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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과 발전
학습주제
화폐·금융
대상
일반인
설명

제657회 한은금요강좌

일시 : 2016.6.10(금) 14:00~16:00

주제 :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과 발전

강사 : 한국은행  법규제도실 이상민 과장

교육자료
[제657회]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과 발전
(2016.06.10, 한국은행 법규제도실 이상민 과장)

(이상민 과장)
안녕하십니까 한국은행 법규제도실 금융법규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상민 과장이라고 합니다. 뒤에 계신 분도 잘 들리시나요?

오늘은 주제가 평소보다는 조금 생소한 주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통화정책 같은 것도 아니고, 막연히 크게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과 발전'이라는 제목이라서 생소한 주제이긴 합니다.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원래 저희 창립기념일이 6월 12일입니다. 그런데 일요일이라서 오늘 창립기념식 행사를 했습니다. 올해가 66주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날도 겹치기도 해서 오늘 주제가 이렇게 잡혔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오늘의 키워드, 관점입니다. 뜬금없이 웬 관점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 오늘 PPT 자료를 보시면 상당히 표면적인 내용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제도가 어떻게 태동했고, 또 중앙은행제도의 기본이 되는 중앙은행법, 즉 한국은행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 조금 표면적으로 되어 있는데, 제가 오늘 설명을 드릴 때는 위에서 그 표면적인 내용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는 앞으로 중앙은행제도와 관련해서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을 때 여러분들이 어떠한 관점을, "잘 바뀌었네" "이건 조금 문제가 있네"라고 할 수 있는 관점을 얻어가시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나오는 표면적인, 세부적인 내용들에 집중하시면 머리가 아프니, 오늘은 조금 "어떠한 관점에서 중앙은행제도를 바라보는 게 좋을까?"를 중심으로,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관점이 있지만 그중에서 한두 가지 정도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차례(p.2)]
오늘 차례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 성립, 발전으로 이루어지는데, 시기적으로 나누면 태동은 1894년부터 설명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이고, 성립은 1945년부터 1950년에 한국은행법이 제정될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발전은 1962년 한은법 제1차 개정부터 오늘날까지로, 그래서 오늘 약 120년 정도를 달려야 합니다. 1894년부터 약 120년을 숨 가쁘게 달릴 테니, 잘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를 다루는데 왜 하필이면 '한국은행법'이지?" "왜 한국은행법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mandate, 책무가 무엇이냐? 그러한 책무를 하기 위해서 어떠한 정책적 권한을 줄 것이고, 책임을 지울 것이냐? 이러한 것들을 잘 하기 위해서 지배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것들이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적 내용들이 어디에 적혀있냐? 바로 중앙은행법, 우리나라는 한국은행법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성립과 발전 부분에서는 이러한 중앙은행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내용이 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살펴보는 게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를 살펴보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3)]
태동입니다. "중앙은행이 최초로 탄생한 시기가 언제냐?"라는 질문에 예전에는 Bank of England, 1694년에 세워진 영란은행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조금 더 당겨서 Riksbank라고 합니다. 스웨덴의 Riksbank가 최초의 중앙은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왜 이 은행을 만들었을까요? 정부가 자금이 필요하니 Riksbank를 세워서 자금을 대출받고, 또 당시 사업가들의 청산, 결제를 받기 위해 Riksbank를 만들었습니다. 이 Riksbank가 처음,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영란은행입니다. 영란은행도 왜 만들어졌을까요? 결국 이때도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매입해서 자금을 조달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과 같은 공적인 기관은 아니었고, 그때는 'Chartered'라고 하는, 특허를 받은 특허원의 형태로 양 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중앙은행의 기능에는 몇 가지가 있을 텐데, "정부의 은행이다" "은행의 은행이다"라는 기능들이 있죠? 초기의 중앙은행은 이 중 '정부의 은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으로 1913년에 미 연방준비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1913년에 만들어지기 전에 'The first bank of United States' 'The second bank of United Sates'라는 것들이 중앙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한 적도 있지만, 이게 특허기간 20년이 지나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자유은행시대를 지나고, 그런 과정에서 금융위기(Banking Crisis)가 여러 번 발생하면서 "이것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미국에서는 1913년에 FRS, 현재 FRB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은 언제일까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처음은 언제지?"라는 질문에 상당수가 '(구)한국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금의 한국은행이 아니라 일제가 대한제국 말기에 세운 1909년의 (구)한국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맞는 것일까?" 내지는 "이게 바람직한 것일까?"라고 생각해보죠. "우리 선조들은 일본이 이렇게 할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제 개인적으로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저희가 중앙은행제도 관련 자료를 만들면서 '대한중앙은행'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4)]
배경입니다. 이 배경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 대한중앙은행이 어떠한 역사적인 흐름을 가지고 생겼는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까 제가 1894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게 뭘까요? 네, 동학혁명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어디까지 설명드릴까 고민하다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일제가 들어오죠. 그러면서 일본은 김홍집 내각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화폐를 바꿔봅시다"라며 '신식화폐발행장정'이란 것을 만들고 은본위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은본위제란 결국 은화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당시에 돈이 없어서 지금 보시는, 사실 제가 백동화 사진을 찾고 싶었지만 적동화 사진을 넣었습니다. 즉, 싼 동을 이용해서 백동화를 만드는 것이죠. 결국에는 주조차익을 많이 남기고자 이런 백동화가 많이 발행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국민들이 고통을 많이 받게 됩니다.

어쨌든 일본이 이렇게 김홍집 내각을 세우고, 청일전쟁도 이기며 잘 나가나 싶더니, 삼국간섭에 의해 한풀 꺾이고, 그를 만회하고자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니 고종이 불안하겠죠? 그래서 러시아 쪽으로 아관파천을 합니다. 1896년에 아관파천을 하고,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세웁니다. 그런데 러시아로 갔으니 러시아의 영향을 받겠죠? 그래서 러시아의 재정고문이 건의를 합니다. "예전에 일본이 은본위제를 했으니, 우리는 금본위제를 합시다"라고 하고, 고종황제가 이를 받아들여 금본위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금본위제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 '화폐조례'입니다.
1901년 2월에 만들어졌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식화폐발행장정에 의해서 일본화폐가 법적유통이 합법화됨에 따라 우리의 통화주권을 뺐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이러한 통화주권의 회복을 목표했고, 이를 위해서는 금본위제를 해야 하고, 금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을 세우고 관련된 규정들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법령들을 만들어나갑니다. 그래서 화폐조례에 따르면 "화폐는 정부만 발행한다'라며 화폐의 고권 확립 법적 근거도 마련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화폐조례를 다루었으니 '태환금권조례'는 쉽게 말해 "태환은행권을 가지고 오며 금을 바꿔줍니다"라는 것입니다. 금본위제니 태환금권조례도 만든 것이고, 이러한 것들을 중앙은행 설립의 기초로 삼습니다. 당시에는 일부정화준비제도였는데, 이는 금태환지폐를 만들기 위해 일정 부분은 금이나 은 등을 가지고 있는 수량만큼만 금화를 발행하라는 것입니다. 보증준비는 꼭 금화가 아니라도 국채나 상업어음 등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화폐를 발행할 수 있또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5)]
지금 보시는 것이 중앙은행조례입니다. 조례라고 하느 것이 지금의 지방자치단체 조례는 아니고, 그냥 법무용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광무 7년에 칙령 제8호로 만들어졌고, 결국 이 중앙은행조례는 한국에서 중앙은행 법제를 기록한 최초의 법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과거를 계속해서 따라가보면 (구)한국은행이 아니라 고종이 세우려 한 대한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역사를 조금 더 과거로, 조금 더 우리의 자주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용은 읽어보시면 아실 것 같은데, 실제로 총재도 선임을 했습니다. 심상훈 총재도 선임하고 부총재도 선임하고 정관도 만들고, 그야말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할 만반의 준비를 헀는데 결국에는 이것이 실패하게 됩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그러자 고종황제가 "우리는 중립국이오"라고 하려했지만 일본이 가만있지 않았죠. 일본이 한일의정서를 체결하며 "우리는 공수동맹이다"라고 했죠. 그래서 우리가 일본과 한 편이 되게 만들죠.
그리고 이때 부총재인 이용익이 친러파였습니다. 그래서 한일의정서에 반대를 하니 일본에서 부총재를 납치해가고,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 대한중앙은행, 최초의 중앙은행이 실제로 설립하는 일은 실패하게 됩니다.

실제로 되진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 역사의 시작은 이전의 대한중앙은행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6)]
다음으로 대한중앙은행이 실패하고 난 뒤 러일전쟁 이후에 일본이 사실상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되고, 그래서 일본제일은행에 사실상 중앙은행의 기능을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다가 1901년에 화폐조례를 시행하지 못했던 것을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화폐조례 실시에 관한 건'과 금본위제를 위해 옛날 화폐를 교환하자고 하는 '구화폐 정기교환에 관한 건'을 만들었고, 이것이 통과가 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이것들을 일본제일은행, 여기서 '제일'의 '일'은 맨 처음 생겼다는 뜻에서 '一'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긴 은행들은 제이은행, 제삼은행, 제사은행인 방식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업은행에 사실상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의 기능을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화폐정리사무도 제일은행이 하도록, 필요한 돈도 제일은행에게 빌리도록(차용계획), 그리고 정부의 은행으로서 가장 중요한 국고금업무도 제일은행이 하도록 합니다.

사진은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의 사진인데, 혹시 인천에 여행을 가시면 잠깐 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7)]
(구)한국은행이 통상적으로 최초의 근대적 중앙은행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그 설립배경을 이해하시려면 이 사진의 인물을 아셔야합니다. 제가 사진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에 한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이 바라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1905년 12월에 초대 통감이 되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 중앙은행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중앙은행의 경성지점을 만들어 한국의 중앙은행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상 당시에는 은행도 별로 없었고, 그렇게 하면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일본제일은행은 계속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개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것에느 문제가 있다는 여론도 있었기에 이토 히로부미는 "그렇다면 (구)한국은행을 세우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1909년 7월에 한국은행조례가 공포되었고, 다음으로 11월에 자본금 1천만 원의 주식회사로 설립하게 됩니다. 당시 주식회사 설립 총회가 한국에서 있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있었고, 주식의 대부분도 일본 사람들이 소유를 했었습니다. 사실상 주권이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이름만 한국은행이지, 사실은 일본인에 의한 식민지 중앙은행의 전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중역, 중역은 임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모두 일본인이었고, 주주 또한 대부분 일본인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에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죽어서 11월 설립은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p.8)]
다음으로 조선은행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1910년 경술국치로 우리가 일제에 넘어가게 되고, 이제는 '한국은행'에서 '한국'이 필요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일본은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은행에 있던 제도를 모두 가져갑니다. 설립일자까지 소급하고, 그리고 조선은행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짓자면 '식민지 중앙은행'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한 자금을 동원하는 역할이 조선은행에 주어진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서 물가가 안정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1935년부터 일본의 화폐발행 잔액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화폐를 엄청 찍어대기 시작합니다. 왜냐? 전비를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자고 일어나니 식료품값이 뛰어올라 있고, 그렇다고 월급이 올라가는 상황도 아니었죠. 즉, 조선은행은 철저하게 대륙침략을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1.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태동]
중앙은행제도의 태동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꼭 한 번 더 말씀드릴 것은,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시작이 어디에있었냐? 예전에는 일본제일은행부터라고 했다면, 이제는 1903년 중앙은행조례부터, 우리 중앙은행의 역사를 조금 당겨서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0)]
그렇다면 두 번째로,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 부분입니다. 해방이 되면서 모든 제도들을 바꿔야겠죠? 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모든 제도를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이고, 바꿔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군정 시대의 중앙은행제도는 미군정법령 제21호,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당시 아놀드 소장이 공표한 미군정법령 제21호입니다. 이것에 따라 조선은행법의 효력이 계속 유지되게 됩니다. 당시에 유지되고 있었던 식민지 시대의 각종 법령들이 일단은 좀 더 유지되게 되죠.
그렇지만 이것들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중앙은행제도를 바꿔야겠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1945년부터 47년 사이에 정부를 수립하고 중앙은행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당연히 있었겠죠? 그에 대한 큰 흐름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에서 생각하는 방안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 하나는 당시 정부의 재무부에서 생각하는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방안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조선은행 같은 경우 여기 보시는 것처럼 47년에 만든 중앙은행설립대강, 또 중앙은행법 초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조선은행에서 생각했던 중앙은행의 설립 방안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서구식 중앙은행제도'를 도입한다는 것,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재무부는 조금 달랐습니다. 재무부가 만들었떤 금융법규대강 초안, 정부 초안을 보면 아까 말씀드렸던 식민지 중앙은행이었던 조선은행과 유사한 형태의 일본은행법을 모방하는 방안을 내놓게 됩니다.
에컨대 조선은행의 중앙은행설립대강을 보면 자본구성은 반민반관이 하고, 이사회도 만들며, 다만 당시의 한계점은 발권부-은행부로 나눈 것으로, 결국 조선은행 분들은 상업은행의 역할도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48년 말에는 중앙은행법 초안이 만들어졌다고 나와있는데, 사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저희가 현재 알지 못합니다. 다만, 48년 하반기 쯤에 '중앙은행제도의 연구(기이)'라는 연구자료가 남아있습니다. 조사부 자료인데, 그 자료를 보면 "중앙은행은 어떠한 것이겠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구성에서 정부와 금융기관이 같이 출자해서 만들자는 것, 그리고 핵심적인 것으로는 '통화심의회'라는 정책심의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심의회는 심사도 하고 자문도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제도는 결국 중앙은행제도를 독립성있게 가져가려는 노력이었다고 보입니다.
반면 재무부 구상안은 조금 달랐습니다. 내용들을 보면 극단적인 것으로 "금리를 조정하려면 재무부장관의 인가를 받아라" "인사권과 감독권은 재무부장관이 갖는다" "정부관련기관의 사업체대출은 재무부장관이 승인하면 대출하라"라는 식의 내용이었으니, 이것들은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왜 이렇게 재무부안이 만들어졌을지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은행법이 그랬습니다. 당시 일본은행법은 제2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제2조에 "일본은행은 오로지 국가목적의 달성을 사명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시상황에서 개정된 일본은행법은 그야말로 중앙은행을 정부에 종속되는 기관으로 만들었고, 재무부는 그런 중앙은행을 만들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서로 합의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1)]
이런 와중에 당시 재무부장관이었던 김도연 재무부장관은 재무부장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재무부안이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김도연 재무부장관은 미국 유학파입니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감옥에 갔고, 20년에 출소한 뒤 미국에 유학을 가서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아메리카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즉, 김도연 장관은 미국에서 본 것이 있는 것이죠. 중앙은행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있는데, 재무부안을 보니 아닌 것 같은 것이죠. 그렇다고 조선은행안을 봐도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은행안의 경우 화폐발행액을 최고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재무부장관이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김도연 재무부장관이 봤을 때는 이 또한 아닌 것 같은 것이죠. 그래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1949년 6월에 미 연준 앞으로 전문가 파견을 요청합니다. 2달 뒤 49년 8월에 뉴욕 연준에 있었던 Bloomfiled 박사와 Jensen 두 분의 파견이 결정되었고, 이 두 분이 9월에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자문도 받고, 한국의 상황도 조사하고, 또한 법률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으니 1950년에는 Fraenkel이라는 분을, 이 분은 독일에서 공부하셨다가 미국에 가신 분인데 대륙법과 미국법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에게 법률적인 자문도 받은 뒤 1950년 2월에 보고서가 완성되었습니다.

즉, 중앙은행법, 한국은행법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내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이 Bloomfield 보고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2)]
오른쪽에 계신 분이 Bloomfiled 박사인데, 한국에 오셨을 때는 사진처럼 나이가 드신 분은 아니었고, 한국에 오셨을 때 나이가 36살, 1914년생인가 해서 36세였습니다. 194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미국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파라과이, 과테말라, 필리핀,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등 신생국가에도 중앙은행을 만드는 일에 도움을 많이 주었었고, 그런 경험을 첨가해서 우리나라 중앙은행법을 만들게 됩니다.
이 Bloomfield 보고서의 원문을 보고싶으시다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여러 책자 단행본들을 모아놓은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끝나고 오시면 제가 구체적으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Bloomfield 보고서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해방 후 새로운 중앙은행제도 마련을 위한 중앙은행법 제정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Bloomfield 박사는 중앙은행제도의 개편을 목표하면서 목적을 몇 가지 세웠습니다. 그중 "한국에 진정한 중앙은행을 만들어야겠다"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러면서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한 것인데, 그렇다면 진정한 중앙은행을 만들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당시에 중앙은행의 역할을 한 조선은행이 있었는데 중앙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겠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식민지 중앙은행으로서의 잔재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통화량을 조정한다거나 신용통제 등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고, 심지어 상업은행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은행이면서 다른 은행들과 같이 경쟁하는 상업은행이기도 했으니 이것이 진정한 중앙은행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간섭들이 되게 많았습니다. 조선은행 시절에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중앙은행이 휘둘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겠다"라고 개편의 목적을 잡았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3)]
이것은 Bloomfield 보고서의 큰 목차입니다. 총 6 파트로 되어있는데, 그 중 메인은 이 파트입니다. 중앙은행법에 대해 건의를 하는 것이죠. "우리가 보니 한국의 경제상황은 어떻고, 또한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법은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라고 하고, 추가적으로 조선은행의 재무를 어떻게 개편할 것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통화정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까지 담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4)]
Bloomfiled 박사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이러한 세 가지 상황에 대해 고려했다"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 두 번째는 한국경제의 과도한 변동성과 불확실성, 세 번째는 한국경제구조와 금융체계의 후진성입니다. "이 세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합니다.
Bloomfield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앙은행법이란 것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상황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인플레이션 부분은 파란색으로 적었는데, 당시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전쟁통에 조선은행은 화폐발행을 남발했고, 이후 아무런 재원도 조달할 수 없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는데 돈이 어디있겠습니까? 세금은 어디서 거두었을까요? 정부가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세금을 걷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어려웠으니 정부는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차입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는 당시의 통계인데, 그중 유의 깊게 보셔야 할 것은 1945년 9월의 소비자물가 지수가 12.4였습니다. 그런데 약 4년이 지나 1949년에는 257.2입니다. 21배가 뛴 것이죠. 만약에 1945년에 라면이 1,000원이었다면 4년 만에 2만 원이 넘어버린 것입니다. 엄청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거액의 정부 세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금을 거둘 곳은 없는데 나라는 살려야겠으니 계속 세출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세출을 어떻게 합니까?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차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행들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니 여신이 급격히 많아짐에 따라 신용팽창에 의해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경제구조도 당시에는 농업국가였고, 금융시장의 경우 자본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아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5)]
그래서 Bloomfield는 새로운 중앙은행법을 건의했고, 이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중앙은행법 내용을 살펴보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중앙은행 재무 개편을 해야겠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조선은행을 청산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은행은 한국은행이 세워지기 전의 중앙은행이었습니다. 그러니 화폐도 발행을 했을 테고, 그 화폐를 한국은행이 인수하고 그 대가로 조선은행은 일정한 자산을 양도받는 식의 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선은행을 청산시키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가까운 장래의 통화신용정책에 대해서도 건의하고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고 그에 대해 "정부세출을 삭감해라" 등의 정책적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한국은행법이 결국은 Bloomfield 보고서를 기초로 만들어지죠.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6)]
1950년에 국회에 제출되어 그 해 5월 5일 공포가 됩니다. 그리고 5월 26일부터 시행되게 됩니다.
한국은행법 제정 경과 및 의의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부터는 한국은행법이 만들어져서 제10차 개정이 되는 2016년까지 약 60년 정도를 달려갈 것인데, 현재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중앙은행제도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볼 때 아까 '관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관점이 무엇일지와 같은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한국은행법이 만들어졌을 때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른쪽에 계신 분은 초대 한국은행 총재인 구용서 총재이십니다. 구용서 총재는 일본 유학파죠? 사실 아버지께서 친일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갚으시려고 열심히 일을 하신 분이고, 이 구용서 총재가 1950년 6월 12일에 한국은행이 처음 창립되면서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한국은행 창업에 제하여"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통화가치의 안정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당시의 상황은 엄청난 인플레이션 속에서 한국경제가 상당히 망가진 상태였었고, 이것들을 잡기 위해서는 통화가치의 안정, 지금 말로는 '물가안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그것들이 맨 밑에 '경제안정이라는 당면한 긴급성'이란 말을 통해 물가안정이 시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결국 중앙은행의 mandate, 책무와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은행법 입법정신의 두 번째는 '금융의 민주화'입니다. 그런 금융의 민주화를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 '민주적 기구를 창설하는 것' '경제적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등의 부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입법정신은 금융의 정치적 중립입니다.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초연한다' 등의 표현이 있고, '일정한 자치권한하에 금융통제기능을 발휘한다'라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이 왜 중요할까요? 중앙은행제도가 만들어지는 토대와 관점은 한국은행법이 만들어질 당시 '금융의 민주화'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금융의 정치적 중립'이죠. 요즘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율성 등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중앙은행제도를 바라볼 때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어떠한 제도가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관점에서 위에서 바라보면 평가할 수 있는 것이죠.
금융의 민주화입니다. "이것이 금융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바라봤을 때 올바른 것인가?"라고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 세 가지를 다시 말씀드리면, "중앙은행은 어떤 책무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 당시 가장 시급했던 것은 통화가치의 안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어떠한 제도가 있을 때 "중앙은행의 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것인가?" "중앙은행의 책무에 맞는 일인가?" "중앙은행이 해야 하는, 해도 되는 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중앙은행의 책무, 목적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도가 바른 방향인가?"라는 것은 "금융의 민주화 측면에서 맞는 것일까?"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율성 측면에서 맞는 것인가?"라는 관점, 포인트를 가지고 앞으로 내용들을 같이 보시면 이해하실 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7)]
제정 한국은행법 구조입니다. 총 6개 장으로 되어있었고, 119개 조문입니다. '자본금, 이익금과 적립금'이 있고, '기구와 관리'란 것도 있는데, 이 기구와 관리는 무엇일까요? 아까 잠시 말씀드렸는데, "중앙은행제도의 기본적인 내용들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지배구조'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중앙은행을 어떠한 기구가, 어떠한 사람들이 만들어갈 것인가에 해당하는 내용이 제3장 '기구와 관리'에 해당하는 내용들이죠. 그리고 제4장은 '한국은행의 업무'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주요한 내용들이 될 것입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8)]
그러면 제정 한국은행법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볼 떄 아까 말씀드린 관점에서 "왜 중요하지?" "취지가 무엇이지?"라는 관점을 가지고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법적 성격인데, 자본금 15억 원에 100% 정부출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추가적으로 자본금 15억 원이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고민되실 텐데, 전에 있던 조선은행의 40년 역사상 가지고 있었던 자본금의 30배 이상의 금액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큰 금액이죠? Bloomfield 박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이 있으므로 자본금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전시 목적, 심리적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중앙은행이 설립되었는데 자본금이 없거나 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자본금을 15억 원, 당시 조선은행이 가졌던 자본금 최대액의 30배 이상 금액으로 구성되었고, 전시적인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1962년 제1차 개정 당시 삭제됩니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설립목적을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책무입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무엇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가 하면, '물가안정' '통화가치의 안정'이 주어진 책무입니다.
당시 두 번째 책무는 '은행, 신용제도의 건전화'입니다. 당시 은행들이 제대로, 건전성 있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한국은행에 주어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대외결제준비자금의 관리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목적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목적들은, 중앙은행에게 주어진 책무라는 것들은 앞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들을 살펴보면 될 것 같고, 사진에 '건전통화(健全通貨)'라고 되어있죠? 지금은 한국은행 본관 입구에 '물가안정(物價安定)'이라고 되어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19)]
그렇다면 두 번째로 중요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한국은행이란 조직은 이러한 역할을 하시오"라는 것을 누가 결정해야 할까요? 지배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금융통화위원회가 만들어집니다. 기능은 당시에 설정한 세 가지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 의사결정하는 정책결정 전문기구이고, 한국은행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Monetary Board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집행부, 감독부, 조사부, 감사 등에 대한 포괄적인 지시감독권을 가지는 금통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금통위의 성격에 대해 당시 논란이 조금 있었습니다. "금통위가 한국은행 내부에 있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정부조직법에 따른 행정위원회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논거들이 있었죠. 대체로 이런 주장은 정부 쪽에서 많이 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분들이 생각한 구조는 맨 위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에 한국은행이 있는 것이고, 아까 포괄적 지시감독권이 있다고 했으니 쉽게 말씀드리자면 금통위는 한국은행의 조직이 아니라 정부의 조직이라고 하는 주장이죠. 그러한 근거로 재무부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도록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외부에 있는 재무부 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는 것이죠. 또한, 정책수립과 집행기관,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의 관계이니 이것은 정부조직법에 따른 행정위원회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중앙은행 직원인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당시 금통위는 여전히 한국은행 내부의 기관이라고 주장하는데, 한국은행법 제3장에 보면 당시 '기구와 관리'라는 란에 금통위가 한국은행의 하나의 기구로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금통위가 별개의 독립된 정부에 속한 조직이었다면, 지금의 금융위나 금감원처럼 별도의 정부조직이었다면 별도의 법률도 있어야겠죠?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산도 한국은행과 같이 짰고, 게다가 자료를 통해 당시 Bloomfield 박사의 생각을 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누가 소집하냐? Governor, 즉 총재가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누가 위원회를 대표하는가? 총재가 대표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또한 정관에도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를 대표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근거들을 봤을 때 "한국은행 내부의 기구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금통위가 한국은행 내부의 기구인지 정부 측에 속한 것인가는 당시에 상당히 예민한 문제였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것들이 제 6차 한국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전부 해소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조금은 금통위에 성격에 대해 다르게 보시려고 하는 분들이 계신 것은 사실입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0)]
계속해서 금통위의 구성인데, 금통위의 구성이 왜 중요할까요? 이 내용이 왜 중요한가 생각해보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표면적으로 보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고, 거기에 재무부장관이나 한국은행 총재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관점'에 대해 말씀드렸었습니다. "지배구조를 어떠한 사람들로 채우는가?"라는 문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재무부장관이 의장이고 한국은행 총재나 상공회의소, 금융기관, 기획처경제위원회 등도 있습니다. 뒤에 1차 개정 때 보시면 알겠지만, 이 구조가 크게 변화됩니다. 향후에 만약 한은법이 개정된다면, 중앙은행제도에서 중요한 내용인 지배구조가 개편된다고 했을 때는 그냥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온다고 생각하실 게 아니라, 그런 내용을 접하시면 '중앙은행의 독립성' '중앙은행의 자율성'이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시고, 그러한 측면에서 판단해보시면 그 속의 내용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정부 사람이 세 분이죠? 재무부장관, 농림부장관, 기획처경제위원회에서 추천한 분까지 세 분이고, 그리고 정부의 입김에 관여되지 않은 분이 네 분이 있습니다. 균형을 이루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진은 처음 만들어졌었던 초대 금융통화위원회 때의 그림인데, 이렇게 모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통위원 임기에 대해 교차 임명, 소위 교차임기제라고 하죠? 임명 지연에 따른 공백 방지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요? 여러 가지 관점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정책의 일관성'입니다.
교차 임명이 무엇인가 하면, 임기가 4년입니다. 처음 임명했는데 4년 후에 임기가 끝나서 한꺼번에 사람들을 모두 교체합니다. 그렇다면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Bloomfield 박사는 제안을 합니다. 모두 임기를 4년으로 하는데, 맨 처음 선임되는 위원 중에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추천한 사람은 3년으로, 농림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은 2년으로, 기획처 경제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은 1년으로 한다면 순차적으로 바뀌어서 한꺼번에 바뀌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저희 금통위원 네 분이 한꺼번에 바뀌셨는데, 물론 저희가 한국은행 집행부에서 충분히 서포트를 하고 능력이 검증되신 분들이 오기 때문에 문제가 크게 있을 것이라 보진 않지만, 제도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교차임기제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정한은법에도 있었고, 제6차 개정 때도 이런 것들이 반영되었죠.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에서도 이러한 교차임기제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명지연에 따른 공백방지를 위해서 30일 내에 임명하라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간 금통위원이 임명되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는 규정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가 그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교체되고, 교체가 되지 않음으로써 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1)]
다음으로 제정 한국은행법의 내용 중 여신 부분입니다. 이 부분들은 제가 상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그 취지를 두고 설명하면서 빠른 속도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Bloomfield 박사가 말하길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에 대해 일정 부분 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대출기간도 제한을 하고, 대출갱신도 1회로 한정하는 등 제한을 두는 방안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건의 내용들이 수용되었지만 여신에 대해 조사하는 '융자위원회 규정'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금융에서 별도로 정하는 정도로 되었습니다.

뒤에서도 여신제도가 쭉 나올 텐데, 그 제도들을 보실 때 당시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2)]
다음으로 대정부 여신입니다. 대정부 여신에서도 사실은 인플레이션이 많았고, 당시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이 대정부 여신이었고 정부 세출이었기 때문에 제한을 해야 했지만, 당시 Bloomfield 박사가 인정했던 부분은 국채시장이 미성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채조달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웠고, 그러니 이 부분은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했습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한국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고쳐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었습니다.
다만, 정부대출 금액이 무한정할 수는 없으니 국회 승인한 한도 내에서 하도록 했고, 제정 한은법이 수정되며 현행 한국은행법 제75조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3)]
다음으로 정부대행기관에 대한 여신도 규정하고 있는데, 결국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정부대행기관에 대한 여신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Bloomfield 박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정부대행기관'이라고 늘어놓을 수 없으니 개념을 정의하고 구체적인 기관들을 열거했는데, 제정 한은법에서는 그러지 않고 정부가 지정하는 곳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Bloomfield 박사가 생각하기에, 정부대행기관에 대한 여신을 할 때는 국회가 보증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정부대행기관에 대출을 해줬는데 그게 부실여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부 당국자의 압력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죠. 이런 것을 보고 정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보증하라고 제안한 것이죠. 그렇지만 실제로 한은법이 제정됐을 때는 정부가 보증하는 것으로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4)]
신용통제에 대한 내용인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행 책무 두 번째, 은행, 신용제도의 건전화 측면에서 신용통제를 하게 했고, 그러한 통제수단으로서 대출통제나 공개시장조작 등이 있었습니다. 조금 독특한 제도로는 정부예금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간 이체 명령 제도도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되어있습니다. 결국 정부예금이 금융기관 측에 있다면 만약 인플레이션이 될 것 같을 때, 시중에 돈이 많다고 판단될 때 이걸 빼서 중앙은행으로 강제로 이전시키는 것이죠. 그러면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겠죠? 이러한 독특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이 오백만 원짜리 증권인데, 당시의 통화안정증권은 아니고 1990년대에 발행했던 것인데 참고로 넣어봤습니다.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는 것도 문항에 규정했었는데, 그 이유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개시장조작을 할만한 증권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는 증권이 필요하니 한국은행이 발행해서 공개시장조작을 할 수 있는 증권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대부분이 수용되었지만 Bloomfield 박사가 건의한 지준 무이자는 수용되지 않았고, "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라는 정도로, 지금도 이자를 지급하지는 않지만 이자를 지급할 수는 있도록 되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5)]
외환업무와 관련된 부분인데, 외환관리 규정은 "두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진은 'greenback'입니다. 미국 재무부가 1862년에 이자가 붙지 않는 은행권 형태의 정부증권을 발행했는데, 여기에다가 법화로서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즉, 화폐랑 똑같이 된 것이죠. 암달러 시장에서 이것들이 좀 팔렸었는데, "당시 한국의 외환사정이 굉장히 비정상적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적어놨는데, 당시에는 달러가 귀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업자가 정부로부터 수입허가서를 받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이러이러한 물품을 수입하겠습니다"라고 신고하고 수입허가서를 받으면 그걸 가지고 달러를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달러를 900원에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900원을 주고 달러를 사죠? 그렇다면 환율이 900원이니 1달러는 어디에서든 900원이어야 하는데, 이 수입허가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수입업자에게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수입허가서를 받지 못했죠.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이 달러를 팝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2,100원에 팝니다. 앉은 자리에서 900원에 사서 2,100원에 파는 것이죠. 정상적인 외환시장이 아닌 것이죠. 산 사람은 2,100원에 샀습니다. 손해볼 것 같죠? 그 달러를 들고 암달러 시장으로 갑니다. 거기에 가면 얼마일까요? 3,000원이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900원을 벌었죠. 이렇게 비정상적인 시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외환 관련 규정을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보아 규정하지 않았고, 추후에 외환시장이 정상화되면 그때 규정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조선환금은행'이라고 되어있는데 지금 외환은행의 전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선환금은행의 경우에는 당시 조선은행이 100%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쪽에서 외환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Bloomfield 박사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을 따로 할 필요도 없고, 규모의 경제를 위해 한국은행과 합병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합병한 뒤 조선환금은행에서 하던 일을 한국은행의 '외국부'란 곳에서 하는 것으로 되었고, 대부분 수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행법에 규정되었는데, 다만 수용되지 않은 것은, Bloomfield 박사는 "금화나 은화 등의 매매 및 수출입 관련 규정은 금통위가 정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헀는데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정하는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6)]
상업은행 업무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은행은 정상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다른 상업은행과 같이 경쟁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했죠. 그렇다면 한국은행은 상업은행 업무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Bloomfield 보고서를 보면 일반 개인이나 법인과는 거래를 금지했습니다. 상업은행 업무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외환거래를 해야 하고, 또 긴급한 경우에는 대출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이런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습니다.

제정 한은법에서는 진정한 중앙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안들을 모두 수용하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7)]
또 당시 한국은행법에는 재미있는 규정이 있었는데, 감독부란 지금의 은행감독원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조사부라는 것이 법정부서로 되어있었습니다. 즉, 법에 있으니 이 부서는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사부라는 곳은 금통위에 금융경제와 관련된 자료도 제공하고, 통계도, 지금의 경제통계국이죠? 현재로 말하면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정책국, 경제통계국, 경제교육실 등을 모두 담당하는 조사부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환금은행이 하던 외환업무를 수행하는 외국부가 법정부서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금융경제전문가를 양성해라"라는 규정도 한국은행법에 두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성립(p.28)]
여기까지 잠깐 Summary를 간략하게 하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간략하게 정의를 해보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행법을 살펴볼 때는 이 사람이 생각나야 할 것입니다. Bloomfield 박사이죠. 이 분이 와서 한국은행법을 만들 당시의 인플레이션이 만연했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은행이 제대로 된 중앙은행으로 만들어질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산출물이 중앙은행법이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 핵심적인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지배구조에서는 금통위를 두도록 했습니다. 금통위가 왜 중요한가 하면,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7명이라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위원회 제도를 통해서 한다면 정치적인 압력 등에서 초연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의 민주화 측면에서, 한국은행의 독립성 측면에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러한 지배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법이 만들어질 당시에 이 세 가지 설립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는 아까 잠깐 보셨던 구용서 총재의 담화문에서 본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으로, 앞으로 중앙은행제도의 기본적인 관점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중앙은행의 책무, 당시로서는 물가안정, 두 번째는 금융의 민주화, 세 번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이 가장 기본 정신, 밑 바탕에 흐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이제는 발전에 대해 볼 텐데, 발전을 볼 때는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제도들이 잘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29)]
세 번째 챕터입니다. 마지막 챕터이기도 한데,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입니다. 여기서는 한국은행법 개정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는 한국은행법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아까 말씀드린 세 가지 관점에서 간략하게 보며 "잘 된 것이네" "이건 조금 아쉽네" "앞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네"라는 평가를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들을 다 알기 보다는, 그러한 관점들을 얻어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나왔을 당시의 목표입니다. 1962년이겠죠?
이건 무엇일까요? IMF입니다. 제가 계속 한국은행법 개정을 말씀드리면서 이걸 보여드리죠? 뭔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국회 사진이 나와있습니다. 앞으로 강의를 들으시면서 이게 무슨 의미였는지 제가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맨 아래에는 리먼 브라더스입니다. 이 네 가지 그림은 한국은행법 개정과 연관성이 있는 그림들입니다.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라는 것을 의문을 갖고 들으시면 덜 지루하지 않을까 해서 넣어보았습니다.

한국은행법은 총 10번에 걸쳐 개정되었습니다. 많습니다.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이 그림들과 연관된 1차 개정, 6차, 7차, 8차 개정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10차까지 개정이 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0)]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1961년에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아우르는 기구가 되었죠. 약 3년 동안의 군정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1961년 5월에 군사정변이 있었고, 1961년 11월에 재무부가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만듭니다. "이렇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62년 3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 통과되면서 62년 5월에 공포되고 시행되었습니다.
조금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은 당시에는 전쟁이 끝난 다음입니다. 즉, 전쟁 국면에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전쟁은 항상 인플레이션을 수반하게 됩니다. 군비를 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상황을 수습하고, 또 은행제도가 잘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1950년대 초에 그러한 기반들이 잘 되어있진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출범한 정권에서 정부는 주도적으로 경제정책을 수행하는데, 정부가 전면적으로, 앞에 나서는 그러한 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경제성장정책을 시행할 때 돈이 필요하겠죠? 그러니 내부적으로는 각 금융기관들로부터, 특히 한국은행의 돈이 필요했을 테고, 국내 내자를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외국에서도 돈을 조달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들을 잘 뒷받침해주는 것이 당시 금융이 가졌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고, 중앙은행제도도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1)]
금통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중앙은행의 독립성, 중립성 측면에서 바람직하게 바뀌었을까요?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운영'이란 글자가 중간에 들어갑니다. 왠지 격이 살짝 떨어져보이지 않습니까? 기능이 축소됩니다. 통화, 신용, 외환 세 가지 목적 중 하나가 떨어져나가죠. 목적조항 역시 같이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환정책과 관련된 기능들이 재무부로 이관됩니다. "외자 동원을 위해서"라서 생각하시면 아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구성도 바뀝니다. 재무부장관이 의장이 되는 것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농림부장관 추천이 2명으로 늘어납니다. 상공부 장관 추천이 2명, 경제기획원 장관 추천이 1명으로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9명 중에서 정부측 인사가 몇 명이죠? 금통운위가, 금융통화위원회는 약칭해서 금통위라고 하듯 금융통화운영위원회도 금통운위라고 합니다. 금통운위가 과연 중앙은행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바르게 되었을까요? 당시 시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헀지만, 현재에서 보기에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재무부장관의 재의요구권까지 만듭니다. 즉, 금통위에서 의결했는데 재무부장관이 "이건 아닌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의결하세요"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거기서 만약 금통위가 종전과 같이 유지한다면 각의가, 정부가 최종결정권을 부여하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관점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하진 않은 결과였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2)]
총재 임명도 재무부장관이 제청하도록 합니다. 감사는 재무부장관이 임명합니다. 금방 평가하실 수 있겠죠?
당시 은행감독기구가 조금 강화되었습니다. 임원에서 부원장도 한 명이 추가되고, 또 총재가 은행감독원장과 협의해서 고급직원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해서 은행감독기구는 조금 강화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3)]
재무부장관의 업무감사권이 신설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율성 측면에서 금방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보증채를 인수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됩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것이기도 하죠? 조금 아쉽습니다.

제1차 한국은행법 개정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행법의 입법정신이었던 금융의 민주화 측면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조금 어렵습니다. 물론, 당시에 있었던 경제 상황,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저는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아쉽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독특한 것 하나를 참고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무자본특수법인으로 변경되었다는 내용인데,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행은 처음에 15억 원의 자본금으로 만들어진 주식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발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본금이 왜 필요할까요? 회사에서는 자본금을 왜 충분하게 쌓아야 할까요? 사실 자본금이란 것은 이 회사가 안정적이라는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발권력이 있으니 큰 의미가 없죠. 게다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5억 원은 Bloomfield 박사가 말한 것처럼 전시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없애자"라고 했고, 그래서 자본금을 없애고 무자본특수법인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B/S를 보면 자본 항목에 0원으로 되어있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잉여금 항목으로 법정적립금 등을 쌓아가고 있으니 자본금은 없지만 잉여금 형태로 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4)]
제2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심플합니다. 정부의 형태가 변경되죠? 내각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뀝니다. 그래서 아까 '각의'라는 말이 나오던 것이 당시에는 내각책임제였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당연히 용어가 바뀌었습니다. 내각 수반은 대통령으로, 각의는 국무회의, 각령은 대통령령 같은 식으로 바뀐 것이 제2차 한국은행법 개정이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5)]
제3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제3차 한국은행법 개정의 배경에는, 당시에는 아직까지도 농업국가였습니다. 그래서 농업에 대해 지원할 필요가 있었고, 그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농협입니다. 그래서 농협이 이 업무들을 잘 할 수 있도록 수지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협중앙회와 농협조합에 차등지급준비율을 적용하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일반 은행의 경우 예금을 받으면 당시 기준에서 저축성예금의 18%를 떼어 중앙은행에 맡겨야 합니다. 은행이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겠죠? 요구불예금은 당시 기준으로 32%를 떼어 중앙은행에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농협의 수지개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준율을 낮춰주면 됩니다. 그래서 농협 같은 경우에는 저축성예금이 들어오면 일반 은행의 경우 18%를 한국은행에 맡긴 반면, 농협은 15%만 맡기라고 바뀝니다. 그리고 요구불예금의 경우 다른 곳에서는 32%를 받은 걸 농협은 25%로 바뀝니다.
바람직할까요? 지급준비제도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현재로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엔 어렵습니다. 당시에 금통운위도 이러한 법 개정에 대한 답신을 이렇게 합니다. "지준제도의 본래의 기능, 예금자보호와 신용통제수단에 비추어 볼 때 개별 금융기관에 차등지준율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수금융기관이 필요로 하는 특정자금의 수요는 재정자금이나 한국은행 차입을 통해 조달함이 좋겠다"라고 했지만, 이렇게 답신을 했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개정안이 마련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mandate 측면에서 본다면, 은행, 신용제도의 건전화 측면에 해당하죠. 그런 측면에서 신용통제수단으로 지준제도를 부여받았고, 그것들이 적절하게 운영되는 것은 한국은행의 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개정도 한국은행의 책무에서 본다면 바람직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6)]
제4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당시의 배경을 보면, 1970년대 이후에 우리 경제가 성장을 합니다. 엄청 성장하죠? 대외진출도 합니다. 수출도 많이 하고, 건설도 하러 나갑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필요한 돈이 금융에서 뒷받침을 해줘야겠죠?
그리고 금융규모가 확대되면서 제2 금융권도 커집니다. 그러니 이제 한국은행법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로 경제여건이 변화된 것이고, 금융상황도 변화가 되었고, 그러한 상황에 한국은행법이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법이 개정됩니다.

첫 번째로 정책수단을 정비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대외진출이 확대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할인대상 어음을 확대하는데, 예를 들어서 금융기관이 어음을 한국은행에 가지고 와서 "이것 좀 할인해주세요"라고 하면 돈을 받아갈 수 있는데, 그 대상이 되는 어음이 예전에는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광산물이었다가 그 대상을 확대합니다. 임산물도 집어넣고, 건설, 기타, 용역도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그 어음을 한국은행에 가지고 와서 재할인을 받아 이러한 분야에 대출을 더 해줄 수 있겠죠.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제2 금융권이 발달했다고 했습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 등도 발전하면서 "이러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유동성을 조절할 수단이 필요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통화안정계정을 설치합니다. 통화안정계정에 적용대상기관을 일반적인 은행 외의 금융기관, 제2 금융권까지도 필요하다면 "통화안정계정에 얼마를 예치해 둬"라고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동성 조절을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급준비율 하한을 폐지합니다. 그 전에는 10%~50%까지의 Band로 설정했었습니다. 예금을 받으면 무조건 최저 10%를 맡겨야 하는 하한을 폐지합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공급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게 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7)]
두 번째로 제3차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서 은행감독원의 독자성이 강화되었습니다. 임원도 늘어나게 되었고, 직원임명 방법에서도 원장이 추천하도록 해서 은행감독원의 독자성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정적립금 제도도 개선해서 적립한도를 폐지하고, 적립비율을 조금 높이게 됩니다. 이건 한국은행 입장에서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순이익금이 발생한 것의 5%가 아니라 10%를 쌓으면 적립금이 자본항목 쪽에서 더 늘어나겠죠? 그만큼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하다 보면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을 관리하고자 외화자산을 운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손실이 날 수도, 이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의 buffer를 마련하는 것은 한국은행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정적립금제도가 개선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8)]
제5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계기를 보시면 금융자율화 추세가 진행됩니다. 예전에는 금리자유화 같은 것들이 그런 추세 중 하나였겠죠? 그런 추세에 맞추어 한국은행의 예산, 결산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정부투자기관 예산회계법에서 제외된 것을 계기로 예결산제도를 개선합니다. 그래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했던 것을 금통운위가 독자적으로 승인하도록 했고, 대차대조표 공고기일도 늘렸습니다.
추가적으로 한국은행법상 금융기관을 조정하는데, 시,군 농협을 제외합니다. 이게 금방 이해가 가지 않으실 수 있는데, 당시에 농업협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시,군 농협은 지사무소화가 되면서 법인격이 소멸됩니다. 그러한 법 개정에 맞춰 제외한 것이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한국은행의 책무 입장에서 조금은 바람직하지 않았던 차등예금지급준비율 제도가 폐지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39)]
제6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이 순간 아까 두 번째 그림에서 보셨던 IMF가 생각이 나셔야 합니다. 87년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6.29 선언이 있었고, 그 전에 응축되어 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그런 것들이 6.29 선언을 통해서 경제 및 금융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게 되었죠.
87년 7월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한국은행을 헌법기관으로 하자"라는 것이죠.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죠. 이걸 기점으로 향후 10년 동안 계속해서 논의하게 됩니다. 이 성명서 발표를 기점으로 87년부터 89년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래서 88년에는 한은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87년부터 89년까지, 제 개인적으로는 1단계라고 하는데, 1단계 논의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충돌되었고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5월에 경제학자 41인이 성명합니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면 좋겠다"라는 성명으로 공론화가 되면서 보시는 것처럼 95년 2월에는 경제학자 1천인 한은법 개정 성명 발표 등의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또 다시 공론화가 되었는데, 또 다시 한국은행과 정부 측의 이견으로 수그러지게 되죠.

그러다가 97년 1월에 이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87년부터 한국은행법 개정 논의가 수면 위로 떳다가 들어갔다가 하는 반복 과정에서 97년 대통령연두기자회견에서 금융개혁추진을 발표합니다. 그래서 금융개혁을 이렇게 추진하겠다는 안들이 만들어지는데, 여기 97년 6월 한은법 개정 관련 직원 총회라는 사진 처럼, 사진에는 모두 한국은행 직원들입니다. 조금 과격해보이죠? 왜 그랬을까요? 당시에 추진하려고 했던 정부안이 금융감독원을 떼가고 한국은행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을 중심으로 독립성 측면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견해가 달라 "장기과제로 삼읍시다"라고 했는데, IMF가 터지고 IMF 양해각서의 내용 중 금융개혁 추진이 조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997년 12월 31일에 개정이 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0)]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6차 한국은행법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목적조항이 변경됩니다. Mandate의 변화죠. 아까 맨 처음에 외환이 빠져나갔습니다. 통화신용정책 부문, 물가안정 부문, 통화가치 안정 부문과 은행, 신용제도의 건전화가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가안정 하나만 남습니다. 대신 중립적 수립과 자율적 집행이 명시됩니다.

두 번째 큰 변화는 무엇이었을까요? 은행감독기능이 분리됩니다. 은행감독원이 분리되고, 오른쪽에 보시는 것은 시문입니다. 제목이 '떠나며, 남으며'입니다. 1998년에 조병화 시인께서 지은 시를 기준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큰 틀이 나가게 된 것이죠.

정책결정기구 개편도 있었습니다. '운영'자가 빠지고 그냥 '금융통화위원회'가 됩니다. 의장도 총재님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구성도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면서 정부추천 인원이 축소되죠. 이러한 측면은 통화신용정책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 내부의 정책결정기구임을 명시적으로 하게 됩니다. 예전과 같이 금통위가 정부조직법에 따른 정부조직인지, 한국은행 내부의 조직인지에 대한 논란들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1)]
이것은 중앙은행제도 지배구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책결정기구, 한국은행에서는 금통위죠? 금통위의 변화가 어떻게 되어왔는지 정리해본 것입니다. 6차때 보면, 1차 개정 이후 변화된 내용들이 있는데 평가가 되시죠? 제7차 개정을 보면 한은 부총재가 들어갔습니다. 뒤에서 또 설명을 드릴 텐데,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2)]
통화신용정책 운용방식도 바뀌어서 물가안정목표제를 매년 설정할 수 있도록 됩니다. Mandate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책임성도 강화가 되는데,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매년 1회 이상 작성해서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굳이 영어로 'accountability'라고 표기했는데, 책임, 즉 형사책임과 같은 responsibility의 의미가 아니라 '설명'의 의미란 것이죠. 정책결정기구로서 국회에 우리의 통화정책에 대한 설명을 하는, 그러한 accountability의 면에서 책임성이 강화됩니다.

내부경영방식 또한 바뀝니다. 총재 임명에 있어서 재경원장관이 제청하던 것도 없어지고, 감사 또한 재경워장관이 임명하던 것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아까 말씀드린 관점의 측면에서 평가가 쉽게 될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3)]
제7차 개정입니다. 97년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법이 개정되고, 여러 가지가 떨어져나갔는데,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금융공동검사를 요구했는데, 2002년 6월에 금융감독원에서 거부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97년에 있었던 개혁의 미비점들이 발생하고, 이것들에 대해 "한 번 개선합시다"라며 국회가 나섭니다.
왜 국회가 중요할까요? 처음으로 '의원 입법'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누가 했을까요? 정부 발의였습니다. 1차부터 6차까지는 모두 정부가 "이렇게 바꿉시다"라고 했다가, 7차부터는 국회의원이 "이렇게 바꿉시다"라고 한 것입니다. 방향성이 어땠을까요?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첫 번째, 한은부총재가 금통위원 겸무를 하게 됩니다. 대신 증권업협회장 추천이 폐지되고, 왜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정책결정을 하는 것은 금통위이고, 집행을 하는 것은 한국은행 집행기구입니다. 그 연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중기 물가안정목표제로 이행합니다. 통화신용정책의 파급기간은 상당히 장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는 매년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바람직하다고 하기 힘든 것인데, 이것이 바람직하게 바뀝니다. 이것은 책무수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4)]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총괄, 감시 기능이 부여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IMF와 월드뱅크의 권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중앙은행의 감시에 대해 법적인 책임과 권한을 명시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가 있었고, 그래서 법정 내용으로 한국은행이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가 이렇게 나뉘게 됩니다.
이게 우리나라 지급결제제도의 전체적인 큰 흐름도입니다. 맨 위에 한국은행이 있죠? 거액결제시스템이 있는데, 이것이 한국은행이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그리고 소액결제시스템, 증권, 외환 등과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여기에 참가하는 기관들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운영하는 기관들에 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도록 하는 것이죠.
왜 이러한 감시가 필요할까요? 결국 지급결제제도에 연결되어 있는 여러 시스템이 최종적으로는 한국은행을 통해 결제되고, 한국은행은 그에 대해 안정적으로 지급결제제도가 돌아가도록 위에서 보아야 하는, over-sight, 감시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권고가 있어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5)]
한국은행 예산 자율성도 확대되었습니다. 모든 경비예산에 대해서 재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던 것을 급여성 경비예산으로 줄입니다.

그리고 검사 및 공동검사 요구 제도가 보완되어서 예전에는 "응하여야 한다"라는 것을 규정에 "지체없이 응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로 바꾸었습니다.

아래에는 아마 '새출발의 다짐'일 것입니다. 박승 총재님께서 아마 법 개정이 이루어진 뒤 표비를 세웠는데, 혹시 한국은행 식당을 가시는 길에 자세히 보시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7차 개정의 역사적 의의를 간략히 말씀드리면, 한은법 제정 이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진정으로 개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6차 개정과 달리 7차부터는 서로 이해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의 산물이었습니다. 선진화된 중앙은행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중립성과 효율성이 강화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6)]
8차 개정입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보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2008년 9월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도 중앙은행이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법 개정안들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논의 과정이 약 2~3년 정도 이루어지다가 20011년에 상호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는 것이죠. 그래서 이를 계기로 법이 개정됩니다.

이 8차 개정은 어떤 측면과 관점에서 바라보면 될까요? 바로 '책무'입니다. 금융안정 책무이죠. 한국은행의 책무는 이전까지 물가안정이었습니다. 이제는 금융안정의 책무가 추가됩니다. 1조 제2항에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라며 금융안정에 대한 책무가 명시됩니다.
이러한 금융안정 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잘 하고 있는지 금융안정상황보고서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와 함께 1년에 2번씩 국회에 제출하라고 합니다. 의사록 전문도 필요하다면 제출하라고 바뀝니다. 한국은행의 책무가 추가되면서 어떤 제도들의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죠.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7)]
정보접근성이 제고됩니다. 금융안정 책무를 수행하라고 했으니 자료를 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자료제출 요구대상 기관을 확대합니다. 그리고 검사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예전에는 "지체없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지체없이 언제까지 응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했습니다. 대통령령으로 1개월 이내에 응하도록 합니다.

긴급유동성지원제도도 개선합니다. 금융안정을 위해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유동성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제도 개선을 하게 되죠. 대출담보를 확대합니다. 그리고 긴급여신과 영리기업 여신 요건도 완화합니다. 또 증권대차 방식도 추가하고, 일중에 결제자금이 부족하면 일시적인 결제부족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추가합니다. 결국에는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들을 추가적으로 마련하게 됩니다.

지급준비제도도 개선하게 됩니다. 당시에 은행들이 지준에 해당하는 예금보다는 금융채를 많이 발행했습니다. 금융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신용팽창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예금 채무 외에 금융채 같은 것도 포함할 수 있도록 해서 유동성 조절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게 됩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8)]
추가적으로 위변조된 한국은행권은 한국은행이 집중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주화 훼손 처벌 조항 등, 순이익금 적립 제도도 개선하게 됩니다.

8차 개정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행의 책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49)]
제9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19대 국회 들어와서 의원입법 형태로 여러 개가 발의되었고, 잘 아시는 것처럼 이제는 국회의원님들께서 열심히 발의를 하십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개정안이 나오고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재위 대안이 마련되고, 총재임명절차에 국회 인사청문, 화폐단위 조항 신설, 기념화폐 발행 근거 조항, 그리고 외화표시 자산을 운용할 때 금통위 의견을 들으라는 것들이 추가됩니다.

이것도 관점에서 볼까요? 이는 금통위에서 총재님의 역할은 크죠.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분이 되는 것은 한국은행의 책무를 수행하는 관점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그걸 검증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책무를 수행하는 측면이나 독립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50)]
마지막 10차 한국은행법 개정입니다. 올해, 2016년에 개정되었고, 19대 국회에서 처음 21개의 법안이 올라왔습니다. 각종 법안이 있을 때마다 제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법안이 올라왔을 때 한국은행의 의견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이런 측면에서 괜찮습니다" 등을 쓰는 것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적인 내용을 갖는 것은 총 21개의 법안 가운데 주화 훼손 처벌 강화와 관련된 것 하나가 있고, 나머지는 법제처에서 시행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관련입니다. 법률이 한자로 되어 있던 것을 한글로 만들고, 법률용어도 순화되는 등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주화 훼손 처벌 강화와 관련해서 "이렇게 까지 강화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한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양주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인데, 10원짜리 동전이 있지 않습니까? 옛날 10원짜리 2,500만 원 어치를 녹입니다. 그래서 구리괴로 만들죠. 이걸 얼마에 팔았을까요? 5,700만 원에 팝니다.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겠죠? 지금은 10원짜리의 크기가 작아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대응해서 주화 훼손 처벌이 강화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발전(p.51)]
한 50년 정도를 열심히, 빨리 달린다고 했는데 벌써 52분이네요. 이 그림들을 보시며 1차 개정, 6차 7차, 8차, 10차 개정. 돌아가시면 내용을 한 번 쓱 보면서 한국은행의 책무 수행의 관점에서, 금융의 민주화 관점에서,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자율성 측면에서 제도들을 다시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p.52]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정리를 드리면, 1903년 중앙은행이, 우리의 역사가 1903년까지 내려갔습니다. Bloomfield 박사의 보고서를 개정해서 한국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의 입법 정신은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책무 수행을 잘 하자. 금융의 민주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자율성. 이러한 측면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10번의 한국은행법 개정 과정에서 어떤 개정은 그러한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어떤 것들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행법의 발전, 중앙은행제도의 발전은 관계된 사람들이 잘 논의해야 하겠지만, 결국에는 국민적 합의, 국민적 Consensus가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오신 상당수 분들이 다음 세대를 짊어지실 분들입니다. 중앙은행제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앙은행법은 또 개정되어갈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다양한 관점에서 보시고 평가하시고, 여론을 만들어가실 텐데, 오늘 말씀드린 세 가지 측면에서 앞으로 중앙은행제도가 바뀔 때마다 평가하실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관점들을 제가 제공해드렸다고 한다면 오늘 강의는 저로서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장시간, 원래 유능한 강사는 10분 전에 마쳐야 한다고 했는데 추가되어 버렸네요. 오늘 금요일인데 즐거운 주말 보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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