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경제에서 ① 설비투자의 경기 동조성 약화, ② 해외직접투자FDI 확대, ③ 군비지출국방비, 방산투자 증가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관찰되고 있다. 본 보고서의 분석 결과, 2017년 이후 미·중 패권경쟁, 팬데믹 공급망 병목, 러우전쟁 등을 거치며 경제적 수단수출통제·보조금·산업정책이 안보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동시에 안보 논리가 기업·정부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이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 경제안보 패러다임은 ①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② 핵심기술 및 전략자산 경쟁, ③ 보호무역주의 확산, ④ 복원력·안보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의 특징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핵심 원자재와 첨단 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이 미·중에 편중된 가운데 안보를 명분으로 한 수출입 통제가 확대되고 있으며, 반도체·AI 등 전략산업을 둘러싼 주요국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또한 생산보조금·현지조달 요건 등 비관세 산업지원 정책이 증가하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은 프렌드쇼어링·니어쇼어링을 통한 생산거점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3. 이러한 구조적 환경 변화는 우리나라 설비투자의 결정 방식을 효율성 위주에서 안보까지 함께 고려하도록 확장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설비투자와 경기 간 동조성도 약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전체 설비투자 증감률을 SVAR 모형*으로 요인분해한 결과, 안보·글로벌 요인GPR·TPU·GSCPI·미국 장기금리의 기여 비중이 2001~2019년 평균 29.6%에서 2020년 이후 평균 43.9%로 약 14.3%p 확대되었으며, 특히 무역정책 불확실성+8.7%p과 지정학적 리스크+4.0%p의 영향이 확대되었다. 또한 경제안보 패러다임이 부상하기 이전에는 설비투자가 시장 변동성·경제정책 불확실성·기업 신용스프레드 등 전통적 거시·금융 지표와 유의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가동률·금리·수출 등 경기 변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나, 패러다임 부상 이후 이러한 관계는 약화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의 음(-)의 상관관계가 새롭게 부각되는 등 경제안보 관련 요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4. 특히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자동차 제조업의 설비투자 변동요인을 SVAR* 모형으로 분해한 결과, 두 산업 모두에서 투자 결정 구조가 '시장·경기' 중심에서 '안보·글로벌' 요인도 포괄하는 다층적 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과거 메모리 업황 사이클과 가동률 등 전통적 실물 변수가 투자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19년 미·중 무역분쟁 이후 무역정책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영향이 추세적으로 확대되면서 안보·글로벌 요인이 투자 변동에 기여하는 비중이 2016~2019년 평균 33.1%에서 2020년 이후 평균 48.7%로 약 15.7%p 상승하여 시장·경기 요인51.3%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나타난다. 안보·글로벌 요인의 기여 비중이 2015~2019년 평균 25.9%에서 2020~2024년 평균 50.9%로 약 24.9%p 확대되었다.
* 분기 시계열(GPR·TPU·GSCPI, 미국 10년물 금리, 수출, 환율, 제조업 가동률, 회사채 금리, 설비투자)을 활용해 콜레스키 분해 기반 recursive 식별 SVAR을 추정하였으며, 충격반응함수의 신뢰구간은 부트스트랩으로 산출
5. 한편 추세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FDI 또한 경제안보 요인들이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SVAR 충격반응 분석 결과, 지정학적 리스크 충격 시 국내 설비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확대되는 '자본의 대외 전환' 패턴이 관찰되었으며, 글로벌 공급망 압력 충격에 대해서는 국내외 투자가 동반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6. 해외직접투자 확대는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에 따른 국내 제조기반 공동화와 제조 협력 생태계 약화, 고용 유발효과 둔화 등 부담 요인을 동반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보조금 수혜, 비관세 장벽 우회, 글로벌 기술표준 경쟁 참여 등을 위한 '이너서클Inner Circle' 진입과 대외순자산 축적·글로벌 수익률 확보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특히 우리 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위 단계로 도약하고 첨단 기술 생태계의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7.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진영 간 중복투자와 군비지출 증가가 설비투자 수요를 확대시키는 한편, '예방적 재고 확보Just-in-Case' 방식 전환과 우회수출에 따른 공급망 다층화가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수지 구조가 상품수지 중심에서 본원소득수지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본원소득의 원천이 결국 우리 기업의 제조 경쟁력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환이 상품수지의 근간을 이루는 국내 제조·수출 기반의 약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8.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① GVC 상단의 협상력 활용 및 기술동맹 네트워크 강화, ② 규제개혁·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을 통한 핵심 제조공정 및 R&D의 국내 잔류 유인 제고, ③ 고숙련 인재 양성을 통한 무형자산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