제는 50대 이상 유권자가 한 50% 됩니다
물론 이제 이분들이 이렇게 넘어간 거겠죠 그래서 소위
본인들이 가지고 계시는 persepective 이런 거는 크게 안 바뀔지라도 소위 세대간 문제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달라지게 됩니다 소위 연금문제라든가 복지문제라든가
재정적자 문제라든가 이제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정치 지형이 점점 우경화 될 수 있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나이 들면 변화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변화에 대한 거부 주저함 이런게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소득분배 우리가 한때 소득과 성장, 소득 분배와 성장을 다 잡은 나라다
저도 세계은행 있을 때 한국 자랑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80년대까지는 그랬을 수도 있다 근데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소위 주요 선진국 쪽에 소득 분배가 제일 안 좋은 나라라고 하는 미국과 거의 비슷하게 올라갔습니다
그 속도는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거죠
우리 부동산 시장에서의 가격 앙등을보면 이것보다 더 빠르게 악화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돼요
이건 사족인데요
사실 2차 대전 이후에 모든 나라에서 소득분배가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그게 이제 결국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특히 중산층이야
피로 희생한 국민들에 대한 보답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
그리고 Thomas Piketty도 그분의 책에서 얘기하셨지만 결국
재정이 소득제분배의 기능에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고 그렇게 얘기해요

여기 보시다시피
여러분들은 이거 아마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한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런 나라에서도 최고 소득세율이 90%를 넘은 적이 있어요
그게 대처리즘 소위 레이거노믹스를 하면서 80년대 들어와서 이렇게 툭 떨어졌죠
그 전에는 소득세율 상속세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우리 지금 세율 높이자 그러면 국민적 저항이 대단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주요국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그런 관문이라 그럴까요? 그런데에 진입하게 된 거죠
이건 그냥 참고로 제가 말씀드리는 거고요

[현대 경제학과 한국경제]
경제학이 발전한 데가 미국과 영국이잖아요?
뭐 여러분들 다 학위 받으신 곳도 이 두 나라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사실 미국과 현대 경제학은 주로 counter cyclical, 경기 순환
그리고 뭐 경제의 기본 운용 원리를 충실히 설명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현상은 현대 경제학에서 설명하지 못합니다
현대 경제학은 여기서 경기순환적 문제를 어떻게 다룰 거냐
그리고 소위 우리 미시적으로 얘기하는 경제운영원리를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인간의 진실이죠 인간의 그 속성과 인간의 네이처가
어떻게 경제의 수요, 문화공급에 반영될 수 있느냐 이런 거를 설명하지만은
사실 이 문제를 현대 경제학은 잘 설명하지 못해요
근데 사실 우리한테 제일 필요한 것은 지금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겁니다
우리하고 조금 비슷한 커브를 그린 나라가 일본이죠 우리보다 20년 먼저
근데 일본 사람들도이 문제를 제대로 deal을 못했죠 그래서 지금 이제 뭐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하는데 사실 지난번 총재님께서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그 말씀하신 부분 우리나라 경전에 지금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전 그 총재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시는데 100% 공감했고요 또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데 대해서 속으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되는 문제는 이런 경기순환적 문제보다 오히려 더 우리가 조금 더
긴 시계에서 보면 이 문제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나을 거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Ⅰ.한국경제: 과거 (~1980년대)]
이제 그 한국경제의 과거를 오늘의 80년대까지로 끊어 봤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우리 경제가 오늘날이 있게 된 발판이 놓였던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이 앞에 목차에서도 말씀드렸듯이
80년대 그 다음에 90년대 이후 그리고 미래 이렇게
크게 세수로 나눠서 여러분들 제가 사실 같이 되돌아보고 고민하기 위한 자료들입니다

이 경제 기적이 어떻게 이제 가능했나 그거를 이제 설명해 보려는 건데
이거 뭐 우리가 자주 보는 그래프죠
제가 지난번에 아르헨티나 칠레에 출장 갔다 왔어요
그러고나서 이제 이 그래프를 한번 보고 속으로 폼을 좀 잡기 위해서 칠레에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거죠 1966년만 해도 아르헨티나가 우리 소득의 10배가 넘었는데
지금은 완전 역전되서 우리 소득의 거의 뭐 한 6000/1 쯤 될까요


[한국경제: 과거의 성공요인 (1950년대~1980년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냐?
저는 이걸 이제 천시, 지리, 인화 이렇게 나눠서 봤습니다
맹자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천시와 지리와 인화를 가져야 된다 그렇게 얘기했다고 그래요
어떤 분은 이게 맹자가 아니고 순자가 제일 먼저 얘기했다
또 어떤 분은 아니다 손무 손자병법에서 제일 먼저 얘기했다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근데 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는 지금 맹자가 한 말씀이다 이렇게 지금 이해하고 있어요
싸움에서 이 셋을 얻지 못하면 필승하기 어렵다 이제 그렇게 돼 있죠


[경제 기적의 동인: 1. 천시(天時)]
먼저 천시는 결국은 GATT/Bretton Woods System이 2차 대전 후에 출범한 건데요
브레튼우즈 시스템은 1944년에 이제 브레튼우즈 회의를 통해서 2차 대전 후에 출발했지만
50년대까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요
그 이유는 워낙 미국이 막강한 지위에 있어서 마샬플랜을 비롯해서 주로 바이레터럴 서포트가
2차대전 직후에는 가장 큰 역할을 했고요
한 10년쯤 지나서 이제 55년 경이 되니까 유럽 주요국들 그리고 일본은 또 한국전 특수가 있고
그래서 이제 전후 복구가 이루어졌다고 그래요
1958년까지 지금 총재님 계시지만 IMF article 8에서 경상수지에 대해 수입제한,
거래 제한과 같은 예외적 역할을 허락해줘요
사실은 영국 독일 주요국들 프랑스 전부 다 1958년에 article 8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걸 1988년에 artice 8을 받아들여요
근데 GATT나 브레튼우즈 체제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중후반에 들어서였습니다
그때 이제 여러 번 GATT round를 통해서 관세가 크게 인하됐죠
그러니까 2차 대전 이전에 40% 이상 50%에 가까운 관세율이
1990년대까지는 약 5%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소위 주요국들이 선진국들이 article 8을 이제 받아들이면서
수입제한을 거의 다 철폐하게 된 거죠 특히 제조업 수입제한을
그전에는 소위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수출하고 식민제국들로부터 천연자원과 농산물을 수입하는 그런
트레이딩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이제 58년 50년대 후반부터 크게 이제 전환되기 시작했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이게 제조업 교역 비중이 크게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공산품과 농산품 및 천연자원의 trade share가 완전히 5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역전되게 됐어요
요새도 여기 뭐 오일 트레이딩을 빼면 이것보다 훨씬 더 내려가겠죠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앤 크루거라든가
이런 분들이 제3세계(third world)에서
신흥강자(star performer)가 누가 될 거냐 했을 때 주로 칠레 인도 브라질 이런 나라들을 제일 많이 꼽았던 거에요
근데 그 당시는 그게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겁니다
그 나라들이 다 자원부국들이고 또 인도 같은 경우에는
영국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아주 우수한 관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영국은 인도 지배를 할 때 그 일제 말기에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70만명이 와있었다고 그래요
우리의 경찰을 완전히 일본인들이 장악을 했었죠
그래서 한국인들은 주변 역할밖에 못했지만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인은 5만명인가 밖에 안 됐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주요 critique system이라든가 인도를 돌아가게 하는건 인도인들이 많이 했다 그래요
그만큼 교육도 잘 받고 앞서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2차대전이 끝나고 40년대 50년대 초만해도 결국 인도 칠레 이런 나라들이
제3세계에서 제일 빠른 성장을 할거다 그리고 인도는 사실은 그때 네로
정권에서 사회주의적인 그런 계획경제를 하고 5개년계획도 하고 그렇게 했죠
근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냐 소위 아시아 네 마리 용이 신흥강자가 된 거 아닙니까?
만약에 인적자원 밖에 없는 이 나라들이
이런 GATT round라든가 제조업 수출로 빠르게 성장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겠죠
그러니까 브레튼우즈 시스템과 전후 국제환경질서가
소위 인적자원이 풍부하고 달리 자원이 없었던 나라들한테 성장 기회를 줬다
이제 그게 저는 천시라고 생각했고요


[경제 기적의 동인: 2. 지리(地利)]
지리, 사실 경제발전과 성장에서 가장 병목(bottleneck이 뭡니까? 투자유치잖아요
자본 조달, 투자 재원 조달이 가장 큰 병목이거든요
근데 대한민국은 전후에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해외자원조달에, 외자 조달에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됐다
한국이 냉전에 제일 경계(frontier)에 있었던 나라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한국 전쟁이라는 아주 뭐 참혹한 경험도 갖게 됐죠
우리가 전사, 실종, 납부, 부상을 합치면 그 당시 전 인구의 약 한 10% 가까이 된다고 그러는데 대단한 손실이었죠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항상 세상에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닌 듯이
사실 한국 전쟁은 대한민국 경제의 이후 성장에 커다란 모멘텀이 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한국 전쟁이 없었으면 발전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에 대부분 젖어 있었고
또 북한이야 소련이 점령하면서 처음부터 공산주의 체제를 갖추어 갔죠
근데 남한은 그렇지 못했어요 좌우 분열이 극심했고 소위 사회주의 운동이 여전히 심하게 있었던 나라입니다
물론 지도층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우파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이지만
실제 한국의 당시 지식인들, 언론 이쪽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굉장히 했다고 그래요
일본도 동경대학은 1980년대까지 경제학과에 거의 사회주의, 마르크스 주의 교수님들이 주도했다고 그러잖아요
그것이 결국 이제 한국전쟁으로 확실하게 반공과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국가정체성을 생기게 했고

또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제 이 한미 동맹관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그 뒤에 한국 경제의 발전에 아주 뭐 지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죠
그거는 단순히 시장 제도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은행에 블룸필드가 와서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시장 제도뿐만 아니고 그 당시 우리한테 필요했던 외자 조달에 아주 막강한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또 제가 지리라고 말씀드린 것은 일본도 그때는
우리하고의 그 식민지 지배를 통한 특수관계도 있었지만 미국 GHQ의 지배 하에 있었고
결국 이제 미국의 그 안보라든가 또는 경제체제 이런 것도 이제 미국의
큰 우방국과 동맹국, 종속관계 등과 함께 영향을 끼쳤죠

일본이 1960년대 이제 아까 그 유럽 선진국들이 제조업 시장을 오픈하면서
일본이 경공업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일본은 1950년대에 다시 이제 전후 복구를 하면서
고성장을 이루게 되고 이제 60년대 되면 이제 경공업을 다른 데로 옮기기 시작하고
전자, 중공업 쪽으로 이제 옮겨가면서 결국 이제 이걸 아시아 과거 이제 식민지 관계라던가 이스턴 국가들의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이제 한국 대만 싱가포르인지 이런 쪽으로 옮기게 된 거죠 필리핀
그리고 이제 또 일본이 워낙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다 보니까
1980년대에 저희들이 대학 다니고 WB, IMF에서 일할 때는 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
이게 이제 결국 이제 미국이 일본 산업을 견제하게 된거죠
그리고 또 플라자합의에 의해서 뭐 단순히 관세나 무역 조정 가지고 안 되니까
이제 환율을 가지고 일본을 견제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는 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시작했는데 사실 뭐 굉장히 조악했죠 품질이
그러다가 저희 위안화가 빠르게 절상되면서 그때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게 된 거죠
이제 이런 여러가지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중국이 고맙게도 70년대 또는 80년대까지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그 중국이 79년 개방 개혁을 했다 그러지만
사회주의 체제에 한 30여년 갇혀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한테 한 30년의 시간이 어떻게 보면 주어진 겁니다
여하튼 이런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제가 이제 간단하게 얘기 했는데요

사실 우리나라 저축률이 60년대에 9%, 투자율이 18%, 이 차이가 경상수지 적자 아닙니까?
우리가 한 10년 동안 경상수지 적자가 10% 가까이 되면서 지금 같았으면 벌써 외환위기가 나도 4, 5번은 낫겠지요?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근데 이 갭을 결국은 외자로 메꿀 수 있었던 거죠
70년대까지 사실은 그랬습니다
이 갭이 결국은 한국에 가지고 있었던 특수한 그런 지리적 이점의 결과였다

이것도 비슷한 테이블이고요 다른 나라들 보면 대만이
그래도 우리하고 비슷한 냉전시대에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어드밴티지를 조금 누릴 수 있었겠죠?
인도, 필리핀은 이런 이점을 누릴 수 없었죠
그 나라가 우리보다 특별히 투자를 안 하려고 했다기 보다 그런 투자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우리보다 훨씬 불리한 입지에 있었겠죠?
일본, 한일국교정상화는 저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단한 용단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전에
미국이 강력하게 푸쉬를 하고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지만
우리가 한일국교 정상화하면서 무상 2억, 유상 3억, 상업 차관 3억해서 8억을 얻었어요
그 당시 8억하면 지금 별거 아닌 것 같지만은 그 당시로 보면 굉장히 큰 돈이었습니다
60년도 우리나라 총수출의 약 33%를 차지하고 있었던 거죠

그 다음에 미국의 국방비, 우리가 65년에 월남 파병을 했어요
여러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월남전은 미국인들한테도 그렇게 자랑스러운 전쟁은 아니죠
그렇지만 우리는 뭐 여러가지 이유로 파병했습니다 6.25 때 신세진 것도 있고 우방으로서, 또 경제적 이유가 컸죠
사실 우리가 월남의 연 병력 30만을 파견한 나라예요
저희들 대학교 다닐 때는 복학생들 중에는 월남전 참전하고 오신 선배들도 계셨어요
연 30만 병력이라는 것은 미국의 인구 대비해서 우리가 미국보다 더 많은 파병을 한 겁니다
이제 그 결과 우리 군비를 저희 우리 국방비 지원을 미국이 대폭 늘리게 된 거죠
이게 조건이었어요 우리 군대 빼니까 무기체계 강화해 달라
그렇게 해서 다시 대폭적인 지원이 들어오고 또 월남전을 통해서
여러 가지 우리의 건설업이라든가 서비스산업뿐만 아니고 민간인들 또 군인 봉급에 막강한 지원을 받은 거죠
그래서 그 당시 미 군사원조 베트남 수출이 우리나라 GDP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이 시기에 상당한 부분이잖아요
총수출에 비해서 이만한 비중을 차지했던 겁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투자재원으로 활용한 거죠

그리고 58년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의 원조정책이 바뀌어요
그 당시 경제발전 4단계론을 주장한 Rostow교수가 1950년대 미국 백악관 자문을 하고
이번에 케네디 대통령 때는 NSC 어드바이저를 하게 됐죠
그러면서 케네디가 1958년에 상원위원이었어요 미국 외교위 상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제 로스토우가 물론 케네디하고 미리 다 입을 맞추고 한 얘기죠
결국 미국의 대외 원조정책을 바꿔야 된다 그렇게 해서
58년부터 무상원조가 경제 차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사실은 수출 지향적 경제정책의 터닝포인트는
60년대 군사정부 때가 아니고 50년대 말이었다고 그래요
결국 외화 확보를 하기 위한 거였죠 근데 그 전에 여기 보시다시피
우리나라 재정이라는게 비난하기 짝이 없었고 50년대 자유당 시대 때는 공무원
봉급줄 돈이 없어서 뭐 쌀로도 주고 그랬다고 그래요
근데 대충자금이라는 것이 미국 원조 옥수수, 밀 이런 거 아닙니까
그걸 팔아서 이제 확보한, 미국 원조협정에 의해서 우리가 재정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 재정수입에 거의 뭐 반을 차지하고 그랬어요
우리가 자유당 시대 때 의무교육을 해서 사실은 그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서 문맹도 퇴치하고
경공업 인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재정 재원이 결국엔 이런 데서 직접적으로 온 건 아니지만 다들 어려웠던 제3국 사정에 비해서
우리가 이런 걸 해서 할 수 있다 그런 얘기겠죠

월남전으로부터의 외화 수입이 결국 우리 총수출액에 비해서 이렇게 많았다 군인 송금
어떻게 보면 국민들 희생 외에 젊은이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거죠

그 다음에 또 우리가 운이 좋았다 그럴 수 있는게 우리가 1970년에 중화학공업을 아주 지나칠 정도로 발전을 한 거죠
그러니까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에 대한 부가가치의 비중이 예를 들면
5에서 1로 가는데 영국은 100년 이상 걸렸다 거예요 주로 경공업이 제조업 위주로 발전하잖아요?
가장 빠르게 변한 일본이 40년 걸렸다고 해요
우리는 10년 밖에 안 걸렸다고 그럽니다
중공업이라는게 회수기간이 길고 중립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잖아요?
그 당시 중화학공업 육성할 때 가장 큰 제약은 역시 자원조달이죠
투자자원체들 그래서 뭐 국민투자기금도 만들고 그때 인플레이션 파이낸싱도 많이 하고
우리 한국은행도 여러 가지 인플레이션 파이낸싱을 많이 했죠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달러가 있어야지 기계도 수입하고 장비도 수입하고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 외국 기관이나 또는 외국 정부에서는 한국 너네들은 아직 중공업 할 때 아니다
경공업 경쟁력 가지고 있는데 웬 중공업이냐 그래서 다 거부하고 안 빌려줬다고 그래요
그거는 이제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의 회고록을 보시면 이렇게 잘 설명이 되어 있어요

포스코하고 지역 확장을 위해서 돈 좀 빌려 달라고 WB에 갔더니
그때 Eugene Black이라는 분이 세계은행 총재였어요 지금도 세계은행 가시면 Eugene Black Auditorium이라고 있어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렇게 보니까 후진국도 망하는 방법이 3개가 있더라
첫째는 지도자 동상 세우는 나라 중에 잘 되는 나라 없다
둘째 제사상 크게 세우는 나라 중에 잘 되는 나라 없다
셋째 고속도로 건설하려고 하는 나라 중에 제대로 되는 나라 없더라 그래서 못 빌렸다 그래요 미국 EXIM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근데 그때 마침 이제 1차 오일 쇼크가 나오고 74년이었죠
중동 국가들이 이제 오일달러를 리사이클을 시켜야 되는데 중동은 미국 은행들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언제 그 자기 자산들이 동결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주로 이제 유로뱅크를 통해서 오일달러를 리사이클을 시켰다고 해요
얘들은 이자만 좀 많이 주고 어느 정도 신용도가 있을 거라는 확신만 있으면 돈을 잘 빌려줬던가보죠
우리 정주영 회장의 회고룩에도 보면 그게 잘 나옵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건설할 때
Barkley은행에 가서 이제 돈을 빌려 오잖아요? 조건이 맞고 이자를 더 준다고 하면 빌려올 수 있는 거죠

소위 유로달러 시장이 확장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70년대에 중화학 공업에 아까 말씀드린
10년 만에 그런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 돈을 많이 빌렸던 나라들이 이제 79년 말 2차 오일쇼크되고
세계 경제불황이 되니까 다들 이 나라들은 전부 다 외채위기 맞았던 나라들이죠
우리나라만 빼고 외채위기 다 맞았지요
우리가 특별히 잘나서, 잘해서 그렇게 됐냐 하면 사실 이때 미 국무성과 국방성의 역할이 막대했다고 그래요
한국이 부도되게 해선 안된다
그리고 일본에도 강력한 압력을 넣고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막
80년에 집권했을 땐데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100억불 차관의 약속을 받았어요
여하튼 그런 한국의 입지를 가지고 이제 우리는 외환위기를 넘기게 된 거죠
그런 약발이 안 먹히기 시작한게 이제 냉전 시대가 끝나고
90년대 더 이상 이제 그게 안 먹히게 됨으로써 이제 결국은 우리 97년 외환위기를 맡게 된 건데요
여하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경제발전을 해왔다, 그런 대외환경이 있었다


[경제 기적의 동인: 3. 인화(人和)]
맹자도 천시 지리 인화 셋 다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지만 그 중에 인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그랬어요
근데 이제 인화라는게 사람이겠죠 근데 이게 뭐 단순히 사람뿐만 아니고
저는 정책, 제도, 사람이 운영하는 제도까지 포함하는 조금 더 넓은 센스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인이 뭐냐 하나를 꼽으라 그러면
바로 신분 계급 질서의 붕괴라고 저는 꼽겠습니다
이게 한반도는 2000여년 넘게 계급 사회지 않았어요? 신라의 골품제라든가
때로는 이게 우리나라 계급 제도라는게 굉장히 경직적이었고 때로는 다소 유동적이었
그렇지만은 한반도는 2000년간 계급사회였어요
그리고 조선의 그 양반 계급이라는 건
나중에 1600년 17세기 이후에 넘어오면서 굉장히 이제 많이 희석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은 초기에는 한 15% 정도 양반이라고 하죠
그리고 이 양반 사회라는 거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도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그런 제도에요
양반이 뭐냐? 없습니다
영국은 무슨 듀크, 마르퀴스, 비스카운트 이런게 있잖아요?
영국은 귀족이라는게 관행, 불문법으로 되어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양반에 대한 정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양반 사회라는 것은 지극히 배타적으로 운영이 됐어요
심지어는 자기 자식이면서도 서자, 서어른, 완전히 과거의 기회에서도 제외시키고 그렇게 하잖아요
이제 그러면서 그 rent를 누리는 거죠 5%, 10%, 그래서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양반에 자제한테만
주어졌고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도 오로지 양반의 자제한테만 주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90%, 80%의 백성들은
평생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양반은 어디 형벌 받을 일이 있으면 그것도 노비한테 가서 대신 받겠다고 그래요
세금도 안 내고 권역도 하지 않고
그레고리 헨더슨이란 분이 표현했는데 온갖 권리를 가지고 있는 양반과
온갖 의무밖에 없는 백성들 사이에 관계가 조선시대에 사회관계였다고 그러죠

그리고 한때는 노비 천민이 전 인구의 40% 이상이 넘었다고 그래요
근데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한이라는 것은 뭐 그래서 우리나라의 한의 문화가 생겼다 그러잖아요
그게 이제 19세기 말부터 붕괴되기 시작했고 노비제도가 철폐된 것은 갑오경정이었다고 해요
그 다음에 법적으로 완전히 신분계급이 철폐된 것은 1912년 총독부가 들어서고 나서
사실 조선민사령이 입안된건 1911년이었습니다 반포되고 실시된 것은 1912년이었는데요
조선민사령은 뭐냐하면 일본 본토의 민사법, 상법을 조선반도에 의용시킨게 조선민사령이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소위 인권이라는게 이제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사유재산권이 확보가 되고
인신에 대한 그 보호가 실질적으로 주어진 것이죠 그건 조선도 제대로 못했던 거예요
결국은 이제 일제 때 일본도 자기들이 독일에서부터 두려운 법이라고 그래요 민법,상법
그걸 조선에 시행하면서 법적으로 신분 계급이 완전히 철폐가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에는 토지의 사유권이 어느 정도 관행으로 인정이 됐지만
토지 등록제도라는게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와서 자기들이 뭘 그런 걸 수집하다 보니까 법적으로 보고가 안돼 있지 않겠어요 ?
그러니까 이제이 사람들이 소위 Cadastral Survey라고 해서 1911년부터 1917~18년에 걸쳐서 지적조사를 했어요
지적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소위 중앙사대부들은 그때 이제 유교 정신 청빈을 해야 되고
그때는 뭐 또 차명으로 되어 있는 땅이 많았다고 그래요
저들이 내 땅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기 토지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그러고요
그런 과정에서 지방 지리 사정에 가장 밝은 분들이 지방 아전이었다 그래요
아전계급들이 지적조사 과정에서 신흥지주객으로 부상을 하게 되었다 그럽니다
그리고 1930년대 당시 이제 신분이 이제 처음으로 유동적으로 이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거죠
총독부에 서기관급 이상 3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260명이 아전계급 출신이었다고 해요
이렇게 신흥지주객이 생기면서 한국 농민들의 소위 지주에 대한 존경심도 이제 고취되었다고 그럽니다

우리나라 인쇄업이 일제 때 인쇄업이 정점을 찍었던게 1928년이었다고 그래요
그게 족보 발행을 모든 사람들이 이제 조선민사령에 의해서 신분 계급이 철폐되다 보니까
한국 국민 거의 100%가 이제 양반이 된 겁니다
그리고 모든 집안이 족보를 예전에는 양반 집안만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혼사를 할 때도 이제 양반끼리 하니까 서로 족보를 교환하고 그래서 우리가 그런 얘기 하지 않습니까?
쟤는 뭐 족보도 없는 사람이냐고?
근데 이제 1920년대를 넘어오면서 모든 한국의 집안이 족보를 가지고 이제 양반 계층이 된 겁니다
그리고 양반의 상징이 4대조,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잖아요
모든 집안이 이제 4대조 제사를 지내면서 법적으로 신분제가 철폐가 된거죠

일본, 중국은 광동 그리고 오사카가 주요 상업지역이잖아요?
그 나라는 유교사회지만 일본, 중국은 상업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였어요
근데 조선은 유교사회였지만 상업이라는게 거의 발전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개성상인도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고
우리나라 상조직이라는게 보부상 조직이라는게 있었는데 어떤 뭐 공동체나 윤리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우편배달을 하면서 불량배 조직 비슷하게 나중에 독립협회 공격하고
뭐 일제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그런 조직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라 하는 것이, 아주 토양이 척박한 나라였죠
조선민사령이 도입되고 나서 자본주의 핵심이 사유재산권 확보잖아요?
그렇지만은 일제시대에는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운영되었던거죠 금융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조선인들은 소위 주변의 역할을 하게 됐던 거겠죠
그리고 해방 뒤에 50년대만 해도 조선인들은 자기 조상이 무슨 객주를 했다든가 여관업을 했다던가
상점을 했다고 하는 집안,
또는 보부상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집안은 거의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이제 일본 중국과 달리 우리는 200년 300년 된
여관이라던가 식당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이제 결국 계급의 유동성이 일제 때 크게 늘기 시작했고
그렇지만 과거 아까 보여드렸다시피 도시화는 그때 많이 이루어지지 않지 않았어요?
전통 마을 공동체에 살면서 과거의 전통과 유산이 있어서 우리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라는 소설에 보면
여전히 서휘와 길상은 비슷하게 추종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와 비슷하게 그러면서도 양반들은 토지를 베이스로 해서
결국 그 예전의 신분관계가 법적은 아니었지만 관행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래요
그게 이제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토지개혁이 49년에
이제 이승만 정부에서 수립돼서 실제로 실행된 거는 49년 말 50년 초에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전에 가지고 있었던 뭐 양반계층이라든가 소위 지배계층이 가지고 있었던 토지라는
땅의 근거 마저 이제는 거의 이제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다가 한국 전쟁이 나니까 서울의 주인이 세 번인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피난을 두 번을 가게 되다 보니까 이 양반이라는 사람들도 부산 피난지에
가서 뭐 그때 뭐 들고 갈 수 있는 가재라는게 뭐 얼마나 됐겠어요
결국 먹고 살아야 되는데 체면 이런 것까지 형편이 아니었죠
그러니까 피난지에 가서 과거 양반이든 뭐 중년이든
상민이든 그 구분이 이제 실질적으로도 체통이나 최면을 치를 여유마저도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 그래요
특히 양반일수록 생활 능력이 부족해서 과거 행랑 아범이라든가 머슴에 기대서 살다 보니까
이제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에는 대한민국에는 과거의 신분계층이 완전 붕괴를 했다
그거는 한반도의 역사 2000년에도 없었던 일이고 또 세계사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일이라고 그래요

여기서 모든 부모들이
그러니까 과거에 인식이라든가 또 관점은 남아 있어서
어떻게든지 우리 아이들 공부시켜야 되겠다 공부시키지 못하면 천하게 된다 해서
모든 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시키게 된 거죠 서울의 대학을 보내고
고시를 보게 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게 하고 이런 한국은행에 취직하게 하고
그게 이제 모든 부모들의 꿈과 열정이 되고 아이 공부시키기 위해서 뭐 궂은일 밤낮거리지 않고 일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자식들은 또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어 있고
결국 미국이 유럽에 비해서 빠르게 성장한게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그러잖아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은 유럽의 계급 신분사회에서 탈피해서 모든 사람들이 뉴욕이라든가 시카고 이런
데서 동일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소위 미국이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 다이내믹한 국가였고 그래서 이제 결국 빠른 성장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미국은 인종이나 얼굴 색깔에 대한 차별은 없애지 못했어요
근데 대한민국은 인종이나 얼굴 색깔 다 똑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100% 출발선이 똑같아진 사회가 된 겁니다
다산이 정조한테 올린 상소문에 그런게 있다고 그래요 조선이 어떻게 양반한테만 과거 기회를 주고
그것도 서북인은 안되고 차령산맥 이남은 안되고 설 다 제끼고
이 좁은 인재 풀을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제대로 부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한 200년 뒤에 한반도의 현실로 나타난 거죠
그러니까 모든 국민들이 똑같이 100% 참여하고 한을 풀기 위해서 또는
본인들과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뛰게 된 겁니다

저는 그게 이제 한국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인이 되었다 생각하고요
물론 거기에 이제 인센티브를 주게 된 거죠 아까 말씀드린 우리가
북한과 지금 한국을 비교하면 너무나 자명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자유시장주의적 경제,
민간의 활력을 이용하는 경제 그거는 미국이 끊임없이 우리가
50년대 60년대 우리한테 원조자금을 다 쥐고 있었으니까요 소위
그 유소음을 통해서 한국의 경제 정책 경제개혁원의 정책을 미국
원조 기관이 관리할 때였거든요 돈을 주지 않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원조나 차관을 디스볼스를 하지
않으니까 그런 국제수지 적자에서 우리가
IMF 말 안 들을 수 없었듯이 그렇게 된 거죠
이제 그런 시장주의적인 인센티브를 좇게 됐고 거기에 우리 한국 국민들의
교육 열풍에 의한 인적자본
그 위에 저는 그 우리의 지도자들이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많은 비판들 받고 계시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는 모든 분들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다 그 나름대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저는 그런 면에서는 훌륭한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과 또 행정관리 시스템이 잘 필답되면서 결국 한국인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요

이건 이제 그런 걸 도표로 좀 보여드리는 겁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일제 말기에 아동적령기에
초등학교 진학률 진학한 적령기 아동이 47%였다 그래요
그게 이제 1960년에 99.8%로 올라갔다 그래요 그거는 이승만 정부가 아주 크게 잘한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를 짓고 한 건 아까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그런 열악한
재정 환경에서도 미국 원조라던가 대청자금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했다고 생각하고요
이때 우리가 그 키워낸 인력들이 경공업,
경공업이란게 어느 정도 메뉴얼을 익힐 수 있고 또
그렇게 고숙련 지식을 요구하는 영역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가져야지
지식 습득력이 있어야지 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결국 이렇게 경공업 인력을 제공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70년대 이후에 들어오면 결국 중등 교육 진학률이 이렇게 높아서 우리가 중공업,
전자산업에 대한 인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생각하고
이제 90년대 이후에 오면 정말 대단한 거죠
대한민국이 이거는 19세에서 34세던가요
이게 2012년인가 2010년 자료였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한 번 보시면 우리나라 40대 후반까지는 지금 세계에서 최고 학력을 가진 인력들이에요
50대 이후로 높은 분들은 아니겠지요
그분들은 여기 어디 속했겠죠 근데 우리나라 40대 후반 40대 중후반 이하 아래는
지금 세계 최고 물론 뭐 저희들 같은 사람이 대학 교수로서 가르치다 보니까 좀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교육연한이라든가 이런 걸 보면 역시 세계 최고의 수준의 교육을 받은 분들입니다
이제 IT 산업 발전을 이렇게 해서 서포트 해 준 거겠죠?

이 자료는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 되겠어요 이게 조금 소스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1943년 총독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문맹률이 그때 한 40%, 30% 여성 40 남성 33 이 정도 됐다 그럽니다
그래서 이건 제가 다시 한번 이건 최지만 이 분이 한 것을 우리가 갖다 쓴 거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가 경제 발전의 기초를 닦은 거죠 30년 동안


[Ⅱ.한국경제: 현재 (1990년대 이후~)]

[ Ⅱ-1. 대외환경의 변화: 기회와 도전의 혼재 ]
현재 우리가 어디서 있느냐 현재라는 건 제가 좀 90년대 이후로 이렇게 잡았습니다
90년대 이후에는 우리 대내외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대외환경은 이제 90년대부터 아까 말씀드렸듯이 중국이 80년대까지는
여러가지 혼란 속에 있다가 90년대 들어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급부상한거죠
그 다음에 이제 세계화 신자유적인 경제질서 변화
그리고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71년에 무너졌죠 그러면서 유럽은 이제 조금씩 변동환율제로 옮겨가고
변동환율제로 옮겨가다보니 결국 이제 자본개방이 조금씩 자유로워졌고
브레튼우즈 시스템 하에선 자본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거죠
70년대부터 자본개방이 시작되고 그렇다 보니까 국내 금융도 이제 자유로워지기 시작되고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관치금융을 90년대 중반까지 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해왔던거죠
80년대부터 이제 결국 압력에 의해서 조금씩 국내시장을 개방을 했었고요

제가 최근에 이제 최근 최영교 보좌역하고 같이 쓴 논문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60년대 62년 군사정부 들어서서 관치금융의 기반을 확고하게 마련했죠
한은법 개정도 하고 관치금융이란 표현이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겠습니다만은
근데 그 그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 소위 한국 주식회사형이 되지 않았어요?
정부의 보호와 지원 없이는 기업들이 워낙 대외충격에 취약하게 된 거죠
그 당시 평균 부채비율이 400%가 넘었으니까요 평균 부채비율이 400%가 넘는다는 것은
기업에 따라서는 6 ~ 700%가 넘는 기업들이 많이 있었다는 얘기죠
이 대외충격에 견딜 수가 없고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경제에서는 경기순환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잖아요
그러니까 금융을 자율화한다고 목표는 두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계속 선거는 다가오죠 뭐 금융위기 피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실질적인 관치금융을 90년대 초중반까지 해오면서
그러면서 이제 YS 정부가 들어와서 세계화를 국정의 목표를 내걸고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제 그때 아까 말씀드린 냉전체제에 의한 보호막도 없어지고 하면서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거죠
그게 이제 결국은 그러고 나서 IMF 관리 체제 하에서 대폭적 기업 금융 구조조정을 하게됐고요
그러면서 또 우리가 한 번 큰 변화를 하게 된 거죠 그것도 많은 희생을 치르고
뭐 아쉽게도 우리 내부의 관료에 의한 개혁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큰 개혁은 하게 된 겁니다 97년에서 2000년 초반까지요
그러면서 이제 경제를 이렇게 끌고 온 거죠 그리고 기업들의 재무구조도 크게 개선시키면서요
그렇지만 최근에는 신냉전 시대가 시작되고 이런게 새로운 우리 이제 국제질서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는 겁니다

[ Ⅱ-2.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 부각 ]
제가 뒤에서 이제 하나 말씀드릴겁니다만
저는 경제는 단순히 경제적 기반뿐만 아니고 경제 외적이란 큰 그 두 기둥 위에서 발전 진화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가 90년대 이후에 들어오면서는 경제적 기반도 취약해졌고
아까 말씀드린 제조업 프라임 타임이 중국의 추격을 받으면서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고
또 말씀드렸듯이 지식 기반 서비스업을 우리가 발전시킬 만한 충분한 시간과 또 여유를 갖지 못했어요
소득분배가 세계화되면서 빠르게 악화됐고 또
과다 부채, 인구고령화 가속, 경제력 집중, 시장에서의 유착, 담합 관행 아직도 이런 것들이 지속하고 있는 거죠
생산성의 정체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하나 더 하려면 부동산 가격, 높은 부동산 가격 앙등과 지속을 들고 싶습니다

[ Ⅱ-3. 경제외적 기반의 취약성 부각 ]
경제외측 기반, 사실 우리가 지금 35,000불 경제지만 거기에서 우리의 지식
선진국에 비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지식 수준은 여전히 많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자연과학, 엔지니어링 계통에서는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 사회과학적, 특히 선진국들의 지식 수준을 아직도 크게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게 어떻게 보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죠 전문성
금융, 보험, 디자인, 컨설팅 그쪽에서는 우리가 선진국의 수준을 아직도 많이 못 따라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 다음에 이제 민주화가 되면서
경제정책이 정치화되고 또 사회 전반적으로 수익의 투자기간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조선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고질적 문제이기도 했죠
그러니까 성균관 관장이 조선시대 500명이 되었다고 그러잖아요
율곡이 과거 후에 한 관직이 30개였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 예전에 관료들은 또 부모 제사할 때는 관직에서 물러나고 있잖아요 상을 당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한 자리에서 반년 이상이 있었던 자리가 거의 없었다고 그래요 지금도 그 관행이 지속되고 있잖아요
우리가 외환위기 났을 때 그 당시 재경원의 국제금융국장이 일곱 분이 바뀌었어요 부총리도 다섯 분인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굉장히 취약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분계급이 완전붕괴하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한 세대
저는 한 30년? 1950년 대 중반 ~1980년대까지 한 세대에 걸쳤던 굉장히 유동적이었던 신분계급의 붕괴,
모든 국민들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었던 80년대 90년대 말로 들어오면서 신계층의 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우리 경제 외적 기반의 취약성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렌트(rent)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20대에 본 고시 여기 장 감사께서도 고시를 보셨지만
특히 사법고시, 의과대학 여기에 rent, 그 다음에 대기업 출신들 이런
학연 학벌 지연을 통한 렌트가 아직도 공고한 사회라고 생각이 들고요
완전 각 분야의 각 레벨에 있어서 충분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경제 외척 기반의 취약점 중에 하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뭐 여러분들 잘 아시는데 데이터고요
중국이 90년대 이후에 이렇게 이제 빠른 제조 공장화를 해오지 않습니까?
이러다 보니까 우리나라 섬유 가죽 뭐 이쪽 농림어업 등 경공업이 이제 무너지기 시작한게 이 시기고
이때 주로 동남아 중국으로 다 생산시설을 이전했죠 거기서 이제 풀어 놓은 고용들이
주로 이제 부동산 중개소 그 다음에 뭐 숙박 음식점 그 다음에 동네수퍼 이런 쪽으로 이제 가다 보니까
결국 아까와 같은 문제가 생겼고

이거는 이제 최근에 그 중국이 얼마만큼 우리한테 도전적일거냐를
보좌역이랑 같이 찾아서 한 건데요
역시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합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이쪽은 매뉴팩처링의 부가가치 쉐어고
이쪽은 하이텍의 중요성인데요
결국 이제 중국이 이쪽으로 지금 다가오니까 사실 이쪽에서 우리가 가장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건 국가별 과학 논문수 최 보좌역이 찾으신 겁니다
이게 보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그래도 이과 자연과학 종합계도 많이 쫓아온 편이에요
우리가 r&d 투자를 그 GDP 대비 세계 최고 높은 나라 중 하나잖아요
근데 이게 얼마 전만 해도 이랬는데 제가 이거보고 깜짝 놀랐어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중국이 이제 세계 최고로 올라섰습니다 이게 불과 7년 전만 해도 이랬어요
그게 7년 사이에 지금 이렇게 쫓아왔거든요 이거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한 7년 전에 그 중국 이름이 라스트 네임인 미국 사람들까지 다 합쳐서 보니까 이미 미국을 추월했어요
이제 이걸 중국성을 쓰는 실제 중국인들, 미국의 또는 유럽에 거주하는 이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올라가 있지 않겠어요?
이게 이제 중국의 앞으로 중국의 리빙 스탠다드가 올라가고 점점 중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게 되면
우리도 그렇지 않았어요 해외에서 이제 과학자들이 계속 귀국하게 되고 이게 이제 중국의
앞으로의 잠재력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중국의 도전이라는게 정말 무섭구나

제가 이번주에 또 중앙시평을 쓰게 돼서 오늘 막 원고를 아침에 보내고 왔습니다
그게 이제 미중갈등에 대한 건데요 금요일 날 아침에 올라오리라 생각하는데
결국 시간이 누구 편이냐 하는게 지금 미중갈등의 핵심적 전문이잖아요 ?
저는 이런 거 보면 중국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게 미국만의 도전이냐 천만에요
사실 한국에 대한 도전이 훨씬 더 심각한 거죠 이게 이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이다

그래서 지금 봤을 때 우리한테 여러가지 도전과 기회가 겹치고 있지만
그 중에는 단순히 경제문제만이 아닌 또 경제정책을 우리가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총재님도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말씀하셨죠 몰라서 못하는 거 아니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되지 않냐
그게 이제 경제 외적 기반이 그렇게 되어줘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이나마 온 위치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 기반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제 외적 기반을 빠르게 형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개혁이라는 것은 이건 나눠드린 자료 있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Ⅲ. 한국경제: 미래]
한국의 경제개혁이라는 것은 단순히 경제제도 정책의 개혁뿐만 아니고 사회 전반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게 이제 이 부분 미래 부분의 핵심적 메시지입니다
지금 이제 한국이 가지고 있는 그 여러가지 도전

[ Ⅲ-1. 대전환의 시대 ]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게 대전환 시대(Great transitions period)라고 그러잖아요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이 대전환의 핵심 요인을
어떤 분들은 5~ 6가지, 어떤 분들은 또 다르게 요약하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인구변화 이게 가장 큰 거죠
바로 이게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이 인구들이 소위 자유시장경제로 통합(free market economic integrate)되면서
세계 경제구조가 크게 변한 거죠
그게 소위 우리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의 시대를 가지게 된 것
결국 인플레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중국에서 값싼 물건들이 들어오니까
사실 저희들 이 옷값이라든가 전자제품 값은 30년 전에 비해서 더 떨어졌죠 TV값도 떨어지고
지하철역 근처에 보니까 바지 하나에 뭐 만원 이하의 파는데도 있습디다? 오히려 더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이제 배에 실어다가 수출할 수 없는 땅값 뭐 회사값 이런 걸 자산값은 이제
돈을 푸니까 계속 올라가게 된 거죠
그게 이제 결국은 여러 가지 함의가 있겠지만 소득분배도 큰 함의가 있고
세대간 갈등 문제, social stability 아주 큰 함의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 계기가 된 거는 결국 저는 이제 냉전 시대가 붕괴함으로써
예전 소위 COMECON 시스템에 있던 국가들이 프리마켓에서 생겼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그 한 30년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이렇게 이제 볼 수 있겠죠
물론 신냉전체제가 다시 시작되지만
그거는 과거 냉전과는 또 다른 그런 제도적 환경적 요인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거기 때문에 넘어갈게요

이제 지난 5세기 물론 뭐 서양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때부터 합리주의를 사상을 바탕으로 했고 소위 로고스
동양은 직관과 그런 또 도교적 유교적 관념에 바탕을 했지만
어쨌든 동서양 간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였다고 볼 수 있죠
근데 그게 19세기까지 들면서 거의 뭐 아시아가
서양 소위 서세동점으로 해서 아시아가 거의 다 무너지다시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본 피했고 중국도 거의 서양의 반 식민지 되었다 싶었죠
그게 지금 이제 1950년대 이후에 빠르게 지금 역전되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저는 이제 동서양간에
경쟁 시대가 지속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되고요
벌써 뭐 여기 자료에 의하면 2030년대가 되면 삽시년에는
구매력에서 이제 아시아가 유럽이나 서구는 압도하게 되는 거죠

세계화 이건 지난번에 한국은행 자료입니다 총재님께서 국회선가요 발표하신 자료를 제가 갖다 쓰는 거고요

가치사슬 변화 이게 그렇게 멀지 않죠
20년 전만 해도 변방에 있던 중국이 이제 이렇게 들어오면서
오히려 일본이 이제 중국의 공급망에 이렇게 편입되는 그런 상황이고
미국은 이렇게 외톨이처럼 떨어져 있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이게 이제 미국으로 하여금 정신 차려야 되겠다 그렇게 한 거죠
만약에 미중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얼마만큼 독자적으로 무기체계를 확보할 수 있느냐
국방부에서 전부 탱크 비행기 뭐 미사일 쫙 해서 공장을 뽑아 보니까
아 이거 큰일났다 이렇게 된 거예요 중간에 이가 다 빠져 버린 거예요
중소기업들 부품회사들이 중국이 인수해갔거나 아니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거나 그나마 미시간 미드웨스트 쪽에 있는 중견기업들도
보니까 실질 자본이 중국계로 넘어간다고 그랬던 거예요

미국이 볼 때 제조업에 큰 위기가 일어난 거죠 이렇게 해서 만약에 미중간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그게 지금까지 정부는 바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잖아요 미국이 이렇게 지금 나와서 그저 몇 나라들 끌고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여기 있는 애들 다 가져와서 우리 쪽으로 해야 되겠다 그게 지금 바이든의 대외 정책이잖아요
그리고 제이크 설리반이 지금 취하고 있는 대외 안보 경제 동맹 정책이죠
우리는 여기서 이제 그러면 어떤 입지를 취해야 될 거냐 하는게 지금 중요한 과제로 되어 있고

기후변화 잘 아시니까 넘어갈게요

기술변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거 최영교 보좌역이 뽑아 물어본 거예요
제가 오늘 발표하면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되지 한 번 물어봐라
이런 답이 나왔다 그래요
아 근데 이거 읽어 보니까 제가 이것보다는 아직 조금 낫겠네
근데 이게 몇 년이나 갈까요? 한 1년, 2년 알 수 없습니다?


[ Ⅲ- 2. 한국경제의 제도·정책개편: 무엇을, 어떻게? ]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 관문과 도전을 헤쳐나와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냐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게 이겁니다
정책보다 훨씬 중요한게 구조 변화를 어떻게 할 거냐
일본이 이걸 못했으니까 따라갈 모델도 없다 이제는 우리가 해나가야 된다 누구한테 맡기겠느냐
스웨덴 모델이 있습니까 네덜란드 그런 모델 우리한테 가져오면 아주 한국적 그 변이를 낳아서
아주 특이한 변종을 낳게 된 걸 경험하지 않았어요 ?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실사구시적으로 해 나가야 된다 우리에게 맞는

제가 이걸 이제 위에다 가져왔는데
저는 한국의 국기, 참 아름답지요
저는 이제 외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면서 이게 국기가 쫙 올라가면 너무 자랑스럽고
어떨 때는 뭐 이렇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도 있었어요
근데 한국 국기가 도대체 뭐를 뜻하는 거지 그런 생각을 이제
하게 되었는데 보면 이건 이제 프랑스는 자유, 평등, 파괴잖아요
독일은 정의에 대한 추구, 자유, 탄압에 대한 불굴 뭐 이런 걸 뜻한다고 그래요 삼색기잖아요
이태리도 크게는 자유, 인권, 정의 이런 거라고 그래요
미국하고 영국의 국기는 그 나라 국가 성립의 배경을 지금 설명해 주고 있죠
영국은 웨일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를 다 합친 거잖아요
미국은 독립할 때 첫 13개주가 이제 소위 스트라이프로 해서 13개 줄입니다 독립선언서에 적히는
그리고 이제 그 뒤에 미국이 확장되면서 50개 줄을 별로 이렇게 했죠 그래서 스타 앤스트라이프라고 그러잖아요

대한민국 국기는 뭐냐 이게 성리학이잖아요 주자학의 원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헌법체계, 상법체계, 중앙은행법 전부 다 서양껏 그대로 갖다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제도 운영이라든가 이런 거는 굉장히 이중적으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
우리 선배들이 얼마나 고생했겠냐 우리가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서양 제도를 그냥 가져왔나
조선시대에는 법을 안 지키는 걸 국민들이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잖아요
왜냐하면 그 당시 민사령이라든가 일본 칙령이 식민지 지배를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래서 법을 안 지키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요
해방 후에 그런 거 합쳐져 가지고 도저히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법을 갖다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김민섭 변호사란 분이 쓰신 책을 제가 읽어 봤더니 그분은 판사를 한 분인데
너무나 고민이 많았다고 그래요 도대체 한국의 전통과 인륜과 도덕과는 맞지 않는 서양형법 체계를 가져오니까
판결을 해야 되는데 고통스럽더라 그러면서 당시 지도자들을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법을 도입했냐
그때는 우리가 미군정 하에서 막 탈피해서 제헌헌법이라는게 있었어요
근데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에 그때 뭐 유진오 박사님 이런 분들을 해가지고
그냥 바이마르 헌법을 그대로 갖다 놓고 베끼다시피 했다고 그래요
왜 바이마르 헌법이냐
그 당시 독일은 연합국 3개국의 관리화에 있었기 때문에 헌법이 없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독일 헌법이란게 1950년 년인가 만들어졌죠 그러니까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을 갖다가
베끼다시피 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한테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런 거부터 우리가
하나하나 보면서 해 나가자 하는 것이죠
지금 시간은 적고 슬라이드는 많이 남아서 제가 여기서 한 3시간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요
질문 그래도 시간 되시는 분은 2~3개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의응답]
Q) 정말 그 어디 가서 잘 듣기 어려운 그 강의 감사드리고
중세부터 미래세대까지 한 번 쭉 훑어보면서 이제 저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질문은 뭐냐면 여러가지 이제 말씀을 이제 많이
주셨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문제나 이런 거를 다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딱 3가지만 딱 이거는 앞으로 10년 안에 꼭 해야 된다 이 세 가지만 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정말 어려운 질문이세요
세 가지만 해야 된다
저는 첫 번째는 역시 국가 지배구조 개편을 해야 된다 생각합니다 우리 총재님도 말씀하셨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노동개혁, 벌써 YS 때부터 몇 십 년 얘기해왔잖아요
겨우 DJ 때 IMF 관리 체계에서 우리가 해야 될까 10%정도 했을까요
연금 개혁, 재벌 개혁 하나도 못 했잖아요?

근데 저는 결국 그 어떤 정부든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4가지 일을 갖춰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지도자가 제대로 된 비전을 가져야 된다
두 번째는 그 비전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맞아 떨어져야 된다
세 번째는 그리고 그 비전을 현실적 정책으로 제대로 재단해서 낼 수 있는 유능한 참모진을 가져야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세가 있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해요
제일 중요하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 언론 환경 그리고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에서
정치적 세를 가지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는 협치와 사회적 대타협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개혁이든지 적어도 10년 이상 일관성 있게 하지 않으면 그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10년, 20년간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렇게 하려면 정치적 세가 없으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넘버원을 꼽자면 협치다 사회적 대타협이다
우리와 같은 비슷한 역사적 문화적 환경을 가진 일본과 중국 보세요
일본이 1952년에 미군정이 평화헌법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거 가지고는 일본을 제대로
끌고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1955년에 55년 체제를 만들었지요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쳐 자민당을 만든거에요
그러니까 일본은 거의 지금 일당지배를 하고 있는 거죠
물론 그 안에서의 경쟁은 심하지만

중국은 공산당이 지금 수십 년 계속 지배해오고 있잖아요
대한민국은 지금 이제 실질적으로 민주화를 해가지고 있는게 벌써 40년 가까이 되어가나요 35년?
그 뒤에 저는 우리 경제 정책은 길을 잃은 적이 태반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그 기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는게 제일 중요하고
우리 한국의 지도자들 엘리트를 끊임없이 지금 정당과 정부의
협치와 사회적 대타협을 푸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우리가 해야 될 가장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말씀드리면 이것도 굉장히 브로드한 말씀인데요
우리의 지금 인센티브 체계를 저는 전반적으로 재구성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은행도 우리 저희 금통위에서 무슨 그 보수 이런 거 할 때마다
여러가지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데요
결국은 이게 한국은행만 바꿀 수 있는게 아니고
저는 지금 한국은행에 3,4급 직업이면 한국의 최고 엘리트들이고 실제 그분들 보더라도
한국의 최고 전문성과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시간외 수당을 그분들이 받고
일해야 되고 이런 제도가 너무 안타까워요
이걸 다 성과급으로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철저하게 우리가 직무분석을 할 수 있어야 되고
그 직무분석에 기반해서 제대로 된 직무 평가를 할 수 있어야 되고
직무 평가가 쌓여서 인사와 승진과 결정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다른 뭘 해도 항상 멤돌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제 그런 전반적인 걸 한국은행만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회 공공기관부터 그런 걸 시작해야 된다
그래서 인사제도를 혁신하는 것이 저는 그 두 번째로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역시 공공부문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부문이 여러 문제를 많이 안고 있잖아요
이제 우리가 경쟁해야 될 나라가 지금 우리가 벌써 실질적으로는 G7 가까이 되지 않았어요?
35000불 내 인구 5천 가진 나라들이 일곱 여덟 개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우리 상대가 다 그 나라들이잖아요 그러면 그 나라들의 탑 엘리트들과 우리가 경쟁할 수 있어야 된다
우리 정부도 정치도 그 나라들 수준과 경쟁할 수있어야 되는데
지금과 같은 조건 방식, 시스템, 관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고는 어렵겠다
그래서 정부가 할 수 있는게 뭐냐? 공공시스템, 공공부분 혁신이잖아요
저는 노동연금도 잘 되면 좋겠지만 왜 공공부분 혁신도 못하면서 그거
하려고 나서느냐 하려면 공공부문 혁신부터 먼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 생각이고요
근데 뭐 그렇게 질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Q2)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국경제 100년의 역사가 다시 뒤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고요
질문은 그 위원님께서 이제 주로 한국경제의 발전이란 과정 속에서 그런 시각에서 BOK를
돌아본다면 그동안은 이제 주로 바깥에서 보셨을 텐데 그런 시각에
다시 또 이제 한국은행 내부에서 또 BOK를 볼 때 한국경제 발전의 과거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반추해 볼 때
BOK는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A2) 정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한번 반추해 볼 만한 그런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이 돼요
근데 거기에 대한 말씀도 있지만 개인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 환경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이제 첫 번째는 제가 밖에서 봤던 BOK와 지난 3년간 안에서 봤던 BOK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른 측면이 있겠지만 BOK는 원래 인재집단이죠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한국의 인재집단이었고
사실 6~70년대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분들도 보면 다 BOK 출신들이었어요 김재익, 김정념 뭐 비롯해서 다 그렇고요
그렇지만 이제 밖에서 제가 재경원이나 청와대나 학계에서 볼 때
BOK가 너무 정체되어 있고 무기력해 보인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6~70년대 이후에 정책 주도권을 거의 잡지 못했지 않았어요?
그 항상 디펜시브 했고 또 뭐 중앙은행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도대체 BOK가 하는 일이 뭐냐 뭐 이렇게 안에 다같이 앉아 있는 거
지키려고 하는 거 외에 뭐냐 그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1년에 금리 한 두세 번 바꾸되 그 후에 하는게 뭐있지 그런 생각하기도 하고요
근데 이제 들어와서 보니까 이게 참 일이 많구나
저희들 괴롭히려고 그러시는지는 모르겠는데 보니까 웬 읽어야 될 자료가 이리 많냐
회의는 또 이렇게 많냐 생각이 되기도 하고

역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직원들 퀄리티죠
정말 우수하고 잘 훈련되고 너무 아깝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분들이 좀 다른 분야에 가서 같은 기량으로서 역할을 하면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지금 많이 하고 있고요 또 하기도 했어요

그 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한국은행이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충분히 자주 묻고 있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우리 목표가 한은법에 물가안정, 2011년인가요 그 이후에는 금융안정 이렇게 되어 있는데
하나는 물가 안정을 위해서 한은이 뭐를 해야 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느냐 그런 생각이 가끔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물가안정이 뭐냐 뭐 때문에 물가안정을 추구하느냐
왜 거기에 2,500명이 되는 대한민국의 최고 우수한 인재집단들이 모여서 매달려 있는데
왜 하려고, 하는 일은 뭐냐 금융안정이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한은에서
그게 제가 처음 와서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한번 해보자 해서 한 두세번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한국은행의 정책이라는게 다 Balance Sheet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서 Balance Sheet를 가지고 한번 한국은행의 역할이 대한민국 경제에서 어떤 역할이 있었나 한번 보자 해서
이제 세 번째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하자고 해서 했는데
아직 여전히 거기에 대해서 저는 충분한 토의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사실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하는데
기준금리를 우리가 가지고 주로 하죠 물론 대출 정책도 가지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거는 기준금리잖아요 그거 맞추려면 뭐 유동성도
빠르게 다 흡수해야 되고 유동성 대출을
늘리게 되면 이제 저희 그 지준에 대한 수요 커브가 변함으로 궁극적으로 조금
수요곡선 이동으로 인한 유동성공급 차이는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우리가 기준금리 가지고 물가안정도 하려고 그러는데
이제 그게 우리가 중앙은행으로서 거기에 대한 유효성 확보를 하려고 해야 되는게 중앙은행의 미션 아닐까
그런 생각 많이 하게 됐어요

사실은 중앙은행 우리는 뭐 특이한 중앙은행이잖아요 감독관이라는게 없는 몇 안 되는 중앙은행이니까요
이 감독관과 통화정책이 분리되어 있을 때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게 뭐냐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이 소위 준재정뿐만 아니고 준재정기관들
산업은행 한전 LH 수자원공사 다 마찬가지잖아요
거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거기서 나오는 주택금융공사도 마찬가지죠
그게 시중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 하잖아요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뭐냐
결국 금감원, 금융위와 우리가 제도적으로
만약에 정부가 법을 바꾸지 않고 이 구조로 간다하면
기재부와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거냐 기재부는 주로 예산이죠
뭐 산자부 국토부와 결국 국채, 국공채 발행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할거냐 고민해 봐야 되겠다
그래야 한국은행의 경기역행적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앞으로 한국은행에서 그런 걸 고민을 많이 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됐습니다
부담 드렸습니까?
하나만 더 받을게요
여러분들


Q3) 말씀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답변하기에 좀 빠듯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냐면 강연내용 중으로 잠깐 다시 좀 돌아가서 기후변화 관련해서 잠깐 언급을 하셨는데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해 나가야 될지 장기 경제성장 측면에서 고려를 했을 때는
이제 산업혁명이 이제 진행된 결과로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그런 설명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면 앞으로 이제 기후변화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대응할 때는
그동안의 산업혁명 진행 과정을 되돌려야 되는건지 성장을 저성장으로 끌고 가야 된다는 그런 논리도 있는데
그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간단히 의견을 듣고 싶고요

그리고 두번째 질문은 경제적인 문제하고 이제 정치, 외교적인 문제가 좀 연결되어 있는 사안인데
위원님께서 이제 주미대사를 역임하셨기 때문에 좀 저희들보다는 좀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중국하고 북한과의 대응 문제에 있어서 앞으로 이제 외교적인 그런 어떤
접근 노력들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 독일 통일 전후 과정에서 독일의 총리들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고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를 해오면서
통일 과정에서 큰 역할들을 해왔다는 그런 평가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김양식 전 총리께서 이제 독일의 총리들이라는 책을 1, 2권
내셨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요 그런 측면하고 관련해서
앞으로 경제적인 측면 뿐만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중국하고
북한과의 관계에서 어떤 스탠스 또는 어떤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좀 접근을 해 나가야 되는지 그런 부분을 좀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3) 세미나를 한번 더 해야 되겠습니다
뭐 제가 이쪽에 사실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도 못하고요
제가 저의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게 뭐든지 일이 되려면 incentive competitive를 해야 되잖아요
결국 private interest 추구하고 이건 맞지 않는 거죠 이건
externalilty problem이잖아요 그건 재정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예요
프라이빗 섹터는 invisible hand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기후변화 문제는 저는 visible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재정과 정부가 해 줘야 되는 일이에요
이거는 큰 대의를 아무도 반대할 수 없고 또 지금 인류의 의무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된다고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발 벗고 나서 사람은 극히 적어요
우리 여기 강 강사님 계시지만 예산의 우선순위는 정당에서 오고 국민 여론에서 오는거지
기후 협약에서 오는거는 별로 아닌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문제는 굉장히 느리게 진전이 될 거 같아요

이게 그 fairness라는게 소위 static한 표현이 있어 문제도 있지만
dynamic intertemporal fairness이 있으면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결국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제 여기 참여하는 인도라든가 인도네시아 이 나라들이 앞으로는 더 중요하잖아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냐 이렇게 생각되기도 하겠죠
그래서 힘든 과제고 저는 이게 사실 우리가 말로 코멘트하는 거에 비해서
진전이 굉장히 느리거나 잘 안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중국, 북한 문제는 이건 정말 따로 세미나 필요한 거기도 한데요 아무도 모르죠
그리고 통일은 이게 한반도의 문제가 아니고 또 다른
단순히 동북하에 문제가 아니고 저는 이거는 세계적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통일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입장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그러면 저는 번번히 실패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통일해서 우리가 실질적인 진전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한국인들이 세계 보편적 질서와 가치에 동참해서
이 문제를 볼 때 어느 정도 진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거는 크게 봐서는 미중갈등 구도 속에서
앞으로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갈 것이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게 이제 한 그 aspect라 그러면

다른 aspect는 저는 뭐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가능하면 통일된 한국을 우리 차세대한테 물려주고 싶어요
제가 외교를 해보니까 통일 문제 북한 문제에 아주 커다란 쇠고랑을 발에 첨가한거 같아서
여기에 제약되다 보니까 세계 7위 세계 12위 경제로서의 외교를 지금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북한 문제에 얽매여 가지고 소위 세계라는이 큰 장에 서야 되는데
그거를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 이제 차세대들한테는 이 쇠고랑을 물려줘서 안되겠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을 우리 세대에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만큼 이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치료해야 될 비용은 많아지겠죠
그렇지만 지금도 통일할래 그러면 거의 3분의2가 반대지 않나요?
당위성과 실질 그 겪어야 될 고통과 혼란을 생각하면 다 반대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회가 왔을 때는 우리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기회라 하는게 어떤 기회가 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뭐 북한이라는 사회보면 저게 분명히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사회구나하는건 그런 저도 자주 느낍니다
왜냐하면 유인구조가 잘 맞지 않아요
이제 북한이 장마당 경제가 되었기 때문에 빵이 놓을 때하고 저희가 충성을 바쳐야 할 때가
격리되기 시작했어요 그게 이미 한 12년이 지났거든요 저 시스템이 오래
지속돼서는 없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그렇지만 저 시스템이 더 이상 서스테인업을 해치지 않았을 때 그러면 대안이 뭐냐
그건 북한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런 면에서 저는 남북 국민들 간에는 서로 신뢰가 있어야 되겠다
적어도 대북정책만은 그게 뭐 지금 우파의 정책이든 좌표의 정책이든
국회가 중심이 돼서 그거만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
저는 항상 그런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결국 지금과 같은 인권과 국민들의 인식이 존중되는 시대는
저는 북한 주민의 선택이 어떤 궁극적 지점에서는 중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독일 국민들처럼 나는 서독과 동일하겠다 이렇게 돼야지 그래도 우리 입지가 조금 생기지
그게 없다면 저는 굉장히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차적인 과제는 적어도 대북정책만은 여야 진보 보수를 떠나서
100% 일관되는 정책은 없겠죠 기본적인 몇 가지 포인트만이라도
공통적인 approach를 하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됐는데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내용

급변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경제는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한국경제만의 특이성❗

그리고 우리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짚어보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조윤제 위원의 특별강연📺

 

00:00 인트로

05:47 한국경제의 특이성 

25:58 현대 경제학과 한국경제

28:04 Ⅰ.한국경제: 과거 (~1980년대)

     29:27 한국경제: 과거의 성공요인 (1950년대~1980년대): 천시, 지리, 인화

     30:16 경제 기적의 동인: 1. 천시(天時)

     35:18 경제 기적의 동인: 2. 지리(地利)

     52:27 경제 기적의 동인: 3. 인화(人和)

1:12:11 Ⅱ.한국경제: 현재 (1990년대 이후~)

     1:12:17 대외환경의 변화: 기회와 도전의 혼재

     1:15:54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 부각

     1:17:10 경제외적 기반의 취약성 부각

1:25:10 Ⅲ. 한국경제: 미래

     1:25:38 1. 대전환의 시대

     1:32:21 2. 한국경제의 제도·정책개편: 무엇을, 어떻게?

1:37:49 질의응답


조윤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특별강연을 요약된 버전으로 보고 싶다면?

📌홈페이지 : https://url.kr/cpwfkz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BSuHss3Wd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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