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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이 수행하는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자율성·자주성이 존중되어야 함을 천명하는 한편 국회에 대한 책임과 정부와의 협력 및 견제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대한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매년 2회 이상 통화신용정책 수행상황과 거시 금융안정상황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하고 총재는 동 보고서와 관련하여 국회 또는 그 위원회가 요구하는 경우 출석하여 답변하여야 합니다. 또한, 한국은행 총재 임명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며, 매년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정부와의 협력과 견제를 위해 「한국은행법」에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이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한국은행이 목표로 하고 있는 물가수준을 설정할 때 정부와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획재정부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상충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금융통화위원회는 금융위원회가 통화신용정책과 직접 관련되는 금융감독상의 조치를 하는 경우 이의가 있을 때는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정부정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명시하고 있으므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협조하는 것이 물가안정과 상충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정부정책과의 조화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인지에 관하여는 한국은행의 독자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답변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역사는 대한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통화주권 회복을 위해 1901년 2월 「화폐조례」 및 1903년 3월 「중앙은행조례」, 「태환금권조례」 등을 공표하는 한편 「대한중앙은행정관」을 제정(1903년 3월)하고 총재·부총재를 임명(1903년 8월)하는 등 대한중앙은행의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우리 경제주권을 찬탈하면서 일본 제일은행이 대한제국의 화폐정리 및 국고금취급 사무를 수행하고 제일은행권이 통용되는 등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통감부의 협정에 의해 1909년 11월 구(舊) 한국은행이 설립되어 당시 일본 제일은행이 맡아오던 발권 및 국고업무를 인수하였습니다. 구(舊) 한국은행은 한일합방 후 1911년 8월 조선은행으로 개편되었는데 발권·국고업무 등 중앙은행의 기능 외에 상업은행업무도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 6월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중앙은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 외환정책 및 은행감독에 대한 광범위한 기능을 부여받았으며 정책결정의 자율성도 상당 폭 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성장위주 경제정책운용을 금융 면에서 뒷받침할 목적으로 1962년 5월 「한국은행법」이 대폭 개정(제1차 개정)되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최종권한 및 외환정책이 정부에 귀속되고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정책결정사항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재의요구권이 신설되는 등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과정이나 업무 운영에 대한 정부의 간여장치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은행법」은 기본골격의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1997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되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적으로 거시건전성정책의 중요성이 확대됨에 따라 2011년 9월 제8차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하여 목적조항에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도록 하여 금융안정 책무를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등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은행에 있던 은행감독원은 1998년 4월 1일자로 한국은행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1월 2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및 신용관리기금과 함께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참고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행, “한국의 금융제도”, 2011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하는 일”, 2010
정운찬·김홍범, “화폐와 금융시장”, 율곡출판사, 2012

답변

한국은행은 무자본특수법인입니다.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이라는 점에서 그 법적 성격이 민법에 의하여 설립되는 사단·재단법인이나 상법에 의하여 설립되는 회사와 다르며, 그 조직·업무·운영 등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설립근거법인 「한국은행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화폐의 독점적 발행,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및 집행, 정부예금의 수입 및 대정부 여신 등 「한국은행법」에 의하여 부여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점에서 행정주체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독자적인 법인격을 가지고 있어 국가행정기관은 아니며 그 소속 임직원도 공무원의 신분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은행 업무의 공적 성격을 감안하여 형법 기타 법률에 의한 벌칙 적용에 있어서만 공무원으로 볼 뿐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은행을 국가행정조직과 분리하여 특수법인으로 한 것은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집행 등 중앙은행 기능이 일반행정과 달리 전문성·중립성·자율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독립적인 기구에 맡기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행은 특수법인이면서 무자본법인입니다. 여기서 무자본이라 함은 납입자본금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 한국은행의 회계에는 자본금계정이 없으며, 장래의 손실 보전 기타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순이익금의 일부를 내부에 유보하는 적립금을 보유할 뿐입니다. 한국은행을 무자본법인으로 한 것은 중앙은행의 업무는 독점적인 발권력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자본금이 일반기업에서와 같은 영업기금으로서의 의미가 희박한 점이 작용하였지만, 이 보다는 한국은행이 출자자본금을 가지는 경우 출자자(실제로는 정부)와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적·자율적인 운영이 저해될 우려가 있고 자칫 수익성을 추구함에 따라 중앙은행으로서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없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답변

중앙은행이 처음부터 공공기관으로 출발하였던 것은 아니며 초기에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특수 상업은행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으로 알려진 스웨덴 국립은행은 1656년에 민간은행으로 설립되어 1668년부터 국회의 승인 하에 정부의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다른 상업은행들과 경쟁적인 관계에서 일반상업금융업무도 취급하였습니다. 이 은행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230년 후인 1890년에 들어서이며 독점적 발권력도 1897년에 부여받았습니다. 한편, 독점적인 발권력을 세계최초로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은 전형적인 중앙은행의 효시로 꼽히는 영국의 영란은행도 1694년에 설립되었으나 당시에는 중앙은행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영란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영국의 유일한 화폐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영란은행에 대해서만 은행권 발행을 허용한 은행특허법(일명 : Peel's Act)이 제정된 1844년의 일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정부가 재정자금이 필요한 경우 이를 지원해 주는 대신 은행권발행에 있어 특혜를 받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상업은행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후 국가의 지원과 보호 하에 발권기능을 독점하게 된 중앙은행이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근대적 중앙은행의 기능이 점차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화폐제도가 1930년대 초 화폐발행규모를 금 보유량과 연계시켜온 금본위제도에서 관리통화제도로 이행되면서 중앙은행은 국가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무제한적으로 통화증발이 가능한 관리통화제도 하에서는 통화가치의 붕괴 위험이 언제나 잠재하기 때문에 발권기능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국민경제적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행, “한국의 금융제도”, 2011
김시담, “통화금융론”, 박영사, 2004
정운찬, "“중앙은행론”", 학현사, 1995

답변

조선은행은 1982년에 청산절차가 완료되었으므로 조선은행 예치금, 조선은행발행 수표금에 대한 지급을 청구할 상대가 없어진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한국은행과 조선은행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시지만 법적으로는 서로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기관입니다. 즉, 한국은행은 1950년 6월에 설립될 당시 조선은행이 발행한 지폐와 재무부장관과 조선은행총재가 합의한 범위에서 조선은행 부채의 일부를 인수하였으나 일반 민간인이 갖고 있던 예금을 비롯한 조선은행의 민간인에 대한 부채는 인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행은 법률에 의하여 민간인과는 예금·대출업무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한국은행은 민간인의 조선은행 예치금, 조선은행발행 수표금 등에 대하여 지급책임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답변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 제79조에 따라 정부·정부대행기관 또는 금융기관 이외의 법인이나 개인과 예금 또는 대출의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한국은행은 정부·정부대행기관 또는 금융기관외의 법인이나 개인의 채무를 표시하는 증권을 매입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업무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법인과는 예금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답변

구(舊) 한국은행은 1909년 7월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 통감부와 「한국 중앙은행 설립에 관한 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공포한 「한국은행조례」에 따라 같은 해 11월 설립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 일본 제일은행이 수행하던 발권 및 국고업무가 구(舊) 한국은행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 체결 후 일본이 금융제도를 개편하면서 「조선은행법」을 제정 공포함에 따라 구(舊) 한국은행은 1911년 8월 15일 조선은행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조선은행은 발권, 국고업무 등 중앙은행 기능을 일부 수행하였으나 그 궁극적인 설립 의도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수탈과 일본 산업자본의 대륙침투를 위한 금융조직을 보다 강화하는 데 있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행은 태평양전쟁 기간 중 은행권을 남발함으로써 일본의 전비조달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도 조선은행은 미군정법령에 의하여 발권, 국고, 대외지급준비자산의 보유, 시중은행에 대한 재할인 등 기존의 중앙은행 업무와 함께 상업은행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였으나, 1950년 5월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조선은행은 중앙은행 업무를 신설 한국은행에, 상업은행 업무를 상호은행에 이양하고 해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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