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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퇴계선생의 경제사상
학습주제
경제이론·교양
대상
일반인
설명

 제658회 한은금요강좌

ㅇ 일시 : 2016.6.17(금) 14:00~16:00

ㅇ 주제 : 퇴계선생의 경제사상

ㅇ 강사 :  성균관대학교 이치억 교수(퇴계17대종손)

교육자료
[제658회] 퇴계선생의 경제사상
(2016.06.17, 성균관대학교 이치억 교수)

(이치억 교수)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이치억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런 분위기에 약합니다. 높은 데 계시고 내려다 보시는데, 저도 여기 높은 곳에 올라와야 하는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하고 긴장되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방금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이라고 소개받았는데, 종손은 아직 아닙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종손이란 어느 훌륭하신 분의 맏아들로 내려오는 것인데, 그 맏아들로 내려온 후손 중 살아있는 가장 윗 세대, 즉 저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종손이시고 저는 다음 대에 종손이 됩니다. 그래서 빨리 종손이 되어서 좋을 일이 없습니다. 그렇죠? 빨리 종손이 되면 불효이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늦게 종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퇴계 선생의 경제사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금요강좌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 어떤 것을 공부하시는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셔서, 제가 전공이 유교철학이고, 그중에서도 퇴계 선생의 사상인데 경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으니 그렇다면 퇴계 선생의 경제관 "퇴계 선생이 어떤 경제를 꾸리셨는가?"라는 주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해, 전문적이진 않습니다. 여러분은 전문적인 경제를 공부하시는 분들인데, 전문적인 경제라기보다는 퇴계 선생의 경제관, 우리나라의 철학자 중 한 분이시죠? 그 경제관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퇴계 선생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알긴 아시겠지만, 관심 있게 보시진 않으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퇴계 선생의 경제관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는 저도 처음 소개해드리는 것이고, 아마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 부분을 보시면 "퇴계 선생이 이런 면모가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경제'의 의미를 아시죠? 경제의 의미, 정의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 경제의 정의가 뭡니까? 수입과 수출? 생산? 무언가를 생산해서 사용하고 분배하는 행위들, 그러면서 재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앞에은 '경제'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전통식의 어원, Economy가 아닌 우리 전통식으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인데 이건 잘 아실 것입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온다고 하죠? 경세제민에서 앞 글자만 따온 것입니다. 이 뜻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경제는 고효율, 저비용 혹은 우리가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고유의 사고방식에서 경제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큰 틀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p.1_Contents]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내용입니다. 이게 순서는 아닙니다. 퇴계 선생에 대해서는 우리가 매일 얼굴을 접하고 있죠? 매일 지갑에서 꺼내서 쓰다 보면 접하는데, 퇴계 선생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아마 관심을 덜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퇴계 선생의 경제사상, 경제사상이라기 보다는 경제관 내지는 경제생활을 직접적으로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퇴계 선생의 사상들이 오늘날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에 대해 순서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런 내용을 가지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p.2]
퇴계 선생인데, 저는 이렇게 퇴계 선생의 이름을 부르면 안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순한 것이고, '휘자(諱字)'라고 합니다. 꺼릴 휘(諱)를 써서 '꺼리다'라는 뜻인데, 조상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의미이죠. 여러분들도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되잖아요? 부모님의 부모님의 이름을 불러도 안됩니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조상의 이름 또한 불러도 안되는 것인데, 그러한 제약이 있지만 퇴계 선생은 1501년에 태어나서 157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퇴계 선생의 영정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잘 접할 수 있는 퇴계 선생의 영정이고, 어떤 분들이 이 영정을 보고 저와 닮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당신을 보고 그린 것 아니냐?"라는 분들도 계신데,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태어나기 1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퇴계 선생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왼쪽의 작품은 '퇴계선생영정'이유태 화백이라는 분이 1974년에 지폐로 만들기 위해 한국은행에서 의뢰를 해 그려진 것이고, 이걸 지폐에 사용하고 현재 한국은행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른쪽 그림은 '퇴계선생진영'이라는 그림입니다. 이건 해산 유숙이라는 분이 1800년대의 분인데, 오원 장승업의 스승으로 알려진 화백이 그린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실제 모습을 보고 그렸을까요? 아닙니다. 퇴계 선생을 못 만났죠. 그때까지 전해지던, 누군가가 퇴계 선생을 그렸던 '퇴계선생진영'이라는 그림이 있었고, 그걸 묘사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즉, 그걸 베껴서 그린 그림이고, 현재 가장 퇴계 선생의 원래 얼굴에 가까운 그림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두 분이 닮았나요? 저는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큰 화면으로 보니 전혀 안 닮은 것 같진 않습니다.

[p.3]
퇴계 선생의 일생을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1501년, 연산군 7년입니다. 경상도 예안, 지금의 안동에서 출생하셨습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위인들 중에 이렇게 홀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주 못난 사람들 중에도 홀어머니 밑에서 큰 경우가 많긴 한데, 홀어머니 밑에서 크면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정말 큰 인물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못난 인물이 되기도 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성장을 한다고 하네요. 혹시 여러분들이 정말 훌륭한 자녀를 두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34살에 대과에 급제합니다. 34살이면 이른 나이는 아니죠? 우리나라의 최고 천재, 우리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나요? 이 분도 역시 한국은행 소속 모델로 활동하시는 분인데, 율곡 선생이시죠. 율곡 선생도 23살에 합격하셨는데,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퇴계 선생은 그보다 11년 늦은 34살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어서, 대과에 급제해서 관직에 나가고자 응시해서 대과에 간 것이 아니라 어릴 적에 워낙 가난하게 살다 보니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어쩔 수없이 과거에 응시해서 관직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지방관으로 활동하길 원했지만 그 꿈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앙에서 30대와 40대를 관직생활로 보냅니다.

퇴계 선생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으로는 가장 권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리학이란 것은 다른 말로 주자학인데, 주자가 집대성한 새로운 유학의 학문 체계입니다. 이 성리학의 기본적인 텍스트는 주자의 글이겠죠? 주자의 책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퇴계 선생이 주자의 책을 봤던, 처음으로 접했던 때가 언제였을까요? 이처럼 대가가 되려면 아주 어린 시절에 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관직에 있으면서 빨리 잡으면 30대 후반, 늦게 잡으면 43세에 '주자전서'를 우리나라에서 교정해서 간행하는데, 그 일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주자학이란 것을 접합니다. 즉, 그 이전에는 주자학이 아니라 그냥 유학이었죠?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한 유학에서 주자학의 대가가 되기 위해 주자학을 처음 접한 나이가 43살이고, 그때부터 주자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서 50대 중반 이후에 주자학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니 굉장히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도 성취를 이뤘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30대, 40대에 관직에 있으면 공부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계속 낙향을 해서 학문에 힘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50대가 지나서야 낙향해서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때 이후, 퇴계 선생의 왕성한 학술 활동과 저술은 50대 이후, 60대, 70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죠. 대기만성형이고, 늦은 나이에도 학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만학도의 정신도 보여집니다. 그리고 선조 2년, 1570년에 70세의 나이로 타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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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어떤 곳에서 살았을까요? 퇴계 선생이 사시던 곳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여기는 퇴계 종택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저희 집입니다. 제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고, 지금도 저희 아버지가 계시고 저도 한 달에 한 번은 갑니다. 조금 크죠? 어떤 분들은 이 사진을 보면 "청소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걱정하시는데, 청소하기 힘듭니다. 옛날에는 여기서 같이 살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같이 살던 하인들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되는 세상이죠.
그런데 이곳이 퇴계 종택이고, 퇴계 선생의 후손이 사는 집이니 퇴계 선생도 여기서 살았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 집은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고 150년이 지나서 지어진 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지어진 이유는, 그때는 가족이 많았고 또 퇴계 선생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유림들이 돈을 모아 크게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죠.
퇴계 선생이 실제로 살던 곳은 이 세 채 중 바로 이곳입니다. 가장 작은 이 집에 사셨고, 이 집은 퇴계 선생의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집입니다. 이 집은 바로 여기에 등장합니다. 이 그림이 겸재 정선 화백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라는 그림인데, 이 그림 안에 있는 집, 잘 안보이시죠? 이 집이 바로 이 집입니다. 퇴계 선생이 이렇게 작은 집에 사셨는데, 이 집이 퇴계 선생이 50대에 지은 집입니다. 50대에 짓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도 이 집에서 돌아가셨죠.
그런데 이 집은 사실 후대에, 한 10여년 전에 복원한 집입니다. 옛날의 장소와 크기를 고증해서 복원한 집이고, 실제로 살던 집이 남아있습니다. 여기는 아주 유명한 곳인데, 여러분도 아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저희 고향으로 착각했습니다. 저희 고향에서는 바로 나오는데, 도산서원입니다. 천원권 지폐, 구지폐의 배경이 이 도산서원인데, 도산서원 중 전체가 아니라 이 부분입니다. 뒤에 있는 건물들은 퇴계 선생이 살아계실 때는 없었습니다. 퇴계 선생 사후 5년 후에 서원이 되면서 만들어진 집이고, 퇴계 선생이 살던 곳은 가장 정면에 있는 집입니다. 그래서 이 곳을 '도산서당'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아까 계상서당보다는 크죠? 그렇지만 도산서당도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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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퇴계 선생의 사상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도산서당이 60세에 완공이 됩니다. 4년에 걸쳐 겨우 완공했는데, 완공 후에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내가 본래 생각한 집은 작은 집이었는데, 이렇게 입제(제사를 지내가 위해 열흘 정도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목욕재계와 마음을 다스리는 기간)하는 사이에 목공이 멋대로 높게 지어버렸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부끄럽다"라고 말한 모습에서 퇴계 선생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참 검소한 분이셨겠죠?
우리 선현들, 퇴계 선생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시대의 선비들을 보면 굉장히 검소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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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퇴계 선생의 반전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시죠. 여러분들의 자료에도 있지만 전답 2,953.7두락, 3,000두락이라고 해두죠. 두락이란 말은 생소하시죠? 요즘 말로는 마지기라고 합니다. 3,000마지기라면 어느 정도일까요? 한 마지기가 보통,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00평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약 60만 평의 농장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죠. 60만 평이면 어느 정도일까요? 상상이 가시나요? 여의도가 몇 평인지 아십니까? 여의도가 89만 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의도의 2/3에 해당하는 땅을, 그것도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전답을 3,000마지기 소유하셨죠. 그래서 지금도 어떤 분들은 그렇게 부자인지, 재산이 많은지 물어보시는데,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안 남았습니다. 산은 조금 있지만 전답은 없고, 또 하나, 제가 개인적으로 상속받을 재산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남았을까요? 종중, 종중 공동명의로 된 재산들만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재산이 땅, 요즘은 건물이겠죠? 요즘으로 치면 빌딩 몇 채 정도는 되는 재산이죠. 그리고 옛날에 재산으로 치던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뭐죠? 노비입니다. 노비가 몇 명이었을까요? 367명입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의 재산을 기록한 것일까요? 1586년입니다. 아까 퇴계 선생이 1570년에 돌아갔다고 했으니, 그 후 퇴계 선생의 손자, 손녀들이 재산을 나눌 때 상황을 기록한 분재기입니다. 이 기록은 1611년의 기록입니다. 즉, 나누는 것은 1586년에 나누었고, 기록은 1611년에 한 것입니다. 즉, 퇴계 선생이 돌아가신지 15년이 더 지나서이지만, 그래도 퇴계 선생이 살아계실 때는 300여 명 정도는 있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요즘은 공직자들이 모두 재산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걸, 물론 학계에서는 모두 공개되어 있습니다. 또 아는 분들은 모두 아시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이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노비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렇다면 퇴계 선생이 노비 300명의 수발을 받으며 사셨을까요? 노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두 종류의 노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집에서 같이 사는 노비, 또 하나는 따로 살면서 농장, 전답을 경작하는 노비입니다. 전자를 솔거노비라고 하고, 후자를 외거노비라고 하는데, 거의 전부가 외거노비였다고 보면 됩니다.

퇴계 선생의 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아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넀다고 했죠? 상속받은 재산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중 약 절반 정도가 결혼할 때 처갓집에서 받은 재산입니다. 장가를 잘 가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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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셨던 분인데, 그렇다면 이 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1545년에 쓴 편지입니다. 아들을 처가살이 시켰고, 아들이 처가에 사는 것이 힘들어서 집에 가면 안되겠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본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편이 그러니 어쩔 수 있느냐? 참아라. 가난한 것은 본래 선비의 모습이니 그에 신경써서 무얼하겠느냐" 뭔가 모순이 느껴지지 않나요? 아까 실제 재산의 규모와 생활에서 모순이 느껴집니다.

[p.8]
또 하나를 볼까요? 흉년이 들었습니다. 식구는 많은데 양식이 떨어져서 굶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철저히 절약해서 올해는 어떻게든 연명해야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러한 큰 토지를 가진 분이 연명을 걱정합니다. 이게 1553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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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본래 집에 부리는 하인이 없어 땔나무를 하기도 부족했다'라는 내용입니다. 땔나무를 하기도 부족할 정도의 어려운 생활입니다.

[p.10]
또 다음입니다. 1562년인데, 이때는 만년입니다. "추위가 두려워서 털옷을 안 입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양털 하나로 20년을 입다 보니 헤져서 이제는 입을 수 없다. 새로 살려니 밑천, 돈이 없다" 이러한 생활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양털 옷 하나 살 정도의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퇴계 선생이 굉장한 구두쇠였을까요? 구두쇠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구두쇠는 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재물을 쌓아놓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재물을 아끼는 것이지, 진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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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퇴계 선생이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았는지 보면, 그 당시는 지금과 차원이 다른 시절입니다. 당시는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이었죠? 조선시대 농경사회는 한 번 흉년이 들면 굶어죽기 일쑤인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퇴계 선생의 어떤 글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근심 중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중에 근심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근심'이란 무엇일까요? 사실은 이 말이 퇴계 선생이 일생을 돌아보고 스스로 자신의 일생이 어땠는지 쓴 묘비명 96자 중 한 구절입니다. 근심 중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중에 근심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근심도 하다가, 즐겁기도 하다가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때 선비들의 근심이라 함은 자신에 대한 근심은 아닙니다. 무엇이죠? 세상에 대한 근심입니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재산이 많거나 누리는 게 많아서 즐거운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학문을 하고 싶은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 속에 세상을 바라보면 항상 근심이란 것이 있었다"라는 것이 퇴계 선생이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한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만약 그 정도의 대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그래도 굶을 것을 걱정하거나 털옷을 하나 살 정도의 걱정을 하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까 다 같이 잘 살자는 의미에서, 만약 그 정도의 대 토지를, 수입원을 가지고, 노비를 착취했다면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착취를 하지 않습니다. 노비에 대한 인간적 배려가 있었던 것이죠. 이에 대한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노비를 어떻게 배려했는가에 대한 일화입니다. 1568년, 68세에 증손자가 태어납니다. 증손자가 어릴 때 어머니, 퇴계 선생의 손부죠? 어머니에게서 젖이 잘 안 나옵니다. 어린 시절에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로 유아 시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퇴계 선생의 손자는 안타깝겠죠? 자신의 아들이 잘 못먹어서, 영상실조로 죽게 생겼으니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자신에게 유모를 한 명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거절합니다. 갓 출산을 한 유모가 있긴 하지만, 이 유모를 겨울에 아이를 두고 서울로 보내면 어떻게 되죠? 노비의 아이는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이니 같이 보내면 엄마도, 아이도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며 말립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퇴계 선생이 여종을 서울로 보내지 않고, 퇴계 선생의 증손자는 살지 못하고 죽게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비정한 할아버지가 있을 수 있냐?"라고 할 수 있는데, 퇴계 선생이 증손자를 잃고 난 후에 굉장히 슬퍼합니다. 그러나 슬프더라도 노비일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알고있죠? 노비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양반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노비, 종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권을 배려할 정도라면 노비에 대해 착취를 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또 하나의 원인은 아까 보았듯이 스스로의 검소함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퇴계 선생의 논이 윗쪽에 있는데, 물은 위에서부터 내려오죠? 밑으로 물을 보내야 하는데 퇴계 선생의 논이 위에 있으니 아래에 있는 다른 이웃들의 논에 물이 안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퇴계 선생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자신의 논을 밭으로 바꿔버립니다. 밭으로 바꾸면 밖에서 들어오는 물이 자신의 논을 거치지 않고 내려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밑의 논들이 물로 적셔질 수 있지만, 밭이란 것은 논에 비해 수확량이 현저히 적습니다. 즉, 논을 밭으로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인데, 그러고라도 백성들을 위해 논을 밭으로 바꿔버리죠.

[p.12]
우리 과거의 선비들이, 제가 지금 여기 내려온 이유는 동영상을 하나 시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선비들은 나눔을 어떻게 실천했을까요? 이와 관련된 동영상이 하나 있는데, 이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영상)
때는 16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남에 큰 흉년이 들자 굶어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당시 최부자는 사옹원 참봉을 지낸3대 최부자 최국선이었다. 그는 과감히 곳간을 헐었다.최국선의 행장에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어찌 집안재물을 아껴 저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배부른 자가 배고픈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 점에서 최부자집은 여느 부자집과 달랐다. 풍년의 기쁨을 함께 누리면 흉년의 아픔 또한 이웃과 함께 감수하는 것이 부자의 도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유명한 말이 생긴다.
부자들에게 흉년은 재산불리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형편이 다급한 농민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헐값에 농토를 내놓았다. 이렇게 사들인 논을 흔히 '죽빼미논' 또는 벼 한 섬으로 샀다고 해서 '한 섬 논'이라 불렀다.
그러나 최부자집은 부자들의 삶의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최국선의 무덤 비문에서 우리는 최부자집의 또 다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각종 담보문서들을 불태워버림으로써 담보 잡힌 이들의 불안을 덜게 해준 것이다. "갚을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없어도 갚을 것이고, 갚지 못할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있어도 갚지 못할 것이다" 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는 또 하나의 가훈이 생겼다. 재산증식에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다.

적어도 조선시대 때의 진정한 선비, 양반들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선의식(共同善意識)'이 확실이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치억 교수)
최부자는 잘 아시죠? 보통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라는 말이 있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도 부자가 3대를 가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있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부자가 3대 정도에는 망해줘야 다른 사람들도 부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은가 싶은 것이죠.
부자가 3대를 못 가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 대에는 자신이 열심히 일구어 놓잖아요? 정말 고생해서 일구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고생을 알고 열심히 잘 유지합니다. 하지만 3대 때는 그걸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최부자집은 12대를 갑니다. 400년, 12대를 가는데, 12대 째 때에 망합니다. 왜일까요? 윗세대의 고생을 몰라서? 나라가 망하면서입니다. 마지막 12대 최부자, 최준이라는 분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부산에 무역회사를 하나 세웁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온 수익을 독립자금으로 대다가, 한 푼도 빠짐없이 상해 임시정부에, 김구 선생에게 갑니다. 그런데 그 독립자금을 대다가 회사가 부도가 납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재산을,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야 하는 일이 생겼죠. 12대 째에 망하게 되는데,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죠? 해방 이후에도 재산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산은 어디로 갔을까요? 최준 선생의 마지막 남은 재산을 털어서 학교를 짓습니다. 그게 대구대학, 설립 당시에는 대구대학이었고 지금은 영남대가 그 학교입니다. 그래서 정말 마지막까지, 12대를 내려온 집이 없어질 때까지 부자로서의 나눔의 실천을 했던 최부자인데, 이런 모습이죠. 최부자뿐만 아니라 진정한 선비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퇴계선생은 왜, 어떻게 검소와 배려를 하며 나눔을 실천했을까요? 퇴계선생의 나눔, 나눔을 실천하는 데에는 철학적인 기반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이걸 뭐라고 부르죠? 8글자로 사회지도층, 고위층이 나눔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행위를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하죠. 그렇다면 이 분의 사상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였을까요? "내가 누리는 지위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거기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었을까요?
과연 그것이었을지 생각해볼 텐데, 주제가 퇴계 선생의 경제사상이다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유교와 관련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유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어떤가요? 자신이 유교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분? 한 분도 안 계신가요? 안 물어볼 테니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유교가 싫으신 분들? 이래서 강의가 어려워지는군요. 그런데 오늘만큼은 유교에 대해서 조금 열린 자세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저만큼 유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굉장히 유교에 반감을 가지고, 그랬겠죠? 어릴 때부터 저런 문화에서 살았고, 그런 것을 강요당하다 보니 유교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반감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원래는 다른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앞으로 이런 유교 문화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유교 문화를 없애버려야겠다"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먼저 알아야겠죠.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넘게 공부해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유교에서 없앨 것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한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없앨 것이 하나 있다. 논문이다. 유교는 논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던데, 제가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는 이렇게 부정적으로 본다고 손을 드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점이 걸려있어서 그런 것인지 손을 들지 않던데, 오늘은 좀 많으십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요즘은 유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제가 한 달에 두 번씩 글을 쓰는 곳이 있는데 가끔씩 글을 써서 보내면 포털에 실어서 올리고, 또 저에게 보내주는데, 제가 거기 댓글을 보고 아주 충격을 먹었습니다. 나중에 동영상에서는 삐- 처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안 좋은 사상이 있나"라는 식으로 입에 담지 못할 댓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마음을 열고, 이제는 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마음을 열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부자도 그렇고, 퇴계 선생도 그렇고, 이런 사회 속에서 검소, 나눔, 배려를 실천하고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블리스 오블리주일까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그 합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합당한 의무를 가리키는 말인데, 과연 그 의무에서 한 것일까요? 저 같이 삐딱한 사람의 눈에서 보면 "과연 의무감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도덕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습니다. 도덕이 우리의 의무일까요? 그리고 그 의무감으로 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의무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또, 하다가 멈추겠죠? 의무감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퇴계 선생의 인생 철학은 어떤 것일까요? 이 '나눔'에는 철학적 기반이 있을 텐데, 그걸 저는 인생 철학이라고 봅니다. 이걸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나는 사람다운 삶을 살겠다"라는 목표의식이었습니다. 그걸 유학의 용어로는 '인(仁)'이라고 했죠. 글자의 생김새 그대로 '사람 인(人)'에 '둘 이(二)'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한자에서 둘이란 것은 다수를 의미합니다. 정확히 숫자로 2가 아니라 다수이고, 그래서 다수가 하나가 되어 서로 어울리고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라는 사상을 퇴계 선생뿐만 아니라 모든 유학자들이 펼쳤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다움도 사람다움이지만 '나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이걸 논어에 나오는 말로는 '위기(爲己)'라고 합니다. 남을 따라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태어난 모습으로 나답게 사는 것' 이 두 가지가 유학의 핵심 사상이자, 퇴계 선생이 추구했던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유학이란 것이 도덕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론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p.13]
그렇다면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까 유학에 우호적이라고 손을 드신 분들은 아마도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하실 테고, 또한 우호적이지 않다고 손을 드신 분들 중 많은 분들도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말에 긍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한 번 손을 들어볼까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아니면 사람의 본석은 악한 것 같다? 강의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요.
성선설을 주장한 인물이 맹자이고, 성악설은 순자가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손을 들지 않은 분들 중에는 "사람의 본성은 백지상태이다. 어떻게 끌고 가는가에 따라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 도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옛날 고전에도 나옵니다. '성무선무악설'이라는, 고자라는 인물이 주장했습니다. 어쨌든 유학의 정통은 사람의 본성을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즉 맹자와 수자를 병렬로 놓기 쉽지만, 성선과 성악은 병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선이 기본이고 성악은 유학이라기 보다는 법가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사상이죠.
그런데 이 성선, 성악을 나눌 때 말하는 '본성'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정리하기 어렵다면, 사람이란 것이 워낙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정리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동물의 본성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하고 말이 있습니다. 소와 말이 같은가요, 다른가요? 소와 말의 본성은 다르겠죠? 크기는 비슷하지만 소는 힘이 센 대신 느리고, 말은 소보다는 약하지만 빠릅니다. 그 본성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그 본성이란 것이 무엇이냐? '어떤 존재가 그 존재일 수 있는 근거' 그리고 '그 존재가 그렇게 살아가는, 혹은 작동하는 양식' 이런 것을 본성이라고 하는데, 방금 말씀 드렸듯이 소는 속도는 느리지만 밭을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본성이 있고, 말은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람의 본성을 우리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고 했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많이 들어보셨죠? '인(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사랑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랑이죠. '의(義)'는 우리가 '정의(正義)'를이야기하죠? 옳은 것을 행함으로써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禮)'란 배려하는 것, '지(智)'는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의예지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요? "인의예지는 하나의 규범이 되고, 우리는 인의예지를 실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의예지는 우리의 도덕률이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유학에서 보는 것은 "인의예지는 사람의 본성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이 곧 인의예지라고 보는 것입니다. 일단 간략하게 먼저 '인'이란 것이 사람, 사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본성이긴 하지만, 간략하게 "인(仁)이 사람의 본성이다"라는 것을 한 번 보도록 하죠.

(동영상)
우리가 관찰할 대상은 토끼들입니다. 먼저, 콜레스테롤 2%가 포함된 먹이를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삼겹살 4kg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토끼들은 앞으로 5주 동안 이런 높은 콜레스테롤의 먹이를 먹게 됩니다. 토끼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었고, 한 그룹에게는 먹이를 줄 때마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등 애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맹수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실험을 시작한 첫 주, 사람들이 우리로 다가가자 친밀군의 토끼들도 아직은 특유의 경계심을 보이면서 품에도 안기려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군 토끼들은 맹수들의 울음소리에 잔뜩 긴장해있습니다. 먹이를 줄 때도 손으로 쳐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우리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주 후, 같은 먹이를 먹은 두 그룹이지만, 애정을 주었던 친밀군과는 달리 스트레스군 토끼 8마리 중 4마리가 혈관이 막혀 각막이 혼탁해지는 등 안구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지금 스트레스군에서마 나타난 것은 콜레스테롤이 동맥의 벽에 침착되면서 혈관이 더 빨리 막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시간적으로 더 빨리, 그리고 더 심하게 막히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두 마리는 녹내장에 이르렀고, 이런 상태가 한두 달 지속되면 안구가 파열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정을 준 친밀군에서는 스트레스군에서 나타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친해진 친밀군 토끼들은 전혀 거부감 없이 사람들의 품에 안깁니다. 식욕도 왕성합니다.
실험 5주 후, 지방간 증상을 보인 스트레스군에 비해 애정을 준 친밀군의 간은 비교적 깨끗합니다. 색깔부터 다르죠. 토끼들의 혈관입니다. 똑같이 콜레스테롤이 많은 먹이를 주었지만, 혈관벽에 온통 지방이 낀 스트레스군에 비하면 애정을 받은 친밀군은 비교적 혈관 상태가 깨끗한 편입니다.

(이치억 교수)
약간 불인(不仁)한 실험이죠? 토끼들을 잡아서 죽였으니, 자 여러분은 이걸 보고 무엇을 느끼셨나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랑이란 것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도 미칠 수 있는, 그들에게도 있는 본성이란 것이죠. 본성이란 그대로 행하면, 그대로 할 수 있으면 사람이 편안해지는 것이고, 그걸 거스르면 고통을 받고 힘들어지기 때문에 본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까 '인의예지'가 모두 사람의 본성이라고 했습니다. 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까 봤듯이 남들이 고통받는 상황, 동물까지도, 여러분들이 동영상을 보면서 또 한 가지를 느끼셨죠? 토끼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마음 속으로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 불쌍한 마음은 왜 드는 것일까요? 여러분 안에 '인'이라는 사람의 본성이 있는데, 토끼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마음 속의 인이라는 본성이 그걸 거부하는 것입니다.

'의(義)'라는 것 또한 본성입니다. 옳은 것, 요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죠? 섬마을에서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거나, 강남역 살인사건,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 등을 뉴스로 접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좋겠다? 아니죠. 그런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고, 또 화가 나죠. 그렇다면 그러한 화는 왜 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유학자들은 "사람의 본성이 그렇게 시킨다" "의(義)라는 본성이 불의(不義)한 모습을 볼 때 화가 나도록 시키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예(禮)'를 지키는 것은 과연 본성일까요? 예는 그냥 정해놓고 지키는 것 아닌가요? 예가 본성이라는 것을 간단한 사례로 보자면, 우리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누군가가 같이 탑니다. 그때 서로 인사를 하면 괜찮은데,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의 그 오묘한 분위기를 느껴본 적 있으시죠? 인사를 하면 편해집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오묘한 분위기로 가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예'라는 본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가 진짜 본성일까요? 예라는 것은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인데, 이게 진짜 본성일까요? 본성이란 무엇일까요? 본성이 본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까 보았듯 우리의 감정인데, 우리가 불편한 상황을 보면 불편할 줄 알고, 화가 날 줄 알며, 좋은 상황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리고 예도 마찬가지로 감정으로 드러납니다. 그 근거가 역시 감정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상황인데, 화장실에 가면 세면대가 두 개 있죠? 거기서 손을 씻는데 비누가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손을 씻다가 동시에 비누를 집으려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잽싸게 먼저 집어가나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손을 빼게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내 느낌대로 한 행위가 상대방에게는 양보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 예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 본성 때문에 우리가 예를 지키면 편안하고, 지키지 않으면 불편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지(智)'라는 것은 이 전체를 알 수 있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무엇이 알죠? 머리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적 능력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유학의 핵심은, 그리고 퇴계 선생의 사상의 핵심은 이 인의예지의 본성대로 우리가 살게 되면 편안할 수 있는 것이고, 본성을 거스르면 불편한, 고통받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 들어가 보면 지금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고통들, 힘든 일들은 물론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그에 앞서서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실현하는가?"라는 개인적인 문제와도 닿아있습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은 우리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고, 거기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첫째는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본성대로 사느냐, 안 사느냐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죠. 하지만 근본은 "내가 본성대로 사는가?"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합니다.

[p.14~15]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답게 살아라"라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데, 사람은 각각 다르죠? 여러분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본 적 있나요? 도플갱어라고 하죠?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른 삶을 살도록, 인간이란 존재는 다르게 살도록 우리에게 기질이 주어져있습니다. 그래서 나답게 사는 것도 중요한 퇴계 선생의 인생관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나다움'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유학의 경전은 아니지만, 장자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나라 왕의 사신이 와서 나라의 전권을 줄 테니 정치를 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초나라는 큰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앉아서 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합니다. "초나라에는 3천년 된 거북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거북을 비단에 아주 곱게 싸서 애지중지 모셔 놓는다면서요? 그런데 이 거북이는 사당에서 애지중지 모셔주길 원했을까요, 아니면 더러운 강가에서라도 꼬리를 끌고 다니길 바랐을까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사신이 "진흙탕에서 꼬리를 끌며 사는 것이 낫겠죠"라고 답합니다. 그랬더니 장자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돌아가십시요. 나도 그냥 꼬리를 끌며 살겠습니다"
이것이 나답게 살겠다는 것이죠. 이건 사실 노장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유학에는 나다움을 개발해주는 이야기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동영상)
공자는 활 속의 목표가 과녁을 뚫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움의 과정 또한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배움의 목표는 합격이나 출세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능력과 적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배움을 즐기는 것, 그것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높은 경지의 공부이다.
성격이 불 같은 제자와 지나치게 신중한 제자가 던진 똑같은 질문에 각각 다른 대답을 준 공자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성격이 급한 제자에게는 옳은 것을 배웠어도 바로 행하지 말고, 부모형제에게 한 번 더 물어보라는 답을 준 반면, 신중한 제자에게는 옳은 것을 배우면 들은 대로 바로 행하라는 답을 준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의 성격과 특성에 맞춰 얼마나 다양한 차원의 교육을 펼쳤는지는 그 제자들의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다. 공자와 함께 주유열국(周遊列國)에 나섰던 염유는 세무를 담당하는 재정관리가 되었으며, 성정이 적극적이며 극단적이었던 자로는 국방과 안보를 담당하는 관리로, 자하는 국가의 문서를 정리하는 담당관으로 키워냈으며, 자장은 제후를 보필하는 비서관이 되었다. 학문을 좋아한 안회는 평생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은둔의 삶을 살도록 이끌었고, 반면 자공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외교에 능한 관리로 키워냈다.

(이치억 교수)
[p.16]
공자가 제자를 각각, 제자 각각의 성향에 맞춰 교육을 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기도 합니다. 나답게 길러주는 것이죠. 그 사람이 나답도록 교육을 통해 길러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나다움을 길러주는 교육을 일반적인 유학 사상에서는 못 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다움'이란 것은 누가 길러주는 것이죠? 어떤 A라는 사람이 나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건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나답게 성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공자라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정도가 아니라면 부모라도 힘든 일입니다. 그 길은 자신이 찾는 것이죠. 그래서 스승일지라도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법은 단 하나, 적어도 유학 사상에서는 배우는 것 하나입니다. 사람은 배워가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배워가며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죠. 배우지 않고 나다움을 알아가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그건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서 지도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공부를 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간의 훼예(毁譽: 비난과 찬사)와 영욕에 구애받지 않는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훼예와 영욕을 걱정하면 스스로 일어설 방법이 없다" 그런데 여러분이 학문을 하는 사람인가요? 퇴계는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그걸 나다움으로 삼은 사람인데, 여러분은요? 여러분 역시 학문을 나다움으로 삼을 수 있지만 다른 것을 삼을 수도 있죠. 예를 들어서 박태환 선수라면 수영이겠죠? 수영을 하는 데 남들의 비난이나 칭찬을 신경쓴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겠죠. 어떤 기업가는 나다움이 자신의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고, 경영하는 것일 겁니다. 그 기업을 경영하는 데 남들의 이목, 의견, 물론 의견은 참고하고 조언은 들어야겠지만, 남들의 비난과 찬사를 신경쓰며 기업을 경영한다면 그것은 자기다운 경영이 될 수 없겠죠. 그래서 자기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p.17]
이것을 유학에서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합니다. '위기지학'이란 것이 있고 '위인지학'이란 것이 있는데, 위기지학이란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이란 남들을 따라서, 남들이 다 하는 것은 유망한 것이니 그걸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퇴계는 어떤 위기지학을 했는지 그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위기지학이란 의도하는 바 없이, 내가 이걸 해서 다른 사람을 이긴다거나 어떠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한느 바 없이 하는 것이다. 깊은 산 속에 난초가 향을 피워내지만, 그것이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니며 저절로 그러한 것이며, 자신은 그것이 자신의 향기가 되는 줄도 모르는 것과 같다"
퇴계는 학자니 학문을 이렇게 했고, 박태환 선수는 수영을 이렇게 할 것이며, 기성용 선수는 축구를 이렇게 할 것입니다. 각자의 자기다운 것을 해가는 것, 이게 사실 넓게 보면 모든 배움입니다. 모든 하나하나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 하나하나가 배움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이런 사람다움, 그리고 나다움이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특히 퇴계 선생 같은 분은 물질에 대해서 초연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가지고 있는 것이 이만큼인데, 이것은 사회적 책무 때문에 사람들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물질을 가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나다움이란 것을 물질을 많이 가지고, 그것을 소비하고, 이를 통해 위상을 높이는 것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나의 뚜렷한 길이 있기 때문에 물질이란 나의 삶은, 육체적인 삶을 영위해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만 있다면 그 외의 물질은 필요가 없는 것이죠. 왜냐? 그 물질이 '나다움'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이게 중요할까요? 나다움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죠? 나다움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남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기준이 아니라, 남이 기준이 되어 사는 것이죠.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영의 의미가 무엇이죠? 경영이란 회사, 기업을 이끌어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업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기업의 정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곳,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건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경영학자에게 듣기론, 기업이란 곳은 '창조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있는 여기, 이 공간 안에서 기업에서 만들지 않은 물건이 있나요? 여기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기업이 만들었습니다. 기업은 창조를 하는 곳이죠. 그리고 창조를 한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 사는 것이고, 그 돈이 기업의 이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되면 안 되는 것이죠. 이윤이 아니라 창조하는 행위 그 자체, 이 모든 것이 '창조'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물건들도 그렇고, 어떤 아이디어, 콘텐츠 등도 역시 모두 창조입니다. 창조하는 곳, 이것이 기업입니다.
기업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우리가 기본적인 전제를 서양적인, 서양의 현대 사회학에서 가져온 개념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기업이나 경제를 부분적인 것으로, 이윤추구라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죠.

퇴계 선생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물질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물질을 가지고 소비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물질적인 삶을 영위해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 사람답게, 그리고 나답게라는 길을 확립해 놓아야 우리가 그 길로,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돈이 많아야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라는 남을 따라가는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따라가는 길이 아닌 나의 길로 갔기 때문의 퇴계 선생이나 최부자는 나눔을 저절로 실천했던 것이죠. 사람다움을 따라 나눔을 실천했고, 나다움에 따라서 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답게, 그리고 나답게 가는 길'이란 것을 저는 간단하게 이 사진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건 다들 아시죠? 이 사람의 '나다움'이란 것, 개성이 있었습니다. 엘사의 개성이 있었죠? 무엇이죠? 뭔가를 건드리면 모든 것이 다 얼어버리는 것이 저주였는데, 본인은 저주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랑, '인(仁)'이란 것을 회복함으로써 그건 나에게 떠안겨진 저주가 아니라 나를 나답게 해주는 나의 개성이 된 것이죠. 그래서 사람다움이란 것과 나다움이란 것이 어우러질 때 여러분들이 가진, 또 제가 가진 기질, 성향은 모두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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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퇴계의 경제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로 '경제'의 의미를 명확히 하라는 것입니다. 경제라는 것이 의미를 명확하게 가져가야 합니다. 경제라는 것이 아까 말한 것처럼 고효율, 저비용,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내가 많은 것을 가지는 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세제민'이라는,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사람답게, 그리고 나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경제의 의미를 명확히 하라는 것에는 우선 개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이란 것은 '경제'라는 것은 내가 돈을 버는 것, 재물을 갖는 것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나의 물질적인, 내 생명의 영위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으로는 나만이 아닌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기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답게, 나답게 살라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저절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의무로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차마 보지 못하므로 나눈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답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질에 구애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계 선생이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자신의 소유로 하거나 거기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나눌 수 있었던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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