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1033회] AI 시대에 성공하려면 어떤 뇌가 필요할까?
(2026. 05. 22(금), 궁금한뇌연구소 장동선 박사)
( 장동선 박사 )
저희가 한국은행 한가운데에서 진행하는 1033번째 오늘 금요강좌라고 들었는데요. 한국은행이라는 곳에 서 있으니까 굉장히 감회가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이라고 하는 곳은 돈의 흐름, 불확실성, 장기적인 미래 예측, 신뢰 등 이러한 주제들을 다뤄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라든지 미국, 유럽 같은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파워가 굉장히 크죠. 그런데 오늘 시작하면서 제가 느끼고 있는 부분은, 앞으로의 AI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중앙은행이 하고 있는 역할들을 각 개인의 뇌가 다 해야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큰 흐름에서의 변화는 중앙은행이 맡아서 해야겠죠. 그렇지만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 그리고 내려야 하는 판단들의 무게가 어떻게 보면 더 커지게 되는 AI 시대에는 그러한 역할들을 우리가 국가 기관 또는 다른 알고리즘에만 아웃소싱하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사실 저도 요즘 가장 어렵게 생각하면서 고민이 많은 주제이고, 또 최근에 다녀온 외국 학회나 컨퍼런스에서 뇌과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들이 가장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어떤 뇌가 되어야 할까요? 시작에 앞서서 여러분에게 먼저 질문을 드리고, 생각할 거리를 드리며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AI를 잘 쓸까요? 앞으로 모든 영역에서 AI를 쓰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AI를 사용할 때 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AI를 잘 쓰는 사람일까, 이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새로 생겨난 스타트업들이나 굉장히 큰 IT 기업 같은 경우에는 아예 HR적인 측면에서 어떤 인재를 뽑아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인재가 일하고 있는 동안 성과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지표에까지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기존의 세상은 우리가 노동법을 통해서 하루에 8시간 이상 근무해서는 안 된다,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등 맨아워(Man-hour) 중심, 즉 노동 시간 중심으로 굴러가는 법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IT 쪽이나 과학 쪽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이 평가 지표 자체가 잘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왜냐하면 8시간이라는 시간을 근무한다는 것은 사실 2차 산업 혁명 이후 공업에 종사하거나 공장에서 일할 때, 또는 농업에 근무할 때처럼 내가 일한 시간 자체가 얼추 내가 한 일들과 연관성이 있어서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AI 시대에는 내가 8시간 일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일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이는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그래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토큰 맥시마이제이션(Token Maximization), 즉 토큰 사용량으로 누군가가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 새로운 평가가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똑같이 클로드를 쓰고, 똑같이 에이전트를 쓰며, 똑같이 코딩을 시켜요. 그런데 누군가는 토큰 소모량이 엄청 많고, 누군가는 토큰 소모량이 별로 없는 거예요. 다르게 질문을 하자면, 뇌과학 전문가인 제가 클로드나 챗GPT 같은 AI를 썼을 때는 때때로 어려운 질문을 주고 정말 AI를 열일시키면 얘가 2시간 40분씩 걸려서 엄청나게 많은 토큰을 소모해 답을 줍니다. AI가 활용하는 기본 데이터 유닛으로 꼽히는 토큰을 굉장히 많이 사용해서 말이죠. 이는 수준 높은 답을 만들기 위해 AI의 GPU도 많이 사용하고, AI의 연산 능력과 추론 능력을 제가 굉장히 많이 일 시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반면에 뇌과학적인 전문 지식이 없는 누군가가 궁금한 뇌과학 질문을 했을 때는 아마 높은 확률로 10초 안에 답이 나올 것입니다. 토큰 몇 개 안 쓰고 '이 정도 질문이고 이 프롬프트라면 굉장히 간단한 답을 줘도 이 사람이 이것이 진짜인지 환각인지 모를 테니, 이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통계적으로 최적화된 답을 주면 된다'고 AI가 판단했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러한 측면에서 놓고 보면 8시간이라는 맨아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뇌가 AI에게 일을 잘 시킬 수 있는가, 어떤 뇌가 AI로 하여금 토큰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정말로 고퀄리티의 답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이를 새로운 개념으로, 우리가 HR 코스트라고 부르던 것을 Cognitive Capital Management, 즉 인지 자산 운용을 잘하는 뇌가 필요해지고 있다는 형태로 개념들이 바뀌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가 항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있다, 당장 밥벌이를 하거나 한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내 인지 자산(Cognitive Capital)이 내려갑니다. 이는 실제로 굉장히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인데, 생존에 대한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계속 분비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뇌의 지능을 최대치로 활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잠을 잘 자지 못했다거나 쇼츠를 너무 오래 봤을 때, 또는 AI를 의존적으로 사용하는 패턴이 있어서 빠른 답을 원하고 복사하여 붙여넣으며 AI 없이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당장 내고 있는 성과는 높을지라도 AI를 지속적으로 이런 형태로 사용한다면, 최근 연구들에서 관찰되듯 제가 한국어로 인지적 근손실이라고 번역한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인지적 근손실, 확 와닿지 않나요? 인지적 근손실을 전문 용어로 Cognitive Atrophy 또는 Cognitive Decline, Brain Atrophy 형태로 뇌 안에서 신경 세포들 사이의 연결이 끊기고 전반적인 신경 세포의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보통 이런 증상은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데, 흥미롭게도 쇼츠를 너무 오래 보거나 굉장히 수동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시간과 빈도가 올라가면 비슷한 형태로 뇌 안의 신경 세포 연결들이 끊기고 인지 능력의 퇴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최신 연구들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 벌써 서론부터 깊게 들어가긴 했지만, 'AI 시대에 과연 어떠한 뇌를 가지고 있어야 AI를 잘 쓸까?' 그리고 성공이라는 말이 참 정의하기 애매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를 다시 재정의해 보면, 적어도 먹고사는 데 있어서 그리고 미래의 자산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걱정 없이 좀 더 여유 있게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어떠한 뇌가 필요할까,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Part Ⅰ. 지능의 진화]
자, 그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목차를 말씀드리면 총 네 개의 파트가 있습니다. '지능이 어떻게 진화했는가'가 첫 번째 파트입니다. '지난 3년 동안 AI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가 두 번째 파트고요. 그다음 세 번째는 '이 세상에서 누가 미래 예측을 잘하고 기회를 잡는가, 그런 사람은 어떤 뇌를 가지고 있는가'가 세 번째 목차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여기 나눠 드린 자료에 있는 'AI 시대에 성공하는 뇌는 뭘까?'입니다. 파트 4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죠. 그래서 파트 1부터 시작할 텐데, 파트 1과 파트 2는 짧게 요약형으로 빨리빨리 넘기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서. 본격적으로 이 질문부터 드리며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어딜 가든 모든 강연은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왜 뇌를 가지고 있을까요?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뇌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존. 맞습니다.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뇌가 왜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원리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일단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살면서 '나는 뇌가 없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쟤는 뇌가 없다'라고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같은 학교에 있거나 같은 집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뇌가 없는 것 같은 사람 말이죠. 희망적인 소식은 여태껏 두개골을 열어보았을 때 실제로 뇌가 없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꽤 됩니다.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진짜 뇌가 없어 보이고 싶다면 딱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바로 소통 불가와 요지부동입니다. 100번 말해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말이 안 통하고, 도무지 말이 먹히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이 있죠. 독일에서는 이런 사람을 소시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쪽도 막혀 있고 저쪽도 막혀 있어서, 들어가는 것도 없고 나오는 것도 없는 사람, 즉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마라고 부르나요? 아무튼 이렇게 소통이 안 되면 뇌가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요지부동, 절대 안 바뀌는 것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적어도 도망가거나 행동이 바뀌어야 하는데, "잘 탄다, 따뜻하다, 타오른다"라며 자신이 다치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정말 뇌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죠. 흥미롭게도 소통 불가와 요지부동, 다르게 말하자면 세상과의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지는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방금 뇌는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죠. 뇌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뇌가 없는 존재는 정보 업데이트가 잘 안 되고 스스로를 바꾸는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뇌가 없지만 잘 살아남은 존재도 많습니다. 아메바, 단세포 생물, 박테리아, 플랑크톤, 식물 등은 뇌가 없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100% 유전자의 계획대로, 즉 DNA 프로그램대로 살아남으면 됩니다. 먹고 배설하고, 환경이 맞으면 생식하여 자기 복제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그 무리 안에서 환경에 맞는 개체들이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박테리아나 아메바가 늘 먹던 먹이가 발효되어 독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화산 폭발, 빙하기, 소행성 충돌 등으로 지구 환경이 바뀌어서, 늘 먹던 것이 이제는 먹으면 죽는 물질로 바뀌었다고 말이죠. 안 먹을 수 있을까요? 못 합니다. 타고난 유전자 프로그램은 그것을 먹도록 진화했고 그 환경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종 전체가 가서 먹고 죽어 멸종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보 업데이트가 유전자 레벨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스스로 유전자대로만 살고 있으니 행동을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뇌를 가진 존재는 이 부분에서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캄브리아기에 나타난 최초의 뇌는 대략 물고기에서도 볼 수 있는 이런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감각 기관인 눈 같은 것이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척추와 운동 기관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연결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나중에 중추신경계로 진화하며 뇌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뇌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신경망 몇 개가 겹친 단순한 연결이었죠. 그럼 이 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로봇 코딩 수업에서도 늘 배우는 원리입니다. 빛 센서가 있고 이 센서의 세기에 따라 움직이는 바퀴 모터가 있다고 할 때, 이들을 직렬로 연결하느냐 교차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빛을 향해 가거나 빛을 피해 가는 두 가지 행동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뇌가 가지고 있었던 기능입니다. 먹고 죽을 뻔했다면 다시는 먹지 말아야 하는데, 유전자의 프로그램대로만 가면 그게 불가능하죠. 반면 뇌를 가진 존재는 신경망 회로 하나만 바꾸면 늘 향해서 가던 것을 피해서 가는 형태로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신경 회로 하나를 바꿔 끼우는 것만으로 말입니다. 유전자가 못하는 것을 보완해 주면서 세상이 바뀌었을 때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뇌를 통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작아 보이지만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유전자를 바꾸지 않고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 나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뇌를 가진 존재는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생존을 도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용량의 문제입니다. 물고기의 뇌는 상당히 작습니다. 그래서 흔히 "너 붕어냐? 기억력이 3초냐?"라고 놀리곤 하죠. 실제로는 붕어의 기억력이 3초가 아니기 때문에 붕어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겁니다. 붕어의 뇌도 생각보다 잘 작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억력이 3초라고 가정해 봅시다. 무언가를 먹고 죽을 뻔했다면,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1초,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2초, 왠지 다시 먹고 싶다 3초', 이렇게 작심 3초가 되겠죠. 다르게 말하자면, 내 기억의 용량이 3초라면 3초마다 리셋되기 때문에 3초 이상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뇌의 용량이 커지면, 어떤 데이터와 학습한 것들이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를 알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뇌가 가진 주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고 변화가 없다면 유전자대로만 살면 되니 뇌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어떻게 바뀌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학습을 통해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대학교에서 문제를 잘 맞히고 A 학점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AI 시대에 어떤 미래가 올지 예측할 수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늘 해오던 대로 공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A+를 받으면 취업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떨어집니다. 여러분의 뇌가 가진 생존 능력의 핵심은, 학습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 능력이 올라가고 뇌가 커져야 합니다. 문제는 뇌가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데이터 센터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것처럼, 성인의 경우 뇌가 온몸 에너지의 25%에서 30%를 혼자서 소모합니다. 이는 뇌를 함부로 키웠다가는 몸집이 작아지고 체력이 약해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화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뇌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양서류나 파충류로 진화하는 기간 동안에는 알을 많이 낳아 개체 수를 늘리는 전략을 썼습니다. 개체 수를 많이 퍼뜨리면 조그만 뇌를 갖고 있어도 생존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질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류와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중요한 전략 변화가 생겼습니다. 소수에게 집중 투자하여 전 세대가 알고 있던 지식을 물려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뇌는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사회적 뇌로 진화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디로 먹이를 찾으러 가는지를 학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개인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뇌로 진화하면서 뇌 크기가 커진 것인데, 이는 한 마리만 잘해서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속한 집단의 크기가 200마리인데 그중 한 마리라도 새로운 먹이를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귀신같이 나머지 개체들이 냄새를 맡고 그 먹이가 어디 있는지 다 알게 됩니다. 한 마리만 위험을 감지하고 공포에 질려 도망쳐도, 그 공포가 전염되어 다 같이 도망치면 함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체가 아닌 집단, 사회, 문화로 승부하게 된 것이 우리가 사회적 뇌로 진화하며 뇌가 더 커지게 된 배경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기 위한 빌드업입니다. 개체가 단독으로 승부하는 것보다 뇌가 많아지니 생존에 유리해졌죠. 다르게 말하면, 뇌와 뇌의 연결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연결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능과 문제 해결력이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자, 여기서 점프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 뇌의 능력은 과연 언제 업그레이드되었을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가 10만 년 전, 30만 년 전의 뇌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구석기 시대 동굴에 살면서 돌도끼를 들고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 인류의 뇌와 지금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그리고 저의 뇌가 하드웨어적으로는 똑같습니다. 0.1%도 진화하지 않았죠. 그런데 미스터리하지 않나요?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우주에 인간을 쏘아 올리며, 비행기나 자동차 같은 것들을 다 이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뇌가 가진 능력은 과거보다 천만 배가 넘는 것 같은데, 하드웨어는 그 당시와 똑같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 부분이 재미있는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하드웨어적으로 뇌가 변한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으로 뇌와 뇌를 연결하는 사회 제도와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불과 만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 뇌의 능력치가 100만 배 가까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50만 년 전, 30만 년 전,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굴에 200명 정도 모여 살던 당시의 뇌 크기가 아직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 크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능력의 업그레이드가 일어났을까요? 대략 만 년 전에서 5천 년 전 사이,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시대 즈음에 이집트, 중국,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들이 생겨나면서 글자와 활자의 발명이 문명의 발달을 이끈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넥서스』를 읽어보든 다른 진화인류학자의 책을 읽어보든, 진화생물학자, 인류학자, 뇌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인지 혁명이라는 것은 문자와 활자, 즉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덕분에 발달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글로 써 놓으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긴 문장을 쓸 수 있으며, 긴 계산을 해낼 수 있습니다. 생각의 외주화가 가져온 업그레이드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글의 발명으로 인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 더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게 되면서, 뇌의 연결 규모가 200명에서 400명, 800명으로 늘어나고, 로마처럼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수만, 수십만 명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도서관과 학교가 건립되고 동양에서는 서당, 서원, 학당이 생겨났죠. 공자와 맹자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왕들을 가르쳤고,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이처럼 그 시대의 지식들이 도서관에 모이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회 시스템, 즉 교육을 통해 매 세대마다 인간의 능력치가 업그레이드된 것입니다. 되게 재미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매 세대가 전 세대보다 더 똑똑해지는 과정을 우리는 반복해 온 것입니다. 불과 4~5세대 전만 해도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유럽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조차 어렵다며 연주를 포기했던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의 입시곡이 되었죠. 예중, 예고 학생들이 무난하게 연주해 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가 더 좋아서가 아니라, 4~5세대 동안 바이올린 만드는 법, 활 잡는 법, 현을 다루는 법, 그리고 교수법 등이 발달하면서 어떻게 연습하면 실력이 좋아지는지가 축적되어 단 몇 세대 만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결과입니다. 여러분도 일타 강사의 수업이나 과외, 학원을 다녀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혼자 공부할 때와 누군가 핵심을 짚어 줄 때 배우는 속도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또, 우리는 그를 수학 천재 가우스라고 부르지만, 당시 가우스가 평생을 바쳐 알아냈던 수학 명제들을 요즘은 초등학교 과정에서 다 배우잖아요. 지식이라는 것은 처음에 새로운 발명을 해내기가 어렵지, 인류 중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발명해서 기록으로 남겨두면 다음 세대는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놀라운 점이고, 곧 우리 능력 발달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뇌의 하드웨어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능력치와 연산 능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혁명입니다. 그리고 강대국이란 도서관을 확보하고 교육할 수 있는 똑똑한 선생님들을 보유한 나라였고,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로마나 한양으로 가야만 하는 형태가 되었던 것이죠. 이 공간적 한계가 깨지면서 연산 능력과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된 두 번째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건입니다. 바로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명입니다. 이로 인해 로마나 한양, 서울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어디서나 정보를 접하고 모든 논문을 읽을 수 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결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능력치가 엄청나게 올라간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한 대의 연산 능력은 인간을 달에 쏘아 올릴 때 쓰였던 그 위대한 계산 능력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1969년에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았을 때 필요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모든 슈퍼컴퓨터를 합친 것보다 대략 만 배 이상 뛰어난 슈퍼컴퓨터가 바로 여러분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입니다. 옛날 모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우리 중 누구라도 이런 위대한 계산을 해낼 수 있지만, 아무도 스마트폰을 그런 계산에 쓰고 있지는 않죠. 쇼츠 영상을 보거나 게임, 쇼핑 등 일상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엄청난 슈퍼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주하는 한계는 무엇일까요? 이세돌 9단에게 세상의 모든 기보를 다 준다 해도, 알파고가 학습한 속도처럼 일주일 만에 다 배우지는 못합니다. 즉, 우리 뇌 자체의 한계가 또 다른 허들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온라인에 정보가 많고 더 많은 연결이 가능해져도 우리 뇌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나타난 세 번째 혁명이 바로 지금의 AI 혁명입니다. 뇌과학자들은 이것이 활자나 불의 발명에 비견할 정도로 엄청난 혁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글을 통한 생각의 외주화로 일어났던 과거의 발전을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지식, 정보, 계산,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누구라도 물어보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형태의 시스템이 생겨났습니다. 일종의 거대한 보조 두뇌가 생긴 것이죠. 자, 여기까지 빌드업은 끝났습니다.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자면, "그렇다면 AI 시대에 과연 어떤 뇌가 필요할까?"라는 주제입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최신 논문으로도 아직 나오지 않은 연구 결과들을 말씀드릴게요. 지금 현재 제 분야에서 뇌과학자들, 심리학자들, 교육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제가 올해 3월과 4월 해외 학회에 다녀와서도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AI는 뇌를 어떻게 바꿀까? AI는 우리의 뇌를 어떠한 형태로 진화시키게 될까?" 이것이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왜냐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전화번호를 까먹잖아요. 당연한 일입니다. 뇌는 그럴 필요가 없으면 굳이 외우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는 지도를 안 가지고 다니고, 길을 외우지도 않잖아요. 필요가 없으니까요. 문제는 지도나 스마트폰 전화번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AI를 쓰기 시작하면 '내가 모든 영역에서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굉장히 큰 질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트렌드를 크게 보게 되면, 인간 능력의 증강이라는 현상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못 하던 것을 놀라운 속도로 해내는 능력, 일종의 초인류, 슈퍼 휴먼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실리콘 밸리에서는 세 명이 AI 에이전트 200개를 거느리고 6개월 만에 6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게 올해 2월, 3월부터입니다. 챗GPT, 클로드 등 이 모든 시스템들이 올해 2월, 3월을 넘어가면서 폭발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AI 개발자들이나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AI 블루스(AI Blues)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정신과적인 실제 진단명은 아니지만, 산후 우울증을 베이비 블루스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종의 AI 블루스 같은 것이 생긴 겁니다. "야, 이제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내가 필요해지기는 하려나? 내가 굳이 뭘 할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그저 먹먹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감정이 들기 시작한 현상이 올해 3월부터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뇌의 능력과 학습 능력, 그리고 이뤄내는 성과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는 팀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3, 4월부터 투자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투자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갑자기 6배에서 10배나 늘었다고요. 옛날에는 새로운 회사를 아이디어만 가지고 만들려면 2년은 걸렸습니다. 투자도 받아야 하고, 채용도 해야 하고, 무언가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AI 에이전트를 잘 사용하는 팀이라면 두 달 만에 뚝딱 결과까지 내고 돈까지 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를 받으러 오는 팀들이 늘어나는 것이죠. 정리해 보자면, AI를 사용하면서 전혀 없던 발견을 해내고, 우리 뇌의 능력치를 엄청나게 활용하여 일종의 슈퍼 휴먼처럼 AI를 잘 쓰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동시에, 이제 학자들과 저희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재미있는 현상이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플린 효과(Flynn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플린 효과가 무엇이냐면, 인류가 지능이라는 것을 테스트하기 시작한 이후로 100년이 좀 넘게 (200년까지는 안 되지만) 매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IQ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을 제임스 플린이라는 사람이 발견해서 우리가 플린 효과라고 부르죠. 매 세대가 전 세대보다 IQ가 높고 지능이 높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접할 수 있는 지식의 도구나 배울 수 있는 정보의 양 같은 것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너무 좋아졌잖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가 다르고, 여러분 세대만 해도 제 세대와 다를 것입니다. 제가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썼던 논문 수준으로는 지금 출판(Publish)도 안 될 겁니다. 기본적으로 AI를 사용해서 모델링을 해야만 논문을 낼 수 있는 형태로 학계나 학교 모두 발전했고, 불과 몇 년마다 세대 차이가 날 정도로 한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똑똑해지는 트렌드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무엇일까요? 1995년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부터, 즉 2000년대생을 포함하여 여러분 중 상당수가 해당할 텐데요. Z세대와 알파 세대를 아우르는 이 세대에서 최근 여러 나라의 데이터를 보면 갑자기 IQ가 떨어지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IQ만이 아니라 기억력, 집중력, 공감 능력, 이해력 등 모든 평균치가 이전 세대보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하는 최초의 현상이 몇 년 전부터 보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유럽과 몇몇 나라부터 시작되어서, 최근 미국에서 만나고 온 교수님들도 "야, 이 트렌드가 전반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석해 보면 학자들마다 답이 조금씩 다르지만, 숏폼(쇼츠) 콘텐츠를 너무 많이 봐서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고 인지 기능이 둔화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 쇼츠 시청을 금지시켰습니다. 게임은 괜찮고, AI로 다른 것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쇼츠는 아예 수험생용 폰을 사 주어 기계적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무비판적으로 보고만 있는 것은 뇌에 좋지 않아요. 여기서 약간 고백하자면, 저도 유튜버로서 올린 쇼츠 영상이 800개가 넘습니다. 그래서 "내로남불 아니냐, 너는 올리면서 쇼츠가 나쁘다고 하냐?"라며 욕을 먹을 수밖에 없죠. 굉장히 구차한 변명을 좀 하자면, 유튜버로 먹고살려면 광고를 받아야 하고 광고주가 쇼츠를 올리라고 요청해서 올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과학적인 변명을 대자면, 쇼츠라는 포맷 자체가 무조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쇼츠를 소비하는 여러분의 뇌 작동 방식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쇼츠 플랫폼 자체가 카지노의 슬롯머신처럼 설계가 되어 있어서,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고 계속 보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험하긴 하지만, 그럼 어떻게 쇼츠를 보는 것은 괜찮을까요? 내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주도적으로 찾는 방식은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 러닝을 하러 가는데 신발 끈이 안 풀리게 묶는 법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쇼츠를 잠깐 보고 '아, 이렇게 묶는구나' 하고 활용하면 됩니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원하는 답을 찾아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뇌가 퇴화하지 않고 전전두엽 기능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요리를 해야 하는데 레시피가 뭐였지 하고 잠깐 쇼츠를 찾아보고 요리를 하는 것 역시 뇌 퇴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정보성 콘텐츠 소비는 괜찮습니다. 또 어떤 소비 방식이 괜찮냐면, "야, 이 춤 재미있는데? 나도 챌린지에 참가해야지"라며 틱톡에서 본 춤을 직접 추고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참여하는 콘텐츠 활동 역시 뇌를 퇴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멍하니 '다음에 뭐가 나올까?' 하면서 수동적으로 스크롤, 스크롤, 스크롤만 넘기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러닝을 하려고 신발 끈 묶는 법을 검색하러 들어갔다가, '오, 심으뜸 씨가 새로운 러닝화를 샀네', '누구랑 같이 뛰네, 재미있다' 하며 무의식적으로 영상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때부터 나의 전전두엽 기능과 자기 제어 능력, 그리고 전반적인 뇌의 능력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쇼츠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쇼츠나 게임을 포함해 AI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의 뇌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특정 패턴으로만 정보를 소모하기 시작하면 Brain Atrophy, 즉 인지적 근손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현상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AI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마치 글의 발명이나 불의 발견처럼, 다음 레벨(Next Level)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도구를 통해 뇌의 능력이 증강되고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뇌의 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뇌의 모든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퇴화하는 것 같다는 우려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명확히 하려면 장기적인 종단 연구나 더 많은 종류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확인해 보아야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주요 트렌드 중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럼 이 타이밍에서 어떻게 해야 똑같이 AI를 써도 나의 뇌는 능력치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제가 했던 연구가 아니라 UC 버클리 대학교에 있는 사하르 유수프(Sahar Yousef) 교수님이라는 분의 미발표(Unpublished) 데이터를 올해 3월 말에 보고 온 것에 따르면, 800명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이 인지적 근손실이 많이 일어나는가, 어떠한 위험 요인들이 유달리 이 사람의 뇌에서 인지적 근손실을 많이 일어나게 했을까를 분석했고, 두 가지의 요인을 찾았다고 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첫 번째 요인이 바로 외로움과 고립입니다. 내가 인간관계가 유지된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소통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무언가 연결에 잘 속해 있는 사람의 뇌는 쉽게 퇴화하지 않습니다. 반면 혼자 골방에 앉아서 사람을 거의 안 만나고, 게임을 하건 쇼츠를 보건 과제를 하건, AI를 사용할 때도 혼자 고립되어 연결이 끊긴 상태로 정보를 소비한다면 인지적 근손실이 크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위험 요소로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이 외로움과 고립이었습니다. 여기서 단순히 주변 사람 숫자가 많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연결의 숫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친한 친구가 있어서 늘 나의 생각을 나누고, 이 사람의 뇌와 나를 맞춰보며 대화하는 등 사회적인 연결 관계가 있을 때 여러분에게 보호 효과를 주는 것입니다. 참고로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AI 사용에 있어서의 인지적 근손실에서만 보호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10~15년 동안 의사들과 뇌과학자들, 그리고 여러 공중보건 통계 자료들을 보면 외로움과 고립은 신체적, 정신적인 모든 부분에서 질병 위험을 높입니다. 그러니까 고립과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4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치매 발병 확률, 암에 걸릴 확률, 불안증, 공황장애, 우울증 등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신체적 문제를 일으킬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영국이나 일본에서 외로움부 장관을 만드는 이유도, 사실은 의학적으로 외로움과 고립이 이렇게까지 뇌에 안 좋다는 것이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원래도 안 좋았던 것이 AI를 사용하면 더 심해지는구나, 뇌에서 40군데가 넘는 곳에서 신경 세포 사이의 연결이 끊기고 연결이 약화되는 현상이 관찰되는구나, 인지적 근손실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죠. 외롭고 고립된 사람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제가 첫 번째로 놀랐던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가 재미있습니다. 두 번째는 영어로 Lack of purpose, 즉, 목적성 없음이라는 요인이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스스로 삶의 의미나 목적을 가지고 "내 사업을 위해서 물어보겠어", "난 이걸 하기 위해서 AI를 사용하겠어"라며 자기 주도적으로 나만의 질문과 목표를 가지고 사용할 때는 뇌가 위축되거나 퇴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궁금증을 풀고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뭐 재밌는 거 없나?", "얘는 이걸 줄까, 저걸 줄까?", "어, 이거 줘 봐, 저거 줘 봐", "뭐 좀 알려줘 봐, 찾아줘 봐"라는 형태로 의존적으로 사용하면 뇌에 안 좋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내가 먼저 질문하기 전에 AI가 어떤 답을 줄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초안을 짤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주도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초안에 대해 지식을 확장하거나 레퍼런스를 체크하는 형태로 추가적으로 AI를 사용하는 것을 습관화하셔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AI에게 "뭐 좀 찾아줘 봐, 답이 뭐야, 이게 뭐야?"라고 물어보게 되면 뇌 안에서 여러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자기 주도적이 아니고 능동적이지 않은 형태로 사용하는 것만으로 네 가지 효과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 어떤 정보를 보고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는 인지 능력이 퇴화합니다. 셋째,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넷째, 창의성이 떨어져서 발산적 사고를 하는 비율이 감소합니다. 전체 유저의 80%가 처음 나온 초안을 보고 "어, 좋은데? 좀 고쳐 줘"라고 반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럴지 모릅니다. 챗GPT한테 "뭐 좀 알려 줘 봐, 아이디어 좀 내봐" 해서 무언가 나오면 "이거 좋은데 이거 좀 더 발전시켜 줘"라고 하죠. 처음 나온 한 가지 생각에 고착화된 다음, 이것을 어떻게 더 예쁘고 좋게 발전시킬지만 보는 것입니다. 어떤 질문을 딱 받았을 때 서로 다른 열 가지의 시나리오, 로드맵 등 다양한 옵션들이 떠오르는 능력이 퇴화하는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창의성마저 떨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물어보며 AI를 사용하는 습관을 가질 때 일어납니다. 물론 결과물 자체는 그래도 좋습니다. 실제로 개인이건 기업이건 AI를 사용하면 성과도 올라가고, 아웃풋도 좋아지고, 생산성도 향상되는 등 모든 지표가 좋아집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창의성이 떨어지고, 빅데이터로 보면 제미나이를 썼든 챗GPT를 썼든 클로드를 썼든 100명 중 80%가 비슷비슷한 답변을 낸다는 것입니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용하면 성과도 올라가고 결과물도 훨씬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를 합쳐보면, 사람들이 힘들더라도 뇌를 더 써서 낸 답이 다양성이 훨씬 높고 창의적인 답이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AI를 통해 전체적인 퀄리티는 올라갔지만 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다르게 말하자면 여러분 개인의 차별화 포인트와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차별화 포인트가 사라졌다는 것은, 여러분처럼 자라나는 주니어 입장에서 보면 시니어가 볼 때 "이 정도는 내가 그냥 AI 시키겠다, 얘한테 왜 시키니?"라는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와, 이건 뭐야? 난 이런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하지?"라는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는 뇌가 있다면 AI를 사용해서 여러분의 능력이 극대화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100명 중 80명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게 된다면, 모두가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AI가 여러분에게 차별점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용할수록 창의성, 기억력, 집중력, 비판적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면, AI를 사용하는 것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주요 내용은 다 던졌고, 이러한 예측들이 있었습니다. 2026년부터는 AI 에이전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지금 그렇습니다. 단순히 AI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것과 에이전트를 활용해 세금 계산도 하고, 웹페이지도 관리하고, 블로그 글도 알아서 올리게 하는 등 마치 IQ 160짜리 비서를 두듯이 AI를 지휘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냥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수준과는 생산성과 아웃풋에서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들 합니다. 똑같이 유료 모델에 돈을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주도성에 따라 능력 차이가 100배씩 벌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타이밍에서 조금 더 겁을 주는 이야기를 하자면, 유명한 사회학자가 연구한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 마태 효과(Matthew Effect)입니다. 한국은행에 계신 분들이라면 아실 수도 있습니다. 마태 효과는 주로 금융 자본과 교육 수준 두 가지 영역에서 연구되었습니다. 왜 마태 효과라고 부르냐면, 성경 마태복음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시작 포인트의 차이가 크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누적될수록 이 작은 차이가 갈라져서 엄청난 격차가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마태 효과가 가장 많이 연구된 분야가 문해력과 독서, 어휘력입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면, 가장 똑똑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IQ 차이가 성인 기준의 능력 차이와 비교했을 때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누적이 일어날까요? 1학년 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문해력과 어휘력이 늘고, 더 두껍고 똑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며, 더 많은 문해력과 어휘력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책 읽는 게 싫어서 쇼츠만 보고 게임만 하며 책을 멀리한 아이는 2학년, 3학년,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처음의 작은 차이가 6년, 10년 후에는 굉장히 큰 격차로 벌어집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문해력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현재 AI 사용에 있어서 뇌가 퇴화하는 사람과 증강되는 사람 사이의 마태 효과는 문해력 차이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일부러 조금 무섭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마태 효과의 이득을 보는 쪽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 Part Ⅱ. AI 시 대의 도래: 어떠한 것들이 대체되었는가 ]
이제 4개의 파트 중 첫 번째 파트가 마무리가 됐고요. 파트 2는 정말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는 내용일 테니 그냥 훅 넘기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면 챗GPT가 나온 지 3년 정도밖에 안 됐죠. 본격적인 AI 시대가 시작되었다고들 이야기하며, AI가 그림을 그려 미술 분야에서 상을 받고 웹툰도 그립니다. 사진, 작곡, 문학상, 광고 제작까지 이 모든 것들을 AI가 한다는 뉴스를 몇 달마다 보셨을 겁니다. 이제는 다 아는 내용이니 그냥 요약(Recap)만 하겠습니다. 자, AI랑 연애도 합니다. 이것도 몇 년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 지금은 굉장히 큰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미국 10대 청소년 10명 중 7명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레고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며 연애하고 싶어 하는 상대가 인간이 아닌 AI라는 내용이 최근 테드(TED) 토크에도 나왔고, 제가 올해 3월에 갔던 학회에서도 접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사춘기가 오고 2차 성징이 나타났을 때 내가 가장 대화를 많이 하고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대상이 AI다 보니까, 그 대상에게 끌리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나중에 정신 건강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현상입니다. 영화 『그녀(Her)』 같은 데서도 나왔지만, 처음에는 좋습니다.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외로울 때 AI와 대화하면 너무 좋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감정적인 의존을 느끼고 있죠.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좋아도 중장기적으로 가면 굉장히 큰 역풍(Backlash)이 있습니다. 엄청난 허무감과 우울감이 강화되고 안 좋은 정신 건강적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므로, AI에게 감정적인 의존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대한 연구들이 계속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AI가 실험도 하고 노벨상도 AI 연구자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오픈클로라든지 클로드 코어, 클로드 코드 등을 통해 다들 에이전트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다 보셨을 겁니다. 젠슨 황이나 일론 머스크도 "모든 개인이 AI를 사용하게 된다", "모든 기업들이 토큰 기반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이 더 이상 생산과 노동, 창작을 하지 않게 된다" 같은 이야기들을 했죠. 재미있는 것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에서 작년에 발표된 리포트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AI가 얼마나 우리 사회 안에 들어올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내용을 구글의 노트북LM(NotebookLM)을 통해 정리해 본 슬라이드를 보면,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많은 비용이 가속화되어 투입되고 있고, 실제로 기업들의 AI 도입률도 작년에 이미 78~80%까지 늘어났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도 벌어지고 있고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AI 관련 사건·사고가 56.4% 증가했다는 것이고, 이 증가율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것이 아주 큰 비용 요소(Cost factor)입니다. AI를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AI 전환(AX)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동시에 AI를 통해 생겨난 사고나 문제들을 사람이 투입되어 막고 해결하느라 엄청난 비용이 동시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뇌과학자 측면에서 다시 정리해 보면, AI가 능력 증폭기인 동시에 의존성 증폭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스탠퍼드 리포트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맥락과 맞닿아 있죠. AI를 사용해서 우리의 능력이 증폭될 수도 있고 의존성이 증폭될 수도 있으며, 이 두 가지가 다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Part Ⅲ. 어떤 뇌가 미래변화에서 기회를 읽어낼 수 있는가? ]
자,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본론으로 넘어와서 '어떤 뇌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합니다. 어떤 뇌가 미래의 변화 속에서 기회를 읽어낼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부터 제가 빠르게, 그러나 깊이 있게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의 상상력의 크기, 여러분이 꿈꿀 수 있는 미래 사회와 비전의 크기가 여러분이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을 결정짓습니다. 이것은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은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해 보았어야 그러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미래 사회 디자인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만약 네가 충분한 투자금을 받을 수 있거나 창업한 기업이 잘된다면, 어느 정도의 금액 규모를 꿈꾸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상상하는 스케일이 10억이 넘는 학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몇 억만 있어도", "몇십 억만 있어도 되게 클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곳에 가면 기본적으로 유니콘 기업을 꿈꿉니다. 창업을 하면 "1조 원은 이뤄야 한다"라는 꿈을 꿔야 1,000억 원 정도는 버는 것 아니겠습니까? AI 시대에 그것이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부르는 학습된 무기력이 작동합니다. "에이, 나는 안 돼.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라고 스스로 브레이크가 있는 이상, 여러분이 학교에서 수능 점수 안좋다고 무시당하거나, 지방 출신이라고 무시당하는 등 되게 많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이상 엄청난 슈퍼카나 도구가 손에 쥐어져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지 못하는 일차적인 문제는 기술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뇌가 가진 상상력의 스케일, 비전과 자신감의 크기가 여러분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걸고 있는 브레이크를 풀고 글로벌 스케일로 상상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세상에 나갔을 때 "나한테 100억짜리 비즈니스는 진짜 쉽다"라고 꿈꿀 수 있어야, AI 시대에 기회가 오고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너무 갇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압박을 받고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집도 사고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죠.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같은 세대 친구가 명품을 샀다며 부러워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나는 AI 기술을 사용해서 세상을 뒤엎어 버리겠다, 세상을 바꿔 버리겠다"라는 마인드를 가지면, 저는 대한민국에서 교육받은 여러분 같은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믿어주세요. 저는 노벨상 수상자가 39명이나 나온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도 있었고,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에서 동료들과 일하며 만나보았습니다. 구글, 애플 등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과도 미래 기술 및 전략 MOU를 맺으려 다녀보았습니다. 미국, 유럽 등 수많은 곳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만나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느끼는 점은, 대한민국의 인재 밀도가 여전히 높다는 것입니다. 하버드나 구글 같은 좋은 곳에 있다가 돌아와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적 수준, 뉴스를 따라가고 공부하는 개인의 능력치가 놀라울 만큼 높습니다. 인재 밀도 면에서 한국은 최고 수준입니다. 당장 이웃 나라인 중국과 비교해 봐도, 한국 사람들은 그저 한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으로 일당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대기업, 스타트업, 학생들을 만나보며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제가 가본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학습된 무기력이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들 잘하고 있고,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한국이 제일 높습니다. 큰 스케일로 밀고 나가는 배짱이나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너무 많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그런 꿈을 꿔도 된다"라고 격려해 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남과 비교하며 움츠러들어 있죠. 하지만 여러분, 대한민국의 인재 밀도는 정말 높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적화된 최고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략을 짜보곤 하는데, 지금이 정말 최적의 타이밍입니다. 한국은 영토가 작고 자원이 없어서 혼자서는 못 합니다. 그렇지만 현시점에서 전 세계는 미국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중국은 무서워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AI 리소스와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3대 강국이 되려면 전 세계를 다니며 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연합군을 형성하면 됩니다. 기술도 나누어주고 협력하면, 그 누구도 한국 사람과는 기꺼이 친구를 하고 싶어 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에, 외국에 나가서 "나 한국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친구를 사귀고 무언가를 도모해 보기에 최적화된 타이밍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측면에서 여러분은 스스로 뇌의 능력치를 완전히 Unleash(해방)하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기회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는 두 번째 파트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다른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다뤄 볼게요. 어떤 뇌가 미래 변화에서 기회를 읽어낼까요? 지금처럼 AI 기술이 발전하고 글로벌 변화가 몰아칠 때, 누군가는 지표를 예리하게 읽어내며 전략을 세우고 기회를 포착합니다.
[ 1. 초기에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은 '정보량'이 아니라 '탐색'이 결정한다 (Curiosity & Exploration) ]
흥미로운 것은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뇌 안에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탐색하는 태도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를 Curiosity, 즉 호기심이라고 부릅니다. 궁금증을 가진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 유튜브 채널 이름이 그냥 '궁금한 뇌'가 아닙니다. 저 혼자만 궁금한 것이 많은 뇌라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궁금증을 가진 뇌를 유지하면 기억력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이 있으면 불안이나 우울 증세로부터 뇌가 보호를 받습니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큰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세상 만사에 궁금한 것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기술에 대해서도 말이죠. 반면에 무언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 뇌 안에서의 동기 부여(Motivation), 학습 능력, 기억 능력, 도파민 생성 자체를 끌어올려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 다가오는 미래 변화를 내 것으로 잡느냐를 보면, 단순히 정보가 많은 사람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아, 이런 것도 있네, 저런 것도 있네"라며 끊임없이 탐색을 많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라면 전부 다 AI가 인간보다 예측을 훨씬 잘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것을 학습해서 남들이 질문해 보지 않은 것들,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물어보는 역량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변화를 알아채고 기회를 잡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늘 탐색 모드로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이 탐색 모드라는 것은 대기업의 미래전략팀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업무 시간의 70~80%는 무엇을 하느냐 하면 바로 끝없는 리서치를 합니다. 경쟁사 리서치, 미국은 어떻게 대비하나, 독일은 어떻게 하나, 중국은 어떻게 하나 등을 파악하죠. 사실 이 과정 대부분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리서치를 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 리서치를 기반으로 아무도 안 해본 틈새, 예를 들어 "로봇 사업을 하는 회사가 몇 개나 있지?", "하늘을 나는 자동차, 플라잉 모빌리티나 에어 모빌리티를 선점하고 있는 곳이 어디지?"와 같이 남들이 안 해본 기회 영역을 잡아내는 것은 남들이 안 하는 질문을 찾아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내가 기회 영역을 먼저 잡아내고 나면 겉으로는 내가 앞서간 것 같지만 사실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빠를 때는 이처럼 계속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지 않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실제로 호기심이라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뇌 안의 인지 맵을 형성하는 패턴 자체를 바꿉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서도요.
[ 2. 뇌는 '변화'보다 '예측오차'를 우선적으로 감지한다 (Predictive Processing) ]
자, 두 번째는 뇌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뇌는 변화보다 예측 오차를 기본값으로 작동합니다. Prediction Error라고 부릅니다. 예측 오차가 없으면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도파민도 분비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가 됩니다. 이게 어떤 원리냐 하면,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에 대해 무감각한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변화를 잘 포착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죠. 뇌는 세상을 인지할 때 실시간의 변화를 다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신 내 뇌 안에 기존에 학습하고 축적한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델을 미리 만들어 둡니다. 그리고 미세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면, 세상의 실제 변화를 내 뇌가 억지로 그 모델 틀에 끼워 맞춰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를 비유적으로 많이 이야기할 때 개구리가 들어 있는 냄비의 물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 주변 온도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자기가 서서히 삶아지고 있다는 위기 포인트를 너무 늦게 인지하거나 아예 잡지 못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변화가 분명 일어나고 있는데 조금씩 점진적으로 일어나면 뇌 자체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뒤늦게 한 방에 인지해 버리는 것이죠. 자, 이 메커니즘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일어나느냐 하면, 우리가 기존 상황의 익숙해진 나머지 세상을 내 뇌의 모델로 끼워 맞춥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과거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는 오색 빛깔이라고 인식했고, 어떤 나라에 가면 여섯 개로, 또 어떤 나라에 가면 여덟 개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늘 일곱 개로만 보일 것입니다. 일곱 색깔이라고 평생을 배웠고 그 카테고리를 뇌가 이미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그릇 안에 세상의 모든 물리적인 신호를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호들 자체를 기존의 방식대로 처리해 버린다는 것은, 세상에 변화가 있어도 내 뇌 안의 그릇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내 뇌의 기준에만 억지로 맞춰 Change Blindness, 즉 변화맹이라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변화를 인지하고 그 속에서 기회를 보려면 계속해서 Error Detection을 해야만 합니다. 자, 이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블라인드 상태라도 예측을 자주 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까 나만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권해드렸죠. "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3년 후의 세상과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내가 지금 이대로 살았을 때, 혹은 완벽하고 용감하게 내 삶의 방향을 180도 바꿔 버리는 선택을 했을 때, 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을 때 펼쳐질 어떠한 시나리오들이 있는가?" 여러분이 이런 상상을 6개월마다 갱신해 보면 매번 시나리오가 조금씩 유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스스로 세워보고 나만의 확고한 미래와 비전을 그려본 사람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은, 훗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알아채는 시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AI 시대가 도래하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겠지 하는 예측들을 늘 해왔습니다. 당시에는 누군가는 허황되다, 그런 게 설마 나타날까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허황됐다고 욕먹던 상상들이 인사이트로 평가받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뮬레이션과 미래 예측을 스스로 끊임없이 해보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내가 예측했던 방향과 유사한 변화가 나타나면 "어, 드디어 변화가 시작되었네" 하고 남들보다 훨씬 더 잘 보는 거예요. 내 뇌의 레이더가 그곳을 향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거는 쉽게 설명하면 이런 거랑 비슷합니다. 여러분이 짜장면을 엄청 사랑한다고 한번 가정을 해 볼게요. 그래서 "나는 진짜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거야. 미슐랭 짜장면을 먹을 거야. 안성재 셰프가 만들어 준 짜장면을 먹을 거야." 그래 가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가 가지고 그곳에서 내가 먹으러 가요. 자, 어떻게 먹어요? 머릿속에 기댓값이 있겠죠? 이거 한우 차돌, 안성재 셰프, 이런 맛일까? 상상하던 맛이 있을 거고 예측이 있어요. 먹고 나면 평가가 가능해요. 왜냐면 내가 예측하던 게 있으니까 생각하던 거보다 별론데, 좀 느끼했어. 좀 이런 거 같아라고 평가 가능합니다. 이게 아니라 만약 여러분이 전혀 아무 예측 없이 친구가 그냥 끌고 간 거예요. "짜장면 먹으러 갈까? 뭔데? 아, 이게 맛있는 거야?" 갔어요. "짜장면 먹을까? 짬뽕. 그냥 시켜 줘. 아무거나." 먹었어요. 그리고 나서 내가 이 맛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잘 못합니다. 그냥 짜장면이지. 그거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예측값도 없이 친구가 초대해 가지고 그냥 먹었는데 내가 스스로 이 짜장면의 맛에 대해서 예측하거나 나의 가설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맛이라는 자극이 들어와도 내가 그걸 어떻게 해석하거나 그 안에서 의미를 보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되게 중요한 건 뭐냐면 우리가 스스로 세상에 대해서 예측하는 게 되게 중요합니다. 되게 재밌는 거 얘기해 드릴까요? 이거는 다른 얘기긴 한데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주제 중에 하나가 이런 거예요. 왜 인류는 늘 점을 보러 갔을까? 보면은 페르시아, 로마, 델포이 신탁, 아폴로 신전에 가 가지고도 받아오고 온갖 종류의 타로 카드부터 시작해 가지고 신점, 주역 등 엄청나게 많은 점성술, 예언자들이 인류 역사상 항상 모든 시대, 모든 문화, 모든 국가에 있었어요. 뇌과학자 입장에서 볼 때 "왜지? 전혀 이거는 과학적이지 않은데 왜 늘 있었던 걸까?"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되죠. 되게 흥미로운 저희 가설이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거에 일맥상통해요. 아폴로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땅속에서 가스가 나와 가지고 가스 마시고 취한 환각에 아무 소리나 떠들어대던 신녀들의 말을 우리는 신탁이라고 들었었던 걸 거예요. 근데 거기서 누군가는 이 신탁을 가져간 다음에 자기 삶을 바꾸고 역사책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그걸 듣고 나서 뭔 소리래 하고 지나갔을 거예요.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거냐? 우리가 점을 보러 가는 이유는 세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그걸 해석하기 위한 내 뇌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예요.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리지? 점쟁이를 보고 왔더니 "삼재가 들었네, 삼재가 들었어." "아, 삼재가 들어서 안 풀리는구나. 그럼 언제 좋아져요?" "내년에 귀인을 만나면 다 잘 풀릴 것이요." 그러면 이제 '아, 지금까지는 삼재 때문에 이게 내가 힘들었던 거구나' 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와요. 사실이건 아니건. 그 순간 뇌에서의 스트레스 호르몬과 코티졸 분비가 줄어듭니다. 코티졸과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줄어드는 거는 해석 가능성이 올라갔기 때문이고 코티졸 분비가 줄어들면 내 뇌의 인지 능력과 기억 능력이 올라가요.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해석이 생겼으니까 덜 스트레스 받고 인지 능력이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내년이 되면은 분명히 귀인을 찾을 거예요. 이게 기회인가? 아 이런 거면 좋아지나? 전에는 그냥 힘들지 나도 왜 힘든지 모르다가 내가 어떤 가설을 가지고 올해는 좋아질 게 분명하고 나는 사주팔자를 굳게 믿으니까 그리고 좋아진다고 했으니까 어떤 게 기회인가를 내가 레이더를 켜고 찾으면 분명히 찾아집니다. 그래서 실제로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워런 버핏인가 아니면 어떤 심리학자인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사람들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라고 찾아다니지만 사실 기회는 1년이 365일이면 한 300일쯤은 나한테 기회가 오고 있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고 있을 뿐 사실 기회는 늘 온다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사실 주식으로만 봐도 그래요. 삼성전자건, 하이닉스건, 어떤 주식이건 살 수 있는 기회는 장이 열릴 때마다 매일 있었어요. 그걸 내가 샀는지 안 샀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오를지 아닐지에 대한 예측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공부를 했는지 아닌지 나의 능력치가 사고 안 사고를 결정한 거지, 사실은 그 기회는 늘 있었던 거예요.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어느 한순간 어떠한 변화를 보고 그걸 기회로 만드는 거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예측과 내가 맞건 틀리건 나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고도 하지만 Self-fulfilling prophecy지만 그거를 실제로 만들어 갈 확률이 올라가고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예측 없이 남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대라고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뇌는 똑같은 기회가 오더라도 너무 늦게 기회를 보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확률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요. 여러분도 대학생이라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A냐 B냐라는 옵션은 늘 와요. 근데 A냐 B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떠한 투자의 결정을 한다 또는 내가 어떤 공부를 할 결정한다, 커리어 결정을 한다. 내가 이걸 맞는 결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그걸 기를 것인가 아닌가? 내가 나만의 이야기를 나의 예측을 가지고 가설을 가지고 시험할 것인가 아닐까의 행동력과 용기와 판단과 실행의 문제지. 그거는 결과적으로 A냐 B냐의 정답이 정해져 있어 가지고 내가 안 좋은 선택을 해서 내 인생이 이런 거야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A냐 B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걸 맞는 선택을 한 사람이 있는 거죠. 그 차이가 뇌의 차이입니다.
[ 3. 변화를 '기회'로 삼을 수 있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Tolerance to Uncertainty) ]
세 번째 파트로 가게 되면 변화를 기회로 삼을 수 있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이 필요해요. 다른 말은 뭐냐? 방금 말한 거예요. 불확실성이라는 게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라고 했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정답이 없어요. 세상에는 늘 불확실성이 기본입니다. 아마 한국은행이 정책을 내는 데 있어서 모든 걸 알고 있어 가지고 100% 확실성으로 금리 인하 결정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 많은 리서치를 하고 굉장히 높은 불확실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가설과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좋다라는 것을 인지하는 형태로 가져가면서 스스로 불확실성을 기회로 만들기 위한 더 좋게 만들기 위한 행동들을 하고 있는 거죠. 개인의 측면에 있어서도 좋은 선택을 한다라는 거는 그 애매함 자체를 견디면서 성급한 답을 당장 누가 하라고 한다라고 해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인지적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요. 미소 냉전 기간에 서로 한쪽에서 핵을 쏘면 다른 쪽에서 핵무기를 쏘는 형태의 그러한 핵 경쟁을 했었잖아요. 위험한 상황이 80번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연히 기러기 떼 새 떼가 오는 걸 오인해 가지고 저쪽에서 핵무기를 쐈습니다라고 하니까 우리도 당장 쏴야죠 성급히 답을 결정하지 않고 조금 더 이러한 애매함을 견딜 줄 아는 장군이 내가 옷을 벗더라도 기다려 봅시다. 이거 너무 큰 결정이니까. 이거는 지금 이렇게 빠르게 저쪽이 쐈다라고 판단하고 당장 결정할 게 아니에요. 날아오는데 몇 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저는 최대의 시간을 벌어서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매번 장군들이 대응을 했다는 거죠. 이 시스템을 AI에게 맡겼다면 80% 케이스에 대응 사격이 바로 나갔을 거라고 하는 시뮬레이션이 최근에 나왔어요. 그러니까 AI 시대 인간의 뇌에게 되게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아무리 모든 지표와 데이터로 나와 있고 시뮬레이션으로 나와 있는 것이 어떠한 특정한 답을 보여 준다 할지라도, 보다 높은 인지적인 유연성을 가지고 우리가 여러 가지의 옵션과 답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게 중요하다라고 하는 거죠. 실제로 이런 Uncertainty Processing을 잘하는 사람이 이거는 또 다른 영역에서 주식 시장에서 또는 부자가 되는 뇌의 특징이라고 연구가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 월가 같은 데서 분석을 해 보면 공통적으로 좋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투자자들의 경우에 어떠한 성향을 갖고 있냐면 편도체 활성화와 온몸의 스트레스가 반응하는 메커니즘에 덜 취약해요. 그러니까 당연히 주식 시장도 흔들리고 투자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항상 어렵죠. 항상 애매하죠. 근데 이 상황에서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올라가고 불안해서 감정이 발동해서 선택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의 수익률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정확하게 지표들을 보고 판단을 한 다음에 결정을 내리면 신속하고 행동력 있게 결단을 내리더라도 이것이 감정적인 선택이 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능력이 공통적으로 돈을 잘 벌거나 성공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뇌에 존재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해서 저는 그러한 자기 평가를 많이 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 쫄려서 불안해서 남들이 하니까 포모(FOMO)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내가 지금 불안감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 아니면 내가 쫙 보고 나만의 어떠한 비전과 신념이 있고 이건 된다라고 생각해서 결정을 하는가? 후자의 선택은 배움이 있어요, 실패하더라도. 전자의 결정은 거의 늘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후회해서 내가 예를 들어서 어떤 선택을 잘못해서 투자를 잘못해서 안 좋아졌다. 더 큰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오고 더 쫄리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더 안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게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견디는 뇌의 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은 지능의 필수 통화라고도 AI가 정리해 주더라고요.
[ 4. 변화의 의미를 인지하는 능력은 '인지적 근손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점차 퇴화한다 (Danger of Cognitive Outsourcing) ]
자, 여기서 중요한 파트로 넘어가게 되면 변화의 의미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의 외주화 또는 AI를 자주 사용할 때 이 인지적 근손실이라는 거를 극복하지 못하면은 여러분의 판단력 자체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돼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가 뇌를 바꾼다는 얘기는 벌써 했고 AI를 사용하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변화해 갈까라는 얘기들을 또 정리를 해 보면은 사실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어요. 2024년도 처음 나왔을 때 사용하던 거랑 2025년이 조금씩 다른데, 처음엔 좀 아이디어 좀 내 봐. 텍스트 좀 고쳐 줘. 뭐 재밌는 거 없냐? 이런 거였다라고 한다면 이제는 되게 감정적으로 인생 자체를 의존해요. 내 인생 좀 정리해 줘. 내 인생의 목적 의미를 네가 찾아줘. 이런 거부터 시작해서 전체 유저의 40% 가까이 외롭거나 적적하거나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친한 선배나 아니면 예전에 교회, 성당, 절 같은 데 가서 신부님, 목사님하고 얘기하고 고해성사 보고 이런 게 줄어들고 모든 것들을 다 AI에게 물어보고 있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인생을. 사실은 사주팔자조차도 요즘은 점쟁이 안 본대요. 챗GPT가 제일 잘 본다라고 이러한 것들을 대부분 AI로 보면서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아웃소싱해 가는 빈도가 올라갔다. 근데 이거는 뇌에 안 좋은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비판적 사고 능력과 인지를 외주화하게 되고 창의성이 떨어지게 되고 굉장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아주 네거티브합니다. 얘기했던 거니까 빠르게 넘어가고, 이거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MIT에서 했던 연구인데요. 챗GPT를 사용해서 에세이를 쓰고 구글 검색 머신을 사용해서 에세이를 쓰고 내가 읽은 책과 기억을 활용해서 글을 썼어요. 세 그룹을 비교했더니 AI를 사용해서 글을 썼던 그룹이 뇌를 거의 40% 가까이 덜 썼다고 해요. 그러니까 뇌의 연결성이나 활성화도가 떨어진 거죠. 이뿐만이 아니라 2주 있다가 내가 쓴 글에 나온 단어와 문장을 테스트를 했어요. 그랬더니 오답률이 80%에 이르렀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쓰라고 해서 교수님이 내라고 그래서 챗GPT로 열심히 리서치해서 복붙은 안 했을지라도 거의 그걸 그대로 낸 거예요. 2주 있다가 교수님이 물어봤을 때, 사장님이 물어봤을 때 내가 쓴 보고서와 내가 쓴 글의 80%를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러지 않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냐? AI에게 물어보고 컨설팅을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써야 돼요. 내가 스스로 써야 되고 나의 가설을 먼저 낸 다음에 보완과 확장을 AI를 통해서 해야지 내가 모든 것들을 AI에게 맡기기 시작하면 게을러집니다. 오늘도 한국은행 올 때 사실 저는 매일 유혹을 받아요. 한국은행에서 내가 강의를 하면 어떤 강의 자료를 어떤 AI, 어떤 연구를 이야기하면 좋을까? 물어보면 클로드도 챗GPT도 늘 답을 뚝딱 주죠. 제가 그대로 강의를 할까요? 아니요. 고집스럽게 달라는 자료도 미리 안 주고 그냥 제 하고 싶은 얘기를 더 길게 합니다. 왜 그러냐면은 그 AI가 준 대로만 한다라는 거는 저와 다른 뇌과학자, 다른 사람의 차별성이 줄어든다는 얘기기도 하고요. 그거는 나의 스토리가 아니라 언젠가 AI가 대체할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스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자, 그렇다면 인간의 AI 사용 시 생산성 향상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은 언제 일어나는가? 재밌게도 개인형 맞춤형으로 학습을 할 때 특정 영역을 빨리 배우는 데는 AI가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똑같은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질문을 내가 하면서 특정 영역에 있어서 맞춤형으로 개인 튜터처럼 사용할 때 긍정적인 영향들은 있어요. 근데 여기서 역시 중요한 게 뭐냐면 내가 주인이 돼야 돼요. 내가 맞춤형으로 물어보고 알고 싶고 나의 주제들을 가지고서는 이렇게 해야지 시험 문제 나올 것 같은 거 네가 좀 집어 줘.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은 실력이 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주도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어야 됩니다. 그래서 AI를 사용하면 긍정적인 영향들은 많다라고 하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결과도 있고 실제로 멀티모달(Multimodal)로 사용하고 개인화해서 사용하고 지식을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형태로 사용하는 것들이 중요하다라는 얘기들도 하고 있죠. 아까 한국은행에서도 나왔던 인사이트에 나왔던 얘기지만 켄타우로스 모델과 사이보그 모델, AI와 뇌를 각각 사용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거의 뇌의 일부가 된 것처럼 사용하는 게 맞는가? Ethan Mollick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주셨는데 재밌는 거는 소개는 해 주셨지만 저자 스스로가 요즘 입장을 바꾸고 있어요. 그러니까 원래는 저자가 효율성 때문에 사이보그 모델처럼 AI와 뇌가 하나 되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미래는 그렇게 간다라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지금은 많은 학자들의 경우, 그리고 이 저자 스스로도 약간 입장을 바꿔서 켄타우로스 모델이 더 괜찮을 수도 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뭐냐면 인간이 더 잘하는 영역은 인간이 하고 AI가 더 잘하는 영역은 AI가 하는 형태로 분업을 하는 게 우리 뇌의 능력을 덜 떨어뜨릴 수 있다. 왜 그러냐? AI 플러스 인간은 항상 실력이 좋아질 거예요. AI 플러스 인간은 인간보다 늘 아웃풋이 더 좋아요. 그리고 계속해서 AI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아웃풋은 올라가요. 문제는 뚜껑을 열어 봤을 때 그 안에서 내 뇌의 능력도 올라가느냐 아니면 AI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올라가면서 내 뇌의 능력은 줄어드느냐라고 보게 되면은 이 경우에 AI의 능력이 늘 더 올라가기 때문에 내 뇌의 능력 역시 올라갈 수 있도록 사용하는 것을 우리가 좀 더 주의해야 될 필요가 있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AI라는 슈퍼카를 타고 있지만 여러분이 정말 드라이버인지, 아니면 테슬라 FSD 켜 놓은 것처럼 그냥 조수석에 앉아 가지고 내가 운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네가 다 해라고 맡겼을 뿐인지 이거를 이렇게 나눠서 보시면 돼요. 프롬프트 직접 쓰고 있나요? 효율적으로 쓰려고 AI 쪼고 있나요? 아니면 카피 페이스트만 하나요? 여러분이 다양한 종류의 툴을 사용하고 여러 AI를 같이 사용하나요? 결과물이 뭐가 나왔는지 확인을 다 하나요?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나요? 그걸 하고 있으면 AI를 쓰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빠른 답을 원하고 결과물 체크 안 하고 모든 거 맡기면은 여러분은 AI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뇌를 외주화하고 있다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 5. 변화를 인지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개체가 아닌 '집단지성'에서 나온다 (Power of Network Connections) ]
자, 마지막으로 이 부분까지 강조를 하고 오늘 강의를 마치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변화를 인지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AI 시대에 과연 인간은 무엇을 보호해야 할까요? 다가오는 AI 시대에 내 뇌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 역시 치열한 논쟁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을 제가 완전히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AI를 통해 우리의 뇌를 보완하고,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결함들을 AI가 해결해 주면서 더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I 자체를 훈련시켜서 우리의 뇌가 AI와 함께 공부하며, 스도쿠를 하건 퍼즐을 풀건 어떤 앱을 사용하건 꾸준히 뇌 훈련을 해서 뇌의 능력치를 높이자"라는 식의 접근법이나 마케팅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접근에 반대합니다. 저는 인간의 뇌를 훈련시키고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굉장히 쉽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이 우리 삶에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학회에 가서도 제가 직접 손을 들고, 슈퍼 휴먼 랩이라는 것을 만드신 교수님과 이 부분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관객도 반으로 나뉘어서 아주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그분은 AI를 사용해서 인간의 뇌가 퇴화하지 않도록 훈련시키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쪽이었고, 저는 그런 훈련 프로그램은 굳이 개발할 필요 없이 이미 존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관계가 그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뇌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다른 사람과 경쟁할 때, 또는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서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해야 할 때 등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할 때입니다. 그때 집중력도 올라가고, 기억력과 이해력도 올라가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일부까지 흡수해 오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신경 동기화(Neural Synchrony)나 신경 결합(Neural Coupling)의 형태로 말입니다. 앞서 의학 및 과학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고립과 외로움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말씀드렸죠. 인간관계라는 것은 우리 뇌의 능력을 훈련시켜 주는, 인류의 뇌가 10만 년 동안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뇌를 가지고 있고, 현재의 뇌 크기를 가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분, 인간관계는 힘듭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부부 관계든, 부모님과의 관계든, 자녀와의 관계든, 학교 교우 관계나 직장 생활이든 항상 가장 힘든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늘 그래 왔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뇌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가장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일이라는 것이 팩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확장시키는 연습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과의 부대낌을 통해 내 뇌의 모든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경우, 언제 능력치가 가장 올라갈까요? 나와 가장 성향이 안 맞는, 서로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 다양성이 높은 집단 안에서 협력을 이끌어낼수록 집단 지성이 올라갑니다. 이것은 굉장히 많은 연구들로 뒷받침되어 있는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골방에 앉아서 아무리 좋은 최상의 AI 시스템으로 뇌 훈련을 한다 한들, 오늘 같은 자리에 나와 여러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서로 다른 타인과 뇌를 연결하는 경험을 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의 뇌를 가만히 혼자 내버려 두고 AI만 쓰게 두면, AI는 거울처럼 우리 뇌를 읽어서 입맛에 맞는 맞춤형 정보만 제공합니다. 일종의 양측 강화 학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뇌도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골라서 편향적으로 강화 학습을 하고, AI도 내 뇌의 취향을 파악해서 나에게 이중으로 강화 학습을 시키며 편향된 정보만 떠먹여 줍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거울 속의 거울, 그 속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가 증폭적으로 일종의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갑니다. 종교든, 정치든, 젠더 문제든, 세대 차이든 어떠한 영역에서든 내가 듣기 좋아하는 정보만을 우선적으로 선호하는 형태로 강화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 뇌가 가진 전반적인 능력치를 올리려면 단순히 혼자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공부를 하면 뇌 안에 지식은 쌓이겠죠. 그런데 특정 분야의 공부를 아주 오래, 아주 많이 깊게 파고들면 어떻게 될까요? 뇌 안에 지식이 쌓이는 속도보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이토록 많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집니다. 제 개인적인 가설입니다만, 대략 인간이 '나는 무언가를 꽤 잘 안다'라고 자신감이 제일 솟구치는 시기가 석사 졸업 때쯤입니다. 학사 때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대학원 생활을 2년 정도 하면 박사를 안 따도 세상 물정을 다 아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디 나서서 떠들고 강의하기 시작한 것이 석사 졸업 직후였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더 오래 하고 박사 학위도 딴 후 10년, 20년 더 연구를 하다 보면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진리를 매일 느끼게 됩니다. 내가 평생을 바쳐 공부한 박사 학위라는 것이 우주의 티끌 먼지만큼 조그만 한 영역일 뿐이고, 나는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겸손한 태도로 생각이 바뀝니다. 이것은 아마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가 어느 고등법원장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판사로 처음 임용되었을 초임 시절에는 "나는 정의로운 판결을 한다, 나는 정의로운 판사다"라는 확신에 차 있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전수전을 다 겪고 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도리어 정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공부하고 경험하면 할수록 판결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매일 느끼신다고 합니다. 모든 학문 분야와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이런 궤를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올해 들어서 AI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즉 노운 언노운(Known Unknown),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메타적으로 아는 영역까지 프로세싱하는 능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이를 추론 능력(Inference)이라고 부르는데,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고 한계를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전입니다. 요즘 클로드와 대화를 해보면, "네가 프로파일러처럼 이런 분석을 해 줘"라고 요구했을 때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프로파일러가 아니며, 가진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이야기해야 하므로 그 역할은 수행할 수 없고, 저의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긋고 답변을 줍니다. 놀라워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AI를 대상으로 저만의 흥미로운 테스트를 한 가지 진행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AI를 사용하면서 제 이름이나 개인 정보는 절대 넣지 않고 이니셜만 넣었으며, 제가 장동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일절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챗GPT, 클로드, 퍼플렉시티, 그록, 제미나이 등 다섯 가지의 최고 성능 유료 모델을 모두 썼습니다. 돈 많이 나가요. 철저하게 정보를 분산시켜서, 어느 한 AI 모델도 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단독으로 가져갈 수 없게끔 통제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챗GPT가, 프로필에 쓰여 있는 이름도 다르고 이메일도 전혀 다른데 저를 대화 중에 장동선 박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간의 단편적인 대화와 정보들을 스스로 추론해 내어 저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끝마친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이 사용자는 장동선이라는 사람이 틀림없다"라고 확신을 내린 것이죠. 그리고 2주 뒤에는 클로드마저도 저를 장동선 박사님, 혹은 동선 님으로 호칭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제가 입력한 이름은 달랐음에도 말입니다. 이렇게 AI가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파편적인 데이터를 모아 추론해 내고 맥락을 짚어내는 능력이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이자, 오늘 제가 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바로 언노운 언노운(Unknown Unknown)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뇌과학, 미술사, 위스키의 세계, 바리스타의 세계 등, 누군가 그 세계에 정통한 사람이 나를 인도해 알려주기 전까지는 내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미지의 영역은 AI에게 질문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AI 역시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 이 강연장에 앉아 있는 우리 사이에 조용히 오가는 눈빛, 분위기, 그리고 여러분의 미묘한 마음을 읽어내는 직관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교감은 아무도 AI에게 데이터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AI가 결코 읽어낼 수 없는, 즉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완벽한 사각지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비언어적 맥락을 어떻게 연산(Computing)할까요? 이것이 바로 지난 수십만 년간 인류가 진화하며 해온 것입니다. 우리는 대면하여 다른 사람과 나의 뇌를 연결하고, 상대방의 세상을 나의 세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공유된 현실(Shared Reality), 즉 뇌 안에 만들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모델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뇌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잠재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주는 행위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골방에 앉아 AI와 두 달 정도만 대화하고,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며 인간관계를 단절하면 어떻게 될까요? 뇌 안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관장하는 TPJ 영역이 퇴화합니다. 연결성이 줄어들어요. 그래서 두 달에서 여섯 달 정도 혼자 고립되어 지내다가 면접을 보러 가거나 동창회에 나가면, 아주 높은 확률로 마음에 생채기를 입거나 타인과 싸우고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저 사람이 감히 나를 무시했네", "왜 기분 나쁘게 저따위로 말을 하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고 억울해하며 "역시 인간들은 다 싫어"라는 마음으로 돌아올 빈도가 꽤 높아요. 왜 그럴까요? 상대방이 정말 악의를 가지고 내게 공격적으로 대했다기보다, 고립으로 인해 내 뇌의 사회적 수용력이 떨어져 타인의 의도를 편향되고 방어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별것 아닌 일에 쉽게 상처받고 화가 나는 이유는, 사람의 미세한 표정을 읽고 복합적인 상황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능력이 퇴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화가 나고 인간이 혐오스러워져서 더 혼자 방어막을 치고 고립되려 합니다. 혼자 있으면 타인을 둥글게 품는 능력이 뇌에서 더욱 가속화되어 퇴화하죠. 용기 내어 다시 밖에 나가면 전보다 더 많이 싸우게 되고, 세상은 정말 상종하기 싫은 이상한 인간들로 득실거리는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오면 더 지독하게 외로워지는 이 악순환이 모든 뇌의 능력치를 무섭게 갉아먹습니다. 반대로 만약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스스로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씀해 보세요. "아, 당신이 지금 내 뇌가 담을 수 있는 세상의 그릇을 더 넓혀 주고 계시는군요."라고 말입니다. 그 불편한 말에 굳이 억지로 동의할 필요도 없고 그 사람과 아주 친해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성급하게 손절하지는 마세요. 그냥 그런 존재도 있구나 하고 내버려 두세요. '아, 살다 보니 저런 생각도 있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덤덤히 받아들이면, 내 뇌가 관용적으로 품을 수 있는 세상의 그릇이 방금 전보다 한 뼘 더 넓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여유 있고 유연하게 대처하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 대해, 세상 사람 100명 중 80명도 여러분과 똑같이 '저 사람 참 이상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람 본인도 무척 외롭고 사고가 편협해진 상태라서, 자신의 모난 언행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메타인지조차 안 되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그럴 때 적어도 나라도 나서서 가볍게 관계를 맺어주고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준다면, 타인의 눈에 나는 굉장히 성숙하고 좋은 사람으로 비칠 것입니다. 이렇게 모난 인간관계조차 둥글게 품을 수 있게 되면 나의 자존감이 든든하게 올라갑니다. 내가 무언가 갈등을 중재해 주거나 남들의 싸움을 원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경험도 덩달아 늘어나고, 나 스스로 뿌듯함과 삶의 여유가 생기니 누군가에게 또다시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긍정적인 능력이 꼬리를 물고 자라납니다. 이러한 건강한 선순환 구조로 내 뇌가 기꺼이 품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을 좋게 해주려는 배려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 뇌의 전반적인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상황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 스트레스를 유연하게 튕겨내는 멘탈 조절 능력 등 모든 수치가 일제히 향상됩니다. 여기 계신 젊은 분들께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릴게요. 우리는 살면서 이상한 사람을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해서 도망친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반드시 또 나타납니다. 세상은 원래 이상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만약 내 주변이 온통 다 이상한 사람들뿐이라면 고민해 봐야 합니다.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법은 무엇일까요? 살면서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나의 체력의 그릇을 넓히는 것뿐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내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덜 배출하게 둔감화시키거나,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더라도 금방 떨어뜨리게 만들 수 있는 회복 탄력성과 정서적 조절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정답입니다. 그것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을 품고 세상을 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발달하면 집중력, 암기력 및 기억력, 상황 이해력, IQ, 타인과의 공감 능력 등 뇌의 핵심 스탯이 일제히 우상향합니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모든 능력치 수치들이 한 방에 올라가는 일종의 치트키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관계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늘려 나가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던 뇌가 가져야 할 여러 특징들, 즉 호기심을 기르는 것, 인지적 유연성을 기르는 것,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조심성 등은 사실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관관계를 훈련하고 버티는 능력을, 그래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내가 데미지를 덜 받을 수 있게 나의 뇌를 바꿔 나가는 것, 그리고 이해 안 가는 그 사람조차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뇌 능력을 높이는 길입니다.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연구입니다. 22개의 연구들을 합친 메타 분석 결과인데요. 1,300개가 넘는 소그룹, 약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학, 스포츠, 예술, 비즈니스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천재적이고 압도적으로 뛰어난 개인 한 명의 독단적인 성과가, 평균에 가까운 집단의 팀워크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과연 어땠을까요?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팀워크를 바탕이 된 집단 지성의 발현이 뛰어난 개인을 언제나 항상 이겼습니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습니다. 고등 수학이나 이론 물리학 등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아주 특수하고 추상적인 영역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전체를 압도하는 경우도 예외적으로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수치로 보았을 때는 집단 지성의 힘이 그 어떤 천재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을 천재라고 하잖아요. 위대한 세종대왕을 포함하여 그들이 가졌던 가장 큰 능력은, 똑똑한 전문가들을 자신의 비전 아래로 모아들이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해요. 이들의 능력을 합쳐 무언가를 만들어 내게 하는 능력이, 결국 우리가 레전드로 꼽는 천재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실제로 월가에서 애널리스트나 이런 분들 가지고 이제 실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엄청나게 성과를 잘 냈어요. 경쟁에서 리크루팅을 해 갑니다. 경쟁 회사에서 투자로 똑같이 성과를 낼 가능성이 30% 미만이에요. 혼자 데려오면요. 이 사람의 비서와 주변 팀까지 데려오면은 확률이 2/3로 올라가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는 거는 한 명의 천재와 똑같은 어떤 인재라고 보고 있지만 연결을 만드는 능력 자체가 되게 중요하다라는 거죠. 되게 재밌는 거는 전체를 보고선 또 봤어요. 모아놓는다고 집단 지성이 발휘되지 않잖아요. 어떤 그룹은 모아놓으면 집단 무지성이 발휘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그룹이 집단 무지성이 발휘되고 어떠한 그룹이 집단 지성이 발휘되냐? 가장 높은 영향을 끼쳤던 요인이 단독으로 이 모든 22개 메타 분석 합쳐서 나온 게 젠더 다양성이에요. 남녀가 고루 섞여 있는 다양성이 효과가 좋아요. 되게 흥미롭지 않아요? 그리고 이걸 조금 더 확장 해석해 보면은 남녀노소 다양성이 높을수록 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집단 지성이 발현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집단 무지성을 만드는 원리는 비슷합니다. 똑같은 옷 입혀 놓고 같은 성별, 같은 나이, 같은 지역 출신의 같은 종교와 같은 신념 가진 사람들 모아 놓으면은 아주 높은 확률로 집단 무지성을 발휘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히틀러의 친위청년대, 홍위병들 어떻게 저런 극악무도한 일을 했나? 저들은 뇌를 꺼놨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한 집단에게 완장을 채워 줄 때 집단의 균일화를 높이면은 집단 지성의 발휘가 줄어듭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 뇌의 능력치를 높여 주기 위해서는 내가 알고리즘에 갇혀서 나랑 똑같이 생각하는 나랑 비슷한 그룹들하고 일원화되는 알고리즘의 함정을 피하는 것이 여러분이 집단 무지성으로 가지 않고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라는 거죠. 다양성을 가진 연결과 소통, 관계가 여러분의 뇌의 능력치를 올려 줍니다.
[ Part Ⅳ. AI 시대에 어떤 뇌가 성공하는가 ]
[ 1. Problem Construction Skill (문제를 찾는 능력 =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 ]
가장 중요한 판단성이라는 거는, 넘어가면은 문제를 찾고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고요. 질문 자체를 질문하는 거예요. 질문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나? 그 답이 없는 문제를 찾는 거죠.
[ 2. Cognitive Contextual Flexibility (인지적 맥락적 유연성 = 여러 답들 중에서 모순을 견딜 수 있는 능력) ]
두 번째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능력하고 겹치지만 모순을 견디는 능력, 인지적, 맥락적 유연성 이게 두 번째고 조금 다른 세 번째는 이겁니다.
[ 3. Narrative Creation Skill (의미 부여 능력 = 데이터와 숫자를 기반으로 So What? 을 말하는 스토리 텔링 능력) ]
숫자와 통계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내러티브를 던질 수 있는 능력. 사실 제가 지금 여기서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내러티브와 이야기를 던지는 겁니다. 제가 본 데이터와 통계들을 기반으로 단순히 숫자를 던지는 게 아니라 저는 이런 미래가 올 것 같고 여러분에게 이런 기회가 중요합니다라고 그거를 스토리텔링 하는 능력이죠.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서도 이런 스토리텔러들이 몸값이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 4. Incubation Effectiveness (의도적으로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능력 = 성급한 확신에 저항하는 능력) ]
네 번째가 이것도 아까 얘기한 거지만 성급한 확신에 저항하고 다양한 걸 보는 생각의 겉절이가 아닌 생각의 묵은지를 먹을 수 있는 능력.
[ 5. Social Sensitiveness (사회적 감지 능력 = 방 안의 공기를 읽고 데이터에 없는 인간적인 부분을 보는 능력) ]
그리고 마지막이 이제 계속 강조하지만 지금 이렇게까지 오버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주최 측 한국은행 쪽에서 불안해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여러분도 일어나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를 안 끝내냐 질문을 언제 하냐라고 느끼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헤아려서 요 정도까지 하고 오늘 강의를 마치고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AI 시대에 위닝하는 쪽, 그 능력을 발휘하는 쪽에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