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8월과 9월에 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잇달아 넘어선 데 이어, 11월에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였다[1]. 이처럼 반도체 수출이 강세를 보이자 GDP 성장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그림 1>.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인 실질 GDP는 가격 변화가 아니라 ‘물량 변화’를 측정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최근 반도체 수출 증가는 물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최근 반도체 생산에 필수 소재인 웨이퍼[2] 투입량이 크게 늘지 않았으며, 우리 반도체 수출의 주력품목인 DRAM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잇따라 부각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실질 GDP 증가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처럼 반도체 수출액이 늘어도, 물량과 가격이 각각 어떤 흐름을 보이느냐에 따라 경제성장에 대해 갖는 의미가 달라진다. 본 글에서는 반도체 수출의 최근 흐름과 앞으로의 전망을 물량과 가격 두 측면에서 보다 명확히 짚어본다.
그림 1. 반도체 수출액1)

수출 흐름을 보는 두 가지 시각: 물량과 가격
우리가 언론보도 등에서 쉽게 접하는 수출지표는 수출금액이다. 수출금액은 상품의 물량과 가격의 곱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의 수출가격이 변하지 않아도 수출물량이 늘어나면 수출금액이 증가하며, 반대로 수출물량은 그대로인 채 수출가격만 오르는 경우에도 수출금액은 역시 증가한다. 이처럼 수출액이 물량과 가격 요인의 영향을 받아 변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수출물량지수와 수출물가지수를 각각 작성해 공표하고 있다.
수출물량은 우리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이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capacity)을 확충하거나 설비가동률을 높여 실제 출하량이 늘어날 때 증가한다. 그러나, 통계상 수출물량은 출하량이 늘어날 때만 증가하는 것은 아니며, 제품의 성능이 향상되는 경우에도 증가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시간이 지나면 기능과 디자인 등이 개선된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고, 이때 가격도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른 가격 중 품질 향상으로 인한 부분은 물가지수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고, 물량 증가로 산정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같은 메모리 칩이라도 데이터 용량, 전송속도 등이 개선된 신모델은 실제 소비자에게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므로, 출하될 때 물량이 더 증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반도체 수출물량은 기업이 해외 수요에 발맞춰 생산라인을 확충하거나 가동수준을 끌어올려 실제 출하량이 늘어날 때뿐 아니라, 출하량이 같더라도 고품질 제품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우에도 증가한다. 특히 반도체는 성능 변화가 빠른 품목으로, DRAM은 단위당 저장용량 및 전송속도 등이 더욱 우수한 모델로 계속 진화(예: DDR3→DDR4→DDR5)해 왔다. 이 때문에 반도체 생산능력(capacity)을 대표하는 웨이퍼 투입능력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반도체 물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3] <그림 2><그림 3>.
한편, 수출물가는 원자재, 인건비 등 생산비용과 시장의 수급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반도체 산업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공정의 효율성이 빠르게 향상되었고, 대규모 양산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규모의 경제도 강화되어 왔다. 그 결과 생산비용이 꾸준히 낮아지면서 반도체 수출물가 역시 장기적으로 하락 흐름을 보여왔다[4]. 다만, 단기적으로는 수요급변, 공급차질 등 수급여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큰 폭의 변동을 보이기도 하였다<그림 4>.
그림 2. DRAM 세대교체와 반도체 수출물량1)
- 주 : 1) 수출물량지수 기준
- 자료 : 한국은행
그림 3. DRAM 웨이퍼 투입능력 및 총용량1)
- 주 : 1) 삼성전자 기준
- 자료 : Goldman Sachs
그림 4. DRAM 수급률1) 및 반도체 수출물가2)
![그림4. DRAM 수급률 및 반도체 물가지수 반도체 수급상황을 대표하는 DRAM 수급률과 반도체 수출물가지수의 단기적인 변동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1. 수급률 요소항목 : 2011년부터 2025년까지 반도체 수급상황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반도체 수급률은 [(공급-수요))/수요,%]로 나타낼 수 있으며 양수이면 초과공급, 음수이면 초과수요를 나타낸다.2. 수출물가지수 요소항목 : 2011년부터 2025년까지 반도체 수출물가지수에 대해 장기추세를 제거(로그변환한 후 hp 필터 적용)한 순환변동치이다.](https://www.bok.or.kr/crosseditor/attachs/images/000051/20251205131850241_8EFJ5A4N.png)
- 주 : 1) (공급-수요)/수요×100
- 2) 수출물가지수의 순환변동치 기준(로그변환 후 hp 필터 적용)
- 자료 : Gartner, 한국은행, 자체추정
그림 5. 반도체 수출액 구성요소와 변화요인

그렇다면 최근 반도체 물량과 가격의 흐름은 어떠할까?
반도체 수출물량은 금년 1~2월중 일시적으로[5] 주춤하였으나, 3월 이후 전년동월대비 뚜렷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그림 6>. 이러한 물량 증가에는 우선 서버 시장을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전반의 수요가 확대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AI 데이터센터 신규 투자가 빠르게 늘어난 데다, 기존 서버의 메모리 교체 주기도 도래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전반적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부과 가능성이 제기되고 DDR4 단종이 예정된 상황에서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는 선(先)수요까지 가세하였다. 이와 같은 수요확대 흐름에 맞춰 반도체 기업들이 출하량을 늘린 결과, 최근 DRAM 재고수준은 크게 낮아졌다[6]. 나아가, 고성능 반도체 비중의 확대도 수출물량 증가에 기여하였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AI인프라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이전보다 데이터 용량이 크고 전송속도가 빠른 반도체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커졌다. 그 결과, 기존 DRAM보다 패키지 용량과 전송대역폭이 크게 향상된 HBM(High Bandwidth Memory)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고성능 제품의 비중이 확대된 점도 수출물량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7>.
그림 6. 반도체 수출물량1) 증가율
- 주 : 1) 수출물량지수 기준
- 자료 : 한국은행
한편, 반도체 수출가격은 어땠을까? 반도체 수출물가는 지난해 하반기 메모리 시장 부진 탓에 하락세를 보이다 금년 들어 상승 전환하였으나, 낙폭이 컸던 탓에 금년 9월 들어서야 전년 수준을 회복하였다<그림 8>. 반도체의 품목별 고정가격 [7] 추이를 보면, 금년 들어 DRAM 가격은 꾸준히 올라 2/4분기에 전년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NAND 플래시는 금년중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최근에야 전년 수준에 근접하였다. 그러나, 10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고성능 제품에 생산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RAM의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강화됨에 따라 DRAM 가격의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이에 더해 NAND 플래시 등 다른 품목의 가격 상승압력까지 확대되면서, 전체 반도체 수출물가 역시 본격적인 상승 흐름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8]<그림 8>.
정리하면, 금년(1~10월)중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약 17% 늘었는데, 이는 거의 전적으로 ‘물량 증가’(17%)에서 비롯되었으며, 가격 요인(0%)의 영향은 미미했다<그림 9>. 결국, 올해 반도체 수출은 물량이 이끌었으며, 이에 따라 실질GDP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8. 반도체 수출물가지수 및 품목별 기여도
반도체 수출,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흐름을 보일까?
우선 반도체 수출물량은 내년에도 증가하겠지만, 수급여건을 감안할 때 그 속도는 올해보다 둔화될 전망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인프라 투자 증가세가 완만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9]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AI發 수요 급증에도 과거보다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10]<그림 10> 한편,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라인이 고사양 제품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범용 제품의 공급여력은 더욱 축소됨에 따라 초과수요로 인한 가격강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그림 11>.
그림 10. 국내 반도체 매출 및 설비투자1)2)
- 주 : 1) 삼성전자(메모리부문), SK하이닉스 합산
- 2) 회계상 자본적 지출
- 자료 : Goldman Sachs
그림 11. DRAM 수급률1) 전망
- 주 : 1) (공급-수요)/수요×100
- 자료 : Trendforce(25.11월)
이러한 흐름을 종합하면, 내년 반도체 수출은 물량 증가가 주도했던 금년과는 달리 주로 가격상승에 힘입어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이번 11월 전망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내년 반도체 통관수출(금액)은 금년보다 더 좋은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반면, 반도체 물량(실질)은 증가세가 올해보다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 금액기준 통관수출과 실질기준 GDP 재화수출 흐름이 엇갈릴 수 있겠다[11].
마지막으로, 현재 시장에는 상반된 전망이 공존한다. 하나는 AI 혁신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요를 상당 기간 뒷받침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 다른 하나는 2000년대 초 IT 버블처럼 AI 투자가 과열된 뒤 급격한 조정이 올 수 있다는 비관론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적용범위·수준)이 확정되지 않고 있어 향후 반도체 수출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 반도체 수출이 빠르게 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글로벌 수요 변화와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에 따라 반도체 수출물량과 가격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반도체 수출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수급여건과 정책환경 변화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1] 반도체 수출은 금년 6월에 150억 달러를 기록하며 종전 최대치인 지난해 12월 실적(145억달러)을 넘어선 데 이어, 8월과 9월에는 각각 151억 달러, 166억 달러로 최고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였다. 이어 11월에는 173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두달만에 최대 실적을 또다시 새로 썼다.
[2] 웨이퍼는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실리콘 기판으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이다.
[3] 반도체 생산능력(capacity)을 대표하는 웨이퍼 투입능력은 2010~24년중 연평균 5.4% 증가한 반면, D램의 총용량은 같은 기간 연평균 23.6% 증가하였다(Goldman Sachs)<그림 3>. 반도체 수출물량은 IT부문의 수요가 꾸준히 뒷받침되는 가운데 제품 혁신이 이어져 오면서 장기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그림 2>
[4] 반도체 수출물가는 2000~24년중 연평균 12.9%씩 하락하였다.
[5] 금년 1/4분기에는 국내 주요업체가 생산하는 HBM3E에 대한 수요가 2/4분기 이후 출시 예정이었던 업그레이드 제품으로 이연됨에 따라 일시적인 수요 공백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6] 금년중 국내 반도체 생산 기업의 DRAM 평균 재고는 지난해에 이어 감소 흐름이 이어졌다
▶DRAM 재고회전일수(주[week]): 24.1/4분기 7.3→3/4분기 5.1→25.1/4분기 4.9→3/4분기 4.5→10월 4.2 (Goldman Sachs)
[7] 고정가격(Contract price)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시장가격(Spot price)과 달리 반도체 제조사와 고객이 일정 기간 동안 적용하기로 미리 정해놓은 계약가격을 의미한다. 반도체 수출은 통상 월 또는 분기 단위의 사전계약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수출물가지수는 고정가격과 밀접하게 동행하는 경향이 있다.
[8] ▶DDR5 고정가격(달러, 16Gb): 25.1/4분기 3.9 → 2/4분기 4.8 → 3/4분기 5.5→10월 8.7 → 11월 19.5
NAND 고정가격(달러, 128Gb): 25.1/4분기 2.3 → 2/4분기 2.9 → 3/4분기 3.5 → 10월 4.4 → 11월 5.2 (산업통상부, 25.12월)
[9] 향후 빅테크 주요 기업들의 AI 투자는 금년보다 증가속도가 완만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M7(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자본적 지출 전망(%): 24년 51 → 25년 56 → 26년 34 → 27년 13 (Bloomberg)
[10]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 시기 IT 특수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던 2020~22년에 설비를 크게 늘렸지만, 정작 2023년 들어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 최근 미세화 공정을 위한 첨단 장비의 가격 급등 등 설비투자를 위한 비용 부담이 커진 점도 기업들이 과거보다 투자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11] 통관수출 증가율은 올해 2.9%에서 내년 3.7%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GDP 재화수출 증가율은 올해 2.9%에서 내년 1.4%로 낮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