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6-24호] 지정학적 분절 속 글로벌 경제연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구분
경제일반
등록일
2026.09.13
조회수
1947
키워드
글로벌공급망 아세안 커넥터 국가 경제연계
담당부서
거시분석팀, 아태경제팀(02-759-4211, 4276)

1. 미·중 갈등과 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글로벌 교역은 과거 냉전기1947~90년와 같은 전면적인 블록화로 이어지지 않고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2. UN총회 표결자료를 이용해 각국이 2017년 이후 지정학적정치·안보·지경학적경제·개발 측면에서 각각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상대적으로 가까워졌는지를 분석한 결과, 다수 국가가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미국 쪽으로 가까워진 반면, 지경학적 측면에서는 국가·지역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디커플링decoupling 경향을 보였다. 이는 지정학적 긴장 상황에서 지경학적 정렬이 지정학적 정렬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보다, 각국의 산업구조와 대외관계, 공급망에서의 위치 등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르게 조정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3. 이처럼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도 글로벌 경제연계가 유지되는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연결을 뒷받침하는 ‘커넥터국가connector countries’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커넥터 국가는 미국의 시장과 중국의 생산망 모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미·중 간 직접 교역이 감소하는 상황에도 제3국의 생산·조달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경제연계가 유지되는 데 기여해 온 국가를 말하며, 베트남·인도·멕시코 등이 대표적이다. UN총회 표결에 기반한 분석에서 이들 국가는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미국에 가까워진 반면, 지경학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가까운 입장을 유지하거나 중국 쪽으로 더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특징은 이들 국가가 미·중 양측과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며 글로벌 경제연계를 뒷받침해 온 배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4. 한국의 공급망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흐름이 나타난다. 우선 한국은 베트남 등 커넥터 국가의 생산망을 통해 미·중과 연결되는 정도가 모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6~22년 OECD 국제산업연관표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중 최종적으로 미국의 최종수요소비·투자 등에 사용되는 비중은 2016년 11.1%에서 2022년 18.5%로, 중국에 사용되는 비중은 7.3%에서 13.9%로 각각 높아졌다. 특히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업종에서는 미국으로 연결되는 비중이 12.8%에서 21.0%, 중국으로 연결되는 비중이 11.2%에서 19.4%로 모두 크게 높아졌다. 이는 커넥터 국가인 베트남 생산망을 통해 한국의 부가가치가 미국과 중국의 최종수요로 연결되는 비중이 모두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5. 한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미국의 최종수요로 이어지는 경로도 달라졌다. 분석결과,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연결되는 직접경로의 비중은 큰 변화 없이 유지16년 73.1%→22년 72.4%되었다. 반면, 한국산 중간재가 제3국의 생산기지를 거쳐 미국으로 이어지는 간접경로에서는 중국 경유 비중은 낮아진10.7%→6.8% 반면, 베트남 등 아세안5국 경유 비중은  높아졌다4.9%→8.3%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업종에서 더욱 뚜렷해, 아세안5 경유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202218.6%에는 중국17.0%을 상회하였다. 즉 한국과 미국 간 직접적인 연결은 대체로 유지되는 가운데, 제3국을 통한 간접 연결에서는 아세안 생산망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주력산업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6.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최근의 지정학적 분절에도 국가 간 경제적 연계는 단절되기보다는 기존에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 경로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역시 미·중 어느 한쪽과의 연계를 급격히 줄이기보다, 기존 아세안 생산망을 활용해 두 시장 모두와의 연결을 유지해 왔다. 이는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생산·수출 경로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한국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7. 다만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도 수반한다. 미국으로 연결되는 한국의 부가가치 가운데 아세안을 거치는 비중이 높아진 만큼, 미국이 원산지 규정이나 우회수출 조사 등 공급망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경우 그 여파가 아세안 현지 생산을 거쳐 한국 기업과 국내 중간재 수요에까지 간접적으로 미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커넥터 국가를 통한 완충 효과를 활용하되, 주요국의 정책 변화나 공급망 충격이 제3국 생산망을 통해 국내로 파급될 가능성을 함께 관리하고, 특정 생산거점이나 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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